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예반에서 하루 만에 쫓겨난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달리 잘하는 것도 없고 그나마 덜 움직이고 되는 곳 같아서 문예반을 선택했는데 담당 선생님께서는 내가 쓴 글을 보더니 ‘넌 안 되겠다 나를 반품시키셨다. 나이를 먹어가도 달리 좋아하는 것은 없이 유일한 소일거리가 책 읽기인 삶을 살아갔다. 서른이 되도록 글쓰기와는 여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회적인 현상은 컴퓨터와 인터넷의 출현이다. 교사로 일하기 시작한 그때쯤 일선 학교에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나는 그 학교에서 손글씨가 아닌 워드프로세서로 시험지 원안을 작성한 최초의 선생이 되었다. 다른 이유는 없고 워낙 악필이기 때문이다. 그때쯤 인터넷 언론사가 탄생했다. 원고지에 글을 써서 해당 언론사에 우편으로 보내는 수고를 하지 않고 컴퓨터에서 곧바로 글을 보낼 수 있고,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정책은 귀차니즘을 신봉하는 나에겐 최적이었다. 


원고가 기사로 채택되지 않을 수도 있고, 비중이 작은 기사는 1천원, 톱기사로 채택되어봐야 1만 원이 지급되는 환경 속에서 260만 원가량의 원고료를 받았다. <올해의 기자상>을 나에게 주지 않을 것 때문에 ‘삐져서’ 탈퇴를 고려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나의 글은 문예반에서 쫓겨난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인터넷이라는 문명이 나타난 초창기라서 나처럼 벌거숭이도 날뛸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인터넷은 훌륭한 글쓰기 연습장이 되었고 출간제의를 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거꾸로 보는 위인’이란 기획을 내게 제시하셨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쓸 자신이 없었다. 내가 역사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는 생각도 들고 자칫 후손들이 나에게 소송이라도 걸면 어떡하느냐는 공포감도 들었다. 그 기획은 거절하는 대신 ‘내가 헌책과 희귀본을 좋아하고 수집하니 그 경험에 관한 글’을 쓰겠노라고 제의를 했고 출판사 측은 수락했다. 출판사의 사정으로 출간이 연기되다가 어렵게 2011년 가을에 나온 책이 <오래된 새 책>이다. 


오래된 절판본이 새 책으로 재출간되기를 희망하는 뜻으로 제목을 지었다. 아니 선택했다. 지금에야 밝히지만 <오래된 새 책>은 서평가로 유명한 <로쟈>님의 블로그에 있는 카테고리 이름이다. 물론 그 카테고리도 절판되었다가 재출간된 책을 소식을 전하는 코너다. 코너 이름을 책 제목으로 사용해도 되겠느냐는 부탁에 <로쟈>선생은 ‘제가 그 말에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라며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새삼 고마운 일이다. 


<오래된 새 책>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동아일보는 문화면의 톱뉴스로 내 책을 소개했고 공중파에서는 촬영기사를 우리 집으로 보내서 취재해갔다. 출간된 지 열흘 만에 초판이 다 팔렸다. 열흘 만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2쇄를 찍겠단다. 대뜸 오·탈자를 수정해서 찍으라고 부탁했는데 ‘시간이 없다’라고 하셨다. 2쇄를 찍자마자 책은 더는 팔리지 않았고 나의 짧았던 영광은 사라졌다. 


두 번째로 낸 <아주 특별한 독서>는 ‘신간이 언론에 소개되지 않기도 하는구나’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오래된 새 책>을 내고 하도 많은 언론사에서 취재하고 소개가 되어서 ‘책을 내면 원래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읽을 만한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는 주변 사람들의 부탁에 대한 ‘답’으로 낸 책이다. ‘삼국지’나 ‘문학 전집’을 출판사별로 장단점을 분석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세 번째로 나온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는 나에게 ‘책 팔기의 어려움’을 더욱 가혹하게 알려주었다. 아내와 딸아이에게 치이는 40대 유부남의 비애를 재미나게 쓴 책인데 ‘재미’를 추구하는 내 글쓰기의 ‘원형’을 마련한 책이기도 하다. 나름대로 자신이 있어서 기존의 책보다 더 나은 조건의 인세를 요구했는데 이를 수락하고 출간한 출판사에 체면을 제대로 구긴 책이기도 하다.


네 번째 책은 <수집의 즐거움>이다. 피겨, 만화책, 카메라, 운동화, 연필 등의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재미있고 유쾌한 작업이었지만 원고를 쓰면서 고통스러웠던 순간이 있긴 있었다. ‘음식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모임’의 회장을 겸하는 한 수집가분과 식사를 하면서 푸짐한 밥과 국 반찬을 모조리 먹어치워야 했고, 피겨 수집가의 소장품을 구경하기 위해서 3층 건물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옥탑방에 올라가느라 고소공포증에 시달려야 했다. 


1인 출판사에서 낸 이 책의 영업사원은 따로 없었다. 대표를 할 사원이 없는 사장과 저자인 나는 영업사원으로 변신했다. 대외적인 상황도 좋지 않았다. 언론보도가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사장은 사장대로 나는 나대로 모든 지인에게 책 구매를 강권했다. 내 여동생, 누나, 그뿐만 아니라 조카들의 코 묻은 돈까지 약탈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나려고 하는 게,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여자에게도 한 권의 책을 선물한 것이 아니고, 사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다. 출판사 사장도 여기에 차마 쓰지 못할 눈물겨운 노력을 했더랬다.


 한 달 동안 온·오프를 가리지 않고 영업을 했는데 어디 출판사의 영업사원으로 취직해도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출간된 지 2년이 다가오는 최근에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초판이 거의 소진되어 간다는 ‘보고’를 받았다.

또다시 눈물이 나려 했다. 

우리 둘이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하루에 메신저를 달고 살았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초판이 거의 다 팔린것은 좋은 일인데 2쇄를 찍어야 할지 고민이란다 . 절판본 수집가의 책이 절판되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최후의 10부는 내 몫으로 남겨두라고 했다. 내가 내 책을 수집해야 하다니 가혹한 현실이다.

다섯 번째 책이 <독서 만담>이다. 책과 재미라는 내 인생의 화두를 담은 책이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 초등학교 시절부터 ‘점잖다’라는 칭찬 아닌 비아냥을 꼬리표로 삼은 나의 글이 코미디 프로그램보다 재미나다는 칭찬을 받을 땐 의아하다. 그냥 일상이 무료하고 너무 진지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지하철이나 직장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혼자 키득키득 웃다가 미친 사람으로 오해를 받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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