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kimji > 독서에 관한 18문답 - 파란여우,님의 서재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페이퍼는 파란여우님의 서재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1. 책상에 늘 꽂아두고 있는 책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
책장 한 칸을 지지대로 하는 책상을 두었기 때문에 책상 위에는 원칙적으로는 책이 있을 수가 없다. 오른쪽 책장, 팔을 뻗으면 닿는 자리의 책들이 아마 이 질문에 해당하는 듯 싶다. 늘 가까이에 있는 책, 늘 꺼내보는 책 등의 의미로도 가능한 해석일테니까.
ㅡ <띄어쓰기 사전>,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비슷한 말 반대말 사전>, <나의 한국어 바로쓰기 노트>, <우리말 1234가지> 등의 사전류
2. 어쨌든 서점에서 눈에 뜨이면 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종류의 책들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
있다. 신간소설류(좋아하는 작가, 혹은 관심있는 작가들의 신간은 100%), 눈에 확 들어서는 미술관련 책. 도판과 글이 나름대로 정교하고 괜찮은 주제를 가진 문화재 관련 도서, 제목이나 혹은 본문 중의 단 한 줄이어도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는 시집류, 등.
3.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무어라 설명하겠는가!), <내 이름은 빨강>(오! 오! 오!), <다 빈치 코드>(유년기가 지나 처음 읽은 추리/미스터리소설), 김연수의 모든 소설들, 이기호의 <최순덕 성령충만기>(소설의 새로운 형식에 대한 탐구!) 등. 최근 마이리스트, '2004년을 뒤흔든 소설들'이 모두 이 질문의 답이 될 듯 싶다.
4. 인생에서 가장 먼저 '이 책이 마음에 든다'고 느꼈던 때가 언제인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친구가 가지고 있는 <초원의 집>. 10권 짜리였던가 싶은데, 흰 표지의 책이었다. 지금은 내용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전집을 가지고 있는 그 친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스무살, 선물받은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최승자의 <즐거운 日記>,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
5.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책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사실, 없다,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있다면 지금 퍼뜩! 하고 떠올라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없다. 희한하지만 나에게 그런, 그렇게나마, 영향을 미친 책은 없다. 책 보다는 실제 삶에서 배워야 하는 것들이, 실제의 살이에서 영향 받은 것만으로도 나는 늘 숨이 차곤 했다.
6. 단 한 권의 책으로 1년을 버텨야 한다면 어떤 책을 고르겠는가?
나는 문자중독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루에 글자 한 줄 안 읽었다고 입 안에 가시가 돋는, 뭐 그런 부류도 못 된다. 그러므로 일 년 동안 단 한 권의 책을 읽지 않아도 거뜬히 잘 살아갈 것이다. 그래도, 고르라면
화집이 가장 좋겠다. 좋아하는 화가의 화집. 김원숙이나, 에곤 실레, 모딜리아니나 호퍼, Xi Pan, 김환기, 마그리트, 샤갈의 화집 한 권이면 일 년 거뜬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스토리가 연상되는 호퍼의 그림이 그 중 가장 좋은 책이 되겠다.
7. 책이 나오는 족족 다 사들일 만큼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가?
(가다나 순) 김연수, 김영하, 김인숙, 김종광, 박민규, 오정희, 윤대녕, 이기호, 조경란, 천운영, 한강 등
8. 언젠가는 꼭 읽고 싶은데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책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올 해 매너리스트님에게 선물처럼 얻게 된 박경리의 <토지> 16권, 아버지를 졸라 구입한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22권, 매일매일 벼르기만 하는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입소문에 귀가 얇아져 나의 독서 능력을 무시한 채 구입한 D.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 등. (아, 나의 게으름은 죄악이어라!)
9. 헌책방 사냥을 즐기는가, 아니면 새 책 특유의 반들반들한 질감과 향기를 즐기는 편인가?
헌책방,이라는 (단어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좋아하기는 하나, 게으른 성격과, 실제 서점보다는 온라인 서점에서의 구매가 현저히 많은 이유 등등으로 새책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헌 책보다는 새 책을 좋아한다. 새 책 특유의 질감과 냄새, 무척 좋아한다. 더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 책이 아니면 공부하지 못했던 학창시절이라든지, 빌린 책은 끝까지 못 읽거나, 아예 손도 대지 못하는 습성이 있었던 것으로 봐서는, 전적으로 새 책을 좋아하는 것이겠다.
10. 시를 읽는가? 시집을 사는가? 어느 시인을 가장 좋아하는가?
시, 읽는다. 시집도 산다. 늘 '시를 읽을 줄만 알아도 좋겠다'라고 말하지만, 여하튼, 말 그대로 읽기는 읽는다.
기형도, 최승자, (한때는)황지우, 이윤학, 함성호, 장석남, 황인숙, 김선우, 조용미 등.
11. 책을 읽기 가장 좋은 때와 장소를 시뮬레이션한다면?
책상 앞에 앉아, 바른 자세로 책을 읽는 일은 나에게 불가능하다. 읽기야 읽지만 어지간해서는 몰입하기 힘들어 한다. 예초부터 잘못된 독서 습관이었던 터.
내가 가장 몰입하기 좋은 때와 장소란ㅡ 이제 막 씻고 나서, 보송보송한 속옷을 입고, 보송보송한 잠옷을 입고, 보송보송한 이불 속에서, 두 개의 베개는 머리에, 다른 베개 하나는 다리 사이에 끼고, 옆으로 누워 읽는 자세. (똑바로 앉은 자세라면 : 두 개의 베개를 머리에, 베개 하나는 덮은 이불 위에 두고, 책을 그 배 위의 베개에 받친 다음 읽는 자세)
독서에 방해되지 않을 만큼의 낮게 들리는 BGM도 있어야 할 것이고, 우물거릴 수 있는 구운 쥐포나, 짜지 않고 달지 않은 쿠키도 곁들여 지면 더욱 좋겠고.
12. 혼자 책을 읽으면서 조용히 주말 오후를 보낼 수 있는 까페를 한 군데 추천해 보시라.
없다.
13. 책을 읽을 때 음악을 듣는 편인가? 주로 어떤 종류의 음악을 듣는가?
책 읽을 뿐만 아니라 나의 모든 생활 속에는 음악이 있다. 오히려 아무 소리도 안 나면 더 불안해하는 체질때문이다.
독서를 할 때 듣는 음악은, 그 종류는 천차만별인데, 왜냐하면 그저 고요함, 침묵을 이기기 위해 틀어놓은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독서를 방해할만큼 가사가 잘 들리거나, 혹은 너무 우왁스럽게 시끄럽거나 하는 음악은 배제 될 터. 혹은 추억을 끄집어내는 감정의 몰입을 종용하는 음악도 별로다. 보사노바나 가벼운 재즈 곡들이 내가 선호하는 독서를 위한 BGM이 되곤 한다.
14. 화장실에 책을 가지고 들어가는가? 어떤 책을 갖고 가는가?
예전에는 그저 읽고 있던 책을 슥, 들고가는 편이었는데 그 습관은 사라졌다.
지금은 아무 읽을 거리를 들고 들어가지 않는다.
15. 혼자 밥을 먹으면서 책을 읽는가? 그런 때 고르는 책은 무엇인가?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는 책 보다는 신문이 좋다.
식당이 아닌 곳, 집에서 혼자ㅏ 밥 먹을 때의 50%는 책을 보면서, 50%는 그저 밥만 먹는다.
고르는 책, 따로 없다. 그저 읽고 있던 책을 식탁 위에 두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읽던 책이 재미있어 손을 놓기 힘들면, 그럴 경우에나 밥을 먹으며 책을 보는 경우가 성립하는 셈이다.
16. 지금 내게는 없지만 언젠가 꼭 손에 넣고 싶은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
제대로 된, 내가 좋아하는 화가들의 화집, 몇 권의 팝업북, 23권 세트인 <피터 래빗 그림책 시리즈>!!!
17. e-book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e-book이 종이책을 밀어낼 것이라고 보는가?
그런 경우가 아닐까. 라디오와 TV가 공존할 수 있는, 영화관과 홈시어터 세트가 공존할 수 있는. 호환과 공유, 나름의 장르적 특성에 따른 다양한 접근도가 생길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다. 여하튼, 양 극단에서 하나를 고르는 일은 나에게 어렵다. 어찌 밀어낼 수 있겠는가. 그래도, 책은 종이책이 책 아니겠는가, 싶다.
18. 책을 읽는 데 있어서 원칙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원칙? 글세, 나에게 그런 건 없다. 읽다가 중간에 흥미를 잃으면 언제든지 그 자리에서 STOP이다. 그건 작가의 재능으로 돌리면 쉬운 문제니까. 때론, 의무적으로 읽어야 할 책이 있는데, 그럴 때의 원칙이란, 역시 흥미로운 제목을 가진 것부터 읽어간다는 것이다. 물론, 중장편의 경우는 여기에서 제외되겠지만.
따지면 그 원칙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음, 굳이굳이 찾아본다면 작가 정보(주로 나이를 확인하는가보다)를 읽고, 작가의 말을 읽고나서 본문을 읽는 순서 정도?
19. 이 질문답은 왜 하게 되었나? ㅡ 이 질문은 원 페이퍼는 없는, kimji가 추가한 질문입니다.
18개의 문항을 읽어가면서, 나에게도 스타일이 있는가,를 고심하게 되었다. 내가 책 읽는 스타일, 책을 고르는 스타일, 책을 바라보는 스타일 같은 것.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뚜렷한 무엇이 있다. 문학서를 편독한다든지, 편애하는 작가는 사정없이 오래 사랑하지만 한 번 미움 받은 작가는 거들떠도 안 본다든지 하는 것.(그런데 그런 것이 어디 스타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그러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해보면 답이 없기는 하다)
올 해 내가 읽는 책은 사실 몇 권 안 된다. 내가 사 들인 책보다 읽은 책이 적으니, 문제는 문제다. 게으름을 운운하고 스스로를 질책하는 일도 이제는 식상하다.
올 해는 이제 저물어가고, 읽을 책, 읽어야 할 책은 어제도, 오늘도, 심지어 내일도 펑펑 쏟아질 것이다. 하루 24시간은 너무 짧고, 하루 24시간이 긴 날은 책 따위는 안 읽히니, 이런 읊조림을 하는 시간을 통해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던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