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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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었던 최은영 작가의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고 어쩐지 그녀의 소설을 더 파보고 싶어 이번에는 등단 작품을 만나보았다. <쇼코의 미소>라는 책으로, 7편의 단편이 수록된 작품이다.


이 책을 살펴보면, 앞서 읽었던 책과 전반적인 결이 비슷한 느낌인데, 극을 이끌어 가는 화자 역시 모두 여성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견해지만, 하나의 이야기에 담겨있는 상징 혹은 의미가 단순하지 않아,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많다고 본다.


특히 등장인물의 감정 상태나 상황별 묘사에 있어 읽는 사람의 경험, 지식, 상황, 전후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최은영의 소설은 참 기묘하고도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읽는 것보다 '쓰는 일'이 더 까다롭게 느껴진다. 어떤 부분에 포인트를 두고 써야 할지, 각 소설 속 인물들의 상황이나 감정 상태에 대해 나는 어떤 느낌을 받았고 또 이것에 대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수없이 고민하고 또 생각하며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소설을 자꾸 찾게 되는 건, 이야기 속에 녹아든 그녀들의 삶이 비단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또 그녀가 그리는 인물과 상황의 정밀함과 세밀함이 더 깊이 파고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총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공감과 유대에 포커스를 맞춘 이야기들로 화자가 모두 여성이다. 그래서인지 딱딱하고 강압적인 느낌보다 포용력과 유대감, 공감적 느낌이 강하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우울하고 슬프지만, 그럼에도 연대하고 공감하는 누군가가 등장해 끝까지 끈을 놓지 않는 열성을 보여줌으로써 끈끈한 우정과 친밀감이 돋보인다.


이 역시 여성-여성의 조합인데, 강하지만 누구를 해치지 않는 힘, 좌절 속에서 꺼내주는 힘 덕분에 이들이 오늘을 살아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은 순간,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이 소설들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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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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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를 비롯한 세 명의 여학생이 지방 소읍의 한 고등학교로 견학을 오게 되면서 쇼코는 소유와 만남을 가지게 된다. 같은 나이, 같은 반인 것은 물론, 담임의 부탁으로 일주일간 소유의 집에 머물게 되면서 둘은 사적으로도 꽤 가까워지게 된다.


둘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없다는 점 그리고 조부와 함께 산다는 점이었다. 그래서인지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도 둘은 영어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주 소식을 전하게 된다. 이때 쇼코는 동시에 소유의 할아버지와도 일본어로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그러다 고교 졸업 직후인 3월 쇼코의 편지가 끊기게 되고 이때쯤 소유는 새내기 생활에 푹 빠져 잠시 쇼코를 잊고 지낸다. 그러다 캐나다에 교환학생으로 가게 되고, 유학 생활이 끝나갈 무렵 뉴욕에서 마지막 여행을 즐기던 중 우연히 쇼코와 함께 견학을 왔던 일본 여학생 중 한 명을 만나게 된다.


이때 쇼코의 소식을 간략히 듣게 되는데 원하던 도쿄에 있는 와세다 대학에 합격했으나 가지 못하고 대신 도읍에 있는 물리치료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여기에는 할아버지의 건강 문제와 경제적 사정이 있었음을 듣게 되면서 소유는 자신의 이메일 주소 등을 전달해 달라 요청하지만, 끝내 쇼코로부터 연락이 닿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대학교 사학년 여름, 소유는 쇼코의 집을 직접 찾아가 보기로 하고 편지를 주고받던 주소지로 향한다. 거기에서 쇼코의 할아버지를 처음으로 대면하게 되고, 쇼코를 만나러 왔다고 말하지만 어쩐지 쇼코는 할아버지가 집을 벗어나서야 방문을 열고 나타난다.


오랜만의 만남에 쇼코는 그리웠다 말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어쩐지 소유는 잘못 찾아왔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스케치북에 그린 알 수 없는 그림과 읽어주는 글자들은 섬뜩하게 느껴지고, 여기에 더해 그녀의 스킨십에는 소름이 돋는다.


그런 상황 때문인지, 소유는 자신도 모르게 선을 넘는 말을 내뱉고 난 후 이내 도망치듯 그곳을 벗어나 한국으로 돌아온다. 이후 소유는 자신의 꿈을 좇아 영화감독이 되려고 시나리오도 써보고 스태프로 참여하기도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비를 흠뻑 맞은 할아버지가 자신의 자취방을 찾아오게 된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쇼코의 편지를 내밀고는 이내 자취방을 떠나게 되는데, 이후 엄마로부터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그저 무뚝뚝하기만 했던 할아버지가 마음에 쓰였던 소유는 그 길로 본가로 내려가게 되고, 그곳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정을 듣게 된다.


할아버지와 소유, 엄마는 안방에서 함께 자면서 평소 못다 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서로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말들도 용기를 내서 주고받게 된다. 덕분에 마음의 앙금도 풀게 된다.


덕분에 할아버지가 무뚝뚝했던 이유가 부끄러워서였음도 알게 되고, 엄마도 용서하게 되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관계가 좋아진다.


할아버지는 그런 시간을 보내다 예순다섯 밤을 더 보내고 영면하셨고, 쇼코는 그런 할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오게 된다.


쇼코는 그동안 할아버지와 일본어로 주고받았던 편지를 건네며 위로를 전한다. 더불어 일본어로 쓰인 편지 내용을 영어로 해석해 주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소유는 할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또 쇼코는 그동안 밝히지 못했던 자신의 사정을 전하며, 사실은 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으며, 자신의 할아버지 역시 돌아가셨음을 알린다. 더불어 일본으로 찾아왔을 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하며 용서를 구한다.


이렇게 세 번째 만남이 마무리된 후 쇼코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고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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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스토리를 보면, 조부에 대한 사랑과 도플갱어 같은 두 소녀의 성장담에 대해 그리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 더 크게 부각되는 부분으로 인해 이런 스토리는 뒷전으로 밀리는 느낌이다.


어쩐지 순수하게 보이지 않는 쇼코의 미소와 단순히 우울증으로 보기에는 괴기스럽게 보였던 이중적인 행동, 여기에 더해 묘하게 다가왔던 쇼코의 스킨십이 소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만든다.


두 여학생은 나름의 방식대로 조부와 유대를 맺고 살았다. 겉으로 보기에 부정적으로 보일지언정 결론적으로는 끈끈함 유대감에서 비롯되었음을 우리는 결론을 통해 알 수 있다.


각각의 모양새로 보면 쇼코와 소유의 모습은 닮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쇼코의 모습은 이중적이다.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거짓말과 위선으로 무장한 채 마치 불결한 무엇처럼 이야기하지만, 소유의 할아버지에게만큼은 빠뜨리지 않고 편지를 할 만큼 상냥한 모습을 보인다.


또 동시에 같은 분량의 편지를 영어와 일본어로 써서 각각 보내지만, 담긴 내용은 완전히 정반대다. 소유에게는 부정적인 내용을, 할아버지에게는 긍정의 내용을 담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쇼코의 미소는 어딘가 모르게 서늘하게 다가온다. 진짜 웃음이 아닌, 거짓 웃음 속에 감춰진 쇼코의 미소가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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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아주 상냥하게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처음 교실에서 쇼코가 수줍어하는 표정을 봤을 때처럼 나는 쇼코의 웃음에서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쇼코는 정말 우스워서 웃는 게 아니라, 공감을 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니라, 그냥 상대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포즈를 취하는 것 같았다.

11~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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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장으로 들어가던 쇼코의 모습을 기억한다. 보딩패스를 내밀고 자동 유리문안으로 들어가는 쇼코의 얼굴. 그때 쇼코는 그 예의 바른 웃음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음이, 어린 시절 쇼코의 미소를 보았을 때처럼 서늘해졌다.

6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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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대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쇼코의 모습 또한 남다르게 다가온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처음 쇼코와 만남을 가졌을 때부터 쇼코는 우울증 증상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내 점점 더 심해져 우울증 약을 먹고 꽤 힘든 날을 보냈다고 토로한다.


그런데 쇼코가 보이는 증상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철저히 계획한 거짓의 탈을 쓴 사람처럼 보인다. 이상한 그림을 그리고 글자를 쓰며 중얼거리는 모습은 괴기스럽고, 완전히 이중적 면모를 보이는 모습에서는 섬뜩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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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넌 영화 만드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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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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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자신을 컨트롤하기도 급급한 상황에 힘주어 타인의 미래를 지지하고 응원할 여유가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글쎄'라는 답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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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에게 나는 종교이고, 하나뿐인 세계야.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죽어버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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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는 할아버지가 자기를 마치 여자친구처럼 생각하는 게 소름 끼친다고,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도쿄로 떠나서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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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자신을 돌봐주는 할아버지에 대해 욕을 하고, 이상한 사람처럼 변모시켜 어떤 의미에서는 성추행을 당하는 것과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것에서 '위험'이 감지된다.



소유가 연락이 끊긴 쇼코를 만나러 일본에 갔을 때 마주한 쇼코의 모습은 어떤 의미로 쇼킹했다. 그리고 우울증 증상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이질감이 크게 느껴진다. 후에 이때의 행동에 대해 쇼코는 약물로 인해 기억이 흐릿했다고 전하는데, 이게 과연 약물로 인해 벌일 수 있는 행동일까 의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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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네가 여기에 있어서 기뻐."

쇼코는 두 손으로 마루를 짚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

쇼코의 원피스가 마루에 쓸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노인들 특유의 이상한 외로움을 쇼코에게서 느꼈다.

(...)

쇼코는 노인이었다.

쇼코는 내 팔에 팔짱을 꼈다. 차갑고 부드러운 쇼코의 팔이 뜨겁고 축축한 내 팔에 닿았다. 소름이 끼쳤다.

(...)

"여기서 나랑 지내자. 한국에 가지 말고 여기서 나랑 같이 살자."

쇼코는 마치 그게 가능한 일이라는 듯이 발랄하게 말했다. 나는 다시는 쇼코를 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

어디로 떠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그렇게 박혀버린 삶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의 맨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은 유쾌하지 않았다.

2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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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쇼코가 처음 경험한 팔짱은 또래 여자아이들끼리 하는 우정의 스킨십이었다. 이때 처음 팔짱을 껴본 쇼코는 화들짝 놀라지만, 이내 학교에서 동성끼리 흔하게 하는 모습을 보고 안심한다.


이후 일본에서 오랜만에 마주한 소유를 보고 쇼코는 담백함이 사라진 유혹의 손길을 건넨다. 외로움에 젖어든 모습으로 뜨겁고 축축한 스킨십을 건넨다. 쇼코는 한국에 가지 말고 함께 살자며 소유를 유혹한다.


이 모습을 본 쇼코의 할아버지의 표정 또한 굳는다.


<쇼코의 모습>이 담고 있는 큰 줄거리는 분명 가족, 연대, 화해, 회복 같은 키워드처럼 보인다. 그런데 쇼코의 모습에서(미소, 이중적 행동, 우울 증상 등)으로 인해 이 모든 것들은 어느새 지워지고 남는 것은 섬뜩한 쇼코의 모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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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짜오, 씬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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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 때문인지, 한국에서 독일로, 독일에서 다시 한국으로, 또다시 일 년 만에 한국에서 독일 플라우엔에서 살게 된 우리 가족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실질적인 도움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었던 가족이 바로 호아저씨네 가족으로, 호아저씨는 아버지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였다.


나는 호아저씨네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을 꽤 좋아했는데, 일단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이 가족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고,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부모님이 호아저씨에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그나마 눈을 마주치며 짧은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같은 나이, 같은 반이었던 투이와 함께 즐겁게 놀 수 있어 여러모로 좋았다.


응웬 아줌마는 두 살짜리 동생을 돌보며 고립된 생활을 하던 엄마와 종종 말동무도 해주고,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은 척척 도움을 주며 둘도 없는 사이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하는 자리에서 나의 말실수로 인해 베트남 전쟁에 대한 내용이 거론되었고, 이로 인해 두 가족의 사이가 완전히 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저 어린 마음에 칭찬받고 싶어 멋모르고 내질러 버린 나의 말로 인해, 가족 모두가 죽어나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응웬 아줌마의 상처가 들쑤셔졌고, 아버지의 아픈 가족사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그렇게 두 가족이 다시 한자리에 만나는 일은 없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다른 입장, 각자의 아픔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을 감히 우리가 이해한다 말할 수 있을까? 그저 미안함 마음만 건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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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한 사람은 일가족 모두를 잃었고, 또 다른 사람은 소중한 형을 잃었다.


직접적인 피해를 겪은 것은 물론, 가해국의 국민임에도 엄마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응웬 아줌마가 엄마는 그저 고맙고 또 한편으로는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베트남 전쟁에 용병으로 출전하여 목숨을 잃은 형이 있어 미안한 마음 한편에는 억울한 마음도 자리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마음에 꼭꼭 숨겨둔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접어두고 서로를 의지하며 둘도 없는 사이로 지낸다. 그러다 결국 한순간에 모든 것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펑 하고 터져버린다.


그 이후로 이 두 가족이 다시 마주하는 일은 없게 된다. 우리 가족이 다시 한국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엄마는 떠나기 전 이들 가족을 위해 부지런히 뜨개질을 했고, 이것을 전해달라며 나에게 건넨다.


이들을 만난 나는 투이와 응웬 아줌마에게 마지막 선물을 건네며 다정하지만 슬픈 작별의 인사를 건넨다.


'씬짜오, 씬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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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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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할머니의 일을 돕기 위해 순애 이모가 서울로 오게 되면서 엄마와 인연을 맺게 된다. 순애 이모는 당시 열여섯 살로 열한 살인 엄마보다 몸집이 작아서 모든 옷을 줄여 입거나 스스로 지어 입을 만큼 왜소한 체격이었다.


이모는 전쟁통에 부모와 헤어졌고 같이 살던 할머니도 돌아가시게 되면서 혼자가 되었는데, 엄마는 이런 사정은 할머니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어쩐지 언니가 생겼다는 사실에 처음 봤을 때부터 순애 이모가 좋았다고 한다. 언니라는 말의 울림이, 그 다정하고도 애틋하게 들리는 말이 그저 좋았다고 한다.


엄마는 이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조잘조잘 이야기를 쏟아냈고 이모는 일을 하며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서로 의지하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후에 이모는 엄마의 친구 난이 아줌마의 오빠와 결혼하게 되는데 이모의 결혼생활은 생각만큼 순탄하지 않게 흘러간다.


이모부가 북에서 지령을 받고 움직였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면서 집은 엉망이 되고 이모는 여기저기 맞아 멍투성이가 됐기 때문이다. 이후 잡혀간 이모부는 재판에서 다행히 사형과 무기형은 면했지만 몸이 성치 않게 된다.


그렇게 이모가 도망치듯 급하게 그곳을 떠나게 되고, 엄마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 된다. 그리고 직장에서 의외의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엄마는 침묵을 깨뜨리게 된다.


당시 아빠는 첫 번째 아내와 사별한 후 오 년을 혼자 지내고 있던 상태로, 엄마를 위로하게 되면서 가까운 사이가 된다. 그러다 결국 식도 올리지 않고 혼인신고만 한 후 살림을 합치게 된다.


엄마의 집에서는 후취 자리에 직업도 재산도 변변찮은 남자와의 결혼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게 되고, 결국 엄마는 가족으로부터 절연당한다. 그즈음 순애 이모와 다시 연락이 닿은 엄마는 아이를 낳았다며 놀러 오라는 순애 이모의 말에 오랜만에 이모를 만나러 안양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만남을 이어가지만, 서로 솔직하지 못한 탓에 항상 피상적인 이야기만 주고받게 된다. 현실적인 격차와 멀어진 감정선 사이에서 점차 엄마는 이모가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기 시작하고, 둘은 다시 연락이 끊기게 된다.


그 후에 엄마는 이모를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 이모부가 출소한 해의 겨울이었다. 통닭을 사들고 간 이모의 집은 퀴퀴한 냄새가 났고, 가족들의 상태는 매우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억지스럽게 참아내며 아무렇지 않은 듯 머무르던 중 예상치 못한 순간을 경험하게 되면서 엄마는 그 집을 뛰쳐나오게 되는데 그것이 이모와 엄마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이모는 엄마가 사 온 통닭을 보자마자 이성을 잃고 혼자 통닭을 먹기 시작했고, 딸아이는 닭 다리를 아버지에게 건네지만 장애를 입은 아버지는 먹지 않겠다며 거절하다 이내 소변을 지리게 된다. 소변 줄기는 엄마의 손과 옷을 적시게 되면서 황급히 엄마는 자리를 뜨게 된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러 각자의 삶을 이어가던 중 엄마가 인공관절 삽입수술을 받고 입원한 병원에서 엄마는 순애 이모를 봤다며 자고 있던 나를 깨운다.


어린 시절 자신이 알던 언니의 모습으로 찾아왔다며 생생한 경험담을 전하지만, 나는 그저 무섭게만 다가온다. 하지만 엄마의 말을 멈출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엄마가 이모의 유품을 건네받게 되면서 오랫동안 마음속에 숨겨둔 그리움과 미안함의 응어리가 터져 나온 탓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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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친밀한 사이라도 오랫동안 소식을 끊고 살게 되면 한동안 서먹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큰일을 겪고 내쫓기듯 멀리 떠난 언니를 다시 만난 엄마의 입장에서 함부로 말을 건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모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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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던 그런 태도가 서서히 그들의 사이를 멀게 했고, 함께 살았던 시간 동안 쌓아왔던 마음들도 더 이상 그 관계를 지탱해 주지 못했다.

1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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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서로를 배려한다고 생각했던 일련의 행동들은 결국 사이를 멀어지게 만드는 계기가 되면서 결국 과거의 관계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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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 초반에 엄마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잃어버린 인연을 대체해 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1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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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 줬던 언니를 잃고, 엄마는 한동안 또다시 그런 인연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잃어버린 인연을 대체할 만한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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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가벼워지고 있구나"

엄마는 손바닥만큼 작아진 이모를 보며 말했다.

(...)

창에서 햇살이 내려오자, 엄지손가락만큼 작아진 이모가 빛에 실려 떠났다

(...)

그건 분명 꿈이 아니었다.

1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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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후 회복하는 과정에서 만난 언니에 대한 꿈은 어쩌면 또 다른 복선을 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언니의 유품을 마주한 뒤에 떠오른 오랜 죄책감이 꿈을 통해 전해진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차마 하지 못한, 마음속 이야기를 엄마는 어쩌면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라는 말로 대신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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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와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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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는 프랑스 여행 중 일주일만 머물기로 했던 수도원에서 일곱 달을 보내게 된다. 때문에 수도원의 도움으로 비자를 받아야 했고 대학원을 휴학해야 했다. 그때 영주의 나이 스물일곱 살이었다.


수도원은 열아홉 살부터 서른 살 미만의 사람들만을 장기 봉사자로 선택되어 머물렀는데, 그래서인지 영주는 그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원래 계획이라면 영주는 대학원 공부도 마무리해야 했고 할 일이 많았다. 발전하기 위해,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여기 더는 머물러서는 안됐다. 그럼에도 어쩐 일인지 영주는 이곳에서 머물기를 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더 머물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남자친구와 부모님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수도원에 머문 지 네 달이 지났을 때 영주는 새로 이곳에 봉사자로 오는 이들을 픽업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한번은 케냐에서 출발한 한지와 카로를 테오와 함께 마중 나가게 된다.


그중 한지는 영주의 시선을 단번에 빼앗았는데, 검은 유화물감으로 캔버스에 그려진 사람처럼 그 애의 피부는 순수한 검은빛이었고, 한눈에도 190센티미터는 넘어 보이는 장신이었기 때문이다.


둘은 각자의 영역에서 봉사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크게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늦은 시간 수도원 근처에 있는 크고 작은 마을로 방문객들이 가서 소음공해를 일으키지 않도록 방문객을 막는 '나이트 가드' 일에 한조로 편성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된다.


저녁 아홉시부터 열한시까지 짝이 되어 이주일간 A 구역을 맡는 일이었는데, 그때 둘은 벤치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대학원에서 지질학을 공부하고 있는 영주와 나이로비에서 수의사로 일했던 한지가 일반적으로 나눌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부터 시작해 어느 순간에는 아주 사적인 이야기까지 공유하게 된다.


당시 이 둘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꽤 친밀해 보였는데, 그러다 어느 날 한지는 돌연 영주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영주는 바로 전날까지도 친밀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한지의 단절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때가 한지가 나이로비에 가기 이주 전인 9월 12일이었는데, 그때부터 한지가 돌아갈 때까지 둘은 그렇게 완전히 단절된 상태로 보내게 된다.


그런 한지의 태도에 대해 영주는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는데, 가끔씩 한지가 영주를 향해 웃으며 '단순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계속 마음에 남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을 할 때 어쩐지 말에 뼈가 있다고 느꼈던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한지는 대놓고 영주를 없는 사람 취급하기 시작했고, 영주는 마침내 한지의 그런 행동에 대해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왜냐하면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한지를 괴롭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주는 한지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한지의 뜻대로 영주도 한지를 못 본척한다.


한지가 떠나는 날, 영주는 자신이 쓴 일기를 테오를 통해 한지에게 전달하지만, 결국 일기는 다시 영주에게 돌아오고 이내 함께 머물렀던 친구인 테오 또한 그곳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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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단편 중 유일하게 다른 성격을 띠고 있는 이 소설은, 이유 모를 단절에 대해 다루고 있다. 속에 담아둔 가정사까지 털어놓을 만큼 영주와 친밀하게 지내다 돌연 하루아침에 등을 돌리는 한지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밝히고 있지 않아 사유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영주는 어림잡아 대략적인 짐작만 할 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명확한 사유는 알기 어렵다.


어쩌면 이것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단편을 그리고 있는 소설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잘 지내던 친구가, 지인이 어느 날 갑자기 이유 없이 연락을 두절하게 되면 상대방은 그냥 그렇게 배척을 당하고 만다.


이 이야기는 그런 상황에 대한 일들을 빗대어 그린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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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내게 생긴 대로 살아서는 안 되며 보다 나은 인간으로 변모하기를 멈춰 서는 안 된다고 말해 왔었다. 달라지지 않는다면, 더 나아가지 않는다면 나는 이 세계에서 소거되어 버릴 것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곳에 머물기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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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는 어찌 보면 앞길이 창창한 사람이었다. 만약 예정대로 그곳에서 일주일만 머물다 떠났다면, 어쩌면 한지와도 만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일도 겪지 않았을 것이다.


둘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음을 알고 친구들은 이유도 모른 채 영주만을 질책하는데, 여기에서 어쩐지 흔하게 일어나는 기시감을 느낀다. 그들은 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영주에게만 그런 태도를 보였던 걸까?


한편 영주가 그곳에 일곱 달이나 머물게 된 사연은 뭘까? 어쩌면 너무 지쳐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후에 수도원을 떠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영주에게 있어 그곳에서의 일은 어쩌면 한여름 밤의 꿈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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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서 온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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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은 미진 선배를 그리며, 봄 학기 강의를 마치고 페테르부르크에 가게 된다. 미진 선배가 페테르부르크 대학원에 입학한 지 십 년만으로, 당시 미진 선배의 룸메이트였던 율랴가 마중 나와주었다.


율랴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삼 년을 미진 선배와 함께 살았는데, 소은마저 살뜰히 챙겨주며 미진 선배가 머물렀던 방도 내어준다.


소은에게 있어 미진 선배는 대학 때 노래패 동아리에서 만난 선배로,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당시 선배는 스물다섯 살 고학번 선배였고, 이들은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저녁에 마로니에 광장에서 공연도 함께 했다.


처음에는 그리 큰 접점이 없었으나 술자리에서 미진이 선배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던 소은을 구해주게 되면서 가까워지게 되고, 이후 함께 살 때는 도스토옙스키로 인해 친밀감을 느끼게 되면서 둘은 둘도 없는 절친이 되게 된다.


소은과 미진은 미진이 러시아에 가기 직전 삼 년을 함께 살았는데, 이후 세 달 후 노래패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없어지고 만다. 그렇게 노래패는 사라졌지만 이후에도 소은과 미진의 사이는 여전히 지속된다.


미진이 러시아에 있을 때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소은을 보기 위해 무리해서 한국으로 달려갈 만큼 둘의 사이는 각별했는데, 이제는 그런 미진을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상황이다.


2009년 여름밤, 아무 이유 없이 그녀의 심장이 정지하게 되면서 서른두 살에 객사했기 때문이다. 이제 소은은 그녀에게 더 이상 미안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건넬 수 없다.


애초부터 사랑받는 것을 두려워하며 살던 소은이었기에 어쩌면 우울증이 깊어졌을 때 더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의지하고 또 의지했던 미진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난 후 그녀는 자제심이 무너질까 봐 노래도 듣지 못하고 페테르부르크에도 발을 딛지 못한다. 감정이 무너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이때 손을 잡아주던 사람이 율랴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폴란드 여자에게 소은은 일기를 쓰듯 지난 일 년간 메일을 쓰면서 감정을 추스르고 마침내 페테르부르크에 올 용기도 낼 수 있게 된다.


이 소설은 그렇게 미진 선배를 그리며 돌고 돌아 페테르부르크에 오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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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가운데 두고 연대를 통해 아픔을 치유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먼 곳에서 온 노래>는 미진을 회상하며 소은과 율랴가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한국에서 3년, 페테르부르크에서 3년을 각각 룸메이트로 보냈던 이들이 각자 간직하고 있는 미진에 대한 추억을 나누며 아픔을 치유하고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전혀 몰랐던 사이가 어느새 꽤 가까운 사이가 된다.


기대고, 기댐을 받으면서 미진이 머물렀던 곳을 공유하고, 그녀를 회상하며 치유해가는 과정은 사람의 온기가 주는 강력한 힘을 믿게 만든다.


미진이라는 사람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된 소은과 율랴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특별한 관계가 된다. 이로써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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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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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십오 년 전 엄마는 교황님이 집전하시는 미사를 보고 싶어 멀리서 서울로 올라간 적이 있다. 그때 그녀도 엄마를 따라 함께 왔었는데 당시 기억나는 건 엄마가 그녀의 입속에 넣어준 자두 맛 사탕이다.


성인이 되어 나는 서울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는데, 엄마가 서울의 그녀 집에 온 건 한 번뿐으로, 스물일곱이 될 때까지는 같이 사는 룸메이트가 있어서 오지 못했고, 그녀가 혼자 살게 되자 그때야 그녀의 집을 보러 왔지만 하룻밤 자지도 않고 금방 떠나게 된다.


엄마는 쉬는 법을 몰랐다.


엄마는 무능한 남편을 부양하고 가장 노릇을 하면서 그것을 늘 당연하게 여겼는데, 그 와중에 아빠의 인생은 끊임없는 구직과 퇴직으로 점철되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늘 희생하며 살았는데 아빠의 학생이었던 엄마는 아무 데서나 픽픽 쓰러지는 아빠를 업고 도움을 구하러 다녔고, 데이트할 때는 돈을 전부 털어서 보약을 지어 주었다. 결혼식 때는 신혼여행도 가지 않았고, 신혼 기간에는 교도소에서 징역살이하는 남편의 옥바라지를 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늘 감사한 일이라고 이야기하고는 했다.


이번에도 또다시 교황님의 미사를 보고 싶어 서울의 광화문 광장으로 구경 온 엄마는 행사가 끝난 후 딸에게 연락하지 않고 홀로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딸 집에서 자고 온다며 이야기 해둔 채로 말이다.


거기에서 한 할머니를 만나게 된 엄마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할머니의 친구분과 따님이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월호 희생자 모임 공간에 아이를 찾아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할머니 친구분과 따님을 찾기 위해 함께 광화문 광장으로 향한다.


복잡하게 뒤엉킨 사람들 속에서 이들을 찾는 것은 쉽지 않고, 아이의 이름 또한 알지 못해 서성거릴 뿐이다. 이때 유일하게 아는 것은 그저 평소 자주 불렀던 아이의 세례명이 '미카엘라'라는 것이었다.


이때 연락이 닿지 않던 엄마를 애타게 찾던 딸 미카엘라가 엄마를 발견하게 된다.



*****


가족을 위해 늘 헌신하고 희생하던 엄마는 유난히 교황님이 참석하는 미사에 직접 참여하고 싶어 한다. 이 십오 년 전 어린 나와 함께 서울에 올라온 뒤로, 다시 교황님이 방문한다는 소식에 엄마는 홀로 서울 광화문을 찾는다.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지만, 혹시 딸이 욕먹을까 봐 엄마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딸집에서 하루 머문다는 거짓말을 하고, 정작 딸에게는 연락 한 통 없이 그렇게 미사에 참여한 후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이처럼 딸아이를 위하는 엄마의 마음은 같은 세례명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아이에게도 전이된 것을 알 수 있는데, 우연찮게 찜질방에서 한 할머니의 사연을 전해 듣고 엄마는 서슴없이 동행한다.


아이를 품는 엄마의 마음으로, 누구든 엄마이고 어린 사람이면 누구든 딸이라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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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감사한 시간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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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자신의 삶에 대해 늘 감사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모든 것을 감내하며 희생하는 삶을 살아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을 품고 사는 엄마를 보면 너른 바다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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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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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할머니는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처음에 암세포가 발견되었을 때 수술과 항암 치료 결과가 좋아서 오 년 뒤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육 개월 뒤 암세포가 다른 쪽이 전이되면서 계속 악화되고 있는 상태다.


할머니는 같은 길을 딸의 차를 타고 팔 년째 다니며 문득 손녀 지민이 그립다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부터 소식이 끊겨 볼 수 없는 지민을 마음속으로만 그리고 있을 뿐이다.


할머니는 맞벌이하는 딸네의 요청으로 어릴 때부터 지민을 맡아 키웠다. 아들이 아닌 딸이라는 이유로 딸아이를 향해 사돈어른이 모진 말을 거침없이 쏟아낼 때면 손녀인 지민과 산책을 하며 달래주곤 했다.


할머니 말자는 남편이 일찍 세상을 뜨면서 딸애가 받지 못한 사랑을 손녀 지민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정성을 쏟았다. 지민이 또래의 아이들처럼 해맑게 자라기를 바라는, 철없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할머니의 바람이 담긴 애정이었던 것이다.


그런 할머니의 바람이 와닿았던 걸까 어느 날 지민은 책받침 하나를 가지고 와서 할머니에게 열 밤 동안 가나다라를 가르쳐 준다. 여덟 살짜리 아이가 어른을 앉혀놓고 가르친다는 게 조금 우스운 일일 수도 있지만 할머니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열심히 배운다.


이후 정말 열밤 후에 할머니는 책받침에 적힌 모든 한글을 다 읽을 수 있게 되는데, 덕분에 어릴 적 배우지 못한 설움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였는지 지민은 할머니에게 있어 유달리 더 소중한, 선물 같은 존재였다.


그러던 중 지민이 중학교 삼학년 때쯤 지민 아빠의 일자리가 서울에 잡히게 되면서 할머니와는 시외버스로 약 2시간 걸리는 거리로 분가하게 된다.


이후 지민은 쑥쑥 자라 선생님이 되고, 이후 기간제 교사로 일하며 소식을 전해오고는 했다. 그러다 갑자기 중국에 있는 모 학교로 떠나게 되면서 다시는 만나거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


워낙 산골 짜리에 위치해 있어 소식을 전하기 어렵다며 딸 영숙을 통해 가끔 소식을 전해오곤 했던 것이다. 조금 이상했지만 할머니는 그러려니 하며 마음속으로 잘 지내기를 응원한다.


또 한 가지 이상했던 점은 일 년 반 전부터 딸 영숙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눈에 띌 정도로 살이 빠지고 정신없는 것 같이 횡설수설했다는 점이다.


할머니는 종종 딸 영숙의 집에 들를 때면 지민의 방에 들어가 한참을 둘러보고는 했는데, 그 방은 그 애가 중국으로 떠나기 전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던 탓인지 할머니는 지민이 중국으로 간 뒤 지민의 '할머니'라고 부르는 목소리를 환청으로 여러 번 듣기도 한다.


그렇게 그리움을 삭히던 중 지민의 목소리가 흐려지거나 그 애가 자꾸 멀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면 할머니 말자는 연필을 깎아 지민에게 편지를 쓰곤 했다.


이제 할머니는 일흔이 되었고, 지민은 스물여 덞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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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설마하면서 보게 되는 이 소설은 마지막 내용을 통해 할머니의 죽음 역시 곧 임박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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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원이 들어갈 수 없다는 그곳으로 어떤 편지도 배달되지 않는다는 그곳으로 말자는 지민에게 직접 전할 그 편지를 접어 가슴에 품었다.

26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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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 전이되면서 상태가 악화되고 있는 할머니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다. 그래서인지 딸 영숙은 남편과 협의해 손녀 지민이 세월호 희생자임을 숨기는 듯하다.


할머니에게 지민이 어떤 존재인지를 너무 잘 알고 있던 딸 영숙은 자신의 아픔은 잠시 접어두고 할머니를 위해 잠시 사고 소식을 숨긴다. 할머니는 굳이 딸에게 사정을 묻지 않지만, 어쩌면 어렴풋이 뭔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짐작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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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의해 시시때때로 침해당하고 괴롭힘당하지 않기를 바랐다. 지민은 삶을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기꺼이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2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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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중지하며 정성으로 키웠던 손녀 지민이었기에 아이의 죽음을 할머니에게 직접적으로 알리는 것은 어쩌면 더 큰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가족에게는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비밀이 생긴 것이다.


할머니는 아이가 알려준 글자로 편지를 쓴다. 그리고 후에 그리움을 담은 마음의 편지를 직접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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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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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과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쇼코의 미소>는 독자에 따라, 해석의 관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읽힐 여지가 많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공통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키워드는 연대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7편의 단편에는 공통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등장하는 데 이를 통해 우울이나 좌절감으로 힘든 상황을 겪어내고 있는 이들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기대고 기댐을 받으며 연쇄적으로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는 것이다. 문득 우리의 모습도 어쩌면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나약하면서도 강한 것이 '인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지만, 또 사람 '덕분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은 우울감이나 좌절감 때문에 제자리에 멈추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신, 그 자리를 공감, 연대, 공유와 같은 키워드로 채워 넣어 서로 이해하고 다독여줄 수 있는 '우리'가 되어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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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살기 가이드북 : 동남아시아 - 2024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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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선정한 한달살기 좋은 동남아시아 지역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에는 도시별 특성과 교통편, 음식 등의 기본정보는 물론 알아두면 좋을 팁과 관광지에 대한 소개가 함께 있어 여행시 참고하기 좋다. 특히 처음 한살달기를 경험할 경우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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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체코 - 2024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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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때 꼭 가봐야 하는 나라 체코! 맛있는 음식은 물론 아기자기한 풍경들은 동화속 마을을 연상시킨다. 특히 주황색 지붕과 정교한 조각들은 도시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볼때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예쁜 길을 걸으며 도시 곳곳에 숨겨진 어여쁜 보물들을 찾아 나만의 지도를 완성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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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조지아 - 2024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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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 3국중 하나인 조지아로의 여행은 이색적 매력이 돋보이는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듯하다. 도시마다의 특성이 너무 달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여행에서 어쩌면 돌아오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맛있는 와인과 함께 도시마다 숨겨진 자연 풍경과 건축물, 역사의 현장을 체험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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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스코틀랜드 - 2024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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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영국버전을 경험하고 싶다면 스코틀랜드로의 여행을 추천하고 싶다. 역사, 공원, 박물관 및 미술관, 축구와 펍 등을 통해 영국인들의 문화와 일상모습을 엿보며 역사를 배우고 체험하는 시간은 어떤 여행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올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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