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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쓴 원고를 책으로 만든 책 - 새끼 고양이, 길 잃은 고양이, 집 없는 고양이를 위한 지침서
폴 갈리코 지음, 조동섭 옮김 / 윌북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강아지와 고양이를 동시에 키우며 혼숙시키던 어린 시절. 강아지의 재롱을 보며 주인에 대한 애정을 느꼈고, 고양이와 눈싸움을 벌이며 맹랑한 녀석의 냉랭함만을 읽었다. 미운정만 쌓여갔던 그 고양이의 눈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모든 행동에 있어 조심스러운 동작을 보이고, 침묵과 고독에 익숙하게 지내는 고양이는 이리저리 부산을 떨어대는 강아지보다 확실히 영리해 보였다.
저자는 그런 영리한 고양이를 이 책의 실제 저자로 내세우고, 자신은 중개 역할인 이 책의 출판업자정도의 위치로 숨어버린다. 참으로 기발한 구성이다. 폴 갈리코가 쓴 이 작품은 1964년 출간된 뒤 지금까지도 미국과 유럽의 애묘가들 사이에서 ‘고양이 책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명저이다.
책 속 저자인 고양이는 생후 6주 만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엄마를 잃고 고달픈 야생 생활을 하다가 인간가족을 접수한다. 새끼나 떠돌이고양이들에게 인간을 길들이는 법을 가르쳐주는 강의서인 셈이다. 책의 구성은 아주 짜임새 있고 치밀하다. 그 어떤 나약한 고양이라도 인간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끔 자세하면서도 독보적인 경험과 내용들로 적나라한 충고까지 서슴지 않는다.
고양이는 인간과 함께 생활을 하며 그들을 밀도 있게 관찰하여 얻게 된 행동지침들을 소개한다. 그러나 실상 그 내용은 영리한 고양이가 그보다 조금 멍청한 인간을 다룰 때 감수해야할 부분이라는 것. 과연 인간은 세계정복을 꿈꾸는 고양이들에게 한껏 농락당하며 살아가는 희화화의 대상이라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인간을 접수할 줄 아는 고양이의 지혜가 탁월한가. 그러한 고양이의 세계를 발견하고 책을 쓴 인간저자의 지혜가 더 탁월한가. 이것을 논하고 싶을 정도로 이 책의 고양이는 내게 섬뜩한 공포를 안겨주었다. 길거리에 떠도는 고양이들도 함부로 무시하지 못할 처지가 되어버린 내게 다만 이 책이 인간의 소설이란 점이 위안일 뿐이다.
문체가 모조리 낮춤말이었기에 재밌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고,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예민한 동물들은 아주 사소한 주인의 행동을 통해서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은 고양이를 키우고 있지 않지만, 앞으로 고양이를 키우게 된다면 책 속 저자만큼이나 영리한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애묘가라면 한번쯤 꼭 읽어봐야 할 필독서라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