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읽기는 다소 편향되어 편이다. 소설, 특히 한국 소설 그 중에서도 90년대 이후의 젊은 작가의 단편소설을 주로 읽는다. 우선 짧아서 좋고, 외국소설을 읽을 때의 낯설음(특히 이름 외우기에서 난 두 손을 들어버린다. 특히 그 놈이 그 놈 같은 러시아 이름은 죽음이다. ^^;;)이나 번역체의 어색함이 없어서 좋다. 그래서 웬만한 한국 작가의 이름은 10대 아이들이 서너명 이상 되는 댄스그룹의 멤버들 이름을 줄줄이 꿰듯이 알고 있을만큼 많은 소설을 읽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언젠가부터는 작품과 작가의 줄긋기가 안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내 기억력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이 얘기가 그 얘기 같고, 이 작가가 저 작가 같이 비슷비슷한 작품과 작가가 많다는 것이기도 하다. 독신의 어딘가 하나씩은 결핍된 비교적 커리어우먼이라 불리는 여주인공의 심심한 내면 따라가기나 사회부적응자들의 지지리 궁상맞은 세상살기 내지는 불륜과 왜곡된 성에 탐닉하는 비틀린 사랑... 대충 그렇고 그런 얘기들... 그 와중에 너무나 다른 작가의 다른 작품을 접하고 반가움에 대번에 기억해낸 이름이 바로 천운영이라는 작가이다. 무슨 문예상 수상집에 실린 '눈보라콘'을 읽고 굉장히 섬세한 남자작가라고 생각을 하다, 신춘문예당선집에서 읽은 '바늘'로 이 이름도 범상치 않은 작가에게 빠지게 되었다. 천운영의 작품은 예쁘지가 않다. 오히려 너무나 거칠고 섬짓하기까지 하다. 그녀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추한 외모와 거친 성격에 험한 직업을 가진 사회에서 조금은 소외된 사람들이다. 게다가 하나같이들 식성 또한 특이해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남의 살을 우걱우걱 씹어먹는 맹수가 연상된다. 그녀의 이야기 솜씨란 너무 생생하고 거침없어 읽는 내내 쫓기듯 불편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단지 이런 외면적인 특징 그 자체만이었다면 여자 같지 않은 여자 작가라는 다소 편견섞인 느낌뿐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결국 중심을 지나가는 작가의 시선은 여성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표제작 '바늘'의 마지막 구절처럼 가장 앏으면서 가장 가장 강한 무기 '바늘'처럼 섬세하지만 예리한 여성의 시각으로 보는 남다른 세상읽기가 천운영이라는 작가의 다름, 특별함인 것 같다. 이제 난 천운영이라는 작가의 다음 행보를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바늘'의 다름을 답습한다면 또다시 실망하게 될 것 같다. 솔직히 9편의 단편의 하나같음에도 이미 조금은 질린 상태이다. 가슴에 품은 바늘 끝에 날은 세우되 이제 다른 곳의 다른 얘기를 풀어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