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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네 집 -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
전몽각 지음 / 포토넷 / 2010년 1월
평점 :
1964년 서울의 한 가정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대학에서 사진반의 지도교수이기도 했던 딸아이의 아버지는 귀여운 딸을 낳아준 아내와 딸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가족의 일상을 카메라로 담기로 결심했다. 딸아이의 이름은 윤미였고 그 딸아이를 너무나 사랑한 아버지는 전몽각 선생이었다. 전몽각 선생의 <윤미네 집>은 이렇게 윤미의 출생과 함께 잉태되었다.
전몽각 선생의 사진집 <윤미네 집>은 여러모로 각별하다. 사진집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일반 독자들에게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았는데 전문사진작가가 아닌 평범한 '아빠 사진사'의 작품이라는 것이 더 놀랍다. '장가도 못 갈 것 같았는데 사랑스러운 아내와 딸을 가지게 된 것이 너무 신기해서'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한 게 이 사랑스러운 사진집의 시작이었다.
전몽각 선생은 아빠의 시선으로 사랑하는 딸아이 '윤미'가 태어나서 시집 가는 순간까지 일상을 카메라로 꾸준히 담았다. 이 사진집을 출간하게 된 계기도 결혼해서 미국으로 건너간 '윤미'가 그리워서였다. 상업적인 목적이 아닌 소장용으로 출간이 된 <윤미네 집>은 의외로 독자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전몽각 선생 자신이 말한 것처럼 '아마추어리즘의 소산'인지 플래시와 삼각대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이 흑백사진들은 가족들의 소소한 일상이 주는 잔잔한 감동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독자들의 관심은 많은데 애초에 많지 않은 수량으로 출간이 된 이 사진집은 오랫동안 많은 독자들의 애를 태웠다. 사고 싶어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이 사진집이었고 급기야 가족들이 소장하고 있던 분량마저 독자들의 성화에 금방 판매가 되었다.
워낙 많은 이들이 <윤미네 집>을 찾는 탓에 결국 초판이 나온 지 20년째 되는 2010년에 새로운 장정과 편집으로 세상에 다시 나왔다. 주명덕 작가가 편집을 맡았고 초판에 없던 '마이 와이프My Wife'가 더해졌다. '마이 와이프My Wife' 는 2006년 유명을 달리한 전몽각 선생이 췌장암 선고를 받고 가장 먼저 정리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와 사진들이다. 천신만고 끝에 구판을 간신히 구해서 소장하던 나는 신판이 나오자마자 2권을 주문해 비닐랩핑도 뜯지 않고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전몽각 선생은 원래 토목학자로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가했으며 성균관대학 부총장까지 오른 인물이지만 이제 그는 '윤미네 아빠'로 더 잘 알려졌다. 딸아이와 가족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는 큰 딸 윤미가 태어난 1964년부터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한 1989년까지 윤미와 아내의 일상을 렌즈에 담았다. 집에 돌아오면 항상 그에겐 카메라가 들려 있었고 아내와 딸은 그에게 최고의 모델이었다.
카메라가 흔해진 요즘에는 '아빠 사진사'가 아닌 아빠가 드물다. 그러나 자식들이 성장해서 결혼을 할 때까지 '아빠 사진사'노릇을 하는 아빠는 드물다. 전몽각 선생은 심지어 윤미가 결혼을 할 남자와 데이트를 하는 곳까지 따라가서 사진을 담는 열성까지 보인다. 물론 딸의 허락을 사전에 받기는 했지만 참으로 대단한 집념이 아닐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딸의 일상을 담으려는 그의 의지는 심지어 결혼식까지 이어져서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순간에도 카메라를 쥐고 로우촬영으로 윤미의 모습을 촬영하려고 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그의 시도는 딸아이 윤미에 못지않게 사랑하는 아내의 반대로 무산이 되었고 대신 그의 절친인 강운구 선생이 대신 촬영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윤미가 결혼을 했다고 해서 그가 윤미를 더 이상 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윤미가 미국생활을 하기 위해서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에 결혼식 사진이 윤미의 마지막 사진이 된 것이다. 사진집으로서는 드물게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윤미네 집>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진이란 결국 기술이나 장비의 소산이 아닌 따뜻한 사랑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