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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넬(Fennel)
지중해 연안 원산의 다년초 크게 자라면 1.5m나 된다.
딜과 꼭 닮은 새 날개와 같이 밝은 녹색의 가벼운 잎 우산같이 노랗고
큰 꽃이 특징이다. 이꽃은 여름에 피고 가을에는 아니스와 비슷한 향기가 좋은 종자를 맺는다. 종자,줄기, 잎의 식물 전체를 이용할 수 있는, 폭넓은 허브의 대표격이다. 플로렌스 펜넬(Foeniculum Dulce)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그비대한 하얗고 굵은 줄기를 채소로서 작용하는 품종으로 샐러드 등에 이용한다. 이탈리아어로는 "피노키오"라고 부른다.
원예종으로서 잎이 아름다운 청동색의 브론즈 펜넬도 있는데 허브가든에 심어서 즐거움을 더하는데 유용하다.
네페타 카타리아
케트닙
캐트닙, 캐트네프로 불리는 이 향기좋은 허브는 민트 종류로
북아메리카, 유럽이 원산이다. 영국에서는 생울타리에 보이는 들풀이기도 하고 캐러민트로 불리는 경우도 있다. 네페타 카타리아(N. cataria)는 옛날부터 약초로서 이용된 품종으로 연한 녹색의 잎에 하얀 꽃을 피운다. 라벤더와 같이 화단의 둘레에 즐겨 심는 귀엽고 청초한 청자색의 꽃을 피우는 네페타 카타리아(N. cataria)라는 품종이다.
 
슈퍼민트(Super Mint)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데 60~90cm 정도로 자라며, 직립성의
붉은색의 줄기를 갖는다. 잎은 털이 없고 밝은 녹색을 띠며, 꽃은 연한 보라색이다. 요리에 주로 사용되며, 민트 중 향이 가장좋다. 옛날부터 긴히 쓰인 약초였는데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생잎이나 스피아민트 오일을 목욕물에 넣으면 신경이나 근육을 이완시켜 주어 진정, 진통효과가 크므로 널리 이용했다. 또 옛날에는 딸국질을 멎게 하는 데도 이용되 었으며 통풍제, 소화불량 및 뱃멀미와 메스꺼움에도 진정효 과가 크다고 하였다.
잎의 즙은 상처, 벌에 쏘인 데, 입안이 헤졌을 때, 손발이 튼데에 약용했다.
또 담배의 냄새를 없애는 향유의 원료로도 쓰인다. 그리고 방충용으로 양복장서랍에 향낭을 만들어 넣기도 하여 유럽에서는 지금도 널리
애용되고 있다.




헬리오트러프(Heliotrope)
짙은 자색의 꽃에 강한 향을 가진 1년초. 종자에서 용이하게 재배할 수 있고 화단의 둘레 장식으로 즐겨 심는다. 그리이스 신화에서는 물의 님프 클리티에(Clytie)의 화신이라는 꽃으로 전해지고 있다. 클리티에는 태양의 신 아폴로에게 마음을 주었으나 그 사랑은 성취되지 못하여, 사후에 아폴로가 그녀를 이 꽃으로 변화시켰다고 한다.


레몬그라스 (Lemon grass)
다년초로 키가 11.5m로 자라며 억새를 닮았다.
줄기는 땅 속에 있어서 짧고 마디가 있다. 내한성이 없는 것이 결점이며 잎을 손으로 비벼보면 레몬향이 난다. 해가 잘 들고 따뜻한 곳의 배수가 잘 되는 사질 양토가 좋다. 요리의 부향제나 약품, 비누, 향수, 린스 등의 부향제로 쓰이며 차로 마시면 향기가 좋다.
이용부위는 잎,오일,줄기이며 원산지가 인도,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열대지방이다. 번식법은 파종,포기나누기로 하며,허브차와
향료로 많이 쓰인다.
 

체리세이지

블루세이지

멕시칸세이지
세이지 (Sage)
벨벳처럼 촉촉한 감촉의 잎에 장뇌와 비슷한 산뜻한 방향과
쓴맛이 있다. 수많은 변종이 있고, 대표종은 컴먼 세이지(common sage) 또는 가든 세이지(garden sage)라 불리우는 종류로 요리, 약용에 가장 적합하다.
샐비아와 세이지는 자매어이며 일반적으로 샐비아라 불리는 경우도 있다. 60cm 정도로 자라는 은색 잎의 군락은 생활에 유용할 뿐만 아니라 정원에 심으면 장식으로서도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지중해 북안지방이 원산이며 유고슬라비아의 다르마티아 구릉지대에는 야생화되어 있고 그 건조엽, 세이지 벌꿀은 유고슬라비아의 주된 수출품이 되어 있다. 6~7월에 걸쳐 피는 자색의 꽃은 밀월식물로서 꿀벌도 즐겨 모여든다. 그 열린 문의 모양은 태양의 불꽃속에서 물을 마시는 작은 사자의 입과 닮았다고 옛날부터 이야기해 왔다.
살균작용,소화촉진에 탁월하며 건강유지에 융요한 허브이다.
돼지고기 등 기름기 많은 요리에 가해서 기름기를 억제시키는 효용도 있다. 이러한 일 때문에 1551년 독일의 약초가가 이 허브에 딱 들어맞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다. 세이지는 의사, 얏사에게도, 부엌, 지하실 같은 장소도, 빈부를 불문하고 유용한 허브이다.
품종으로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도 있다.
- 레드 세이지(S. offficinalis 'Purpurascens') 진한 자색의 잎이 있으며 요리용으로도 쓰인다.
- 트리칼라 세이지(S. offficinalis 'Tricolor') 말 그대로 세가지 색깔인데 녹색,홍색,크림색의 3색의 잎이 있다.
- 브로드리브 세이지(S. garndiflora) 꽃이 피지 않는 것도 있으며 잎이 넓은 품종으로 향이 좋고 건조에 적합하다.
 


제노바실 (Geno Basil)
유인도,열대아시아,아프리카 원산의 2년초, 더위에는 강하나 건조에
약하므로 한여름에는 포기주변에 짚이나 낙엽등을 덮어주어 흙의 건조를 막아주는 것이 좋으며 월1회정도 복합비료를 시비하는 것이 좋다.
이용부로는 잎,꽃,줄기,열매,씨를 쓴다. 높이 40~80cm의 7월초에서 9월말 흰색,분홍색의 꽃을 피운다.
스테비아 (Stevia)
원산지인 파라과이에서는 “단풀”이라는 뜻으로 차의 감미료로 썼다.
키가 60cm 내외로 자라는 다년초로 추위에 약하다.
해가 잘 들고 배수가 잘 되는 사질 양토가 좋다. 잎은 설탕처럼 단맛이 있어 감미료로 이용하며 분말, 정제, 티백 등으로 상품화되고 있다.
아이스크림, 껌, 청량음료, 약품 등의 감미료로 쓰이며 다이어트 식품의 감미료로도 이용된다. 당뇨병, 심장병, 비만, 충치 등의 저 혈당제로써 스테비아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허브차로 이용할 때는 1컵에 생잎 1~2장이면 된다.
파인애플 세이지 (Pineapple Sage)
멕시코가 원산으로 녹색잎을 갖고, 둥근 잎에 파인애플 같은 향기가
있으며 빨간색의 가느다란 꽃이 가을까지 아름답게 피어 포플리나 절화로 꽃다발 등에 쓰며 쿠키를 만들때도 이용된다. 추위에 약하다.
재배는 간단해서 해가 잘 드는 장소에서 키우고, 물이 잘 빠지고 영양이 풍부한 흙에 심으면 크게 생장한다.산성의 토양이나 추위에는 약하고, 더위나 건조에는 강하다.
병충해의 염려가 적어 튼튼하게 잘 키울 수 있다.번식은 씨와 꺾꽂이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파종은 4~6월에 직파한다. 파종은 최저 15도 이상은  되어야 한다. 꺾꽂이는 봄에서 여름 사이에 다소 굳은 가지를 15~20㎝로 잘라 꽂으면 쉽게 활착한다.
봄과 가을에 질소분이 적은 비료를 주며, 수확은 30센티이상 성장하면 밑둥에 잎을 좀 남기고 자르면 된다.
 
디기털리스 (Digitalis)
1.5m의 높이로 자라는 2년초로 유럽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인도에서도 재배되고 있다. 여름에는 핑크, 자색, 백색 등의 종모양의 꽃이 같은 줄기에 연이어서 아래를 향해 피는데, 그것이 매우 아름다와서 사람 눈을 끌기 때문에 허브가든에 즐겨 심어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잎에는 불쾌한 냄새가 있고, 디기톡신(digitoxin)이란 독소가 포함되어 있는 독초로 유명하다. 또한 꽃의 모양이 여우장갑을 연상시켜서 폭스 글러브란 별명을 갖고있다.
현재는 디기털리스(digitalis)라는 강심작용이 뛰어난 성분을 추출하는데 이 잎이 유용하게 쓰인다.이것은 기능이 약해진 심장을 강하고 정상적인  기능으로 들리는 효용이 뛰어나 중요한 약재가 되어 있다.



화이트 야로
유럽 원산의 다년초이며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각지의 공터, 도로변 등에 자생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60cm종도 자라며 진한 녹색으로
레이스 모양으로 가늘고 깊게 패인 잎이 특징이다. 회색이 낀 흰색 또는 연한 핑크의 작은 꽃이 뭉쳐서 여름동안 계속 핀다. 야로란 이름은 이 풀의 앵글로색슨 명 gearwe, 홀랜드어 yerw의 사투리이다.


히솝
성서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오래 전부터 이용된 히솝은 손끝만 스쳐도 강하고 상쾌한 향이 난다. 남유럽과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이며 꿀풀과의 다년생으로 줄기가 1미터 정도인 상록 반저목이다. 가지 끝에서
10센티미터 정도까지 한쪽에 3개의 꽃이 피며 잎은 마주 나고 잎몸은 길고 원형이다. 히솝에는 스파이스용과 관상용이 있는데 스파이스용의 꽃색은 청자색이고 관상용은 분홍색이나 흰색이 많으며 담홍색도 있다. 잎과 꽃에서 아니스향이 나며 개화기가 비교적 길어서 8-10월까지 자줏빛의 꽃이 계속 핀다. 발아 온도는 15-20도 가 좋은데 파종 후
발아까지 꽤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가을 이나 이른 봄에 줄기를 나누거나 꺾꽂이를 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


 
슈퍼 탄지
영국을 포함시킨 북유럽 원산의 다년초. 북미에서는 야생을 쉽게
발견 할 수 있다. 높이 1m까지 자라며 고사리와 같은 진한 녹색의 잎에는 장뇌를 닮은 강한 향이 있다.
코스트마리에 대해서 잉글리쉬 코스트(English cost)라 불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8~9월에 걸쳐서 둥글고 평평한 버튼같은 형태의 황색꽃이 핀다. 그래서 단순히 버튼스(Buttons), 또는 골든버튼즈(golden button), 뱃첼러스 버튼즈(batcheloisbuttons: 독신남성의 버튼),
버터 버튼즈(butter bottons)등 으로 부르는 것도 그 강한 향기 때문이며,진저 플랜트(ginger plant)줄여서 진저라고도 부른다.





체리 세이지
체리세이지는 가을에 가지끝에 새빨간 꽃을 피운다. 어릴적 사루비아 꽃을 따서 먹던 아련한 추억이 꽃을 입안에 넣게 된다. 꽃은 샐러드나 과자 등의 장식으로 이용된다. 추위에 강한편이나 줄기가 쉽게 꺾인다.



토멘토즘 제라늄
로즈와 페퍼민트의 향이 겸비되어 나타나는 독특한 향을 품는 제라늄, 잎은 어느때든지 딸수 있으나 개화직전에 잎을 수확해서 신선한 상태나 말려서 이용한다.
 




다이어스 케모마일
유럽, 북아프리카, 아시아에 걸쳐 널리 자생하고 있는데
대표적 품종으로는 로만종(다년초)과 저면종(1년초)이 있다.
밝은 에머랄드 그린의 가늘게 파고 들어간 잎은 부드럽고 새의 날개를 생각게 한다. 로만 캐모마일은 털모양의 줄기가 지면에 기는 성질이 있어 30cm 정도로 낮게 자란다. 이성질이옛날 부터 잔디 만드는데 이용되었다. 데이지와 비슷한 사랑스러움 꽃이 피는데 직경은 1.5cm~3cm 정도로 작다. 흰 꽃잎에 둘러싸인 중앙의 황색부분에 모든 약효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그 때문에 안테미스 노빌리스 '플레나'(A. nobilis 'Plena')라고 하는 꽃잎이 많은 겹꽃 재배종에 비하면 홑꽃의 야생종 쪽이 약효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한다.
그러나 홑꽃은 알칼리성이 강해 위장 벽에 장해를 준다고 해서 영국의 약국법은 공식적으로는 캐모마일을 건조시켜 판매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잔디 만드는데 가장 적합한 품종으로는 꽃이 피지 않는 안테미스 노빌리스 '트레네구이'(A nobilis 'Trenegue')를 들 수 있다.
봄에 20cm 간격으로 심으면 이듬해 여름에는 향기가 좋은 잔디를 걸으며 즐길 정도로 성장이 빠르다.
염색에 이용되는 안테미스 틴크토리아 (A tinctoria)는 선명한 주황색에 가까운 황금빛 꽃이 피며 주로 프랑스에서 재배, 이용되고 있다





클라리 세이지 (Clary Sage)
남유럽 원산으로 가장 큰 종으로 1.2~1.5m까지 도달하며 2년생으로 첫해에 잎의 기부 rosette를 만들고 2년째에 꽃을 피운다. 잎은 크고 울퉁불퉁하며 회록색을 띤다.
이 품종은 안약으로 사용되어서 'Clear eye'라고 하며 줄여서 'Clary'라고도 한다. 또한 잎은 훌륭한 차로도 사용된다.



웜 우드
꿀풀과에 속하는 여러 해 살이 식물로서 2m까지 성장하며 줄기의 상부에 곁가지가 무성하게 난다. 잎은 어긋나기를 하며 아래 부분의 잎은 잎줄기가 있고 2-3회 깃털모양으로 찢어져 있다. 줄기의 위로 올라갈수록 잎의 모양은 단순해지고 잎줄기가 없이 줄기에 붙어 있는 경향이 있다. 잎에는 은빛털이 나있다.
꽃은 작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며 작은 구슬모양이다.
 



허니써어클(Honey Suckle)
향인동덩굴.덩굴성 관목, 길이 6m, 잎은 잘고 난형대생, 꽃은 6~9월에 피며 통꽃으로 꽃봉오리 일 때 붉고, 꽃잎 안쪽은 붉은 색을 띤 크림색, 바깥쪽은 적자색 달콤한 짙은 향기가 있다.
레몬 버베나
낙엽성 관목의 다년초. 그 길다랗고 황색이 낀 녹색 잎에 대단히 상쾌한 레몬의 향이 있어 허브차나 포푸리의 재료로 선호된다. 남미 칠레가 원산이며 유럽에는 스페인인이 1784년에 가지고 들어왔다. 그이후 그 잎에서 채취된 엣센셜 오일이 향수,비누, 화장품의 향료에 이용되어 왔다. 그 향이 좋기 때문에 현관 입구나 발코니에 심는 나무로서도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고 있을 정도다. 여름에 엷은 핑크색의 눈에 띠지 않는 원추화가 핀다. 온화한 기후에서는 2m 이상으로는 자라지 않는다고 하며, 영국 등에서는 실내식물로 눈에 띄는데 남,중앙 아메리카에서는 8m나 되는 큰 나무로 자란다고 한다.

우로바노 라벤더
꽃색의 흰색과 옅은 보라색으로 봄과 가을에 많이 개화하며 특유의 라벤더향을 느낄 수 있다. 잎은 톱니바퀴 모양으로 가장자리에 요철이 규칙적으로 나있으며 옅은 녹색으로 성장이 빠르다.
다년초로 줄기는 40~70cm로 자라며 줄기는 곧고 밑쪽은 목질화된다.
꽃은 6~8월에 줄기 끝에 수상화서로 윤생하며 남색을 띤 짙은 보라색이 가장 많다. 배수가 잘 되는 곳을 좋아하고 고온다습에는 약하다.
식물 전체(잎, 꽃, 줄기)에 향기가 있다. 라벤다는 프랑스가 가장 유명하고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호주, 헝가리 등에서 산업적으로 재배하여 수출하고 있다. 약 28종이 있으며 유럽에서는 향기의 매력 때문에 옛날부터 널리 재배된 역사가 오랜 식물이다. 이 성 분은 심신을 진정시키며 불면증에 효과가 있고 살균, 소독, 방부, 항염 작용이 있다. 포푸리나 향수, 비누, 베개 등에 많이 이용한다. 마른 꽃은 향기가 더 진하며 오래간다.

 



피나타 라벤더
지중해연안 원산의 상록 관목으로 자라는 다년초. 20종 이상의 변종이 있는데 줄기, 꽃, 잎의 식물 전체가 모두 강하고 시원스런 방향을 가지고 있다. 영국을 비롯하여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꽃으로부터 화장품에 쓰는 오일을 추출하기 위해서 널리 상업적으로 재배되고있다.



차이브스(Chives)
아리움(Allium)속에는 마늘,쪽파,리크를 들 수 있는데 그중 에서도 챠이브스는 가장 섬세한 풍미를 가졌다. 풀과 같은 가늘고 길며, 가운데가 비어 있고, 30cm 종도의 높이로 자란다. 희고 적은 구근으로 늘어나며 포기가 군생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차이브스(chives)라고 복수형으로 부른다. 초여름에 공모양의 적자색 꽃이 핀다. 이 꽃이 장식용으로 아름답기 때문에 옛부터 허브가든, 노트가든에 생울타리 로 이용되었다.
과수원에 심으면 사과에 생기는 부패병을 막는다고 한다. 상업적으로는 북유럽, 특히 서독과 미국에서 재배되고 있다.




예루살렘 세이지 (yerusalem sage)
학명은 Phlomis fruticosa이며, 세이지라 하지만 세이지와는 별개의 식물이며 가지를 잘친다. 잎은 피침형, 잎양면에 흰색 성모가 발생한다. 꽃은 5~9월에 금어초 같이 생긴 잘다란 노란색 통꽃이 가지끝에 14~36송이씩 윤생한다. 식용으로는 이용되지 않으며, 꽃꽂이용으로 이용하거나 건조시켜 포푸리 등에 이용한다.



월계수
녹나무과에 속하며 비내한성,호일성의 성질을 가졌다.
이용부위로는 잎,열매,줄기이며 지중해 연안,남유럽이 원산지이다.
추위에 약하므로 겨울철 방한에 신경쓰며 분에 옮겨 심어 실내에 보관하는 것이 안전하다. 특징은 암수 나무가 따로있는 큰 나무다. 향료,관상용, 요리등의 용도로 쓰인다.
약효:방충,건위제,쥬마리스 등의 도포제,진통제
 



멕시칸 세이지 (Mexican sage)
가을에 산뜻한 자주색 꽃이 가득 핀다. 꽃이 특이하게 피므로 눈에
두드러지게 호감이 간다. 가을을 감상하는데 적합한 허브이다. 식용에는 이용되지 않는 빌로드 모양의 풍부한 꽃이다.
꽃꽂이용이나 드라이플라워의 재료로서 인기가 높다.



빅토리오 라벤더
연보라색으로 일반 라벤더보다 조금 늦게 개화하면서 매우 길고 꽃을 자극하면 짙은 라벤더 향기가 매혹적이며 잎은 연중 은색으로 아름답고 스스로 안정된 수형을 이룬다. 추위에 강하여 -20℃에서도 견디며 성장은 중간 정도 크기로 자란다.





안테로라벤더
잎은 옅은 녹색의 바늘형이고, 자극하면 매혹적인 향기가 잎에서도 진하게 나며 가지는 스스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50~1m 정도로 자란다. 추위에는 -7℃까지 견딘다.



마리노라벤더
연보라색으로 꽃대의 길이가 짧고 꽃들은 산발적으로 개화하여 올라가며, 잎은 톱니모양의 긴 은색으로 성장이 매우 빠르고 순을 치면 옆순이 나와 또 다른 모양을 이룬다. 0.5~1m 정도 자라며 추위에 -5℃까지 견딘다.



스위트바이올렛(Sweet Violet)
좋은 향을 가진 제비꽃으로 200이상의 변종이 있는 다년초.
유럽, 아시아, 북아메리카가 원산. 동그라미가 있는하트형 잎 사이에서 자라나온 10cm 정도의 줄기 끝에 짙은 자색의 홑꽃이 핀다. 2월말부터 피기 사작하여 4월말에는 끝나버려 마치 봄이 찾아오는 것을 알려주는데 아울리는 꽃이다. 석호질로습한 반음달의 땅을 좋아하며 가을에파종, 포기나누기로 늘릴 수가 있다.
한번 불어나면 곤란할 정도로 번식이 강하다.


네페타 무시니

캐트민트(Catmint)
캐트닙, 캐트네프로 불리는 이 향기좋은 허브는 민트 종류로 북아메리카, 유럽이 원산이다. 영국에서는 생울타리에 보이는 들풀이기도 하고 캐러민트로 불리는 경우도 있다. 네페타 카타리아(N. cataria)는 옛날부터 약초로서 이용된 품종으로 연한녹색의 잎에 하얀 꽃을 피운다. 라벤더와 같이 화단의 둘레에 즐겨 심는 귀엽고 청초한 청자색의 꽃을 피우는 네페타 무시니(N. mussini)라는 품종이다.




슈퍼잉글리쉬 라벤더 (Lavender)
잉글리쉬 라벤더(Lavandulaaugustifolia Mill) 1.2m 정도로 자란다. 가장 대표적인 품종이며 가느다란 잎, 얕은 자색의 긴 꽃대가 특징이다.
보라색꽃의 아름다움이 봄이면 꽃뭉치를 이루듯 한꺼번에 개화하며 잎은 바늘형으로 줄기에 짧게 붙어있다. 성장이 느린편이며 잎은 관상이 좋고 조밀하며 내한성이 강하며 -20℃까지 견딘다.
프린지드 라벤더 (L. dentata L.) 75cm 정도의 크기로 자란다. 연하고 얇은 라일락 같은 꽃이 가을에 핀다. 화분 심기에 최적이며, 겨울에슨 실내로 옮길 필요가 있다. 길쭉길쭉하게 들어간 잎, 섬세한 발삼향이 특징이다.

 




그린타임
유럽,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카나리아 제도를 포함한 각지에서 자라고 있다. 지중해 연안 지방이 원산이며, 고대 그리이스의 산들을 훌륭한 향기로 가득 채웠다. 티몰이라는 살균력이 있는 에센셜 오일을 포함하고 있으며, 지금은 중요한 조리용 허브의 하나이다.




산토리나 뷰렌스
은녹색의 깊은 톱니가 있는 잎, 캐모마일과도 비슷하다고 하여 이 이름이 붙었다. 남유럽 원산의 관목상이 되는 가년초. 작고 노란 단추같은 꽃이 여름에 피는데 그화경은 60cm에 달한다. 요리용으로나 약초로서도 과거에 쓰이지는 않았으나 옛날부터 허브가든을 비롯하여 정원 만드는데 빼놓을 수 없는 허브였다.



엘로우 야로
영국 등 유럽이 원산지이고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이며 30 -60센티미터로 성장한다. 잎의 모양때문에 '서양토풀' 이라고 불리고 있다. 부드러운 인상의 허브로 하얀색이나 황색, 적색의 꽃이 6,7월에 피기 시작하여 2개월 정도 계속되며 꽃꽂이용으로도 쓰인다. 풀 전체가 연한 털로 덮여 있으며 줄기나 잎에서 방향이 퍼진다. 파종은 봄부터 가을까지 언제나 가능한데 발아 온도는 15-25도가 좋다. 씨뿌리기나 포기나누기로도 간단히 번식할 수 있는데 포기나누기는 겨울과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언제든지 가능 하다.



오레가노
오레가노는 줄기가 30-90센티미터이며 뿌리가 수평으로 퍼지는 성질이 있어 줄기도 지면을 기는 것처럼 자라난다. 6월 하순경에 엷은 보라에서 홍색의 꽃이 피는데 그 모양은 포트 마조람과 비슷하다. 발아온도는 20-25도가 좋으며 4월에 파종하고 흙을 얕게 덮는다. 싹이 나면 얽히지 않게 솎아내고 본잎이 4,5장 정도 나오면 30센티미터 정도의 간격으로 정식 한다. 한여름의 고온 상태에서는 좋은 종자를 얻기가 매우 어렵고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불 확실한 종자를 파종하기보다는 새롭게 자란 줄기를 잘라서 꺾꽂이하거나 포기나누기로 번식시켜 재배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3-4년이 지나면 나무처럼 단단해지는 목질화 현상이 일 어나므로 다시 심어주는 것이 좋다.

 



블래더 캄피온
채소로 이용되는 허브로 이태리 요리에는 필수적인 허브. 핑크색의 꽃은정원장식에 쓰이며, 샐러드와 요리의 장식에 이용된다. 자웅이 특이한 성질의 허브이다.





소프워트 (Soapwort)
유럽 원산의 다년초로 미국에도 귀화 되었다. 1m 정도로 자라고 작은
개울이나 길바닥에서 볼 수 있는 야생종은 합겹의 핑크색 꽃, 재배종은 두겹의 꽃도 있으나 어느 것이나 7~9월에 걸쳐 긴 꽃받침으로 지탱되는 꽃을 피운다. 이 꽃이 사랑스러우므로 실용을 위해서만이 아나라 허브가든에는 꼭 심어볼 만하다. 연녹색의 광택이 있고 잎과 뿌리에는 천연의 비누성분이 되는 사포닌이 포함되어 있다.
벨가못 (Bergamot)
눈에 확 뛸 정도로 붉으며, 작은꽃(小花) 사이에서 자라나오는 포(包)가 마치 불꽃처럼 뛰어나온 꽃이 매력적이다. 이 꽃에 상쾌한 방향이 있다.
모나르다 푼크타타(monarda punctata)라는 품종은 북미에서만 보이며 이 향기의 주성분 티몰을 가장 많이 함유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품종에도 양은 다르지만 같은 티몰이 포함되어 있다. 핑크, 적자색 등의 꽃색도 있으나 케임브리지 스칼렛으로 불리는 이 붉은색 품종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 외에 짙은 보라색의 꽃이 피는 와 일드 베르가모트, 모나르다 피스툴로사(monarda fistulosa), 잎에 짜릿한 레몬 향기가 있는 베르가모트, 모나르다 시트리 오도라타(monarda citriodorata) 등 많은 품종이 있다.
북미 원산의 다년초로 캐나다 북부 에서 미국 북부에 걸처 분포하고 있다. 45~90cm로 자라며 허브가든을 꾸미는데 최적이다.



와일드 스트로베리
즙이 많고 맛있는 야생딸기로 오랜기간동안 재배할 수 있는 덤블형 딸기로 잎, 뿌리, 열매를 모두 다 활용할 수 있다. 잎은 허브차로, 열매는 여름에 쥬스 첨가제로 이용한다.




소프워트 (Soapwort)
유럽 원산의 다년초로 미국에도 귀화 되었다. 1m 정도로 자라고 작은 개울이나 길바닥에서 볼 수 있는 야생종은 합겹의 핑크색 꽃, 재배종은 두겹의 꽃도 있으나 어느 것이나 7~9월에 걸쳐 긴 꽃받침으로 지탱되는 꽃을 피운다. 이 꽃이 사랑스러우므로 실용을 위해서만이 아나라 허브가든에는 꼭 심어볼 만하다. 연녹색의 광택이 있고 잎과 뿌리에는 천연의 비누성분이 되는 사포닌이 포함되어 있다.

 


마르타 로즈마리
진한 보라색의 꽃이 피며 위를 향해서도 자라지만 기어가며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잎은 소나무 향 내음을 풍기며 신선한 잎, 또는 말린 잎은 물고기, 육류, 닭고기, 스프, 차에 쓰인다.
로즈마리는 꿀풀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로서 자생지에서는 식물의 크기가 2m까지 자라는 관목성으로 일반적인 크기는 30~I50cm에 달한다. 줄기는 사각인데 굉장히 잔가지를 많이 형성하며 잎은 길이 1.5~3.5cm, 폭1.5~3.5mm로서 가늘고 길다. 잎은 윗면은 번들거리는 암녹색이고 뒷면은 회색의 솜털이 많다. 보통 온난지에서는 3월부터,
그렇지 않은 곳에서 는 5월부터 7월에 거쳐 연한 하늘색 또는 연한
분홍빛의 꽃이 피는데, 종류에 따라서는 하얗게 핀다. 식물 전체에서 아주 강한 향기를 내는데, 대체로 소나무나 향나무향이 섞인 듯하다. 로즈마리는 민간요법으로 흥분제, 혈액순환촉진제, 강장제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램스이어 (Lamb'sear )
다년초, 키 30~90cm. 회록색의 연한 털이 덮여 있는 식물. 잎이 양의 귀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피침형의 잎에 향기가 있다. 여름~가을에 긴 꽃대에 연보라, 자주색의 잔꽃이 수상화서로 핀다.




슈퍼버글
잎을 여름에 채취해서 말린 후 액을 뽑아낸다. 수확하면 신선한 채로 고약을 만드는데 이용되고 의학용 오일을 생산하는데도 쓰인다.
 



페파민트 (Pepper mint)
어디서든 잘 자라 초보자들이 키우기에 적합한 허브. 서양 박하라고도 불리는 다년생으로 치아 건강을 도와 치약이나 껌 등의 원료로 쓰이고 있으며, 지성 피부의 유분을 적절히 조절해주면서 모공을 수축시키고 시원한 느낌을 주어 화장품이나 헤어용품에도 많이 쓰인다. 위장병, 두통, 콜레라, 설사, 히스테리, 신경통, 류마티스 등에도 효과가 있으며 감기에도 좋다.




보리지
식물 전체가 흰 털로 덮여 있고 45~90cm의 크기로 자란다.
타원형의 깊은 녹색 잎은 만지면 아플정도의 가는 털로 덮여 있고 꽃이 피기 전에는 24×10cm정도로 자라며, 그 모양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소의 혀"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이다.
줄기가 위로 자람에 따라 잎은 작아진다. 무엇보다도 마돈나 불루로 불리는, 고개를 숙인 것처럼 피는 파란 별모양의 꽃이 청초한 분위기를 자아내 사랑스럽다.




퍼플세이지
레드세이지(Red Sage)라고도 하며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로 어린잎이 자주색을 띠고 흰털이 밀생하여 아름다우나 자라면 세이지처럼 은회록색이 된다. 요리용으로 쓰인다.



로케트(roket)
1년초이며 줄기는 가늘고 가지를 잘 친다. 잎은 장타원형으로 둔한 거치가 있으며 엽맥이 오목하게 들어가 있다. 표면은 짙은 녹색이며 뒷면에는 짧은 털이 있다. 어린 잎에 참깨 같은 향기와 톡쏘는 매운 맛이 있다.
꽃은 줄기 끝에 네장의 꽃잎으로 된 십자화과 특유의 꽃이 핀다. 꽃잎에 자색 맥이 있는 것이 다른 십자화과 식물과 다르며 개화기 또한 8∼9월의 가을인 점이 다르다 .
클레오파트라는 마케도니아의 왕가.프톨레마이오스 가문의 한 여성의
이름이다.클레오는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둘째 딸로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와 결혼하여 이집트를 통치하였다.그러던중 안토니우스와 재혼하여 안토니우스와 사이에서 아이를 낳고,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에게 안토니우스 통치권하의 복속국 통치권을 물려 주었다.
로마 이전 로마땅을 모두 그녀가 통치하게 되었을 정도로 그녀는
지략과 미모가 뛰어났다.
클레오파트라의 미모의 비결....
그녀는 용모와 자태에 있어서의 여성적 매력과 수개 국어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외교 수완을 발휘할 줄 아는 그녀의 미모비결은
로켓트(roket)라고 불리는 허브라고 한다.
그녀는 미모의 유지를 위해 로켓트를 즐겨 먹었는데 실제로 로켓트에는 비타민C를 비롯한 피부미용에 좋은 비타민E가 많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이뇨작용이 있어 다이어트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퍼실컴먼
잎을 계속적으로 베어내 쌈채나, 식용할 수 있는 것으로 미나리 처럼 식용할 수 있는 것으로 국내 참나물과 같은 모양이 비슷하나 향이 있어 향나물로도 불린다. 보통은 2~8월에 파종하는데, 25~30cm 간격으로 심는다. 처음 씨앗을 뿌린후 2개월 부터 수확하여.. 첫 수확후 25일
간격으로 계속 수확한다.




나스터티움 (Nasturtium)
금련화라는 이름으로 여름 화단을 장식하는 1년초. 이국적인 오렌지와 적색 꽃에서 알 수 있듯이 남미 페루가 원산이다. 그 꽃을 샐러드나 차로 만들어 먹는 습관이 고대 오리엔트에서부터 계속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허브이다. 반들반들한 둥근 잎에는 크레송을 날카롭게 한 것같은 찌르르한 풍미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줄기는 아래로 퍼지는 성질이 있고 길게 자라면 2m 이상도 된다.


 




컴먼 로즈마리
지중해 연안이 원산인 상록관목, 소나무 잎처럼 뾰족한 잎에 장뇌와 비슷한, 산뜻하고 강한 향이 있다. 라벤더와 나란히 유럽에서는 약, 향수에 사용되었으며, 셀 수 없을정도로 전설과 일화가 많다. 크게되면 2m 가까이 되며, 유럽에서는 로즈마리로 만든 생울타리도 볼 수 있다.




피버퓨 (Feverfew)
남유럽, 아시아가 원산. 16, 17세기에는 약초로 재배되었는데, 지금은 실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원예종으로서 즐겨 재배되는 허브의 하나다. 영국에서는 화이트가든으로 부르는 흰 꽃으로 통일된 정원에 많이 심는 것을 볼 수 있다. 국화와 아주 닮아 있으며, 깊게 파여 들어간 황록색의 잎, 작은 개양귀비 같은 꽃이 핀다. 이 때문에 학사의 단추들(bachelor's vottons), 악마의 개양귀비(devil daisy) 등의 지방이름을 가지고 있다. 식물 전체가 악취, 쓴맛이 있는 향을 가지고 있다.

허브로즈 (Herb Rasa)
효능으로는 신경의 긴장 완화, 냉감증, 임포텐스, 아름다운 피부 가꾸기, 회춘으로 쓰인다.개화기에 꽃을 따서 요리의 향기 내기에 이용한다. 요리의 장식용으로 비타민 C가 많은 독 로즈(유럽 장미)의 열매는 티나쨈, 시럽, 와인에 사용된다.
샐러드, 포푸리, 드라이 플라워, 목욕제 등으로도 쓰인다 허브로서의 장미는 독 로즈(로쟈 카니나), 에센셜 오일의 원료가 되는 다스크 로즈, 사과향이 나는 스위트 프라이어, 로쟈 가리카나등, 하마나스(로사 루 고사)도 향기가 높은 품종이다.

 



슈퍼 페리윙클
땅을 기어가는 상록의 다년초로, 3월말부터 5월까지 피는데 꽃잎 5개가 프로펠라 모양으로 피어난다. 탄닌과 알카로이드를 함유하고 있어
민간약으로 사용되어왔다. 전체 식물의 식용으로 할 경우 독성이 있어 취급시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며 잎이 너무 아름답다.




하우스 릭
국내에서는 봄에 소나무가 많은 야산의 바위 부근에서 자라거나 시골
기와장 위에서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선인장과같은 다육식물 형태로 지붕위에 기르는 것은 벼락맞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상처난 피부에 붙여 치료제로 사용하기도했다.



페니로얄
학명은 Mentha pulegium은 그리스신화의 여신 Mente가 변하여 다시
태어난 것이라 하여 그녀의 이름을 따서 박하류에 mentha라 붙였다고 한다. Pulegium은 라틴어의 벼룩이라는 뜻의 pulex에서 비롯되었는데 벼룩을 물리치는 데 최고라는 뜻인 puleium regium의 합성어라 한다. 영명의 pennyroyal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페니로얄은 인간에게는 최고의 좋은 향기지만 벼룩이나 모기 같은 해충에게는 최고로 나쁜 향기여서 벼룩이 접근할 수 없도록 쫓아주는 효과가 있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페니로얄을 베어다가 천에 싸서 침대 속에 넣어두면 벼룩구제가 되었다.

 



트리칼라 세이지
학명을 Salvia officinalis var tricolor라 하며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다.
잎은 녹색, 백색, 자주색의 3색이 섞여 있어서 이름 그대로 3색 세이지인데 꽃처럼 아름답다.
세이지와 같은 성질이 있어 요리용 또는 약용으로 쓰인다.



케모마일 (Chamomile)
유럽, 북아프리카, 아시아에 걸쳐 널리 자생하고 있는데 대표적 품종으로는 로만종(다년초)과 저면종(1년초)이 있다. 밝은 에머랄드 그린의 가늘게 파고 들어간 잎은 부드럽고 새의 날개를 생각게 한다. 로만 캐모마일은 털모양의 줄기가 지면에 기는 성질이 있어 30cm 정도로 낮게 자란다.
이성질이옛날 부터 잔디 만드는데 이용되었다. 데이지와 비슷한
사랑스러운꽃이 피는데 직경은 1.5cm~3cm 정도로 작다. 흰 꽃잎에
둘러싸인 중앙의 황색부분에 모든 약효성분이 표함되어 있다. 그 때문에 안테미스 노빌리스 '플레나'(A. nobilis 'Plena')라고 하는 꽃잎이 많은 겹꽃 재배종에 비하면 홑꽃의 야생종 쪽이 약효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한다. 그러나 홑꽃은 알칼리성이 강해 위장 벽에 장해를 준다고 해서 영국의 약국법은 공식적으로는 캐모마일을 건조시켜 판매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잔디 만드는데 가장 적합한 품종으로는 꽃이 피지 않는 안테미스 노빌리스 '트레네구이'(A nobilis 'Trenegue')를 들 수 있다. 봄에 20cm 간격으로 심으면 이듬해 여 름에는 향기가 좋은 잔디를 걸으며 즐길 정도로 성장이 빠르다. 염색에 이용되는 안테미스 틴크토리아 (A tinctoria)는 선명한 주황색에 가까운 황금빛 꽃이 피며 주로 프랑스에서 재배, 이용되고 있다




코리아 타임
라벤더나 로즈메리 등과 더불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허브인 타임은
지중해가 원산지이다. 학명은 '향기를 피운다'는 뜻이며 이른 여름에
흰색에서 분홍색에 이르 기까지 다양한 색의 작은 꽃이 핀다. 타임에는 레몬타임, 골든 타임, 실버타임 등 많은 종류가 있다

 



허브 귤
상수허브랜드에 오시면 더 많은 종류의 허브를 직첩체헙하실 수 있습니다.




클로브 핑크
잿빛이 낀 가는 잎이 우아한 분위기의 덤불로 자라는 다년초. 향신료의 하나로 클로브(T자)와 비슷한 향이 나므로 클로브 핑크라 하며 현재 재배되고 있는 카네이션의 가장 오래된 원종이다. 영구에서는 헌 건물이나 돌담의 페허에서옛적의 추억으로 자생하고 있는 것도 보이는데 원산은 지중해 연안, 북아프리카의 따뜻한 지방이다.





루바브
루바브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시대부터 재배하여 식용으로 이용했던 역사가 오랜 채소이다. 식용부위는 봄에 나오는 잎자루를 연화시켜서 이용하는데 신 맛과 독특한 향기가 있다. 연화시키면 신 맛이 감소되므로 잎을 따버리고 잎자루만 이용하는데 껍질을 벗기고 2-3cm길이로 썰어서 삶아 샐러드에 섞기도 하지만 주로 설탕과 함께 졸여서 잼, 젤리, 파이 , 푸딩, 케익 등에 이용하 면 맛있다. 완하작용이 있으며 산성식품이다. 많이 먹으면 설사를 일으키므로 변비에는 좋다. 그러나 신장염이 나 요도염이 있는 사람은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잎에는 수산이 함유되어 있어서 먹지 못하며 동이나 놋쇠 제품을 닦는데 쓰인다. 또한 주전자에 넣고 물을 끓이 면 주전자 속에 낀 물때를 없애준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뿌리 를 담배의 향료로 쓰며 약용으로 말라리아, 아구창, 기침, 강장제 등으로 이용한다.

 



코튼 라벤더 (Cotton Lavender)
은녹색의 깊은 톱니가 있는 잎, 캐모마일과도 비슷하다고 하여 이 이름이 붙었다. 남유럽 원산의 관목상이 되는 가년초. 작고 노란 단추같은 꽃이 여름에 피는데 그화경은 60cm에 달한다. 요리용으로나 약초로서도 과거에 쓰이지는 않았으나 옛날부터 허브가든을 비롯하여 정원 만드는데 빼놓을 수 없는 허브였다.





레몬 밤
지중해 지방이 원산인 다년초. 레본밤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잎은 문지르기만 해도 강한 레몬의 향이 난다. 그 하트모양의 잎은 테두리가 톱니 모양이며 줄기에 싸으로 붙으며 황색이 낀 녹색이다. 덤불이 되어 자라는데 근경은 짧다. 6~10월에 걸쳐 황색이 낀 흰 꽃이 피는데 가지 위쪽의 잎 기부에 방이 되어 붙는 작고 소극적인 것이다.



로즈 제라늄 (Geranium )
향신제라늄은 화장업계와 향료 산업체에서는 아주 잘 알려진 식물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향수는 겹게 노화된다. 따라서 구입은 믿을 수 있는 상점에서 구해야 한다. 겨울철에는 식물을 방안에 두고 가끔 흔들어 주면 좋은 향이 난다.
여름에는 실외에서 햇빛을 충분히 받게 해준다. 많은 향과 어울리지 않지만 수집가의 취향(Collectors dream)에 따라 아름답고 좋은 냄새가 나면서 빨리 자라는 식물군으로 인기 가 있다. 자체의 독특한 생육 습성과 향기를 가져 많이 선택되게 된다. 색깔있는 꽃은 봄에 피지만 일반적으로 작다.
맛있고 좋은 냄새나는 제라늄은 여러 형태로 가꾸게 된다.
공중걸이(Hanging basket), 창가식물(Wind box)이나 어떤 형태의 용기에서도 자랄 수 있다. 덩굴형 식물은 지피식물로서 이용될 수 있고 다른 형태의 식물은 키가 0.3~1m로 화단 경계로 이용할 수 있다. 아이들은 향기나는 제라늄에 많은 흥미를 갖는다

 



골든타임
라벤더나 로즈메리 등과 더불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허브인 타임은 지중해가 원산지이다. 학명은 '향기를 피운다'는 뜻이며 이른 여름에 흰색에서 분홍색에 이르 기까지 다양한 색의 작은 꽃이 핀다. 타임에는 레몬타임, 골든 타임, 실버타임 등 많은 종류가 있다






세인트 존즈 워트 (St. Jogn's Wort)
세례자 요한에게 봉헌된 허브. 유럽 아시아 원산의 다년초 야생은 삼림 가운데 등 그늘에서 볼수 있다. 수많은 변종이 있으나 허브가든에서 재배되어 온 품종은 이 H. pertoratum이다. 1m 정도로 자라며,
성 요한의 날(St. John's dat, 6월 24일) 무렵에 별 모양의 노란 꽃이 핀다. 이 꽃은 크롬을 매염제로 쓰면 오렌지색의 염료로도 된다.




러시안 타라곤
달콤한 방향과 짜르르한 쓴맛을 함께 가진 도특한 풍미로 위대한 요리용 허브의 하나로 들고 있다. 농록의 잎은 가늘고 길며, 광택이 있고, 높이 90센치 정도의 무더기로 자라는 가년초이다. 7~9월에 걸쳐 산탄(散彈)과 같은 형을 한, 황색을 띈 작은 봉오리를 맺는데, 꽃이 피지 않는 불임성이다. 그 때문에 종자가 생기지 않는다. 대표적인 품종으로서 이 프렌치 종 외에 러시안 타라곤이라는 품종이 있다. 이 러시안 타라곤 아프테미시아 트라쿤쿨로이데스(Artemisia racunculoides)는 시베리아가 원산이다.
프렌 치 타라곤에 비해 큰 무더기(1.5m)로 자라고 잎의 색도 연하고, 크다. 자극미는 강하지만 향기가 떨어지므로 오래의 풍미로서는 거의 이용되는 일은 없다. 그러나 페르시아에서 는 구운 양고기에 첨가하는 샐러드용으로서 널리 이용된다고 한다. 프렌치종과 같은 섬세함은 기대할 수 없고, 종자로서 손에 넣는 것은 이 품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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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dohyosae > 고대 그리스의 달(月) 이름

고대 아테네인들에게 일년은 12달이었고, 일년은 354 혹은 355일이었다. 일년이 13달일 경우 윤달이 첨가됨으로 일년의 날수는 383일이나 384일로 늘어났다. 각 달의 날 수 역시 일정하게 하기 위해서 신월에서 다음 신월까지의 날수로 계산하였다. 이 결과 한달은 짦으면 29일, 길면 30일이었다. 이렇게 정한것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달의 한달 주기를 29 1/2로 계산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달의 한달 주기는 29.5306일이고 정확한 음력의 일년은 354.3672일이 된다.  그리고 양력의 실제 길이는 365.242199일이다. 그러므로 고대에 양력과 음력을 일치시킬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에 사용한 달력을 계속 이용할 경우 대략 16년이 경과하면 동지와 하지가 완전히 뒤바뀌는 결과를 가져올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8년마다 한번씩 90일을 추가로 끼워 넣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어떤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분이 내킬때 마다 집어넣는 식이었다. 다음은 그리스인들이 사용하던 달의 이름이다.

Hekatombaion = 백마리의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달.  30일.

Metageitnion                                                                        29일.

Boedormion = 조력자들의 날.                                          30일.

Pyanespion                                                                          29일.

Maimakterion = 제우스 신에게 제물을 드리는 달, 일명 폭풍의 달. 30일.

Poseideon = 포세이돈 신에게 제물을 드리는 달. 29일.

Poseideon Deuteros = 포세이돈 신에게 제물을 드리는 두번째 달. 윤달이다. 30일.

Gamelion = 헤라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달. 일명 결혼의 달. 30일.

Anthesterion = 포세이돈 신에게 제물을 받치는 달. 29일.

Elaphebolion =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제물을 받치는 달. 숫사슴 사냥의 달. 30일.

Mounichion =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제물을 받치는 달. 29일.

Thargelion = 아폴론 신에게 제물을 받치는 달. 30일.

Skirophorion = 아테네 여신에게 제물을 받치는 달. 29 혹은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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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쎈연필 > [퍼온글] 책벌레 멘델 - 슈테판 츠바이크 (꼭 읽어보시길!)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 단편소설은 1979년 고려원에서 출판된 <유태인 대표작가 단편선> - 소올 벨로우, 이윤기 옮김, 에서 옮긴 것입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이라는 희소성도 그러하지만 책 내용이 책을 좋아하시는 분에게는 진한 감동을 줄 것이라 생각이 들어 옮깁니다. 부디 많은 분들이 이 단편을 읽으셨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철자법이나 띄어쓰기 등은 현재의 문법에 맞게 수정했음을 알립니다.

 

                                     책벌레 멘델

                           Buchmendel


                                                                             -  슈테판 츠바이크


  궁벽한 시골을 여행하다가 비엔나로 돌아온 나는 정거장에서 집 쪽으로 걷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는데 워낙 억수같이 퍼부었기 때문에 행인들은 서둘러 처마 밑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나대로 억수도 피할 겸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비엔나 같은 대도시 거리라 구석마다 카페가 있었고, 나는 모자에서 빗물이 떨어지고 어깨가 흠씬 젖었지만 가까운 카페를 골라잡을 수 있었다. 재미없는 음악(독일식의 판박이)에다 도시 중심에서나 볼 수 있는 댄싱 플로어는 구식이었고, 그 안에 가득한 노점 상인들과 노동자들은 커피나 빵 대신 오히려 신문을 더 찾았다. 이미 밤도 늦은 시간이었다. 카페 안의 공기도 날씨 탓이긴 했지만 그래도 담배연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새틴을 씌운 의자라든지 번쩍이는 금전등록기 하며, 그런대로 깨끗하여 애써서 치장한 흔적이 보였고 전체적으로도 그럴 듯했다. 비를 피하려고 허둥대다 보니 나는 그 카페 이름도 읽지 못했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따뜻하고 안락한 그곳에서 쉬었다. 그러나 나는 조바심이 나서 파랗게 색칠한 유리창을 통해 소나기가 멎었는가 하고 밖을 내다보았다. 나대로 갈 길을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거기 앉아 다분히 전형적인 비엔나 카페의 최면적 분위기를 따른 실내장식에 압도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둠침침한 실내에 있는 사람들을 주시해보았다. 인공 조명 아래서 보이는 그들의 눈은 어딘가 음산한 빛을 띄고 있었다.

카운터에 있는 젊은 여자를 관찰했다. 자동인형처럼 그녀는 웨이터가 가져온 커피에다 설탕을 퍼넣고 있었다. 별 관심도 없이 벽에 걸린 광고 문안을 읽기도 했다. - 이런 멍청한 직업이 유쾌할 수도 있음직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막연한 졸음에서 깨어났다. 내부에 이상한 동요가 일어났다. 이따금씩 고개를 들지만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아래턱인지 위턱인지 모를 치통과 같은 동요였다. 이 무감각한 긴장의 정체는 곧 드러났다. 정신적 피곤으로 인한 막연한 감상 같은 것이었다. 그 이유를 모르면서도 나는 의식할 수 있었다. 나는 몇 년 전에 틀림없이 이 카페에 와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의식에 떠오르는 연상이 벽, 테이블, 의자, 생소하게 보이는 자욱한 실내의 추억을 상기시켰다.

  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그것은 집요하게 내 손안에서 빠져나갔다. 의식이 심연에서 번쩍거리지만 미끄러워 붙잡을 수 없는 해파리 같은 것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사물을 검토해보았지만 헛수고였다. 확실한 것은 내가 이전에 왔을 때는 카운터가 대리석판이 아니었고 또 금전등록기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벽도 모조 장미의 숲으로 치장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것들은 최근에 만든 것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틀림없이 20년도 더 지난 옛날에 여기 와본 적이 있었다. 이 네 귀퉁이의 벽 안에 못으로 단단히 박아놓은 것처럼 먼 옛날에 내 자아의 일부분이 거기 걸려 있었다. 잃어버린 인연을 찾고자 실내뿐만 아니라, 내 내부의 의식까지 반추해보았다. 그러나 헛일이었다. 빌어먹을, 나는 그 깊이를 잴 수 없었다.

  나는 당황하고 있었으리라. 이해가 손끝을 빠져나가 정신력의 불안이 드러날 때 사람들이 유머를 잃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실마리를 잡아보려고 애썼다. 좋고 나쁜 양면성을 지닌 내 기억력은 기묘한 형태여서 가느다란 실이면 충분하리라. 한쪽 끝은 집요하게 믿을 수 없고 또 한쪽은 믿을 수 없이 신뢰할 만하다. 내 기억은 중요한 세부사항, 즉 구체적인 사건이나 사람들의 얼굴을 삼켜버린다. 그리고 임의적인 노력은 의식의 심연에서 그것을 토해내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퍼덕거리며 대항하는 물고기에게 낚시를 먹인 낚시꾼처럼 나도 이 잃어버린 기억을 낚아올리는 데는 몇 가지 하찮은 미끼 - 그림엽서, 봉투에 씌어진 주소, 신문의 스크랩 - 면 충분하리라. 나는 한 번 본 사람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다. 그의 입모양이며 툭 튀어나온 송곳니 왼쪽으로 난 틈새며 억지로 만들어낸 너털웃음소리, 기분좋을 때 턱수염을 잡아당기는 버릇, 그리고 즐거울 때의 표정의 변화까지도. 내 기억에 떠오른 것은 이런 신체적 특징뿐만 아니다. 나는 몇 년이 지났는데도 내게 한 그의 대답이라든지 내 말의 어조까지 기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과거를 이처럼 소상하게 기억해낼 수 있는 것은 연상의 흐름을 유발시킬 수 있는 어떤 물질적인 접점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내 기억이 추상적인 평면 위에서는 그리 만족스럽게 작용해주지 않는다.

  나는 눈을 감고 열심히 생각해보았다. 내 물고기를 잡을 낚시를 제대로 걸기 위해서였다. 쓸데없는 일이었다. 헛일이었다. 낚시가 없거나 물고기가 물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성미 급한 사람이 삼키기만 하고 내뱉지는 않는다고 해서 슬러트 머신을 흔들거나 발길로 냅다 차버리는 것처럼, 내 양쪽 관자놀이 속의 사고 기관이 말을 들어주지 않는데 화가 난다고 해서 한 대 쥐어박아줄 수도 있었다.

나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데 실패한 나머지 화가 나서 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 안을 서성거렸다. 내가 움직이는 바로 그 순간 내 기억이 반짝거렸다. 나는 금전등록기 오른쪽에 창문도 없는 방으로 연결되는 복도가 있었던 것을 기억해내었다. 거기에 켜진 것도 보조등이었다. 그렇다, 틀림없이 그런 곳이 실재했다. 장식은 달랐지만 구조는 그대로였다. 바아 뒤의 4각형 간막이는 카드 룸이었다. 그 방의 가구를 기억해내자 내 가슴이 뛰었다. 나는 드디어 연상의 궤도에 들어선 것이었다. 기억의 실마리를 잡은 것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엔 조그만 당구대가 놓여 있어쓴데 마치 이끼가 덮인 조용한 연못 같았다. 구석에는 카드 테이블이 있었는데, 그 중 한 테이블에는 수염이 터부룩하고 직업 도박사인 듯한 사내 둘이서 체스를 하고 있었다. 난로 옆으로 <전화>란 딱지가 붙어 있는 문이 있고 그 옆에 또 하나의 작은 테이블이 있었다.

  섬광처럼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 그것은 멘델, 야콥 멘델이 쓰던 테이블이었다! 그곳은 바로 저 책벌레 멘델, 바로 그 멘델이 쓰던 곳이었다. 나는 카페 글루크에 온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야콥 멘델을 잊을 수 있었던가? 내가 몇 년간이나 그를 잊고 있었다니! 마치 우화의 나라에서 온 듯한 특이한 사람, 이 세계의 여덟 번째 불가사의, 대학과 몇 안되는 추종자들 사이의 명물, 책장수의 마술사, 숙명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기 앉아 있던 사람, 서지학(書誌學)의 상징, 카페 글루크의 영광을? 그 물고기를 낚아올리는 게 왜 그렇게도 어려웠던가? 내가 어떻게 저 멘델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내 상상력의 고삐를 풀어버렸다. 그의 얼굴과 모습이 생생하게 내 앞에 보였다. 나는 마치 책과 원고뭉치가 쌓인 대리석 테이블 위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정물처럼 앉아 그는 책장에다 눈을 박고 있었다. 그러나 꼭 정물처럼 앉아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에겐 나지막한 소리로 책을 읽으며 깨끗하게 벗겨진 대머리를 앞뒤로 흔드는 버릇이 있었다. (이것은 그의 고향인 갈라시아의 유태인 학교에서 얻은 습관이었다.) 유태인 소년들이 탈무드를 읽을 때 그렇게 하는 것처럼, 그는 거기에서 흥얼거리며, 머리를 앞뒤로 흔들며 카탈로그와 책을 읽었다. 랍비는, 아기가 요람에서 흔들릴 때 더 깊이 잠드는 것처럼, 이 성스러운 책의 경건한 내용도 그같이 리드미컬하고 최면적인 동작에 의해 더 깊이 스며든다고 믿고 있었다. 마치 황홀경에 빠진 것처럼 이렇게 하고 있는 동안 멘델은 아무것도 듣고 보지 못했다. 그는 틱택거리며 부딪치는 당구공도, 오고가는 웨이터들도, 울리는 전화벨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는 바닥을 닦을 때도, 난로에 석탄을 다시 채울 때도 몰랐다. 한번은 빨갛게 단 석탄 덩어리 하나가 난로에서 떨어져 멘델의 바짓가랑이를 몇 인치나 태운 적이 있었다.

  실내는 연기로 자욱했고 손님 하나는 불을 끄려고 물통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기까지 했다. 그러나 연기도 냄새도 손님의 그런 소동도 그의 주의를 책으로부터 돌려놓지 못했다.

  그는 기도하듯이, 노름꾼들이 돌아가는 루울렛을 들여다보듯이, 술꾼들이 빈병을 기웃거리듯이 책을 읽었다. 그가 그런 집중력으로 책을 읽는 것을 본 이후로 다른 사람들의 독서는 그저 소일거리쯤으로 보였다.

  갈라시아인인 중고품 책장수 멘델은 예술가, 학자, 철인과 바보를 특정지우는 절대적 집중력의 신비를 나에게 최초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그는 나로 하여금 완전한 집중의 비극적인 행복과 불행에 익숙해지게 해준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를 그에게 소개해준 것은 상급학년의 친구였다. 그 당시 나는 오늘날까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최면술사 메스머의 인생과 행적을 연구하고 있었다. 내 연구는 신통치 않았다. 내가 손에 쥘 수 있었던 책은 별로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대학 도서관에 도움을 청했지만 그곳 직원은 풋내기 대학생에게 자료를 찾아주는 게 자기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내 대학친구가 멘델을 만나보라고 제안한 것이었다.

  “책에 관한 것이라면 모르는 게 없어. 그러니까 자네가 보고 싶어 하는 책을 구하게 해줄 수도 있을 걸세. 이 비엔나에선 가장 유능한 사람이고, 게다가 독창적이지. 이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서적계의 도마뱀이야. 즉 멸종된 동물의 태고적 생존자란 말일세.”

  그래서 우리는 카페 글루크로 갔고, 거기 바로 그 자리에서 내가 조금 전에 쓴 것처럼 안경을 쓰고, 수염을 기르고, 검은 옷을 입고 앉아 앞뒤로 머리를 흔들고 있는 멘델을 발견했다. 그는 우리의 침입을 무시하고 머리를 끄덕거리는 중국 인형처럼 하고 앉아 책만 읽고 있었다. 그의 뒤에 있는 고리엔 검은 오버코트가 걸려 있었는데 그 주머니에도 원고와 책과 카탈로그 뭉치가 불룩하게 들어 있었다.

  내 친구가 그의 주의를 끌기 위해 기침을 해댔다. 그러나 멘델은 이것을 무시해버렸다. 할 수 없이 슈미트는 마치 문을 노크하는 것처럼 책상을 두들겼다. 그제서야 멘델이 안경을 이마 위로 밀어올리고 기계적으로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진한 잿빛 눈썹 어래서 검고 커다란 두 눈이 빛났다.

  내 친구는 나를 소개했고, 나는 대학 도서관 직원에게서 퇴짜맞은 궁상을 조심스럽게(슈미트가 지시한 대로) 설명했다. 멘델은 경멸하는 듯이 웃으면서 의자 뒤로 몸을 젖히고 투박한 갈라시아 억양으로 말했다.

  “퇴짜라, 그렇게 생각하나? 그 친구는 도서관의 부적격자였어. 그게 문제야. 바보 같은 녀석이지. 나는 그 녀석을 20년 동안이나 알고 지냈지만(그것도 죄야) 그동안 공부한 건 하나도 없어요. 월급이나 닦아먹는 것, 그런 녀석을 다 그 모양이야. 책 앞에 앉아 있지 말고 도로공사나 하라지.”

  이 호통은 마치 얼음장이나 두드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서 그 책벌레의 손이 자리에 앉으라고 나에게 손짓했다. 나는 그와 의논할 문제를 다시 반복해서 설명했다. 동물의 최면 현상에 대한 연구자료와 메스머의 이론에 대한 찬반 양론의 서적이나 소논문을 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가 말을 마치자 멘델은 왼쪽 눈을 깜박거렸다. 마치 눈에 들어간 먼지를 닦아내려는 것 같았다. 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주의를 집중시키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나서는 눈에 보이지도 앉는 카탈로그를 읽는 것처럼 2, 30개의 논문 제목과 출판 날짜, 출판사 이름과 가격까지 줄줄 이야기해주었다.

  슈미트의 말을 잘 들어 알고 있긴 했지만 나는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내가 깜짝 놀란 것이 그의 자부심을 간질여놓은 모양이었다. 그는 또 한번 그 놀라운 기억력의 단추를 눌러 어안이 벙벙할 정도의 서지학적 난외(欄外) 문제를 풀어놓았다. 몽유병자, 퍼킨스의 금속견인장치, 최면술에 대한 선배들의 실험, 브레이드, 가스너, 마법으로 악마 부르기, 기독교적인 과학, 접신학(接神學), 마담 블라바트스키 같은 것은 내가 바라지도 않던 것이었다. 각 아이템 별로 또 한번 우박 같은 책 이름과 출판 날짜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야콥 멘델이라는 사람이 대영 박물관의 도서관에 있는 일반 목록처럼 살아 있는 사전이지만 두 다리로 걸어다닐 수 있는 게 다를 뿐이란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서지학적인 귀재(鬼才)를 아연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누추한 갈라시아 중고품 책장수로 변장했을 뿐인 것이다. 자그만치 80권이나 되는 책 이름을 따르르 쏟아내놓고 (그것도 별로 어렵잖게, 의외로 끗발이 좋았던 노름꾼처럼 느긋한 표정으로), 한때는 흰색이었을 법한 손수건으로 안경을 닦았다.

  나는 되도록 놀라움을 감추려고 애쓰면서 물었다.

  “이 많은 책 중에서 어느 책이면 어렵잖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 어디 보자. 내일 다시 오면 몇 권 구해주겠네. 그 나머지를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는 시간 문제야.” 하고 그가 대답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고 내가 말했다. 그리고는 공손하게 내가 바라는 책의 리스트를 적어줄 수 없겠느냐고 덧붙이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슈미트가 주의를 주느라고 내 옆구리를 찔렀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미 멘델은 나를 힐끗 바라보고난 다음이었다. 그것은 의기양양하게 떠들어대다가 모욕을 당한 표정으로 경멸과 우월감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멕베드가 싸울 것도 없이 항복하라고 소리치던 멕더프에게 한 대답과 같은 것이었다. 그는 거칠게 웃었다. 후골(喉骨)이 아래위로 움직였다. 그는 모멸감을 삼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확실히 그로서는 화낼 이유가 충분했다. 처음 보는 무식꾼이 감히 야콥 멘델에게 마치 그가 서점의 점원이나 공공 도서관의 하급 직원인 것처럼 리스트를 적어 달라고 한 것이다.

  나는 그 순간 나의 이 자칭 공손이 얼마나 이 천재의 비위를 거슬려버렸는가를 깨달았다. 지저분하고 평번하게 보이는 이마 뒤에다 이 세상에 인쇄되어 나온 책 이름은 모조리 기록해놓은 강력 무쌍한 기억력의 소유자에게 말이다. 하루 전의 신문에 나온 것이든, 몇 백 년 전에 나온 것이든 그는 출판사, 저자의 이름, 그리고 가격까지 모조리 꿰뚫고 있었다. 마치 인쇄된 페이지에서 읽어내는 것처럼, 그는 자기 기억 속에서 그 내용이며 그 삽화까지 고스란히 읽어내었다. 자기 수중에 있는 책뿐만 아니라 서점의 진열대에서 잠깐 본 것까지 그는 그대로 기억할 수 있었다. 마치 아직 캔버스에 그리지 않은 사물에 대한 화가의 기억처럼 그는 그 모든 것을 생생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로젠스부르그 서적상에 의해 책이 6마르크에 들어오자 그는 2년 전의 일인데도 그는 그 책이름을 고스란히 외웠다. 그와 같은 책이 비엔나 경매에서 4크라운에 주인을 바꾸자 그는 그 구입자 이름까지도 기억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멘델은 책제목이나 모양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다.

  그는 모르는 식물이 없었다. 모르는 적충류(滴虫類)가 없었다. 그는 모르는 별이 없었다. 그는 끊임없이 돌고 쉴새없이 변화하는 책이라는 우주의 질서에 정통했다.

  각개의 학문적인 전문분야에서, 그는 전문가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도서관의 실태를 도서관 직원보다 더 잘 알았다. 그는 출판업계의 당사자들보다 각 출판사의 책이름을 더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그에겐 불가사의하지만 확고부동하고 정확한 기억의 마력밖에는 그 자신을 인도해줄 힘이 없었다.

  이 한계를 모르는 능력은 그의 특수한 집중력 때문인 것도 사실이었다. 책에서 떨어지면 그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유형별로 분류, 정돈, 수집되고 말하자면 소독되어 책으로 만들어지기 전에는 모든 실재하는 현상이 그에게 아무 현실적인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가 책을 읽는 것은 그 책이 주는 의미와, 그 내용을 적출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흥미와 주의를 끄는 것은 제목과 가격과 형식과 표지였다.

  이 천재의 고물 취향의 기억력을 가진 야콥 멘델에 대한 이 마지막 평가는 비생산적이고 비창조적인 그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만일 그의 뇌리에 가득한 것이 도서목록이 아니라 포유동물의 두뇌에 축적된 지력(智力)이었다면 야콥 멘델이라는 인간의 독특한 가치는, 골상학(骨賞學)에 대한 나폴레옹의 선물, 언어학에 대한 메쪼판티의 재능, 장기대회에서의 라스커의 재주, 부조리의 음악적 재능에 필적하는 것이었다. 만일 그의 이 재능이 교사로서 쓰여졌더라면, 그 놀라운 두뇌는 수백만 학생들을 가르쳐내었을 것이고, 일반인을 가르쳤더라면 우리가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보물창고를 위해 그야말로 학식있고 가치있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받은 교육이라고는 탈무드 학교뿐인 이 보잘 것 없는 갈라시아 유태인 책장수에게 있어서 이러한 상류 문화세계가 자기로서는 넘어갈 수 없는 울타리였다. 그래서 그의 놀라운 기능은 겨우 카페 글루크의 골방 대리석 덮개를 낀 테이블 위에서만 쓰여졌다.

  미래에 한 위대한 심리학자가 나와 뷔퐁이 동물의 종(種)과 속(屬)을 효과적으로 분류한 것처럼, 우리가 기억이라고 부르는 마력의 유형을 분류하다가 한 사람이 수많은 세부 사항을 기억하는 것을 보고 야콥 멘델을 위해 특별한 분류방법을 찾아야 하리라. 15세기의 요랍기의 목록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책값과 서명을 꿰뚫고 있는 잊혀진 서지학의 대가라고.

  책의 매매나 일상 생활에서, 야콥 멘델은 소규모의 중고책장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일요일마다 <노이에 프라이에 프레쎄>, <노이에스 비엔너 타블라드>에는 판에 박힌 그의 광고가 게재되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고서 고가 매입. 오베레 알세르스트라쎄. 멘델>

  그 아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지만 바로 카페 글루크의 전화번호였다. 그는 털보 짐꾼을 대동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가게를 열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이곳을 거점으로 귀중한 자료만 옮겨오고 나머지는 버린 것이다. 그로서는 서점을 낼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봇짐 장수로 물러앉게 되었고 장사는 신통치 않았다. 학생들이 그에게 교과서를 팔았다. 그 책이 몇 년 뒤에 다음 세대로 옮겨지면 거기서 얼마의 이익을 붙이는 것이었다.

  그는 남의 충고는 거의, 혹은 전혀 무시했다. 그의 세계에 있어서 돈이란 설 자리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다 닳아빠진 검은 코트 이외의 더 나은 옷을 입은 걸 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침과 저녁으로 그는 우유 한 잔과 빵 두 조각을 먹었다. 점심 때 먹는 음식은 근처 식당에서 배달되었는데 그게 그래도 가장 음식다웠다.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카드 노름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눈이 안경 뒤에서 끊임없이 구르고 있고 그의 수수께끼 같은 머릿속에는 책 제목이 쉴새없이 튀어나오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를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으리라. 마치 기름진 목장처럼 그의 두뇌는 이 풍부한 수도에서 쉴새없이 물을 빨았다. 인간은 그에게 있어서 흥미없는 것이었다. 그를 움직일 수 있는 인간의 열정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것은 가장 보편적인 허영이었다.

  가는 곳마다 허탕친 나머지 지쳐버린 누군가가 그에게 도움을 청하면, 언제나 그렇지만 그의 자화자찬은 굉장한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비엔나나 그밖의 지방에서 그의 지식을 존경하고, 그가 줄 수 있는 도움을 값비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그를 기쁘게 하는 일이었다.

  우리가 지방이라고 부르는 이 단위에는, 그 단위를 반영하는 세분화된 작은 면이 있기 마련이다. 거기에다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마찬가지 재주와 마찬가지 정열을 가진 감식가가 있는 것이다. 서적 시장의 애호가들은 야콥 멘델을 알고 있었다. 악보를 해독하기 어려울 때 음악계의 오이제비우스 만디체프스키를 찾아간다. 그는 회색 두건을 쓰고 여러 가지 악보가 펼쳐진 곳에 버티고 앉아 이 난해한 악보를 풀어주려고 미소로 내방객을 맞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옛날의 비엔나 극장과 문화 전반에 대한 자문을 구하려면 서슴치 않고 박학자(博學者) 글로시 신부를 찾아간다. 이와 같은 신뢰는 비엔나의 서지학계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특별히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카페 글루크에 가서 야콥 멘델 앞에다 보퉁이를 풀어 놓으면 되는 것이다.

젊고 새로운 경험에 목말라 있는 나에게 그런 자문은 매력적인 것이었다. 자칭 책장사라는 사람이 보통 책을 가져오면 겉장을 깔보는 듯이 툭툭 두드리며 “오 크라운.”하고 말한다. 만일 희귀본이거나 정본이라면 그는 자리에 앉아 이 보물을 원종이 위에 올려놓고 자세히 살핀다. 이럴 때 그는 더럽고 잉크얼룩이 진 손가락과 때낀 손톱을 부끄러워한다. 부드럽게, 조심스럽게, 그리고 경건하게 그는 이 보물을 한 장씩 넘겨본다. 사람들은 기도하고 있는 사람을 방해하기나 하는 듯이 그 순간에 그를 다치지 않도록 주의한다. 그가 차례에 따라 책을 살펴보고 만져보고 냄새 맡아보고 무게를 가늠해보는 것은 엄숙한 종교적 의식을 방불케 한다. 이런 일에 열중하는 그의 구부러진 등은 쉴새없이 들썩거리고 이따금씩 혼자서 찬탄하느라고 “아!”하고 외치거나 어쩌다 책벌레가 갉아먹어버린 페이지나 찢어져나간 페이기가 있을 때마다 “이런!”하고 안타까워했다.

  그의 손이 책을 다루는 모습은 마치 그 책이 순금처럼 극히 작은 무게 단위로 거래되기나 하는 것처럼 조심성스러웠고, 그가 책을 냄새 맡는 모습은 마치 소녀가 장미꽃 냄새를 맡는 것만큼이나 감상적이었다. 물론 이 의식과 같은 책의 검토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책주인에게는 더없는 불행한 일이었다.

  책의 평가가 끝나면, 그는 기꺼이, 아니 열심히 이 물건에 대한 정보를 들려주었다. 거기 관련된 일화나 경매, 혹은 개인 거래에 오른 그와 같은 책값을 재미있게 들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럴 때면 그의 얼굴은 밝아지고 더 싱싱해지고 젊어보였다. 그런데 그를 굳어지게 하는 일이 한 가지 있었다. 이 풋내기 고객이 전문가인 그의 의견을 돈으로 사례하려고 할 때였다. 그는 불쾌한 얼굴로 물러섰다. 마치 미국인 여행자가 팁을 내밀 때의 유능한 박물관 관리인 같았다. 야콥 멘델에게 있어서 책을 대한다는 것은 신성한 것으로, 마치 여자가 아직 순진한 젊은 남자를 대하는 것과 같았다. 그런 순간은 플라토닉한 사랑의 밤이었다.

  책이 그에게 베풀어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신비였다. 그러므로 유명한 수집가들이 (그 가운데는 프린스턴 대학의 저명한 교수도 있다) 이 멘델을 그 도서관의 사서(司書)로 채용하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는 이런 제의를 감사의 말을 덧붙여 거절했다. 그는 카페 글루크에 있는 정든 사령탑을 떠날 수 없었다.

  33년 전 턱 끝에 수염이 가무스름하고 관자놀이 아래로도 제법 구레나룻이 날 즈음 그는 겁 없는 젊은이로 갈리샤에서 비엔나로 왔다. 랍비가 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는 가혹하고 질투심이 많은 여호와 섬기기에 진력이 났다. 그는 보다 생기발랄한 책이라는 다신교적(多神敎的) 의식을 택했다. 그러다 카페 글루크를 발견하고 자기 가게로, 사령탑, 자기 우체국 그리고 자기 세계로 차례차례 만들어갔다.

  천문대에 홀로 앉아 매일 밤 망원경을 통해 수많은 별들의 신비한 운행이며, 변화무쌍한 난전(亂戰)이며 그리고 사라지는 광경을 관찰하는 천문학자처럼, 야콥 멘델도 자신의 안경을 통해 책의 우주, 우리들 일상생활을 넘어서 존재하는 그 우주, 별들의 우주처럼 변화무쌍한 주기를 지닌 책의 우주를 관망했다.

  카페 글루크에서의 그의 가치는 높이 평가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의 명성은 비공식적인 직업의식에서라기보다는 <<알체스티스>>와 <<이피게니아>>의 작곡자인 유명한 음악가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의 대부의식(代父意識)에 의해 유지되는 것 같았다. 그의 모습은 낡은 벚나무 카운터나, 여러 군데 꿰맨 자국이 드러난 당구대, 놋쇠 커피 항아리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의 테이블은 성역으로 통했다. 그의 수많은 고객과 단골손님들은 <그 카페를 위해> 한 잔쯤은 마시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의 방대한 지식에 대한 과외 이익금은 웨이터인 도블러의 허리에 달린 커다란 가죽 주머니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이런 인기에 대한 반대급부로 멘델도 여러 가지 특권을 누렸다. 전화는 언제나 무료로 써도 좋았다. 그는 편지도 카페에서 받았고 소포도 그쪽으로 배달되었다. 화장실 담당인 늙은 여자는 그의 코트를 손질해주고 단추를 꿰매주며 매주일마다 속옷을 빨아주기도 했다. 그는 레스토랑에서 배달되는 음식을 먹는 유일한 손님이었다. 게다가 매일 아침 그 카페 주인인 스탄트하르트너씨가 그의 테이블로 찾아와 “안녕하세요.”하고 아는 체 했다. 그러나 멘델은 책에 몰두해 있다보니 대답하는 일이 드물었다. 정확하게 7시 30분에 그는 카페에 도착했고 어두워지기까지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고 신문도 읽지 않았으며 주위의 변화를 주시하는 일도 없었다. 한번은 스탄트하르트너씨가 정중하게 냄새나고 희미한 등유램프보다 자기가 갈아단 전등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제서야 멘델은 이 백열등을 보고 놀라는 것이었다. 이 시설 때문에 며칠간이나 망치소리가 났지만 백열등의 출현조차도 그의 주의를 끌지 못한 것이었다. 안경의 동그란 두 구멍, 오직 이 반짝거리며 빨아들이는 두 렌즈만이 그의 두뇌로 들어오는 수억 마리 적충류와 같은 글씨의 여과장치였다. 그 밖의 일들은 그 의미없는 소음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30년간이나 이 테이블에서 잠잘 때만 제외하고, 끊임없이 읽고 비교하고 산정해온 것이다.

  카페 글루크의 바아 뒤에 있는 방을 본 순간, 나는 놀라고 말았다. 야콥 멘델이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던 그 대리석 덮개의 테이블이 마치 묘석처럼 싸늘하게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이후로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그런 사람이 수없이 이 세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며, 그런 지루한 단조로움 속에서 독특한 인간의 고귀한 가치가 생겨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뿐이 아니라, 철없는 나의 청년시절의 직관이 책벌레 멘델을 좋아하게 했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위대한 업적과 뛰어난 능력은 정신이상에 가까운 극도의 외골수의 정신적인 집중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저 수수께끼 같은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것도 그를 관찰하고 난 다음부터였다.

  위대한 시인이나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의 내부적 영감뿐만 아니라, 이 천재적인 중고품 책장사의 살아 있는 본보기가 나로 하여금 순수한 정신의 생활, 이데아에의 완전한 몰두, 인도의 요가 수행자나 중세기의 수도승들에게나 볼 수 있는 절대적인 몰아의 경지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을 깨닫게 했다. 나는 이 가능성을 전화박스 옆의 조그만 백열등의 카페에서 그 가능성을 배웠다. 그러나 나는 전쟁과 내 자신의 일에 몰두하느라고 그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비어 있는 테이블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동시에 거기 앉아 있던 사나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는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나는 웨이터를 불러 물어보았다.

  “모르겠습니다. 유감입니다만 멘델씨라고는 잘 모르겠는데요. 카페 글루크의 단골 손님 가운데엔 그런 분이 없습니다. 수석 웨이터라면 알지도 모르겠습니다.”

  “멘델씨라구요?”

  얼마간 생각해보던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런 이름은 들은 적이 없는데요. 혹시 만들씨 아닙니까? 플로리아니가쎄에서 철물상 하시는?”

  나는 입맛이 썼다. 되찾을 수 없는 과거로 인해서였다. 우리가 지나가자마자 바람이 그 모래 위의 발자국을 지워버린다면 인생이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30년간 아니 40년인지도 모른다. 한 사나이가 이 작은 방에서 숨쉬고 읽고 생각하고 말했다. 3, 4년이 지나가고, 이집트에는 새로운 왕이 일어서서 요셉이 누군지 알지 못한다. 카페 글루크에 있는 사람은 이제 저 책장수 야콥 멘델의 이름을 들은 적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안타까워 스탄트하르트너씨나 옛날에 여기 있던 직원에게 물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수석 웨이터에게 제의했다.

  “전 주인이던 스탄트하르트너씨 말씀입니까? 몇 년 전에 팔았어요. 그 뒤 돌아가셨지요. …… 전 수석 웨이터요? 이제 쉴 만큼 벌어가지고 크렘스에서 행세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전에 있던 사람들은 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한 사람, 그렇죠. 스포르쉴 부인만은 아직도 화장실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압니다. 그 부인은 전 주인에서부터 수십 년을 여기서 일했죠. 아마 그 부인도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멘델씨를 기억하고 있지 못할 거예요. 손님이라면 별로 기억하지 못하는 할마시거든요.”

  내 생각은 달랐다.

  “야콥 멘델이라면 그리 쉽사리 잊혀질 사람이 아니야!”

  내가 말했다.

  “어쨌든 스포르쉴 부인과 이야기해줄 수 없을까? 조금만 짬을 내면 되니까.”

  <화장실 담당>이 지하실에서 올라왔다. 백발인데다 나이가 들어 발걸음이 무거운 이 부인은 수건에다 젖은 손을 닦고 있었다. 청소하다 불려 올라온 부인은 카페 객석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혁명 후 관헌들에게 시달리던 습관 때문에 비엔나의 시민들은 <높은 사람>이 물어볼 게 있다고 말하면 경찰관이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부인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겸손했다. 그러나 내가 야콥 멘델에 대해 묻자 그녀는 긴장했지만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거렸다.

  “불쌍한 멘델씨…… 그런데 아직도 그 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니……”

  늙은 사람들이란 흘러간 시절이나 그 시절 사람들을 기억해내는 일만으로도 감정이 쉽사리 격앙되는 법이다. 나는 그녀에게 멘델이 아직 살아 있느냐고 물었다.

  “하나님 맙소사. 아닙니다. 불쌍한 멘델씨는 5, 6년 전에 죽었습니다. 아니 7년쯤 됐던가? 참 좋은 분이었지요. 내가 그분을 아는 게 몇 년이나 되더라? 25년이 넘었습니다. 내가 여기서 일을 시작할 시각이면 그는 언제나 자기 테이블에 이미 와 앉아 있었지요. 그 사람을 죽게 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어요. 암, 부끄러운 일이고말고요.”

  흥분한 이 부인은 내가 그의 친척이냐고 물었다. 전에는 그 사람에 대해 묻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 일을 내가 전혀 모르고 있었냐고 반문했다.

  “모릅니다. 그래서 부인께서 좀 말씀해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하고 내가 대답했다.

  그녀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젖은 손을 닦았다. 그녀는 카페의 밝은 불빛 아래서 자기의 더러운 앞치마와 흐트러진 백발에 당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혹시 웨이터가 자기 이야기를 엿듣지 않을까 하고 불안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드 룸으로 가실까요? 멘델이 있던 방입니다. 거기서 이야길 좀 들려주십시오.” 하고 내가 말했다.

  그는 내가 이해해주어서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뒤뚱거리며 안쪽에 있는 간막이로 나를 인도했다. 그녀를 따라가면서 나는 손님들과 웨이터들이 기묘하게 어울리는 우리 두 사람을 보고 있음을 알았다. 우리는 그 대리석판의 테이블 양쪽에 앉았고 거기에서 그녀는 야콥 멘델의 몰락과 죽음을 이야기해주었다. 여기에 그녀 자신의 말과 그 뒤 여기저기서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되도록이면 그대로 옮겨보려고 한다.

  “전쟁이 터지고, 전쟁이 계속되는 중에도 그는 아침 7시 30분에 여기 와서 이 테이블에 앉아 전처럼 책을 읽었지요. 우리가 보기에는 그가 전쟁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답니다. 사실 그는 신문도 읽지 않았고 책 이야기가 아니면 남들과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신문팔이들이 (전쟁초기니까요. 당국이 그걸 금지시키기 전입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동부전선에 결전이 벌어졌습니다.” 라든지 “끔찍한 살육전이 계속된다.” 라고 소리쳐봤자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모여앉아 수군거려도 그는 자기 일만 했답니다. 그는 저기 저 당구대에서 점수 놓아주던 프리츠가 첫 번째 전투에서 쓰러져 거기에서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것조차 몰랐어요. 스탄트하르트너씨의 아들이 프르제미슬에서 러시아군 포로로 잡혀갔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답니다. 빵맛이 점점 없어지고 아침저녁으로 뜨거운 우유 대신에 대용커피를 마셔야 했지만 그 양반은 쓰다 달다 소리 한번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한번은 카페로 찾아오는 학 생들이 줄어들었다고 그게 왜 그러냐고 놀라더군요. 책 빼놓으면 세상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지요.

  그런데 그 양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오. 어느 날 아침 열한 시쯤엔가  경찰관 두 사람이 찾아왔어요. 한사람은 정복을 하고 또 하나는 평복 차림으로. 그 사람들은 똑바로 멘델의 테이블로 갔어요. 이 순진한 양반은 그 사람들이 책 사러온 사람이나 책 이야기 들으러 온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러나 그 사람들은 그 양반을 체포한다고 말하고는 데려가버렸다오. 그게 카페의 이야깃거리였습니다.

  모두가 경찰관 사이에 서서 안경을 이마 위로 걷어올리고는 영문을 모르고 그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던 멘델 이야기를 한 거라오. 이건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 같다, 멘델씨는 파리 한 마리도 해칠 양반이 아니다, 하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랬더니 경찰관이 화를 벌컥 내면서 제 할일들이나 하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들은 멘델을 데려가버렸고 우리는 그 뒤 2년간 그를 카페에서 볼 수 없었다오. 그 사람 죄목이 뭔지 몰라도 나는 그 사람들이 무엇인가 오해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죽기를 한하고 맹세할 수도 있어요. 멘델씨가 나쁜 일을 할 수는 없었어요. 죄라면 그처럼 순진한 사람을 마구잡이로 다루는 거야말로 죄죠.“

  이 스포르쉴 부인의 말이 옳았다. 우리의 친구 야콥 멘델은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그는 단지 (내가 뒤에 안 바에 의하면) 똑똑하지 못한 짓을 했을 뿐이었다. 이것은 그의 사람됨을 아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중립국으로 내왕하는 우편물을 검열하던 군 검열기관이 하루는 해외 발송의 우표가 붙은 엽서 한 장을 입수했다. 야콥 멘델이란 서명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 엽서에는 적국인 파리의 그레나르 가에 있는 도서관의 쟝 라보아데씨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발신인은 일년의 정기 구독료를 미리 불입했는데도 여덟 달치의 월간 <프랑스 서지학보>가 배달되지 않았다고 항의하고 있었다. 이 엽서에 하급 직원 (로만스어를 공부한 전직 고교 교사였는데 참호에서 재능을 썩힐 게 아니라 검열기관을 위해 특별히 차출된 사람이었다.) 은 놀라고 말았다. 농담이겠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혹시 첩자들이 이용하고 있지 않나 하고 주의깊게 매주 약 2천 통의 편지를 검열해야 했다. 그러나 1914년 10월 이래의 규정을 무시하고 적국의 주소를 쓴 엽서를 수도나 지방의 우체통에 넣는 멍청한 오스트리아인은 없었다. 서로가 철책을 두르고 총과 총검, 대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채 참호에서 상대를 쥐처럼 죽이는 데 최선을 다하던 참이다. 독일을 위시한 중구제국(中歐諸國)은 러시아와 프랑스 전 지역과의 교신을 금지시켰었다. 국민병으로 동원된 이 전직교사는 이 엽서를 대단찮게 생각하고 상관에게 보고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 그저 호기심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 주일 뒤엔 야콥 멘델 발신인 또 하나의 엽서가 나왔다. 이번엔 런던의 골든스퀘어에 있는 서적상 존 알드릿지에게 보내는 것으로 <고물 연구>의 과월호(過月號) 몇 권을 엽서에 선명하게 씌어진 비엔나 주소로 발송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푸른 군복의 검열관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 친구가 누굴 놀리나? 엽서가 암호로 쓰여진 거나 아닐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상관의 자리로 가 뒷꿈치를 소리나게 붙이며 경례하고 나서 이 의심스러운 엽서를 적당하게 거만을 부리는 소령에게 내밀었다. 어쨌든 이상한 일이었다.

  상관은 경찰에 전화를 걸어 주소와 같은 장소에 실제로 야콥 멘델이란 사람이 있는가 알아보고, 있으면 연행해오라고 지시했다. 한 시간 후 멘델은 체포되어 소령 앞으로 끌려왔다. 아직도 충격 때문에 멍한 상태였다. 소령은 그에게 엽서를 보여주며 직업군인다운 덜 된 태도로 그 엽서를 알아보겠느냐고 다그쳤다. 그 같은 말대접과 또 그처럼 중요한 책의 주문서가 거기 있는 데서 화가 난 멘델은 시덥잖게 대답했다.

  “물론 엽서는 내가 썼소. 내 글씨고 서명도 내 겁니다. 정기구독한 정기간행물은 발송을 주장할 권리가 있는 게 아닙니까?”

  소령은 회전의자를 반바퀴 돌려 그 옆에 있는 중위와 의미있는 시선을 교환했다.

  “이 친구는 돌아도 제대로 돈 모양이야.”

  이것이 그들 사이로 오고간 말이었다.

  소령은 이 친구를 주의깊게 다루어야 할 것이지 아니면 보다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것인지 생각했다.

  사무실이면 어디나 그런 양자택일의 문제가 생기면 동전을 던져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보고서를 내어버리는 게 상례다. 그래서 빌라도는 자기 책임에서 손을 씻어버리는 것이다. (풀이 : 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심판하다가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자기 책임을 회피했다. 마태복음 27장 25절) 보고서야 어쨌든 자기에게만은 별 해가 될 일이 없고, 수백만 장에다 헛일삼아 그저 한 장을 덧붙이는 일일 뿐이다.

  그러나 이 순간 보고서를 작성한다는 이들의 결정은 무방비 상태인 이 천재에게는 중대한 일이었다. 이 보고서가 수많은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제 삼자는 구체적인 혐의를 굳힐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름은?”

  “야콥 멘델.”

  “직업은?”

  “서적 중개인입니다.”

  이미 설명했듯이 멘델에게는 가게가 없다. 중개인 면허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출생지는?”

  여기에 문제가 있었다. 멘델의 출생지는 페트리카우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소령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페트리카우, 혹은 피오르코프는 러시아령 폴란드의 전선을 가로지르고 있는 곳이었다.

  “당신은 러시아 태생이군. 오스트리아 국적은 언제 취득했소? 서류를 보여주시오.”

  “서류라니? 증명서 말입니까? 내가 가진건 서적상 면허증밖에 없는데요?”

  “그럼 당신의 국적은 어디요? 당신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인이오, 러시아인이오?”

  멘델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 러시아지.”

  “그럼 당신은?”

  “러시아 병역을 기피하려고 33년 전에 국경을 넘었소. 그때부터는 쭉 비엔나에 살고 있소.”

  소령에게 있어서 사태는 점점 어렵게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오스트리아 국적 취득 절차를 밟지 않았던가?”

  “왜 해야 하나요? 그런 걸로 걱정해본 일이 없는데.”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 러시아 국적인가?”

  멘델은 이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 귀찮았다. 그래서 간단하게 대답해버렸다.

  “그런 것 같소.”

  놀라고 화난 소령은 삐걱거릴 만큼 난폭하게 의자 뒤로 몸을 젖혔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적의 대공세 이후로 전쟁은 치열한, 1915년 말의 이 마당에 오스트리아의 소도인 비엔나를 러시아인이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활보하면서 프랑스와 영국에다 편지를 쓴다! 경찰도 이 음모를 모르고 있다니! 그런데도 바보들은 신문에다 콘라드 폰 훗첸도르프와 7개국 연합군을 거느리고 바르샤바로 진격하지 않느냐고 쓰고 있다. 군 고위층들은 군대의 동향이 하나하나 러시아에 염탐된다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중위가 발소리를 내며 방을 가로질러 소령의 자리에 왔다. 지금까지의 친밀하던 대화가 일변하여 심문으로 변했다.

  “전쟁이 터졌을 때 왜 적국 사람이라고 신고하지 않았나?”

  그때까지도 사태의 심각함을 모르고 있던 멘델은 유태인 사투리로 대답했다.

  “신고하다니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소령은 이 대답을 도전으로 간주하고 위협하듯이 물었다.

  “아무데나 붙어 있는 경고문을 읽지 못했단 말인가?”

  “못 봤소.”

  “그럼 신문도 읽지 않는가?”

  “안 읽소.”

  두 장교는 마치 하늘에서 자기네 사무실로 달덩이나 떨어진 것처럼, 거북살스럽게 땀을 흘리고 있는 야콥 멘델을 보았다.

  그리고 나선 전화기가 울렸고 타이프라이터가 틱택거렸으며 전령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멘델은 보초의 감시 아래 가까운 막사로 옮겨졌다. 거기에서 집단 수용소로 보내어지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두 병사가 따라오라고 명하자 그는 영문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불안하지는 않았다. 금빛 레이스의 칼라에 목소리가 거친 그들이 그를 어쩔 셈이었던가?

  멘델이 살고 숨쉬고 존재하던 책의 세계에는 전쟁이 없었다. 오해도 없었다. 오직 있는 것은 이름과 저자 이름의 나날이 더해져가는 지식뿐이었다. 그는 군인들을 따라 기꺼이 층계를 내려갔다. 그들의 임무는 우선 경찰서로 데려가는 일이었다.

  거기에서 경찰관이 그의 주머니에 든 책을 빼앗고 수백 가지의 중요한 메모와 고객의 주소가 적힌 서류를 조사하자 그는 이성을 잃고 주먹을 휘두르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의 두 손을 묶어야 했다. 이 싸움으로 그의 안경이 바닥에 떨어졌다. 없으면 하루도 저 책의 놀라운 세계를 볼 수 없는 이 마법의 망원경은 바닥에서 박살이 났다. 이틀 뒤 변변치도 못한 차림 그대로(입은 거라고는 가벼운 여름 외투뿐이었다), 그는 코모른에 있는 러시아 민간인 유치장으로 구치되었다.

  야콥 멘델이 책과의 인연을 끊긴 채, 돈 한 푼도 없이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인간 쓰레기들과 지낸 2년간의 유치장 생활에 대해서는 나도 들은 바가 하나도 없다. 새장에 든 독수리의 고통으로 이 기간의 멘델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 주정뱅이 같은 발작 이래로 세계는 전쟁 중에 휘두르는 권력의 횡포와 잔인성과 더불어 군대에 복무한 시기를 놓친 자들, 남의 나라를 고향으로 알고 살아가는 이방인들, 그리고 퉁그스족이나 아로카니아 (풀이 : 칠레 중부의 중남미 토인들) 사람들에게도 주어졌던 저 권리 - 시간이 허락하면 도망칠 수도 있는 권리 -를 박탈당하고 신성한 보호의 혜택을 입지 못하고 있는 철조망 뒤의 이 수백만의 무리가 사실은 가장 쓸모없고 구제할 여지없는 무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이런 반문화적 죄악은 프랑스나 독일, 영국, 그리고 광란에 빠진 모든 유럽의 교전 국가에서 뻔뻔스럽게 자행되었다.

  최학의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에 그를 다시 이 정신세계로 돌아오게 하는 기회가 없었더라면, 야콥 멘델도 다른 무고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외양간 같은 유치장에서 사라지고 말았거나, 미쳐버리고 말았거나, 이질이나 체력고갈, 아니면 뇌연화증으로 죽고 말았으리라. 그가 사라지고 난 뒤 굉장한 고객들의 편지가 카페 글루크로 배달되었다. 그 중에는 쇤베르 백작도 있었고 스티리아의 주지사(州知事)에게서 온 것도 있었다. 그는 문장학(紋章學) 계통의 수집광이었다. 신학대학의 전임 학장인 지이겐펠트도 있었다. 그는 성 아우구스틴의 주해서를 쓰고 있었다. 에들러 폰 피세크는 80 고령의 퇴역 제독으로 회고록을 집필하고 있었다. 이들과 그밖의 유명인사들은 멘델의 도움을 요청하면서 그의 전 거주지로 편지를 보냈다. 그 가운데 몇 장은 코모른에 있는 유치장으로 온 것도 있었다.

  그들은 유치장의 소장에게도 손을 썼다. 이 인정 많은 소장은, 안경이 깨어졌지만 돈이 없어 새 안경을 사 쓰지 못해 거의 장님에 가까워 마치 두더지처럼 가엽고 멍청하게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이 더러운 러시아계 유태인에게 그런 저명인사의 편지가 날아오는 걸 보고 크게 놀랐다. 꼴이야 어떻든 그런 저명한 고객이 있는 걸 보면 상당히 중요한 사람임에 틀림없는 일이다. 소장은 앞을 제대로 못 보는 멘델에게 편지를 읽어주고 해답을 써주었다. - 해답은 멘델에게 유리하도록 영향력을 발휘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효과를 거두었다. 이 저명인사들은 수집가의 단체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군 당국에 줄을 대어 (이 적국인의 행동을 보증한다는 것이었다.) 1917년 멘델을 다시 비엔나로 풀려나게 할 수 있었다. - 코모른에서 2년 이상을 보낸 다음이었다. 그 대신 조건이 있었다. 매일 경찰에 자신의 행동거지를 보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건은 문제될 게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자유의 몸이 되었다. 다시 한번 그의정든 다락방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다시 책을 만질 수 있게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카페 글루크의 테이블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유치장에서 돌아온 그의 모습은 스포르쉴 부인의 말을 직접 인용하기로 한다.

  “어느 날 - 아이고, 예수님, 마리아님, 요셉님. 제 눈이 어떻게 됐습니까? - 문이 조금 열리고 (그 양반의 문 여는 버릇은 선생님도 아실 겁니다.) 그 사이로 불쌍한 멘델씨가 들어왔어요. 그는 형편없이 낡은 군복을 입고 누가 버린 것인 듯한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칼라도 없었어요. 얼굴은 꼭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고 머리카락도 얼마 남지 않은 채였습니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똑바로 자기 테이블로 걸어가 군복 저고리를 벗었습니다. 그러나 전처럼 민첩하지는 않았다오. 힘이 없어서 헐떡거렸으니까요. 책도 하나도 없었어요. 아무 말없이 자리에 앉아 움푹하고 표정이 없는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지요. 우리가 독일에서 그 양반 앞으로 온 인쇄물을 한 꾸러미 갔다줬더니 그걸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옛날 같지 않았다오.”

  그렇다. 그는 옛날의 마술적인 도서목록의 천재는 아니었다. 그 시절에 멘델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눈물겨운 이야기만 내게 들려주었다. 무엇인가 회복불능이었고 그도 파면이었다. 전쟁이라는 핏빛의 혜성이 그의 조용한 책의 세계로 날아온 것이었다. 수십 년 동안 인쇄물만 보아온 그의 시력은 철조망이 쳐진 인간의 마구간에서 형편없이 감퇴되어 있었다. 책 속에다 그처럼 열렬하고 냉소적인 시선을 던지던 그의 눈엔 이미 한꺼풀의 베일이 씌어져, 조심스럽게 새로 맞춘 안경 속의 눈은 핏발이 서고 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을 그처럼 정교하게 돌던 기억의 톱니바퀴는 부서져버린 것 같았다. 그의 기능은 전과 같지 않았다.두뇌의 구조란 정교한 것이다. (극히 부서지기 쉬운 물질로 만들어진 배전판이나 쉬 망가뜨려지는 정밀기계와 같은 것이다.) 소동맥 하나의 폐색, 신경총 한 가닥의 혼란, 세포 하나의 노쇠, 심지어는 미분자 하나의 전위조차도 두뇌의 톱니바퀴를 정지시켜 제대로 조화된 동작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멘델의 기억 속에서, 지식의 배전판 위에서 실마리는 풀려나가지 않았다. 혹은 심리학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연상이 제대로 풀려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따금씩 고객이 멘델을 찾아왔지만 야콥 멘델은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대답하기도 전에 질문을 잊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마치 세계가 전과 같은 세계가 아니었듯이 멘델은 옛날의 책장수 멘델이 아니었다. 그는 읽는 일에다 정신을 완전히 집중시킬 수 없었고 전처럼 고개를 앞뒤로 흔들지도 않았다. 그저 꼿꼿하게 앉아 인쇄물에다 눈을 주고 있었다. 읽는 게 아니었다. 그저 명상에 잠기는 것이었다. 스포르쉴 부인은, 멘델이 이따금씩 책 위에다 머리를 떨어뜨리고 대낮에도 잠이 들거나 몇 시간이고 멍하니 백열들에서 대체된 아세틸렌 등불만 바라보았다고 했다. (석탄 기근으로 전기는 쓸 수 없었다.)

  멘델은 옛날의 책장수 멘델이 아니었다. 여덟 번째의 불가사의도 아니었다. 이제는 늙고 지치고, 그러나 아직은 숨쉬고 있는 수염과 낡은 누더기의 늙은이로 거기 옛날의 델피 탁선(託宣)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이제는 카페 글루크의 영광이 아니라 부끄러운 허수아비, 재수없는 기생충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러한 인상은 카페의 새주인 플로리안 구르트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전쟁 중에 밀가루와 버터로 돈을 번 사람이었는데 스탄트하르트너에게서 그 당시 급속하게 평가절하하던 그라운화(貨) 8만에 카페 글루크를 사들인 것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자기 식으로 고쳤다. 낡은 부분을 새로 장식하고 새틴 천을 씌운 의자를 들여왔으며 대리석 포치를 만들고, 카페를 확장하고 댄스홀을 만들 수 있는 땅을 사려고 이웃과 교섭을 벌이고 있었다. 이같이 카페의 분위기를 일신하려는 그가 기생충같은 장애물인 데다가 전쟁 중에는 당국에 고발되고, 아직도 적국인으로 간주되고 있는 갈라시아의 더럽고 늙은 유태인 야콥 멘델을 좋아할 턱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커피 두 잔과 빵 너댓 개 밖에 먹지 않았다. 스탄트하르트너는 이 장기 고객에 대해, 멘델이야말로 중요한 인물이고 이 카페에서 영원히 보호해야 하며, 부담이기는커녕 재산 목록으로 생각해야 할 인물이라고 말하며 새주인에게 인계했다. 그러나 플로리안 구르트너는 새가구와 최신형 금전등록기를 들여왔을 뿐만 아니라, 이윤 추구와 전후(戰後)의 까다로운 분위기를 노려 전 주인의 완고한 경영 방침에서 멋진 커피하우스로 탈바꿈하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를 제거했다. 그는 이런 요소를 자기 업소에서 몰아내는 데 핑계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좋은 핑계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야콥 멘델은 이미 철저하게 몰락해 있었다. 남아 있던 예금 잔고는 전후의 인플레이션으로 곧 바닥이 났다. 그의 단골손님들은 전쟁 중에 전사하거나 알거지가 되었거나 실종되었다. 그는 옛날처럼 책을 짊어지고 집을 방문하며 팔아볼 생각도 했다. 그러나 책을 짊어지고 계단을 오르내릴 만한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가 거지가 되었다는 징후는 면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레스토랑에서 배달해주는 점심도 먹을 수 없었고 카페 글루크에서 먹는 점심과 저녁도 거르기 시작했다.

  그의 지불은 3주일간이나 늦어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수석 웨이터는 구르트너에게 “멘델의 보따리를 싸게 하자” 고 말했다. 그러나 스포르쉴 부인이 끼어들어 지불 보증인이 되었다. 그가 갚지 못할 경우에 부인의 임금에서 제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최악의 경우는 면하는 것 같았지만 그보다 나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언젠가 수석 웨이터는 빵이 계산보다 더 빨리 없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혐의는 자연히 멘델에게 갔다.

  수석 웨이터는 난로 뒤에 숨어 감시하다가 이틀 수 현행범으로 멘델의 덜미를 잡았다. 이 불청객은 카드 룸에 있는 자기 자리 앞쪽의 카운터 뒤로 숨어들어가 빵 바구니에서 롤빵 두 개를 들고 다시 카드 룸으로 돌아와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던 것이었다는 것이었다. 혐의가 굳어졌지만 멘델은 빵없이 커피만 마셨다고 주장했다. 손해액이 추정되었고 웨이터는 이를 주인에게 보고했다. 멘델을 제거할 구실에 기분이 흡족해진 구르트너는 공개적으로 그를 도둑으로 몰고 경찰에 넘기지 않은 것만도 자기 마음이 좋기 때문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당신 발로 여길 나가시오. 두 번 다시 이 카페 글루크에서 당신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단 말이야.” 하고 플로리안은 소리쳤다.

  야콥 멘델은 부르르 떨었지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는 자기 물건을 그대로 두고 한 마디 말도 없이 떠나고 말았다.

  “무서운 일이었어요.” 하고 스포르쉴 부인은 말했다.

  “그 광경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그는 우뚝 서서 안경을 이마 위로 밀어 올렸어요.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지요. 코트를 입을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1월이었어도 말입니다. 모질게 추웠어요. 선생님도 전쟁이 끝난 그해 겨울의 모진 추위를 기억하실 거예요. 너무나 당황한 그는 읽고 있던 책도 테이블 위에 그대로 둔 채 사라졌어요. 처음에는 저도 그걸 보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내가 그 책을 집어 그를 따라 나섰어요. 그러나 이미 문 앞에서 사라진 뒤였어요. 따라갈까 했지만 구르트너씨 때문에 겁이 났어요. 구르트너씨는 문 앞에 선 채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어요. 군중이 모여들었죠. 나는 지금까지도 부끄러워요. 전 주인 같았으면 그런 일이 일어났을 리가 없지요. 스탄트하르트너씨 같았으면 배고플 때 빵 몇 개 들어다 먹었다고 해서 그를 쫓아내진 않을 거예요. 오히려 얼마든지 먹으라고 했을 거예요. 전쟁 때문에 사람들이 영악해졌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손님이었던 사람을 그렇게 간단히 내쫓다니.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런 짓은 하나님 앞에서 대답할 성 싶지도 않아요!”

  이 선량한 노부인은 흥분한 나머지 특유의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일이 얼마나 수치스러우며, 스탄트하르트너씨가 카페를 팔지 않았더라면 그런 일도 없었을 거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막으려고 멘델은 어떻게 되었으며 그 뒤에 멘델을 다시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이 질문이 그녀를 더욱 흥분하게 했다.

  “선생님도 이해하시겠지만, 매일 그 테이블을 지날 때마다 자꾸만 그쪽으로 눈이 간다우. 그때마다 저는 생각하지요. ‘이 불쌍한 멘델씨는 어디로 갔나.’ 하고. 여기 있었더라면 나라도 그를 불러 따뜻하게 먹을 걸 장만해줄 수 있을 텐데 - 어디서 돈을 구해 먹을 걸 사들이고 방을 따뜻하게 할 수 있겠어요? 제가 아는 한, 그에겐 이 세계를 온통 다 뒤져봐도 친척이 없어요. 그리고도 세월이 얼마간 흘렀지만 그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나는, 그가 이제 이 세상을 하직했으며 이제는 다시 그를 볼 수 없으리라고 믿기 시작했다오. 나는 그 영혼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기로 마음먹었답니다. 25년간이나 사귀어왔지만 그는 한결같이 선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월 달의 어느 날, 아침 7시 30분, 그때 나는 창문을 닦고 있었는데, 문이 열리며 멘델씨가 들어왔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아시겠지만,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기웃거리며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어요. 나는 바로 그 순간에 그의 눈이 이상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의 두 눈을 번쩍거렸고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보아버리려는 것처럼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수염과 피부에 뼈밖에 안 남은 형색이었어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지난 날, 여기에 있던 걸 모조리 잊어버리고 있구나, 서성거리는 모양이 꼭 몽유병자 같다. 그는 구르트너씨에 의해 수치스럽게 쫓겨난 것도, 저 빵 사건도 모조리 잊어버린 것이구나.’ 다행히도 구르트너씨는 출근하기 전이었고 수석 웨이터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나는 멘델씨에게 달려가 주의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만일에 저 악당을, (하고 그녀는 누가 엿듣고 있을까봐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고쳐 말했다), 아니, 구르트너씨 말입니다, 또 만났다간 또 한번 길가로 쫓겨날 판이거든요. “멘델씨” 하고 내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무서운 그 순간), 그는 모든 것을 기억해낸 것 같았습니다. 그는 기가 질려 떨기 시작했어요. 손뿐만 아니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와들와들 떠는 것이었어요. 그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으나, 나가자마자 포도 위에 그대로 쓰러져버렸어요. 우리는 전화를 걸어 엠블런스를 불렀습니다. 같이 온 간호부는 그가 고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날 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의사는 양폐렴(兩肺炎)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카페 글루크에 왔을 때부터 그랬지만 결국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말씀드렸듯이 그는 꼭 몽유병자처럼 카페로 들어왔던 것입니다. 30년 동안이나 매일같이 앉던 책상이 고향처럼 그의 발길을 끌고온 것이랍니다.”

  이 이상한 사람, 멘델을 마직막까지 기억하는 두 사람, 스포르쉴 부인과 나는 오랜 시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이 갈라시아의 책장수에게서 최초의 정신 세계에 모든 것을 바쳐버린 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카페 화장실의 청소부이며 평생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한 이 늙은 여자는 우연히 멘델을 알게 되어 25년간이나 오버코트를 손질해주거나 떨어진 단추를 달아주었다. 우리 두 사람 역시 묘한 인연이었다. 그러나 스포르쉴 부인과 나는 버려진 그 대리석판의 테이블 앞에서 우리가 나누는 잊혀진 공동의 추억담으로 꽃을 피웠다. 모두가 사랑스러운 추억들이었고 우리들의 옛이야기는 언제나 일치했다. 이런 이야기 도중에서 갑자기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맙소사, 내 정신 좀 봐. 구르트너씨가 내쫓을 때 그가 책상 위에 펴두었던 책은 아직도 내가 가지고 있어요. 어떻게 할까 망설였지만 아무도 그 책을 찾는 사람이 없어서 큰마음먹고 기념품으로 간직하고 있었다오. 잘못한 건 아니지요, 선생님?”

  그녀는 자기 일에 필요한 도구창고로 달려가 책을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고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책과의 대면은 한 인생의 조그만 아이러니와의 대면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고서 수집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하인의 탁월한 저서였다. 사라져버린 마술사의 유산인 이 책은 이미 누더기가 되어 있었다. 기도서가 아닌 바에야 어떤 인쇄물이든 그렇게 철저하게 낡아 버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내 표정은 당황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 고귀한 영혼 앞에서 나는 어쩔 줄 몰랐으니까. 그녀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이 책은 제가 가져도 좋은 거지요. 선생님!”

  나는 진심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물론입니다. 간직하십시오. 우리의 옛 친구 멘델은 자기 책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자기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면 틀림없이 기뻐할 것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그처럼 겸손하고 단순하게 이미 고인이 된 학자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 늙은 부인에게 나 자신을 비교해보고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이 배우지 못한 여인은 적어도 추억의 징표로 그의 책을 가지고 있지만 소위 교육받은 사람이며 작가라는 나를 몇 년 동안이나 그 멘델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적어도 한 사람이 책을 쓴다는 것은 사후에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시키고 인생의 가혹한 운명인 무상과 망각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어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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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냐 > 펌)30대 여자


사랑하는 친구 L의 싸이에서 퍼왔슴다... 원작자가 궁금했는데,  찾아가려니...에러가 나길래 그냥 조용히 펌질만 합니다.


 

30대 여자...

[스크랩] 30대 여자

30대 여자가 처한 상황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일하는 여자, 아이 기르는 여자,
출산 유보하는 여자, 아이 학수고대하는 여자,
결혼한 여자, 결혼 압력 받는 여자, 결혼 안 하겠다는 여자,
하루에도 몇 번씩 이혼을 생각하는 여자, 이혼 해버린 여자,
사표 낼까 말까 하는 여자, 재취업에 고심하는 여자, 창업 고민하는 여자, 사표 압력 받는 여자,
남자에 지쳐있는 여자, 아이 기르기에 지쳐있는 여자,
친구 만나는 것도 잊은 여자, 친구 낙으로 겨우 버티는 여자,
너무 신나게 사는 여자, 너무 좌절되어 있는 여자,
피곤에 절어서 잠자리조차 싫은 여자,
쇼핑 중독증에 걸린 여자,
겉보기 여유와 달리 뒤쳐지는 느낌에 시달리는 여자,

24시간 내내 쫓겨서 자신에 대한 생각조차 못하는 여자 등 등.


징그러운 것은, 이런 다양한 상황의 대다수가 어느 여자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30대 여자의 복합 상황이다.
한 가지도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는데 수많은 상황이 교차하니 얼마나 복잡한가. 그러니 그 많은 갈래 속에서 '자아 분열적'으로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게다가 세상은 30대 여자에게 말도 많다.
결혼해야지, 애 낳아야지, 집 장만해야지, 너무 늦었잖아, 너무 빠르잖아, 더 잘 해야잖아, 그만 둬야잖아 등 등.
20대 여자에게 주는 축복의 말, 격려의 말과는 달리 뭔가 침 돋은 말들이다. 찔리면 괜히 아프다. 괜히 찔리는 것 같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날 때> 에서 샐리의 여자 친구들이 모여서 하는 말처럼, '째각째각' 시계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바로 이래서 30대 여자들은 푸근하기 보다 공격적일 수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노처녀 증후군이 아니라 30대 여자 증후군일지도 모른다.


자칫하면 자아 분열적이 아니라 아예 진짜 분열할 지도 모른다.
물론 공격적인 것이 백 배 낫다. 좌절을 안으로 누르고 실망을 내색하지 않고 안으로만 접어두는 것보다는 공격적인 것이 훨씬 건강하다.
'내향 내(內)보다 '외향 외(外)' 할수록 진짜 분열할 위험은 줄어들 것이다. (공격적이라는 말이 싫으면 팽팽하게 바람넣은 공이라고 해도 좋겠다.)


나의 30대도 그렇게 공격적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스트레스도 상당했다.
사방에서 내 뒷다리를 잡으려 드는 것 같고,
내 머리를 쑤셔 박으려는 듯 싶었고,
폐기물 처리하려는 듯 싶기도 했고,
내가 조금 움직임이 느려지면 금방 표가 나는 게 보여서 피곤했고,
주위에서 외형만 조명하려 드는 게 못마땅했고,
사회에서의 내 자리가 어디인가 고민했고,
몸과 정신과 마음이 다 팽팽한 긴장 상태였다.

그렇게 팽팽했던 30대를 나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실제로 30대를 팽팽한 긴장 속에서 보낼 수 있어야 비로소 아주 괜찮은 마흔살 성년(成年) 넘어갈 수 있다는 게 내 지론이고 보면 말이다.
사십 대에는 조금 푸근해져보지 하고 생각했고,
하기는 실제로 사십대에는 나름대로 푸근해졌다.
(고백하자면, 아주 '쪼끔'.)

이런 자아 분열적인 30대 여자에 대해서는 아예 품평을 하지 않는 것이 맞을 듯싶다. "괜찮지, 싹수있어, 멋져, 당당해, 근사해?" 과연 어떤 말로 품평을 할 것인가. 이 힘든 시간을 보내는 30대 여자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30대 여자를 품평하는 기준은 딱 한 가지다.

근사한 40대로 넘어갈 만큼 될성부른가?
"40대에 일하고 있지 않으면 전혀 일을 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는 소신이 뚜렷한 나다운 협량한 기준이지만 혜량해 주시라.('일'의 정의는 물론 넓다.)


자식의 미래에 목을 맬 것 같은 여자는 질색이고,
자기 남자의 진짜 인생에 무관심할 것 같은 여자는 정말 싫다.
땀흘려 일하는 귀중함을 모르는 여자,
자기 얼굴과 분위기 그대로에 책임지지 않을 것 같은 여자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남편과 자식 얘기밖에 못하는 여자는 괴롭고
자기 소신대로 사회평론 한 가닥 못 뽑는 여자는 재미없다.(이런 징후가 30대에 드러난다.)


30대 남자보다 30대 여자들이 눈에 띄는 것은 사실이다.
작가, 방송인, 영화인 등. 사회에서 30대 여자를 일부러라도 주목해준다. 감사해야 할 변화인지 아니꼽게 봐야 할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월 좋아진 것으로 치자. 하물며 여자 35살이 되어야 비로소 매력적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이니 우리도 성숙해진 것 아닌가.


결례를 무릅쓰고 30대 그 여자들을 꼽아보자.
전혜린처럼 30대의 긴장을 앞에 두고 자살한 여자도 있다. 31살. 나는 비겁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전혜린 말처럼 그토록 진정하게 치열한 30대를 살았더라면 전혜린은 아주 근사한 40대 여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40대 뿐이랴, 50대, 60대, 70대도 기대해봤었음 직하다.

배우 이미연이 30대로 넘어가며 이혼을 했기에 독립 성장을 했다는 것은 아주 유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본인의 심정은 여하하든, 박수 짝짝짝! 니콜 키드먼이 남편의 화려한 그늘에서 빠져 나온 35살, 흥행성 높은 톰 크루즈는 기웃거려 보지도 못한 아카데미상까지 탔으니 통쾌하기 짝이 없다.
영화에서 '버지니어 울프'로 분한 것을 보면 근사한 50대가 될 소지까지 보이니 박수 받아 마땅하다.

성공한 앵커, 가장 닮고싶은 여자로서가 아니라 한 당당한 여자 백지연이 30대에 투입한 자아 세우기 전투는 수많은 여자들에게 용기를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시원하다. 30대가 넘으면 화려한 화면의 앵커 자리에서 내려오는 여전한 관행에 끔찍해하면서 때를 기다려주자.

눈썰미 좋은 나에게 찍혔던 <박하사탕>의 문소리.
'20대 여자론 죽어도 주목을 못 받을 거야' 하던 내 예감을 거의 맞추고 올해 29살에 베니스영화제에 두 번째 갔다. '영원한 30대로 보이는 문소리'가 되면 좋겠다.
공격적이고 팽팽한 긴장감으로 감돌고, 치열한….


잊지 말자.
30대를 팽팽한 긴장감으로 잘 보낸 여자들이 비로소 매력적인 여성이 된다. 물론 그 팽팽한 긴장감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여자 30대는 흔들리는 게 아니라 중심을 찾아가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남자는 '주어진 중심'이 있기에 흔들리지만,
여자는 자신의 중심을 만들어가기에 비록 분열적인 상황에서 훨씬 더 괴롭지만 훨씬 더 창조적이다.


다중의 압력 속에서 여자 30대는 지나간다.
10년이 긴 것 같은가? 쏜살같다. 화살 같은 30대를 꾸려가는 당신의 비결은? '늦기 전에' 누드집을 만들건, 더 늦기 전에 '성공 스토리'를 쓰려하건, 또는 일찍 창업을 하려 하건, 30대 여자여, 당신의 '외향 외' 공격성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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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냐 > [퍼온글] 나 없이는 화장품 사지 마라

이거 어느분이 쓴 글이에요? -0-

인터넷 상에 돌아다니던데

'서재' 라는 단어 '플$$보' 님이란 닉넴이 알라딘과 연관이 있는거 같은데....

제가 모르는 어떤 님의 서재가 출처인가요? 글 내용보다 이부분에 너무 놀랬어요.

인터넷상 아주 거대한 규모의 커뮤니티에 떠돌고 있어서..;;;;;;;;;;;;;;;;;;;;

(출처를 알수가 없다!!)

뭔 소리냐. 미국의 `화장품 비평가' 폴라 비가운 이라는 여성이 쓴 책이다. 화장품은 적게 쓸 수록 이롭다거나, 돈을 많이 쓴다고 피부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독설로 세계적 화장품 회사들을 울리고 웃겨왔다고 한다.
호기심에 좀 들여다봤다가 기절했다. 꽤 두꺼운 책인데 앞부분 절반은 화장품 사용에 대한 일반론...뒷부분이 문제다. 35개 유명브랜드에 대한 총평과 더불어 제품 하나하나에 대한 '평가'를 냉정하게 매긴다. 장난이 아니다. 책을 다 읽지는 못하겠지만, 화장품 고를 때마다 참고하면 좋겠다 싶다....하지만 기사 쓰시라구, 책은 통째로 생활담당 L선배에게 넘겼고...나는 무식하게 몇가지를 베꼈다. 타자수 능력은 이럴 때 쓰라고 닦아놓은게 아니겠는가.
 서재를 방문하는 여성 동지들에게 참고가 되리라고 내멋대로 기대한다. 플OO보님 등 예리한 평가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일부 서재인들은 이런 책을 한번 시도하는 것은 어떨까도 내멋대로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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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수이 - 굉장한 스타일이 살아있지만 실체는 거의 없다. 조가비 모양의 앙증맞은 용기는 몰티샤 아담스(칠흑같이 검고 긴 머리, 검은 드레스, 하얀 얼굴에 검은 화장 등 엽기적 캐릭터로 유명한 여배우)의 허영기에 딱 어울린다.

콤팩트 파우더리 파운데이션은 중성부터 악건성 피부에 최고지만..페이스 파우더는 4가지 색상이 모두 번쩍거린다. 평범한 품질에 비해 가격이 지나치다.
 


아베다 - ‘우리 몸에 바르는 모든 것은 우리 몸에 먹이는 모든 것처럼 건강하고 자연적이어야 한다’고 했지만, 성분 리스트를 보면....먹을 수 없는 물질도 너무 많이 들어있다. 자연성분에 대한 환상 이상으로 아베다의 가장 큰 매력은 달콤한 향이다. 향은 천연이건 합성이건 자극과 트러블의 가능성을 몇배로 증가시킨다. 실제 아베다 제품에 사용되는 여러 에센스 오일들은 알레르기, 피부염 등 여러 불쾌한 부작용의 이력을 갖고 있다. but 아베다 마케팅 전략과 과장된 주장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좋은 제품임을 인정한다.
 


베네피트 베네틴트 - 로즈 색상의 리퀴드 컬러. 결점 없는 보드라운 피부 위에서만 진가를 발휘한다. 리퀴드 블러시를 좋아한다면 최고의 선택.
 


비오템 - 결과적으로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브랜드. 몇몇 클렌저는 훌륭하며 모이스처라이저와 토너의 성분도 좋다....그러나 아크노쀼르 포어언클로깅 퓨리파잉 폼...은 건조와 자극이 예상되는 진부한 클렌저. 아크노쀼르 클래리파잉 엑스폴리에이팅 로션은 페퍼민트 오일이 들어있어 어떤 피부에도 건조하고 자극적...
 


바비브라운 - ‘피부과 전문의가 테스트한’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지만, 전화로 확인해본 결과, 관련 문서를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좋은 브랜드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다지 흥분할 것도 없다.
 


바디샵 - 티트리 페이스 솝은 피부를 아주 건조하고 예민하게 만든다. 여드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티트리 오일 프레셔너도 피부를 불필요하게 자극한다. 티트리 오일도 실제 알코올 양이 더 많다..자극적이라는 뜻이고 따라서 추천할 수 없다. 비타민C 인텐시브 나이트 리페어도..피부에 자극...그래도 비타민C 슈퍼 차지드 세럼은 항산화제와 보습제 구성이 훌륭하다. 중건성피부에 매우 좋다.
 


샤넬 - 99년 ‘프레시지옹’이라는 새로운 라인을 론칭했다. 명품회사가 “아니, 그건 최고가 아니었어. 바로 이게 최고야”라고 말하는 상황이랄까.
아쿠아무스 포밍 크림 페이스 워시..평범한 품질에 비해 가격은 너무 높다.

리퀴드 아이 라인- 단단하게 지속되고 번지지 않는다. 그래도 가격으로 볼 때 로레알의 제품이 훨씬 낫다.
퀵 커버- 실크처럼 가벼운 촉감에 불투명한 커버력을 선사한다. 아주 괜찮다.
 


크리니크 - ‘알레르기 테스트를 거친’, ‘저자극성’, ‘100% 무향’, ‘피부과 전문의가 테스트한’ 이라는 개념을 뿌리내렸다. 하지만 이중에 정말 의미있는 것은 ‘100% 무향’이라는 주장 하나 뿐이다. 상당수의 제품들이 아주 실망스럽다. 엄청난 알코올을 함유한 제품은 결과적으로 피부를 건조하게 만들고, 유분을 많이 첨가한 모이스처라이저는 여드름을 유발시킨다. 그러나 다행히도 향이 전혀 첨가되지 않았다는 것, 보습 성분들이 훌륭하다는 것, 자외선 차단제의 기능이 뛰어나다는 것 등의 장점도 있다.

 

엘리자베스 아덴 - 기초제품에는 독창성과 평범함이 기묘하게 혼합돼 있다. 최악의 단점은 UVA차단 성분이 결여된 자외선 차단제. 그래도 특허받은 세라마이드 기술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래도 세라마이드 어드밴스트 타임 콤플랙스 캡슐 - 중건성 피부에 좋다. 상당히 비싼 값을 치러야 하지만, 그래도 느낌은 최고다.

 

세라마이드 아이즈 타임 콤플렉스 캡슐 - 배합이 그리 흥미롭지 못하다. 굳이 돈을 들여 사용해볼 만한 제품이 아니다.
 


에스티 로더 - 로더 계열 브랜드에는 유난히 안티윙클 제품이 많다. 300여종 이상. 결국 10개의 안티윙클 제품이 에스티 로더가 주장하는대로 그렇게 훌륭하게 주름을 펴준다면, 어째서 또 다른 290개의 제품을 만들어야 했을까. 또 모이스처라이저는 그들의 자랑이지만, 가끔은 그 화려한 주장에 부합하지도 않는 제품들이 터무니없는 가격을 달고 있다.

리누트리브 크림 - 건성피부에 좋다. 보습제와 항산화제가 훌륭하다. 리누트리브 퍼밍 아이 크림 - 좋은 보습제이긴 하지만 주름을 지우지는 못한다.
로더의 메이크업 제품 중 가장 훌륭한 것은 질감과 색상이 뛰어난 파운데이션이다. 아잇O도도 다른 브랜드에 비해 월등하다. 하지만 평범한 마스카라와 그저 그런 브러시 때문에 로더의 메이크업 제품은 탄력을 잃고 만다.
 


겔랑 - 소량의 항산화제와 보습제, 항염제 등을 담고 있는 평범한 구성이 대부분이다. 피부미용에 마구 돈을 투자하고 싶다고 해도 훨씬 사려 깊게 만들어진 좋은 제품을 고르는 것이 현명하다. 겔랑의 보습제품은 좋게 평가해준다 해도 평범하고 진부하다.
 


로레알 - ‘난 소중하니까요(Because I'm worth it)'이라는 영특한 광고카피에도 불구, 로레알 제품에는 우리의 관심을 끌 만한 ’소중한‘ 성분이 결여되었다. (그래도) 로레알의 베스트 기초제품은 놀랍게도 랑콤과 비슷하다....로레알의 메이크업 제품은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잇는 종합 브랜드 중에 가장 믿음직하다. 립스틱은 3분의 1 밖에 안되는 가격으로 랑콤과 팽팽한 경쟁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라 프레리 - 고가 안티에이징 화장품 분야에서 30년 넘게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성분 리스트를 조금이라도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라 프레리의 가격이 그 내용물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싸다 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비싼 가격을 초월할 수 만 있다면, 몇몇 보습제품은 주목할만하다. 동시에 대단히 평범한 제품들도 내놓고 있다.
 


랑콤 - 기초제품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지만 보습제, 항산화제, 진정제 등에 있어서 상당히 빈약하다. 충격적이겠지만, 어느 면에서는 에스티 로더가 랑콤보다 훨씬 낫다. 흥미로운 점은 랑콤은 로레알 그룹의 소유... 신제품은 로레알 슈퍼마켓 진열대에 올려지고, 한두달 후면 랑콤의 매장에 나타난다. 품질은 로레알도 랑콤도 평범하다. 그래도 랑콤이 좋다면 먼저 로레알을 쓰라고 권하고 싶다. 한가지 경고할 점은 랑콤과 로레알의 제품은 향이 아주 강하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프랑스적인 특징이다.
 


M.A.C - 아직도 기초제품 브랜드로서는 부족하다. 전반적으로 M.A.C에서 쇼핑해야 하는 주된 이유는 애초의 장점이었던 메이크업 제품이다.
 


시세이도 - 그냥 지나쳐도 무방한 브랜드 이지만, 그래도 몇몇 품목은 고려해볼만 하다.
 


시슬리 - 나는 종종 내가 한 마리 파리가 되어 시슬리 회의실로 숨어들어가는 장면을 상상하곤 한다. 마케팅 담당자들의 회의. 아마 이럴 것이다.
“어디 봅시다. 이 제품은 정말 슈퍼마켓에서 파는 180ml의 10달러짜리 제품과 비슷하군요. 하지만 이걸 고상한 박스에 담아 포장하고 금빛 뚜껑이 달린 유리 그릇 안에 넣은 후 라벨에 프랑스 단어와 악센트를 넣고 몇가지 이국적으로 들리는 식물 성분과 에센셜 오일의 이름을 적어놓는다면 아마도 60ml에 145달러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여자들이란 이런 바보놀음을 좋아하지요.”
이런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더우기 시슬리 제품의 성분 구성은 지극히 평범한데 소비자로서 모욕감을 느낄 정도로 가격이 높다는 사실이다. 단호하게 말하건대, 시슬리의 제품 중에서 니베아나 폰즈, 뉴트로지나, 로레알 등에서 발견할 수 없는 제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슬리 메이크업 제품의 가격은 기초보다 더 모욕적이다.

 

시슬리야- 극소량의 해초 추출물, 몇가지 식물 추출물, 그리고 극소량의 비타민E의 가치가 이렇게 비싼 것인지, 판단은 소비자에게 맡기겠다. 여기 담겨진 성분들은 다른 브랜드에서도 흔히 쓰이지만 가격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함유된 식물 추출물은 항염 효과가 있긴 하지만 이런 효과를 내는 성분은 이 외에도 무수히 많다. 여러 비타민은 양이 너무 적어서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피부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

(수입 화장품이 확실히 좋은가?)

모든 면에서 좋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대체적으로 국산에 비해
효과면에서 우수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국내 화장품회사와 외국 화장품 회사공장을 몇 차례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연구실의 규모나 연구원의 자질(몇 마디 이야기 해보면 알 수 있다)등에서 그 차이가 생각보다 컸다.
국내사도 태평양/LG등은 이제 연구소에 많이 투자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유명 브랜드는 이 화장품 연구에 엄청 많은 돈을 쓰고 있으며 이것이 제품력 차이의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마케팅 능력은 한국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내 브랜드는 연구보다는 너무 마케팅 위주다. 시작부터 너무 한탕 해 먹을 생각만 하다 보니 6개월만 지나면 그때 무슨 제품을 왜 생산했는지 기억은 가물거리고
또 새로운 신제품 준비다. 그래서 국내 제품은 그렇게 광고가 시끄럽지만 롱런제품이 드물다.
왠놈의 새로운 화장품이 그렇게 필요한지?

(어떤 브랜드가 좋은가?)

한마디로 어떤 브랜드가 좋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으나 자타가 공인하는 좋은 브랜드는 엄연히 있다.
* 에스티 로더/ 랑콤:
기초시장을 지배하는 양대 산맥이다.
대체로 제품력은 우수하나 두 브랜드 모두 모든 고객을 상대하려다 보니 집중도가 약해져서 점차 기존의 고급 고객을 빼앗기고 있는 상황이다.
만회를 위해 화장품 매장에 그 많은 가방을 도입한 장본인들이다.
미국이나 유럽시장에서는 대부분 30대 이상 주부들이 이 브랜드를 쓰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은 너무 빨리 이 비싼 브랜드를 시작한다.
나중에 분명히 후회한다.
에스티 로더의 기초라인 중 스킨토너/나이트 리페어/ 데이웨어
랑콤라인의 스킨토너/ 로션등은 후회가 없는 베스트 셀러 제품이다.
색조는 대부분 40대 이후를 겨냥한 제품으로 젊은 고객들에게는 솔직히 별로다.
최근에 각각 젊은 고객을 겨냥한 색조 신제품을 발매 했는데 글쎄?
두 브랜드의 약점은 너무 많은 고객을 다 잡으려 하다 보니
이미지가 너무 짬뽕이 되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수퍼마켔 스타일의
브랜드가 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거의 매달 나오는 에스티/랑콤의 카피 가방 (사은품)과 랑콤의 스카프/담요/싸구려 시계는 점점 우리를 웃기게 만든다.
그거 안하고 가격 좀 내리지.
집에 당신 브랜드 달린 가짜 가방 다섯 개 있어.

* 클라란스:
유럽에서는 기초 시장 NO 1 브랜드이나 놀랍게도 한국에서는 거의 맥을 못추고 있다.
메이저급 브랜드에 비해 제품은 손색이 없으나 (특히 너리셔/나이트 크림/선제품) 왠일인지 마케팅 능력 부족이 눈에 띈다.
백화점에서의 손님 응대도 문제가 있고. 제품력은 탁월하다니
한번 사용해 보시길... 색조는 보통수준.

* 시세이도:
역시 세계적인 브랜드이나 한국에서는 비교적 죽쑤고 있는 브랜드.
민족감정이 그 원인중 하나일까 궁금하다.
건성 및 민감성 피부에 가장 팬이 많은 브랜드이며 화이트닝 제품은
한국인 피부에 가장 맞는 브랜드라 생각된다.
단지 한국에 안 들어오는 제품종류가 많아
일본에 비해 구색이 많이 부족한 느낌이 든다.
색조는 왠일인지 정이 안드는 브랜드.

(펌)수입 화장품 바로 알기(2) - 샤넬/ 바비/맥/슈에무라

(수입 화장품 - 색조)
국산품 살 때는 여러 할인점, 여러 사이트 비교해서
1000원이라도 싼 데를 가는 고객도 수입 화장품 살 때는 무지하게 관대하다.
아직 우리나라 고객들의 대부분 구매성향은
다른 나라에 비해 기능적이라기 보다 너무 브랜드위주다.
예를 들면 샤넬 제품의 기능보다는 샤넬이라는 브랜드 이름
(정신 차리고 보면 샤넬은 옷 브랜드 이름이다)과
그 케이스/제품 페키지 등등에 뿅간 상태에서 자기도 모르게
오만원 십만원 하는 비싼 화장품을 퍽퍽 산다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샤넬 이야기를 좀 하자.
3년 전에 프랑스에서 우연히 샤넬 직원을 만났다.
자기는 한국에서 샤넬이 대부분 매장에서 매출 1,2위를 하는게 너무 자랑스럽다
고 떠들어댔는데 끝에 웃으며 너무 이상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자기나라 프랑스에서도 3위권인 샤넬이, 일본에서도 순위에서 밀려나고 있고 동남아에서는 메이저 취급도 못받는 브랜드가 한국에서 1위라니..
나는 속으로 서서히 열을 받기 시작했다.
그후 동남아를 여행하면서 한쪽 구석에 초라하게 박혀있는 샤넬 매장을 보면서
왜 샤넬이 한국에서 유독 강할까 꿍꿍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한국의 롯데 명동점이 세계 1위 매장이란다. 글쎄, 프랑스애 표현을 빌면 우리가 샤넬의 진가를 아는 유일한 국민이고 내 생각대로라면 우리가 바로 국제 호구다.


샤넬 제품을 곰곰히 보면 디자인은 참 아름답다.
그러나 기능은? 보통이다.

웃기는 것은 샤넬 제품은 매장에서 보면 훨 낫다.
매장이 궁전이니까.
그러나 집에 와서 보면 그저 그렇다. 솔직히.
지금까지 선물받은 혹은 매장에서 충동구매한 립스틱/파운데이션/마스카라 그리고 작년에 나온 스킨케어 라인 까지 쭉 놓고 보면 (10개가 훨 넘는다)
놀라운 사실은 자주 쓰는 것은 몇 개 안된다는 사실이다.
파운데이션은 바비브라운이 한수 위이고 립스틱은 겔랑/ 랑콤이 훨씬 질이 낫고 색상은 맥이나 디올이 훨 다양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 브랜드는 화려함으로 나를 유혹해 이 제품을 쓰면
샤넬족에 동참할 수 있다는 달콤한 미끼로 우리 지갑을 열게 만드는 그런 브랜드가 아닌가 싶다.
자기만족을 일으키게 만드는 마케팅 + 한국인의 심리가 세계 제1의 샤넬 매장이 한국에 있게 만들었지 않을까 싶다.
프랑스 사람이 토요일 오후에 똑같은 색상의 립스틱을 사러 줄서있는 한국사람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세계의 진풍경중 하나일것 같다.
샤넬의 얌체근성 마케팅 하나는 하나는 개성이 없다는 것이다.
개인별 쵸이스가 없다. 올해 가을 색상이 이것 두갠데 살려면 사고 아니면 말고.
그 나이의 한국 여성을 그 가을에 거의 한두가지 똑 같은 립스틱으로 칠하게 만드는 그 부화뇌동형 마케팅.
애들은 어찌 우리 마음을 이리 잘 아는지. 지금까지 샤넬을 좋아하고 써온 사람들에게 약간은 미안하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화장품, 특히 색조는 진짜 개인 취향이다. 유행이 없다.
그 만치 고객의 취향을 존중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비교적 유행을 멀리하고 개인에게 많은 초이스를 주는 최근의 새로운 색조 브랜드를 나는 옹호 하고 싶다.

* 바비브라운
여기도 많이 올라 있지만 매일 사용하는 색조 제품으로는 질은 최고다.
가격이 약간 비싼감은 있지만 하나 사면 끝까지 쓴다.
전반적으로 네츄럴 색상은 훌륭하나 튀는 색상이 부족한게 흠이다.

*슈에무라
색감이 약간 물탄것 같은 단점이 있다.

* 맥
정말 많은 초이스. 거기다 가격도 싸다.
단점은 파운데이션이 좀 약하고 립스틱은 튀는 색은 많은데
어째 좀 안정감이 약하다.

* 메이커업 포에버
역시 많은 초이스/ 싼 가격
그러나 제품의 품질이 위의 브랜드에 비해 확실히 떨어진다.

* 부르조아
생각보다 제품 질은 좋다.
허나 직장에서 바를만한 색상이 절대 부족하다.

* 캘빈 클라인
캐쥬얼에서 드디어 립스틱 까지.... 아직은 시작이니까 두고 보자.
디자인에 너무 애쓴 흔적이 보인다.

* 안나슈이
특별한 사람을 위한 메이커업. 원타임.

자기의지/ 패션/ 개성에 의한 제품 선택만이 우리들을 아름답게 한다.
제품보고 화장품 고르자. 브랜드말고....


(펌)수입 화장품 바로 알기(4) - 브랜드별 가격

수입 화장품 브랜드는 우리를 진짜 봉으로 보고 있는가?
먼저 우리나라 수입 화장품 브랜드들의 가격 산정 방법을 대충 알아 보자.

1.뼈대 있는 회사:


에스티로더 (에스티, 클리닉, 바비브라운, 맥, 오리진스,아라미스),
로레알 (로레알, 랑콤, 비오템, 헤레나,폴로)
LVMH (디올, 겔랑,지방시) 시세이도 (시세이도)등의 비교적 세계적인 브랜드는 나름대로의 가격 산정기준이 있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는데 보통 미국/ 프랑스/ 일본가격이 기준이고
이 기준에 따라 가령 미국이 100이면 프랑스가 120 일본이 170 한국이 150 이런 일관성이 있다.
(특별히 정책상 차이가 나는 제품 예를 들자면 화이트닝류도 있다).

이들 브랜드들은 대체적으로 보자면 미국기준 (백화점 판매가)으로
약 50 - 70%정도 비싸다고 보면 되고 가끔 보도되는 100%-200% 폭리는 근거 없는 이야기다.
애들도 우리를 그렇게 만만히 보고 있지는 않고
너무 비싸면 신용을 잃는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특히 기특한 브랜드로 맥, 오리진스, 클리닉, 비오템 브랜드는
최근 가격을 새롭게 조정해서 미국가격 대비 20-30%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세금및 통관비용, 기초 판촉비용 치면 미국과 실제 같은 가격대라 보면 된다.
그러나 에스티나 랑콤 겔랑등은 가끔 고기능성 크림류를 가지고
장난 칠때도 있다.
금딱지, 인삼성분든 고가품 (15만원대 이상)다 사기에 속한다.

2. 무섭게 간큰 브랜드:


대표적인 사기꾼들은 내가 보기에는 시슬리, 라프레리,올랑, 끄레드포, 아베다 정도이다.
얘들은 브랜드는 꽤 유명하지만 회사규모나 가격 정책은 동네 구멍가게 수준이다 (내 기준으로 볼때).
또 지사형태 보다는 한국인 지사, 개인수입자 형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이 한마디로 자기 멋대로이다.
미국이 100 이라면 제품별로 한국에서는 150 - 220으로 일관성이 너무 없다.
내 느낌으로는 한국에서는 비싼게 잘 팔리니까 최고로 비싸게 부쳐.
뭐 에스티 크림이 얼마? 그럼 우리는 2만원 더 비싸게 해! 이런식이다.
끄레드포 립스틱은 7만원이란다 정말 엽기적이지 않은가?
그리고 아베다는 최근 소식으로 에스티 로더에 팔렸다니까
너거 원래 가격수준으로 제발 빨리 돌아오라.

3. 그리고 작은 브랜드들

개인 에이전트들이 운영하는 마이너 브랜드들은 비교적 고분고분하다.
시장기준 가격 대비해서 비슷하게 부친다.
나는 이 점이 또 못 마땅하다.
실제 기술력은 차이가 많이 나는데 모른체 하고
최고 수준의 메이저 브랜드와 거의 똑같이 붙인다.
실제 애들이 돈 버는것 아닌가?


(펌)수입 화장품 바로 알기(5) - 기초 화장품 선택

 

(예상치 않았던 일)
어제 열어본 개인 메일함에 담긴 수많은 사연들,
이런 이런 피부타입인데, 이런 이런 화장품을 사용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됐는데 어찌하오리까? 정말 답답하다.
나는 피부과 의사도 아니고 화장품 판매사원도 아니다.
내 섣부른 지식으로 어찌 어설프게 상담을 할 수 있을까?
개인개인에게 자신없는 처방을 보내는 대신
기본적인 기초화장품 고르는 방법을 이렇게 제시한다.
수입화장품 중심으로.....

(무조건 순한 화장품을 쓰자)

글을 보내온 대부분의 회원님들은 18세에서 25세정도이다.
그런데 어째 그렇게 독하고 비싼 화장품들을 줄줄이 사용했는지?
광고가 무섭긴 무섭구나 생각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나라 20대(다수를 20대라 보자)들은 의약품 처럼 화장품을 과용한다.
약간만 피부가 나빠지면 (피부는 원래 몸상태에 따라 좋아졌다 나빠졌다 한다)
이것 저것 발라보고 누가 이것 좋다고 하면 이걸로 바꿔보고,
화장대에 화장품은 늘어가는데 피부는 점점 망가져간다.
그리고 결심한다.
그래 이번에는 큰맘먹고 돈모아 비싼 수입 화장품 한번 써보는 거야.
시슬리나 에스티로.. 완전히 망하는 길이다.
말하자면 가벼운 두통 초반기에 펜잘, 타이레놀 2알씩 먹고
이야! 이것 정말 좋은 약이네. 계속 이약 먹어야지 하는 것과 같다.
앞으로는 3알씩 먹어야 한다.
화장품도 약과 같다. 피부는 화장품에 의존한다.

- 20대를 겨냥한 화장품으로 시작하자-

내 나이가 20대 초,중반이고 피부 상태가 비교적 괜찮다면
권할 만한 브랜드는 비오템클리닉 그리고 최근에 들어온 오리진스다.
이 브랜드들은 해외에서도 20대가 가장 많이 찾는 브랜드고
가격도 대부분 극내 화장품 수준이다.
이 밖에 아베다, 키엘 브랜드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너무 바가지인 것 같아 권하고 싶지 않다.
피부가 가벼운 건성이나 복합성인 경우는 비오템오리진스를 권한다.
이 두 라인 제품의 특징은 비교적 자극이 약하고 오랫동안 써도 질리지 않는다.
순수 식물성을 좋아하는 사람은 오리진스가 제격이다.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대학생이 쓰는 잘 알려진 브랜드인데
한국에서는 현대 백화점 어딘가에 막 OPEN했다고 들었다.
피부가 지성인 사람은 클리닉을 권한다.
클리닉 만큼 칭찬과 욕을 동시에 많이 먹는 브랜드도 드물다.
잘 맞으면 평생 써도 되고 잘못걸리면 피부과에 바로 가야 한다.
건성이나 약한 피부는 가능한 이 근처에 얼씬 하지 마시길....

피부란 50%가 타고 나는 것이고
나머지 50%는 세안/수면/운동/음식으로 후천적으로 관리 하는 것이다.
만약 피부 상태가 좋은 분은 위의 3가지 중 하나를 택해 평생 쓸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는 이런 경우가 30%정도나 되는데 너무 행복한 케이스이다.
평생 화장품가격이 남의 반의반의 반도 안드니..
가능한 가벼운 화장품으로 오래 버티는 것이 최고다.

- 벌써 중독된 20대 피부를 위하여 -

이것 저것 많이 사용해서 거울을 보면 한심한 피부,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피부에는 비용이 든다. 정말 할 수 없는 경우다.
나는 그래도 랑콤과 디올 에스티 시세이도와 같은 메이저를 권하고 싶다.
그러나 그들의 에센스, 크림 같은 제품보다는 스킨, 로션 수준의 제품으로 먼저 시작 해보길 권한다.
절대 너무 서두르지 말자.
구입사 베스트 셀러중 하나인 에스티의 나이트 리페어 에센스미국에서는 보통 30대 후반부터 쓴다.  강력한 타이레놀 3개 짜리다.
우리나라에서는 엄마따라 20대 초반도 사 쓰는데 한번 쓰면 평생 이걸 써야 한다. 고농축 화장품은 가능한 늦게 쓰라는게 이 이유다.
이 이외도 정말 수많은 기초 화장품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고
작은 브랜드 혹은 색조중에서도 몇가지 히트제품도 있다.


헤레나의 에센스, 아덴의 몇 제품, 바비의 SPF15로션,
가네보의 화이트닝등등 정말 괜찮은 제품이다.
그러나 시슬리나 라프레리와 같은 귀족 제품에는 아직 관심 두지 말자.

좋다는 소문은 무성하지만. 생각 해보자
그 제품들은 원래 유럽의 스파에서 40대 이후의 맛간 피부를 위한
마지막 시도로 개발된 고농축 고기능 제품들이다.
한번 써보면 당연히 좋다. 아스피린 4알이다. 엄청난 중독이다.
가격은 또 어찌하고..

오늘 기초에 대해 가볍게 언급했다.
그러나 요점은 하나다.
만병통치 화장품은 없다.
가볍게 가볍게 그리고 순수한/ 식물성인/ 적정가격의 약한 화장품을
조금씩 쓰는 게 최선이다.

가벼운 두통에는 지압이나 아스피린 반알로 기다려 보듯이...


(펌)수입 화장품 바로 알기(6) - 상식 몇가지

정말 큰 부담이 생겼다.
혹시라도 브랜드에 관한 다른 의견을 받을 생각에 개인메일 주소를 오픈 했는데 쏟아져 들어온 내용은 장난이 아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지금까지 쓸 것 다 써보고 할 것 다 해 보았지만
지금 내 피부는 여전히 말이 아닌데 어찌해야 좋으냐는 내용이다.
어설픈 지식으로 대답하기도 그렇고 또 정말 치료법을 알 수도 없다.
답답할 뿐이다.
공통적인 한가지는 분명하다.
너무 많은 화장품을 너무 독하게 사용하신 흔적은 어디에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을 위해 수입화장품을 고르는 몇 가지 잘 알려진 상식을 말한다.

1. 수입품은 한국인 피부타입에 맞지 않다.

이런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이 돈다.
누가 어떤 의도로 만든 말인지 모르나 현실감이 없다.
피부는 구조적으로 서양인/ 동양인 큰 차이가 없다.
또 약품이 아닌 화장품 제조 수준에서 피부의 차이로 인해
효력에도 큰 차이가 온다는 말은 너무 논리가 약하다.
또한 몇 군데 다녀본 수입사의 외국 연구실에도
동양인 피부 모델이 흔하게 실험 중에 있었다.
일본 한국 대만이 세계 7대시장에 들어가는 이 마당에
서양인 피부에만 맞는 제품을 아시아에 팔만큼 메이저 브랜드는 짱구가 아니다.
이거 한때 국내 방판직원들이 노래 불렀다.
수입품도 물론 메이저 회사에서 나온 제품이 훨씬 더 믿음직하다.

2. 백화점에 안 팔리는 좋은 화장품이 많다.

이거 가장 무서운 이야기다.
대체로 사기다.
이런 이야기는 주로 마사지실, 방판 아줌마 그리고 무슨 피라미드업체에서 하는 이야기 인데 범죄 수준의 야그다.
상식적으로 한국에는 이미 세계적인 브랜드는 다 진출 해있다.
이들 브랜드는 이미 보사부의 검증, 국내소비자 테스트,
세계적인 상품력 시험 등을 거친 어느 정도 인증된 제품이다.
마치 백화점 식품 코너에서 상표달고 팔고 있는 우유 제품이라 보면 된다.
메일 보낸 회원중의 많은 분들이
자기가 거래하는 마사지실에서 피부개선을 위해 권한 제품이라며
독일제, 스위스제, 미제, 일제등등 듣도 보도 못한 브랜드를 내게 소개 했는데 이거 큰일날 일이다.
현대와 같은 오픈 마케팅시대에서 정말 좋은 제품이라면
3달이면 검증이 되고 브랜드화 되어 시장(백화점)에 버젓하게 나오지
왜 이상한 병에 이상한 상표로 쉬쉬 뒷거래 되겠는가?
이런 제품 발견해서 브랜드화 시키려 눈이 빨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뒷골목에서 특수 조제 했다는 상표없는 우유를 마시겠는가?
신비성을 강조하기 위해 가격은 무지 높고 초기 의심을 지우기 위해
초기 효과는 무지 좋다(독하다는 말이다).
한 3년이상 그런 제품써서 정말 좋아졌다는 사람있으면 멜 보내시길..
5년만 있으면 완전히 사라질 국제 사기다 이거.

3. 비싼 화장품이 좋다.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시점이 중요하다. 무슨 말인지?
내 나이가 지금 20이고 5년 살고 말것 같으면(실례) 비싸더라도
시슬리, 라프레리를 권한다. 고농축 고강도이니까.
그러나 화장은 우리여성의 평생 운명이다.
나이 70을 본다면 앞으로 50년은 화장을 해야 한다.
40 이후의 망가질 그날을 위해 비싸고 독한 화장품은 조금 미뤄놓자.
우리 한국여성은 너무 마음이 급한것 같다.
20대에 돈이 있다고 시슬리를 사 쓰는 것.
고등학교 수학여행에 혼자 부인용 디올 티셔츠를 입고 가는 것과 같다.
남들은 지오다노, 기껏해야 랄프 로렌인데...

4. 나이에 맞는 화장품이 있다.

정해진 규약은 없다.
그러나 브랜드의 컨셉과 가격등을 비교할때 화장품 선진국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주류는 다음과 같다. (코스메틱저널 3월호 참조-기초위주)
한국에 있는 브랜드위주로 이야기 하자.

- 10대: 국산제품을 권하고 싶다
- 20대 - 30대: 클리닉, 비오템, 바디샵, 오리진스, 아베다(힌국 가격에 거품이 있다)
- 30대 - 40대: 클라란스, 디올, 랑콤, 시세이도, 에스티, 아덴
- 50대 이후 : 시슬리, 라프레리, 올랑,

우리 트렌드와 비교해 보라. 우리가 10년이상 조급하다.

5. 좋은 화장품은 재빨리 피부를 개선시킨다.

틀린 말이다.
좋던 나쁘던 결국 화장품은 피부 진피층(갖아 깊숙한 부분)에
별 작용을 하지 못하고 피부 표면 주위에서 그냥 겉돌 뿐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가장 빨리 반응하는 것은 놀랍게도 운동이다.
쉽게 말하자면 20만원짜리 로션 바르는 것보다 등산한번 하는 것이
피부에 좋다는 말이다.
땀 한번 내면 갑자기 화장이 잘 받더라는 게 이 이야기다.
그래서 이 코너에 매일 나오는 "무슨 제품 써봤는데 참 좋았어" 등등에 너무 민감하지 않았으면 한다.

절대 운동안하고, 인스탄트 음식 즐기고, 밤늦게 잠 들고, 늘 편식 하면서 피부 좋아지기 위해 백화점 1층 코너를 기웃거리는 것과
1년내내 놀던 수험생이 시험전날 시험문제가 가득담긴 문제지를 발견코자 책방을 찾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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