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倒敍)추리란, 범인 쪽에서 주도면밀한 범죄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을 그린 뒤, 완벽하게 여겨졌던 범행이 뜻밖의 헛점으로 인해 폭로되는 과정을 그리는 형식을 말한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은 범인이 누구이며 범행 방법은 무엇인가가 문제가 되지만, 이 형식에서는 그러한 점를 먼저 밝힌 뒤 그 과정에서 범죄자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하여 독자에게 긴장감을 제공한다.
도치서술형(倒置敍述形),흔히 도서추리라고도 한다.
살인자의 눈으로
1.
퍼즐 미스터리는 수학적인 문학입니다. 순수한 퍼즐 미스터리는 수학의 방정식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지요. 진정한 퍼즐 미스터리의 독자는 생각없이 페이지를 넘기면서 작가가 만들어놓은 복잡한 미스터리에 그냥 빠지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지정한 이 가상의 독자는 노트와 연필을 들어 틈틈히 알리바이 도표를 만들고 동기를 찾고 거짓말을 추리해냅니다. 소설이 진상을 향해 접근하면 할수록 독자의 노트북도 그만큼이나 빽빽해집니다. 추리 문학은 진정한 인터액티브 문학입니다. 그러기 위해 컴퓨터나 하이퍼 텍스트의 도움도 필요 없죠.
그러나 퍼즐 미스터리는 곧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공식적인 플롯의 끝도 없는 반복이었습니다. 모든 퍼즐 미스터리는 누가 썼건 대부분 다음과 같은 공식을 따릅니다. (1) 범죄가 일어난다(장편의 경우 보통 살인이죠.) (2) 명탐정이 등장하고 증거들이 제시된다. (3) 모든 증거들이 제시되면 탐정은 용의자들이 잔뜩 모인 곳에서 추리 과정을 설명한 뒤 범인을 지목한다.
애당초부터 공식으로 시작한 문학이 공식적인 플롯을 반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불만은 남습니다. 이 다양성의 부족을 어떻게 해결할 수는 없을까요?
최초의 중요한 반항은 1912년에 일어났습니다. 일을 저지른 사람은 의사 출신의 추리 작가인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Richard Austin Freeman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과학자 탐정인 손다이크 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일련의 추리소설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는 터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노래하는 백골 The Singing Bone]이라는 단편집으로 이 작은 장르에 도전을 했던 것입니다.
이 단편집의 첫 작품인 [오스카 브로드스키 사건]을 보죠. 이 단편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번째 부분에서는 사일러스 히클러라는 범죄자가 오스카 브로드스키라는 보석상인을 살해하고 보석을 강탈합니다. 두번째 부분에서는 우리의 손다이크 박사가 등장해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해 범행 과정을 밝혀냅니다.
프리먼은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했을까요? 범인을 감추는 게 가장 중요한 목적인 추리 소설에서 범인을 미리 밝히면 도대체 독자들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러나 프리먼의 도전은 보기보다는 온화했습니다. 그는 공식을 때려부수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다른 종류의 퍼즐 미스터리를 만들었을 뿐이죠. 미스터리는 아직도 남아 있었습니다. 단지 질문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문제는 범인이 누구냐가 아니라, 범인이 어떻게 잡히느냐였습니다.
[오스카 브로드스키 사건]은 그런 면에서 아주 충실합니다. 범행 과정이 냉정하게 서술되는 동안 프리먼은 힝클러의 정체를 밝힐만한 증거들을 하나씩 하나씩 떨어뜨립니다. 물론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손다이크의 방식은 지극히 과학적이고 전문적이어서 일반 독자들한테까지 아주 공평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공평함의 모양은 잡힌 셈이죠.
그러나 프리먼의 새로운 공식은 그렇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만들기가 훨씬 어렵다는 것입니다. 크리스티의 소설들을 보세요. 포와로나 미스 마플은 언제나 범인을 밝혀내지만 늘 증거까지 찾아 내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너무나도 많은 사건에서 함정과 자백과 협박과 자살에 의지합니다. 심지어 프리먼 자신도 이 공식으로 성공적인 작품을 양산하지 못했습니다. [노래하는 백골]에 수록된 다섯 작품들 중 그의 새 공식(우린 이를 도서추리소설 inverted mystery이라고 부릅니다)을 적용한 작품은 겨우 세 편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순수한 퍼즐 미스터리로 기능하는 도서추리소설 장편은 별로 없습니다. 단편에서는 꽤 많이 사용되고 [콜롬보]나 [바나비 존스]와 같은 텔레비전 시리즈들이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요.
2.
창조물은 창조자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창조자 프리먼은 퍼즐 미스터리의 변형을 만들었을 뿐이지만, 도서추리소설은 점점 엉뚱한 분야로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프리먼의 후배들은 이 장르가 가지고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도서추리소설로 흥미진진한 퍼즐 미스터리를 만드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하지만 도서추리소설로 흥미진진한 '문학 작품'을 만드는 건 비교적 쉽고 결과도 좋습니다.
이제 도서추리소설은 '범인이 어떻게 잡히느냐'는 목적에서 벗어났습니다. 중요한 것은 범인의 심리를 어떻게 기술하느냐였습니다. 프랜시스 아일즈 Francis Iles (제가 별로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는 [살의 Malice Aforethought]에서 살인범 비클리 박사가 어떻게 잡히느냐 따위는 관심도 없습니다. 그는 비클리 박사의 범죄 과정을 쫓으며 사디스틱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 뒤로 수많은 작가들이 등장합니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Patricia Highsmith나 루스 랜델 Ruth Randell과 같은 작가들은 이 무시무시한 장르로 사람들을 얼어붙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궁금해집니다. 과연 이것이 추리 소설인가요? 이건 그냥 정통 문학 작품이 아닌가요? 루스 랜델의 [A Dark-Adapted Eye]는 정말 훌륭한 소설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추리소설이라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도 추리소설입니다 (물론 정말 도스토예프스키가 추리작가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게까지 생각해야할까요?)
3.
퍼즐 미스터리가 이제 죽은 장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지금도 앤 페리 Anne Perry, P.D. 제임스 P.D. James, 그리고 아까 언급한 루스 랜델과 같은 작가들이 훌륭한 퍼즐 미스터리들을 쓰고 있습니다. 적어도 영국에서 퍼즐 미스터리는 여전히 훌륭하게 살아 있는 장르입니다.
챈들러와 해미트의 영향 아래 터프 가이들과 폭력, 섹스가 부글거리는 듯한 미국 추리 소설계에서도 여전히 퍼즐 미스터리는 쓰여지고 있습니다. 단지 그런 소설들이 주류로 옮겨가는 건 좀 힘든 모양이지만요.
그러나 그런 소설들도 전성기의 퍼즐 미스터리의 순수함은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 루스 랜델의 웩스포드 경감 시리즈는 퍼즐 미스터리의 모양을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미스터리만큼이나 캐릭터와 심리 묘사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습니다. 미스터리도 예전에 크리스티가 썼던 복잡하고 인공적인 추리 게임과는 거리가 먼, 비교적 자연스러운 것들입니다.
모두 훌륭한 소설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뭔가를 잃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퍼즐 미스터리의 가치는 도서추리소설들이 제시한 '문학성'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 장르의 진정한 가치는 현실성보다는 비현실성과 철학성에 있었습니다.
퍼즐 미스터리가 진정한 '문학'으로 가야했다면 이 장르는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을 따라가야했습니다. 추리 소설이 겉으로 드러난 '문학성'과 '오락성'을 따라가는 동안 우리는 문학 사상 가장 흥미로운 장르를 잃어버렸습니다. (99/11/16)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