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며 보이는 아이의 반응이 재미있어서(고슴도치 엄만데, 뭔들 신기하지 않으랴만 ^^;) 꼭꼭 기억하고 싶을 때가 많다. 이건 적어둬야지, 이건 옆지기에게 알려줘야지~ 라고 마음을 먹는 건 잠깐. 바쁘다고 미뤄놓다가 잊어버려서 못 적기 일쑤. 오늘은 기억 나는 몇 가지라도 적어둬야지.
한 달 내내 저녁마다 읽은 책.
이제는 그림만 보고도 무슨 내용인지 줄줄 외워서, 마치 글을 알고 읽는 아이 같다.
그림과 내용도 재미있고, 입에 착착 감기는 운율이 있어, 읽어주는 나도, 듣고 있는 아이도 좋아하는 책.
올리비아를 보면서 "꼭 나 같아"란다.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는 것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것도,
거울 보며 어른 흉내내는 것도,
엄마와 읽을 책 권수를 협상(!)하는 것까지도 말이다.
"엄마, 나랑 정말 똑같아."라며 어찌나 즐거워하는지 책꽂이에만 꽂아두고 읽어주지 않았던 게 미안할 정도이다.
그리고, 내게 확인하는 말, "엄마도 날 사랑해?".
"그럼, 엄마도 널 사랑하지."라고 대답은 하고,
"그런데, 밥을 잘 안 먹으면 좀 속상하고 덜 예뻐. 슬이가 밥을 잘 먹으면 좋겠어."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 "엄마는 이 책 볼 때마다 꼭 그 말을 해야 해?" (그래, 미안^^;)
둘째 아이에게 어려운 책이 아닐까 싶었는데, 제 방식으로 잘 듣고 본다.
문제는 ... 색이 입혀지지 않은 그림을 보고는 색칠을 하겠다고 우기는 거.
"엄마, 여기에 색칠하는 거야?" --> 아니.
"그런데 왜 하얘?" --> 작가 선생님은 색이 없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하셨나봐.
"그래도 색칠하면 예쁠 것 같은데." --> 색이 없는 것도 예쁜데?
"엄마, 나 여기에 색칠하면 안 돼?" --> 응, 절대 안 돼.
"왜? 나, 색칠하고 싶어, 응?" --> 여기에는 절대, 절대, 색칠하면 안 돼. 여기에 색칠하면 안 읽어준다!
이런 대화를 며칠째 반복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책이 무사(!)하지만 ... 조만간 분홍색 코뿔소를 보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
집에서와 달리 사람들 앞에서는 수줍음(?)이 많은 둘째 아이.
혹시 이 책을 읽으며 뭔가 얘기 나눌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있는데 ...
이 책의 키티 이야기가 펼쳐지는 내내 긴장하는 표정으로 들여다 보더니, 키티가 집에 무사히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환한 표정을 지으며,
"언니랑 엄마, 아빠가 나왔어. 키티가 와서 좋다고 하나봐."
(맨먼저 뛰어나온 언니를 가리키며) "언니가 키티가 없어서 안 좋았는데 ... " 란다. 아, 말이 없이 그림만 보고도 이해하고 느끼는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