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이 허공이라는 것은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는 뜻이오. 틈의 시간은 둥근 원이오. 세상의 질서는 직선의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소. 직선의 시간 속에서는 모든 것이 분리됨으로써 존재하오. 나는 너와 분리됨으로써 존재하고, 나비는 사람과 분리됨으로써 존재하오. 삶 역시 죽음과 분리됨으로써 존재하고 있소. 난 오랫동안 틈을 몰랐소. 세상이 틈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더 많은 업적,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직선으로 치닫는 세상의 눈에 틈이란 쓸모가 없는 공간, 해악의 공간일 뿐이오. 그러나 둥근 시간은 부드러운 융화의 세계이오. 그 속에서는 너와 내가 융합되어 있소. 사람과 나비가 융화되어 있으며, 삶과 죽음이 융화되어 있소. <깊은 강 中>
"나에게 20대는 뭐라고 할까, 절대와 완전에 대한 과대망상적 집착으로 점철된 시절이었다고나 할까. 정신이 가지고 있는 힘의 한계를 몰랐던 시절이었지. 어떤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고 싶었고, 무엇이나 다 되어보고 싶었고, 온갖 것을 다 사랑하고 싶었으니까. 그러니까 삶의 모습은 언제나 날아오르는 자세였지"
"나에게 30대란 치욕의 시간이었어. 힘의 한계를 깨달을 수 밖에 없는 시간. 온갖 가능성 대신 한 가지 확실한 것을 선택해야 하는 시간, 날아오르는 자세에서 발을 땅에 내려놓아야 하는 시간이 30대라고 생각했으니까...그런 나의 모습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어. 환상은 언제나 강한 법이니까. 환상을 만든 존재보다. 그래서 일기장과 수첩, 비망록을 소각하기 시작했던 거야." <베니스에서 죽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