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의 밥상은 김치찌개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밥통에 오랜동안 보온되어있던 나의 한끼 잡곡밥은 누렇다 못해 붉게 변해버렸고 나는 지금 밥을 재가열 시키고 있는 중이다.

시어터진 김치쪼가리 사이사이에 햄과 참치를 담뿍 넣은 김치찌개와 언제 해 놓은지도 까마득한 깐밥이 되어버리기 직전의 밥.신선함이 조금도 없는,대지의 푸른 기운을 상실한 한끼 밥상 앞에서 무심히 一簞飼 一瓢飮으로 자족하며 살아가는 먼 훗날의 나를 꿈꿔본다.

...

오전에는 무슨 정신으로 여기에 글을 올렸는지(다시 보니 강연회 내용은 없고 좋았다라는 말 뿐이네...) 모르겠다.

그때까지는 하루를 힘차게 살아보려고,또다시 밀려드는 여유로움속의 허무감(분주함속의 허무함을 달래던 평소와 달리)에 묻혀잊지 않으려고 글을 쓰면서 정신을 되찾고자 했지만...

해야 할 그러나 엄두가 나지 않는 많은 일들 앞에 또다시 무기력해졌다.

무기력이 내 온 몸으로 퍼지기 전에 황급히 컴퓨터를 끄고 어제 드디어 산 녹색평론(일반 서점에는 구입하기 힘든 격주간 발행되는 책이다. 학교로 가는 오르막길 중간쯤에 위치한 조그만 서점의 창문에 이 책이 진열돼 있는 것을 어느날 발견하고 시험이 끝나면 꼭 사서 보리라고 벼루고 있었던 참이었다.이 서점은 매우 작아서 천장까지 책이 빼곡히 쌓여있고 주인아저씨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책을 꺼내주시기도 한다.길밖으로 난 조그만 창가에는 내가 관심있어 하는 그러나 아직까지 직접 보지 못한 책들이 진열되어 있어서 그 앞을 오가는 내 눈을 즐겁게 해 준다.)을 읽으려 했지만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또다시 멍해졌다. 

...지금 내게는 "내 마음의 몬타나"에서 희뿌연 산자락 그 어딘가를 응시하며 조용히 푸른 숨을 흠뻑 들이쉬고 있는 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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