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꼬(朝子)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하였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일년초 꽃도 많았다. 내가 간 이튿 날 아침, 아사꼬는 '스위트피'를 따다가 꽃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주었다. '스위트피'는 아사꼬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아사꼬와 나는 절을 몇번씩 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꼬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늘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 피천득, 수필집 <인연>가운데 인연(因緣) 

...

우리가 진정으로 만나야 할 사람은 그리운 사람이다. 한 시인의 표현처럼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그런 사람이다. 곁에 있으나 떨어져 있으나 그리움의 물결이 출렁거리는 그런 사람과는 때때로 만나야 한다. 그리워하면서도 만날 수 없으면 삶에 그늘이 진다. 그리움이 따르지 않는 만남은 지극히 사무적인 마주침이거나 일상적인 스치고 지나감이다. 마주침과 스치고 지나감에는 영혼의 메아리가 없다. 영혼에 메아리가 없으면 만나도 만난 것이 아니다.

::: 법정 스님의 말씀 가운데

...

어둠이 몰려오고 마을 골목에도 저녁이 내려앉는다.

전등불 아래 내 마음에는 그늘이 진다...

서글픈 저녁 하늘에 별 하나 소리 없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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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소녀 2004-01-25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세상에
나만 아는 숲이 있습니다
꽃이 피고
눈 내리고 바람이 불어
차곡차곡 솔잎 쌓인
고요한 그 숲길에서
오래 이룬
단 하나
단 한번의 사랑
당신은 내게
그런
사랑입니다

::: 김용택, 단 한번의 사랑
 

붉은 저녁해 창가에 머물며

내게 이제 긴 밤이 찾아온다 하네......

붉은 빛으로 내 초라한 방안의 책과 옷가지를 비추며

기나긴 하루의 노역이 끝났다 하네......

놀던 아이들 다 돌아간 다음의 텅 빈 공원 같은

내 마음엔 하루 종일 부우연 먼지만 쌓이고......

소리 없이 사그라드는 저녁빛에 잠겨

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울먹임에 귀기울이네......

부서진 꿈들......

시간의 무늬처럼 어른대는 유리 저편 풍경들......

어스름이 다기오는 창가에 서서

붉은 저녁에 뺨 부비는

먼 들판 잎사귀들 들끓는 소리 엿들으며

잠시 빈 집을 감도는 적막에 몸을 주네......

 

::: 남진우, 저녁빛

 

 

덧없이 지나간 하루의 끝에서 서쪽 하늘로 지는 노을을 보면 나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고여온다.

어려서부터 지녀온 버릇이다.

해 저무는 시간이면 깊은 숨을 내쉬며 서쪽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저 허허로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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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훈

녀석이 나보다

부잣집 아들이었다는 것도

학업을 많이 쌓았다는 것도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도

그 어느 것 하나 부럽지 않았다

다만, 녀석이

내 끝내 좋아한다는 그 말 한 마디

전하지 못했던 그녀와

한 쌍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적

난 그만

녀석이 참으로 부러워

섧게 울어 버렸다

 

오늘도 나의 폐인 생활은 계속 된다.

아침 9시에 가까스스로 눈을 떠서 12시에 학교를 가고 나름대로 집중해서 계절학기 수업을 받고 (여대에 계절학기 받는 남학생이 늘고 있다고 지난 금요일 모 방송사 뉴스에 우리 학교가 나왔는데 내가 받는 두 과목은 남학생들이 기피하는 과목인가보다.하긴...매일 레포트 쓰느라 기절해 버릴 것 같은데...) 7시쯤 집에 돌아와서 따뜻한 방바닥에 최대한 몸을 밀착시킨 채 10시까지 뭉그적 거리다 컴퓨터 앞에 앉는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로 장수를 채우지?

논리의 일관성이 결여된 글을 써 나가는 나도 참 곤욕스럽다.

어떤 날은 다음 날 3시 또 어떤 날은 4시까지 가까스스로 숙제를 마치고 짧디 짧은 저녁 기도(그래도 이렇게 탈없이 잠자리에 들게 해 주심에...감사한다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그저 감사할 따름이다.언제나!)를 하고 매일 미사 책 두어쪽을 휙휙 넘겨 읽고는 발라당 드러 눞는다.

눈 뜨면 곧바로 아침이다.

이른 아침 부산스럽게 출타한 자매들의 흔적들을 주섬주섬 치우고...

또다시 반복되는 일상에 뛰어든다.

...

그 사이에 방명록에 새로운 글 두개나 올라와 있었다.

지금 당장 고맙다고 답변을 하고 싶지만...그 유혹을 물리치고 시 한편으로 내 마음을 달래본다.

아쉽지만 내게 첫사랑이 없다.

짝 좋아함이 한번 있었고...짝 사랑이 한번 있다.(짝 사랑이 한번 있다...라는 현재형의 문장을 쓰는 까닭은 아마도...여전히 내게는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함께하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리라...우둔한 나...)

그 뿐이다.

추적추적 눈비가 내리는 흐릿한 오늘.

나는 우산도 없이 오늘의 레포트는 무슨 말로 채우지...라는 막연한 물음을 안은채  집으로 향했다.

나의 장난감 전화기는 오늘도 죽어 있다.

전화를 할 누군가도 딱히 없어 내가 죽여버렸다.

수업중에 걸려온 남자 친구의 전화를 받지 못해 못내 아쉬워 했는데 수업이 끝나자 다시 걸려온 전화를 받고 흐뭇해 하는, 친구 녀석 그리고...

비를 맞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내 앞에서 우산을 가지고 멀리 서 온 남자 친구의 비호(?) 아래  사뿐사뿐 걸어가는, 같이 수업 받는 한 아이의 모습...

난 그만

녀석이 참으로 부러워

섧게 울어 버렸다

...

내가 강조할때 쓰는 표현인 '참으로'와 흔치 않는 표현인 '섧게'라는 이 단어 때문에 이 시에서 느껴지는 슬픔이 증폭되는 것만 같다.

내가 크게 공감하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이 시를 보니 그 노래가 문득 떠오른다.오늘 우연한 기회에 다시 들었던 노래.

이승환, 좋은 사람 sad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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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보낸 편지에 괴로움 말하려다               欲作家書說苦辛

흰머리의 어버이가 근심할까 염려되어,        恐敎愁殺百頭親

그늘진 산 쌓인 눈이 깊기가 천 길인데          陰山積雪深千丈

올겨울은 봄날처럼 따뜻하다 적었네.             却報今冬暖似春

 

::: 이안눌(李安訥), 기가서(寄家書)

 

멀리 떨어져 계시는 부모님께 전화한통 드리지 않는 내가 오늘은 학교가는 지하철에서 무심히 어머니께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문자메세지를 돋보기가 없으면 잘 읽으시지도 못하고 문자메세지를 보내실 줄도 모르시지만 항시 광고 문자만 받다가 뜬금없이 내 문자메세지를 받으면 무척이나 흐뭇해 하신다고 동생이 귀뜸해주었기에...)

숙제를 하느라 몇 일 밤 잠도 잘 못 잤는데 아무 내색 없이 안부를 전했다.

그 해 겨울 눈이 그리도 많이 내렸는데 봄날 같다고 태연히 말하는 소자의 마음이 어찌나 감동적인지...오래오래 나도 행복한 거짓말을 부모님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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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죽순(雨後竹筍)이란 말이 있습니다.

비온 뒤 여기 삐쭉 저기 삐쭉 죽순이 땅을 뚫고 나오듯 어떤 일이 예기치 않ㄴ게 많이 일어나고 순서 없이 벌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대나무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몸집과 키가 정해져 있답니다.

대나무의 직경은 처음 죽순의 크기가 자신의 몸집이며,죽순 속에 감춰진 마디의 수가 앞으로 자랄 자신의 키입니다.

어린 죽순을 호기심에 열어보고 수많은 대나무의 마디가 이미 그 속에 있음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하지만 그 뿌리에서 죽순의 모습으로 땅을 뚫고 나오기까지 4년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일단 땅을 비집고 나온 죽순은 대나무로 성장하기까지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하루에 한 자가 자라기도 한답니다.놀라운 성장력이지요.땅을 뚫고 나오기까지의 오랜 시간,힘들고 지루하고 그래서 포기하고도 싶은 시간이었겠지요.하지만 대나무가 지닌 무서운 성장속도는 바로 땅 속에서 지낸 인고의 시간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나무는 그 인고의 시간 동안 최대한 뿌리를 넓게 뻗고 자양분을 빨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긴 나무를 버티게 해주는 것 또한 죽순의 옹골찬 마디입니다.그 짧고 단단한 마디에서 강인함이 나오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아름답습니다.

 

...1년전 이맘때 이 글을 읽었을 무렵 나는 지루하고 추하기 짝이없는 기다림에 지쳐버렸을 때였다.하지만 이제는 안다.동일한 시간의 흐름을 두고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얼마만큼의 노력을 했는지가 그 아름다움의 척도가 된다는 것을...

2004년,나는,기다림의 미학을 절실히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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