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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다가 덮은 이유는 감정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사랑을 낱낱이 해부하고 토를 다는 작가의 피곤한 행태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수없이 사랑에 고민하고, 투닥투닥 싸우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는 꽤나 명쾌한 해답 같은 책이었던 것 같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나는 섬세한 고민을 하기에는 너무 단순한 인간이라 별로였다지;
그리고 한동안 알랭 드 보통을 멀리했다. 그 사이에도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제목 참 잘 지었다. 거의 사기행각에 가까운 제목이 아니던가.) <우리는 사랑일까>를 거쳐왔지만 여전히 시큰둥... 그러다가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손에 들어온 지 꽤 된 후에야 어디를 가는 길에 펼쳐들었는데, 사랑에 관한 에세이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할 때의 드 보통을 발견해서일까,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그리고 어떤 부분들에서는, 아니 많은 부분들에서는 그의 생각에 공감을 하기까지!
드 보통의 강점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내가 어렴풋이 느끼고,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콕 짚어 이야기해주는 시원함. 그래서 '맞아 맞아'라며 마음을 무장해제해버리고 주책맞게 무릎을 쳐버리게 하는. 게다가 매우 지적이기까지 하니 읽고 있으면 어떤 사치 같은 것을 느끼게까지 한다.
짧은 시간 동안 작지 않은 즐거움을 주는 고급스러운 에세이집이다. 번역의 훌륭함을 말할 것도 없다. 군더더기 없이, 각이 잘 잡힌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