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못 본 친구에게서 항공엽서

한 장이 왔다. 낮 모르는 항구의

잿빛 - 푸른 하늘이 찍혀 있었다.

<틈틈이 부탁하신 종(鐘)을 보러

다니고 있어요. 그런데 어떤 녀

석은 너무 커서 (집채만) - 메고

가기 힘들고, 어떤 녀석은 너무

작아서 소리도 안 날 것 같고...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그때였다. 옆에 있던 바람 한 올

이 불쑥 일어서며 제 가슴을 쳤

다. 뎅 - ,

 

종소리가 울었다.

 

:::  강은교, 엽서 한 장

 

 

결국 이 시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당신을 향한 나의 마지막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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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매주 월요일 해질무렵이면 어김없이 그 분의 깊이있는 사유의 세계...그 언저리에서 서성대다 시린마음을 부여안고 이내 아쉬움에 발길을 돌렸던 흐릿한 기억이 다시금 피어오릅니다.

지난 월요일 그 마지막 뒷모습을 두눈 가득 담지 못한채...일주일하고도 하루가 지난 지금 스멀스멀 번지어져가는 희뿌연 기억들의 파편 사이로 소리없는 눈물이 흐르고...시커멓게 다 타버려 회색빛 재만이 가득 쌓인  내 마음에는 시린 바람이 불어와 어리석은 내 슬픔 모두 가져가려합니다.

안경너머 감추어진 그 그윽한 눈빛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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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의 밥상은 김치찌개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밥통에 오랜동안 보온되어있던 나의 한끼 잡곡밥은 누렇다 못해 붉게 변해버렸고 나는 지금 밥을 재가열 시키고 있는 중이다.

시어터진 김치쪼가리 사이사이에 햄과 참치를 담뿍 넣은 김치찌개와 언제 해 놓은지도 까마득한 깐밥이 되어버리기 직전의 밥.신선함이 조금도 없는,대지의 푸른 기운을 상실한 한끼 밥상 앞에서 무심히 一簞飼 一瓢飮으로 자족하며 살아가는 먼 훗날의 나를 꿈꿔본다.

...

오전에는 무슨 정신으로 여기에 글을 올렸는지(다시 보니 강연회 내용은 없고 좋았다라는 말 뿐이네...) 모르겠다.

그때까지는 하루를 힘차게 살아보려고,또다시 밀려드는 여유로움속의 허무감(분주함속의 허무함을 달래던 평소와 달리)에 묻혀잊지 않으려고 글을 쓰면서 정신을 되찾고자 했지만...

해야 할 그러나 엄두가 나지 않는 많은 일들 앞에 또다시 무기력해졌다.

무기력이 내 온 몸으로 퍼지기 전에 황급히 컴퓨터를 끄고 어제 드디어 산 녹색평론(일반 서점에는 구입하기 힘든 격주간 발행되는 책이다. 학교로 가는 오르막길 중간쯤에 위치한 조그만 서점의 창문에 이 책이 진열돼 있는 것을 어느날 발견하고 시험이 끝나면 꼭 사서 보리라고 벼루고 있었던 참이었다.이 서점은 매우 작아서 천장까지 책이 빼곡히 쌓여있고 주인아저씨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책을 꺼내주시기도 한다.길밖으로 난 조그만 창가에는 내가 관심있어 하는 그러나 아직까지 직접 보지 못한 책들이 진열되어 있어서 그 앞을 오가는 내 눈을 즐겁게 해 준다.)을 읽으려 했지만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또다시 멍해졌다. 

...지금 내게는 "내 마음의 몬타나"에서 희뿌연 산자락 그 어딘가를 응시하며 조용히 푸른 숨을 흠뻑 들이쉬고 있는 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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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주간을 맞아 성당에서는 매주 목요일 세차례의 강연회를 준비했다.

지난주는 시험 준비 때문에 갈 수 없었고 마침 어제 시험이 끝나서 두번째 강연회에 참석하게 되었다.사실 금요일에 있을 시험이 수요일로 옮겨가는 바람에 예정에도 없던 참석이었다.(지난 밤에 두어시간 밖에 자지 못해서 집에서 쉴까 했으나 흔치 않은 기회였으므로 그리고 교육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관심있는 주제였기 때문에 아늑한 유혹을 뿌리치고 강연회에 참석했다.)

어제 있을 두번째 강연 주제는 대안교육에 대해서였고...내가 참석하고자 했던 마지막 강연 주제는 생태운동에 관한 것이었다.(방학하고 전주에 곧장 내려가서 오랜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두루두루 만나고 싶었지만 다음주에 있을 마지막 강연 때문에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전주행도 미루던 참이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그 강연을 고대했던 까닭은 교육문제 보다 관심있어 하는 환경문제에 관한 것이라는 것과,그리고 그 강연을 하실 분이 다름아닌 황대권 님이시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성당에 도착하고 강연이 시작될 무렵 오늘 오기로 되어있던 성공회대 교수님께서 사정상 다음주로 강연을 미루게 되었고 오늘은 다음주에 오시기로 되어있던 황대권 베드로 형제께서 오셔서 강연을 한다는 사회자의 말을 듣는 순간...내 마음은 설렘과 기대로 가득차오르기 시작했다.(마치 작년 한해 내게 가장 뜻깊은 시간이었던,법정스님 법문을 들었던 그 날...법문이 시작하기 전에 내 마음이 설렘과 기대로 주체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올 해 초 그 분의 야생초 편지라는 책을 읽으면서 국가라는 거대한 통치구조 앞에 죄없는 나약한 한 개인의 삶이 짓밟히게 되는 처참한 비극을 접하면서 또 그러한 절망의 회색빛 콘크리트 벽앞에서 희망의 푸른빛 풀 한포기를 통해 소생하는 지극히 인간다운 한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울고 웃었던지...그리고 내가 느끼는 자연에 대한 무한한 경외감과 자연앞에 오만한 우리 인간들의 비겁함을 그 책 곳곳에서 발견하고 또 얼마나 공감했던지...

강연이 진행되는 한시간 반여의 시간동안 그 분은 자연에 대해 겸손한 자세를 시종일관 지키며 푸른 내음 가득한 맑은 강연을 해 주셨다.

황대권 바우(그 분은 베드로라는 외래어대신 한국어로 세례명을 고쳐 부른다라고 하셨다.)님 너무도 뜻깊은 그리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

쫓기듯 살아온 한 학기를 마치고 어제 내가 여유로운 마음으로 참석할 수 있었던 그 강연은 신이 주신 은총의 선물이었음을...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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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더디게 오기를 바랬던 첫 눈이 기어이 내리고야 말았다.

시험때문에 울적할 겨를도 없었지만 나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와버린 고~얀 첫 눈이 얄미울 따름이었다.

어느 해인들 기뻐했으리랴만은...한 해 한 해 갈 수록 누군가 애타게 기다리는 특별한 날들이 나에게만은 더디게 왔으면 하는 바람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

노을빛이 어둠에 묻혀버린,예정된 헤어짐의 시간...그 찰나...내 머릿속은 하얗게 되어버렸다.

이제 내 기억속의 '그 해 가을'은 추억이 되어버리는 것일까?

아니면 내 기억 저편에는  '그 해 가을'이 상실된 채,무덥던 어느 해 여름날의 나른한 몽상은 새찬 바람만 이는 어느 해 겨울날의 희뿌연 망상으로 이어져, 공허함만이 드리워지는 것일까...?

...

그랬다.

내 마음이 그분을 알아보기 이전에 내 몸이 먼저 그분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나를 결코 알아 볼 수 없는 그분의 말처럼.

이렇듯 삶의 아이러니는 언제고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고 유유히 사라져 간다.마치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

존재하는지 조차 의심스러웠던 이상형이라는 존재는...

결국 내가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이상향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

내 눈 한가득 담을 수 없었던 그 분의 모습이 잊혀질까봐 나는 오늘...노을을 품에 안아버렸다. 

"내 기억속 당신은 지혜의 눈을 마음에 품은 채,붉은 노을이 아스라히 펼치어있는 그 해 가을,서쪽 하늘 한켠에 오래도록 자리할 것입니다.

sometimes...someone...(like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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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소녀 2003-12-09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모든 영적 교류는 하늘의 달과 대지의 바람...에서 비롯된다.
어제의 보름달은 그저 허허롭게...말없이 나를 비추이더니...
달님도 내 슬픔을 알아채 버린거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