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기대없이 친구 쫓아 갔다가 제대로 건진 영화!
웬만한 영화는 이미 다 본 상태에서 남은 것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이것 뿐. 이왕이면 끝까지 눈뜨고 볼 수 있는 영화를 보자는 생각에 표를 끊고 들어갔다. (난 태극기 휘날리며도 반은 보지 못할 정도로 피에 약하다.)
박신양을 죽어라 좋아하는 친구가 극도로 싫어하는 나를 설득한 무기는 '제대로 사기에 성공하고', '반전이 끝내주며', '시나리오가 죽인다'였다. 한국판 '오션스 일레븐'이라나 뭐라나...
친구가 암만 침튀어가며 '재밌댄다'를 세뇌시켰지만 애초에 게임에 안되는 영화 아닌가!
브레드 피트와 맷데이먼에 대적하기엔 박신양과 백윤식은 포장지부터가 땟갈이 안나는 것이 이 영화 역시 조연의 살신성인 슬래스틱 액션과 욕지거리에 의존하는 그렇구 그런 코미디겠거니 가벼웁게 팝콘 한봉지 사들고 앉았건만...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제목 그래도 '재구성'의 묘미와 관객의 욕구를 완벽히 충족시키주는 깔끔한 결말까지 2시간여의 시간을 제대로 엮어냈다.
초반부터 시선을 확 붙잡아놓는 자동차 추격신.
물론 매트릭스2의 고속도로씬에 비교하면 새발의 피도 안되지만, 그 나라의 한 귀퉁이 크기밖에 안되는 대한민국에서 찍었다고 생각하면 거의 기적과도 같은 장면이다. 엄한 차 몇십대는 폐차장으로 갔겠지만, 천하의 '사이더스'인데 까짓거...
제대로 물오른 박신양과 백윤식의 기싸움도 볼만하고, 이문식, 박원상같은 배우들의 뒷받침도 영화를 살려준다. 고양이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염정아도 딱 그 캐릭터다 싶고... 어쩌면 저리도 자연스러울까 싶은 천호진 아저씨는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처럼 우직하지만 정직한 강력반 형사로 관객과 같은 속도로 극을 풀어가면서 정보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사건과 시간을 이리저리 얽혀놓은 구성과 편집 솜씨는 관객의 긴장과 추리를 끝까지 유도하면서 다소 뻔할 수 있는 스토리를 색다르게 보여준다.
속사포같이 쏟아내는 그네들 특유의 용어들을 알아듣기가 버겁다는 것과 군더더기같은 에피소드가 아쉽기는 했지만, 이만큼 잘만든 범죄영화는 몇년간 보기 힘들 것 같다. (이것도 자카르타 이후 몇년만이던가..)
'록스탁 앤 스모킹 배럴스'나 '유주얼 서스펙트'같은 영화에 필꽂힌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이다.
수습책으로 한마디 더!!
결국 사기친 돈 50억에 보험료 5억원이 죄다 박신양의 손에 들어갔다는 꿈만 같을 결말이긴 한데,
따지고보면 한국은행이 모방범죄를 우려할만큼 완벽한 범죄트릭은 아니다.
그냥 지들끼리 먹고 먹히고, 속고 속이는 와중에 돈이 얌전히 서가 뒤쪽에 들어앉아있다는 것이지 실제로 만원짜리 한장만 써도 바로 쇠고랑 찼을거다.
얼마전에 우리 은행 횡령범들도 중국에서 지지리 궁상으로 살고 있다지 않은가.
행여 따라해볼까 머리 굴리는 애들과 철없는 어른들 그리고 혹시 따라할까 싶어 노심초사하는 한국은행 비롯 가진자들, 영화는 영화일뿐 따라하지도 시비걸지도 말자!!
영화 한편을 보는데 200칼로리의 열량이 소모된다고 하던데, 이 영화는 그 이상의 에너지 소모를 요하는 것 같다. 밥먹고 보기 잘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