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스로를 낮추고 자기 자신을 우습게 만드는 사람을 결코 싫어하지 않는다(그게 도가 지나쳐 보는 사람까지 민망하게 만들 지라도). 그런데 이번 책은 본인의 지적 능력을 능멸하는 것인지 독자의 수준을 능멸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이다. 꼭 진지해지는 걸 무서워하는 사람처럼 좋은 부분도 희안한 드립으로 날려버리고, 본디 복잡하고 어려워야 마땅한 것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독자는 감당할 수 있는 인생의 허무를 저자 본인이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157) 지나친 여가는 인간을 공허하고, 무료하고, 빈둥거리고 낭비하게끔 만든다. 노동을 없애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노동의 질을 바꾸는 것이 구원이다. 일로부터 벗어나야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을 즐길 수 있어야 구원이 있다. 공부하는 삶이 괴로운가? 공부를 안 하는 게 구원이 아니라, 재미있는 공부를 하는 게 구원이다.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게 괴로운가? 사람을 안 만나는 게 구원이 아니라, 재미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