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나는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왔다. 즉, 열정과 확신, 자기 내면의 이념들에 의해서 말이다. 라슬로 코바취를 알게 된 후, 나는 우리를 격려하는 것은 열정이 아니라 바로 열정이라는 관용어이며, 우리의 행동을 추동하는 힘도 순수한 의지가 아니라 의지에 대한 상투어들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상투어들에 대한 경험이 진짜 경험인 것처럼 인식되어 우리가 언어의 보호 아래 둥지를 틀 수 있게 되면, 마침내 가상에 불과한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124p>

 

하지만 좀더 가까이 다가가면 아스베이크가 이 죄없는 찻주전자를 어떻게 일종의 고문도구처럼 변형시켰는지 알게 된다. 주전자의 부리는 활짝 열려있는 주둥이가 아니라 고통스럽게 맞붙어 있는 입술 한 쌍으로 변해 있고, 뚜껑은 두툼한 아교 덩어리로 주전자에 고정되어 있다. 안에 든 내용물을 끄집어낼 수 있는 유일한 구멍은 손잡이 바로 위에 있는, 비틀어진 모양의 조그만 귀때 뿐이다. 얼핏 부드러운 장밋빛 줄무늬처럼 보이는 건 좀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여러번 반복되고 있는 문장이다.

"걱정하지 마라. 그대. 안으로 들어간 것은 밖으로 나올 수도 있다"  <209p>

 

때때로 저는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그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시간에 제자리를 지키며 각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지, 그리고 어떻게 각자의 인생이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지를 말입니다. 각자의 인생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만나는 교차점이니까요. 이러한 교차점이 없는 인간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인간일 겁니다. 그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은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것과도 관련이 없을 테니까요. 그저 가치를 상실한 채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사건, 차라리 일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풀어진 실타래처럼 무의미한 사건에 불과할 뿐입니다. 자기 자신의 인생을 가진 사람만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삶속에서 하나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 순간의 그 무수한 다양함 속에서도 역사의 일관성을 알아차릴 수 있지요. 그런 인간만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253~25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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