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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은 우리로 하여금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상상하게 해주기도 하며, 또 나에게, 주변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공감하게 하기도 한다. 조남주의 우리의 쓴 것 역시 그런 책이다. 그녀의 책은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82년생 김지영, 그리고 귤의 맛-나는 82년생 김지영도 아니었고, 귤의 맛의 해인, 소란, 다윤, 은지도 아니었지만, 그녀의 책의 주인공들에게 이상하게 끌리고, 이상하게 공감이 간다. 이 책의 8가지 소설은 초등학생부터 여든이 넘은 여성의 각기 다르면서도 비슷한 삶을 서사하며 우리를 그들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이 책의 두번째 소설 [오기]는 82년생 김지영으로 겪었던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한 자전적 소설이 아닌가 싶다. 주인공이 쓴 책은 중년의 남자 배우가 읽고 추천하여 개념남으로, 라디오에서 책을 소개한 여자 DJ는 해명글을 올렸었고, 소설에는 있지도 않은 문장들과 에피소드가 리뷰에 올라간다. 작가가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여러가지 비평으로 겪었을 일들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 같았다.
[현남 오빠에게]에서는 연인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을 당했고, 그 관계를 돌아보니 아무것도 혼자 힘으로 할 수 없었던 한 여자, 그리고 그에게 이별을 고하면서 스스로 일어서려고 하는 여자를 그려냈다. 아무래도 이 소설집에서 가장 통쾌하면서도 절대 잊을 수 없는 문장은 "강현남 이 개자식아!"가 아닐까.
[미스김은 알고 있다]는 이름으로 한번도 불린 적 없고, 또 회사에서 다방면으로 일을 너무 잘해 직급은 낮지만 견제를 받는 그리고 결국 부당해고를 당하는 미스김, 그리고 그녀의 후임인 “나”는 그녀의 유산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사람들이 그로 인해 불편해하는 것을 지켜본다. 이 글의 미스 김은 지금도 나의 영원한 선배 미스 김 언니를 생각나게 한다. 내가 신입사원일 때도, 지금도 그녀는 미스 김이다. 그녀의 예쁜 이름을 두고 그녀를 미스 김이라 불렀고, 그녀는 매번 그녀를 무시하기 일쑤였던 박과장보다도 일을 잘했던 그녀가 여름 휴가를 가면 사무실이 마비였다. 난 박과장이 뒤에서 그녀를 욕할 때마다 한번쯤 미스 김언니가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을 뒷통수쳤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예를 들면 하드드라이브를 다 날리고 간다던지 이런 짜릿한 복수말이다. 물론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 선배가 생각나는 글이었다.
[매화 나무 아래]와 [오로라의 밤]은 약간 비슷한 분위기를 띄고 있는데, 아무래도 주인공이 우리 어머니 나이뻘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그런가보다. 나는 개인적으로 오로라의 밤이 더 마음에 들었다.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 이야기지만 너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일까. 오로라를 보면서 손주 돌보기 싫다고, 그리고 다시 일하고 싶다고 소원 비는 부분은 왜 이렇게 현실적인지. 그리고 "한 발짝만 걸어 나와도 길은 넓고 많은데 일상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 한 발짝의 계기가 그들에게는 오로라였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으니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부분 역시 공감이 갔는데, 실제로 나 역시 꿈에 그리던 동남아의 한 외딴 섬을 갔다와선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돌아왔고 아예 그 섬에서의 일주일이 꿈만 같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아했던 나의 원픽은 [첫사랑 2020]이다. 코로나 시대의 초등학생 아이들의 첫사랑. 선물은 마스크. 그리고 그 첫사랑의 끝. 서연이와 승민이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귀엽다. 하지만 순수할 것만 같은 이 소설에서도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집안 사정으로 학원도 갈 수 없고, 카톡을 할 수 있는 스마트폰도 못 사게 되는 서연이의 모습에서 결국 이 어여쁜 아이 둘을 멀어지게 하는 것이 어른들의 세계, 그리고 이 사회였구나라는 것이 그려져 나의 마음을 슬프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네 말대로 코로나 때문에 만나지도 못하잖아. 근데 사귀어서 뭐해? 우리가 할 수 있는게 뭔대?"라는 서연이의 말은 코로나로 이별을 해야만 했던 여러 주변의 이야기들, 아이들의 이야기지만 그 안에 어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더욱 마음이 갔던 것 같다.
이 외 [여자아이는 자라서], [가출], [매화나무 아래] 글도 너무 좋다. 현실적이지만 현실적이지 않으면서도 내 이야기 같지만 내 이야기같지 않은 우리들의 이야기, 조남주, 그녀가 쓴 것을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