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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 손턴 와일더의
손턴 와일더 지음, 김영선 옮김 / 샘터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사고사. 얼마나 빈번해졌는가. 그 덕에 우리는 얼마나 무뎌졌는가. 발전과 발달이 가져다 준 폐해 중 하나라고만 여기면 될 것인가. 뉴스자막을 보면 대개 ‘좌커브 구간 화물트럭 전복 후, 연쇄 추돌 사망사고’ 정도 표기되고, 읽는 사람들도 대개 그러려니 하는 형국이 되어가고 있다. 사고당한 사람은 없고, 사건만 남는 현실에 살고 있는 지금. 사고(事故)를 당한 사람이 가진 인생을 봄으로써 사고(思考)를 달리할 필요가 있었다.
손턴 와일더. 그는 소설과 드라마 부문에서 세 개의 퓰리처상을 수상한 유일한 작가로 20세기 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손꼽힌다. 예일대학에서 학사, 프린스턴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으로 석사를 받고, 시카고대학과 하버드대학 교수로도 일했다. 그가 20대의 말 집필한 이 책은 ‘가장 위대한 문학적인 선물’이자 ‘현시대에 이 작품을 능가하는 작품은 없다’고 할 만큼 문학성을 인정받았으며 ‘문장가들의 교과서’로 불린다.
어느 날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가 무너져서 그 위를 건너던 5명이 추락사했다. 이 책은 그 5명의 인생여정을 다루며 종국에는 왜 그 날 그 다리 위를 건너게 되었는지를 말해준다. 자기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딸에게만 집착하다 자신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는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러 가는 몬테마요르 후작부인. 그 옆에는 깨달음의 매개체가 된 현명한 페피타. 형의 죽음에 대한 실의를 극복코자 항해를 떠나기 전, 자신을 키워준 수녀에게 선물을 사러가는 길이었던 에스테반. 카밀라가 병에 걸려 배우생활을 접자 그 아들을 데려와 교육시키려던 피오 아저씨. 그리고 따라온 카밀라의 아들 돈 하이메. 이 다섯 명이 그들이다.
특별할 것 없던 그들의 일상, 심리, 계획 등을 저자의 문학적 필체로 만나니 무언가 그들의 세상이 달라 보이는 듯싶지만, 객관적 눈으로 바라볼 때 그냥 그렇게 있을 법한 인물들 이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겪은 아픔·실연·상처를 벗어버리고 새 길을 모색코자 했던 시점에서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에 발을 들인다. ‘과거를 잊고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려던’ 다리는 끊어졌고, 그들은 죽었다. 사고사이다.
사실 이 책에 대한 문학적 찬사로 인해서 필체의 수준을 탐닉코자 집어 들었다면 만류하겠다. 고전에 일각연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필력에는 감동되기 어렵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훌륭한 문학적 접근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문호들에게 대하기는 겸연쩍다. 다만, 저자의 메시지가 이 책 전반에 녹아있어 그 속내를 읽어 내려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의 구성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최고’라는 말을 넣어서 수식할 만큼 자신 있는 책이었다면, 추천사나 들어가는 글을 다 뒤로 넘기고, 첫 장부터 저자의 글을 만나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긴장감을 가지고 책장을 편 후, 내용을 요약해서 저자의 글을 미리 설명해버리는 글을 만나는 것은 그닥 유쾌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더욱 깊이 있는 이해가 있을 수 있어서 첨부된 내용은 좋았다고 생각한다.
심리에 대한 탁월한 묘사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에 저자가 얼마나 놀라운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 책을 통해 좋은 작가 한분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장마다 그의 묘구들로 넘쳐나지만 지금의 이런 나에게 지독한 여운을 주는 그의 한마디는 이것이었다.
여느 외로운 사람처럼 그는 우정에 거룩한 매력을 부여하였다. (p.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