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서 잘못 얘기하면 칼맞을 소리지만, 난 나름대로 부르조아 쪽에 속하는 사람이다.
옷을 사건 가방을 사건 나의 첫번째 기준은 '싼 티' 나지 않는 것. 싸구려 사서 한 철 쓰고 마느니 다소 과하더라도 이름값 하는 거 사서 쓰는게 경제적이고 '서른'이라는 나이에도 맞는다고 생각한다.
또, 한 끼를 먹어도 제대로 된 걸 먹는 게 좋고, 또 이왕 먹을 바에는 고급스런 곳에 가서 분위기 내면 금상첨화라고도 생각한다.

물론, 내가 말한 '제대로'와 '과하더라도'는 지극이 상대적인 것이므로 누구 눈에는 엄청나 보일 수도 있고 또 누구 눈에는 그게 바로 싸구려일 수도 있다.

이렇게 우리가 용인할 수 있는 '빈부의 차이'란 그런 것이다. 나랑 비교 가능한 범위 안에서 부럽기도 하고 시샘도 나고, 내가 얼마동안 어떻게 모으면 되겠다는 계산도 할 수 있는 정도.

하지만 누가 봐도 엄청나고, 아무리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도 내 살아생전엔 다다를 수 없는 어마어마한 '부' 앞에서는 달라진다. 일단 동그라미 숫자를 세다가 맥이 탁 풀리고, 그게 지가 노력한 것도 아닌 거저 얻은 거라면 속이 확 뒤집히며, 게다가 뒷구녕 구린 짓으로 만들어진 거라면 살기조차 싫어진다.

평생 열심히 공부하고 빡세게 일하고 꼬박꼬박 세금 내고...
남들을 위해는 못 살아도, 엄한 사람에게 피해는 안 주려 착하게 살려하고...
비록 국사책에 이름은 못 올려도, 외국 어디에 내다놔도 '우리는 한국인'이라며 태극기 휘날리는 평범한 우리들에게 그들은 일명 '공공의 적'이라 불리운다.
그에 대한 통쾌한(?) 복수극이 강우석, 설경구에 의해 또한번 만들어졌다.

영화에서도 나왔지만 단지 '부자'라서 '공공의 적'은 절대 아니다.
착한 부자들까지 욕먹이는 지독히 못된 부자들과 그 부자의 옆구리를 찔러 부스러기(혹은 큰 건더기까지) 얻어먹는 높으신 분들을 말한다.

전편에서 '공공의 적'이라 하기엔 하는 짓이 너무 개인적이었던(지 부모 죽이고 지 부모 돈 가로채는 건 절대악이긴 하나 '共'자를 붙이기엔 생뚱맞은 경향이 없지 않았다) 것에 비해 2편의 적은 확실하다 못해 200% 진화된 인간이다.

'천한 것들' '버러지같은 인생' 등등 '세바스찬'이나 하는 말을 서슴치 않고 내뱉으며, '미국 시민권자'라는 견고한 방패 뒤에 숨어 세상에 돈으로 또, 돈이라면 못할 짓이라곤 없는 진짜 나쁜놈을 처치하기 위해 우리의 검사 '강철중'이 나서고, 마침내 절단낸다.

영화 자체는 너무나 강우석적이라 솔직히 식상한 감이 없지 않다. 투캅스에서부터 익히 많이 봐온 얘기들... 오죽하면 강우석 영화 몇 편에 조폭세계며 검,경찰 동네 얘기를 취재 없이도 쓸 수 있을 것 같을까...

전편보다 커진 스케일도, 그가 투캅스 원에서 투로 넘어가면서 했던 것과 별다르지 않고 스토리 면에서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구성이다. 안이사의 배신으로 궁지에 빠지는 것이나, 자기 때문에 아끼는 부하가 죽어 눈이 뒤집히는 것이나, 결정적인 순간 모든 것을 내던지고 몸으로 부딪치는 것이나...
너무나 패턴을 따라가 살짝 재미없어지는 것을 특유의 유머로 덮는 것까지도 익숙하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영화는 재밌고 나름대로 카타르시스까지 느꼈다는 것이다. 수십명, 어떤 건 수백명의 사람들이 피땀 흘려 만든 영화 보고 되지 않는 딴지 걸기가 특기인 내가 위에 열거한 딴지에도 불구하고 평균점 이상의 점수를 준 이유는 제목 '공공의 적'에 충실한 캐릭터 때문이다.

그가 나온 양복 선전같이 깔끔하고 젠틀한 이미지의 '정준호'의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정말 못돼 보이는 눈빛과 진짜 재수없는 입매며 말투 등 모든 게 제대로 나쁜놈을 보여준다. 전편에서 이성재의 난데없는 자위씬처럼 어색하거나 생뚱맞은 설정 없이도 정말 '그 놈'같다.

그리고 또 하나,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예사롭지 않은 대사, 잘 써진 시나리오의 3박자에 마지막으로 이 하나가 더해진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관객들의 공감.

정준호, 박근형같은 놈들이 판치는 대한민국의 착한 국민들에게 이 영화는 영화 밖 세상과 다름 아니다.
영화 속 결말이 실제이길 바라는, 저런 나쁜 놈들 싹 쓸어버렸음 좋겠다는, 강철중 말대로 20년 후에는 '하이'라고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나라이길 바라는 마음이 영화관을 나서며 만족감을 주는 게 아닐까?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우리의 바램은 그저 환타지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안다. 결국 남는 것은 씁쓸함과 허무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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