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씽킹 - 행동심리학이 파헤친 인간 내면에 관한 매혹적 통찰
해리 벡위드 지음, 이민주 옮김 / 토네이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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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배움이라는 것은 사람을 더 이성적으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이 먹을수록 생각의 중심이 더 견고하고 고찰의 각도가 더 깊어진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 많은 시간을 ‘생각’하는 데 쓰고 있다 해도, 그 생각이라는 것이 다분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이며 의존적인 경향이 많다. 그리고 특별한 자각이 없다면 그 생각이라는 것은 언제나 쳇바퀴 돌 듯 한다. 지겨울 정도로.

 

이 책은 서두부터 그 쳇바퀴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었다. 나 역시 ‘한 골만 더 넣으면 승리하는 경기의 마지막 공격 때 그 슛을 날릴 선수를 선택하라’면 단연 르브론 제임스거나 코비 브라이언트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르브론의 팬이 아니라면 코비를 먼저 생각했을 것이다. 경기를 압도하는 그의 자신감 있는 (엄청난) 플레이는 그가 가진 실패율 기록 따위를 잊게 할 정도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이 책이 필요했다. 이렇게 생각 없는 선택으로 인생을 살면서도 잘났다고 떠들고 있으니까 말이다.

 

저자는 해리 벡위드. 스탠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마이크로소프트, 휴렛패커드, 제너럴 모터스, 머크를 비롯한 <포춘>200대 기업에서 최고비즈니스 컨설턴트로 활약하고 있다. 세계적인 비즈니스 스쿨과 개국에 소재한 굴지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명성 높은 강연을 펼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마케팅협회로부터 최고의 상인 ‘에피상’을 받았다. 그가 저술한 <보이지 않는 것을 팔아라>는 비즈니스 전문가와 학자들이 뽑은 󈥴세기 최고의 경제경영서’로 평가받았다.

 

책은 총 12장으로 구성된다. 뭘 말하고 싶은 걸까? 언씽킹. ‘왜 생각 없이 사세요?’ ‘생각 없이 살다보면 어떻게 결말이 오는지 알려드릴까?’가 아니라 ‘의도되지 않은, 그야말로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된 욕구’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표지에 ‘행동심리학’이라는 단어가 나오긴 했지만 실험결과를 토대로 한 논문 같은 형식은 아니다. 제목이 아주 위트 있게 설정되어있는데, 분명한 것은 내용이 더 재미있다는 것. (아주 드문 경우다)

 

그 분석, 도저히 흠 잡을 데 없는,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다. 12개의 목차 중 11개의 제목은 모두 ‘우리는’이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어디까지가 ‘우리는’일까. 그럼에도 저자의 자신감이 과하지 않다는 것을 그 내용들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읽으면서 자각한다. ‘아, 이런 심리에서 기반 한 것이로구나’하고. 가령 제 5장 같은 경우, 우리는 모두 눈에 띄고 싶어 할까? 제목만 보면 반문이 일지만, 저자가 설명하는 ‘감응저항 - 자유의 포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명령뿐 아니라 제안까지도 거부하는 성향’의 사례들을 접하면서 유별나다 생각했던 나의 행동이 일반화되는 특이한 경험을 한다.

 

저자가 비즈니스에 관련한 인물이기 때문에 따져보자면. 기업인과 소비자 양측에게 아주 유용한 내용이다. 먼저 기업인들에게는 마케팅의 열쇠를 쥐어준다. 대중의 성향을 정확히 분석하고 각각의 포지션별 성공담을 들려줌으로써 ‘지금의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알려면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보여준다. 창의적인 마케팅을 하기 위해 노려야 할 점은 이 책에 가득하다. 이 책을 접한 소비자는 현명해지는 것이다. 기업이 노리는 바를 알게 되고, 각각의 마케팅기법에 현혹되지 않고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다양한 지식들로 재미를 맛봤다. 특히 저자가 음악에 관심이 많은 듯 했는데, 여러 음악적 요소들을 언급하면서 풀어나가는 이야기들은 같은 관심사에 묻혀있는 나에게도 좋은 작용을 했다. 놀라움을 선사한 여러 음악들 (p. 37-40)과 외로움에 대해 노래하는 여러 음악들 (p. 127-129)가 대표적이다.

번역도 꽤 좋았다.

 

장의사가 그의 시신을 뒤집었을 때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어요. (p. 198)

 

장점은 너무나도 명쾌한 문체이다. 술술 넘어가고 지루함 없이 이어가는 그의 템포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내용에 대한 신뢰도는 더 말해 무엇하리오. 좋은 책이다. 현명해지고 생각주머니를 넓혀주는 책이다. 살다가 또 머리가 둔해지는 날, 다시 펼치면 지금보다 더 좋은 효과를 보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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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너에게
필립 체스터필드 지음, 서영조 옮김 / 책만드는집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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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가면서 또 알아가면서 안타까운 점은 그만 만나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도 많고, 훌륭한 사람도 많지만 만남을 지속하고 싶은 사람은 정말 드물다. 나 역시 누구에게든 계속적으로 호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닌 듯하다. 아직은 비린내가 심해서 물정모르고 까불 수밖에 없는 처지랄까. 그래서 이 책은 내게 보물 같았다. 이보다 더 심각하게 나 자신을 생각해 본 책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저자는 필립 체스터필드. 18세기 영국의 정치가이자 문필가로 알려진 그는 케임브리지대학을 중퇴한 뒤 유럽 일대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혔다. 특히 당시 문화적으로 가장 발달해 있던 파리에 머물며 프랑스의 예법과 문화, 교양 등을 익혔다. 저서로 네덜란드 대사로서 헤이그에 머물 때 태어난 아들에게 보낸 편지 글을 모은 <아들아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라>가 있다.

 

목차는 총 27가지로 되어있다. ‘겸손, 허영심, 거짓말, 시기, 예의범절, 선량한 성품, 품위, 남을 기분 좋게 하는 기술, 청결, 옷차림, 말씨, 게으름, 관찰력, 방심, 우정, 지식, 교제 집단, 쾌락, 위엄, 학업, 시간, 검약, 사소하지만 중요한 습관들, 대화, 현학적인 태도, 몇 가지 주의점, 고대로부터의 조언’이 그것인데 모든 제목에 다 호기심이 인다. ‘저자가 이 대목에서는 어떤 것들을 충고할까’그 다음 챕터로 빨리 넘어가고 싶은 마음에 중간에 덮을 수가 없었다.

 

내용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오히려 많은 주제들 속에서도 몇 가지로 추려지는 강조점이 반복되고 있으며, 각 주제의 연결성 또한 훌륭하다. 그 내용을 간추려보면 첫째, 남을 대할 때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편안하고 공손한 태도를 가질 것. 둘째, 말씨나 품행에 있어 부드럽고 유연함을 지닐 것. 셋째, 훌륭하고 현명한 사람들, 되도록 상위계층과 어울리고 그들에게서 유익한 점들을 흡수하라. 넷째,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 마음 스스로 읽어내는 훈련을 하라. 다섯째, 친구는 되도록 많이 만들되 적은 두지 말라. 대충 이 정도로 요약된다.

 

한마디로 저자는 젊은이들에게 ‘교양 있게 사는 법’를 가르치고 있다. 시대에 맞는가를 논하기 전에 지금의 젊은이들은 정말 교양이란 단어와는 맞지 않기 때문에 정말 이런 ‘젠틀맨’이 있다면 오히려 그 희소성과 가치가 빛날 수 있는 인물이란 생각이 든다. 참고로 저자는 독자를 ‘남성’으로 한정하여 글을 쓰고 있다. 시대적으로 여자가 그의 글을 읽기는 쉽지 않았나 보다. 그러나 여성이 읽어도 도움 되는 내용이 실로 엄청나다.

 

문체를 비롯하여 이 책은 고전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약점들을 정확하게 꼬집고 그 부분에 있어서 어떤 노력들을 기울여야 하는지, 왜 그런 노력을 지금부터 해야 하는지 차근차근히 설명해 준다. 그리고 진정한 독자라면 그의 말에 온전히 설득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두고두고 봐야 할 인생의 교과서 같은 책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몸가짐을 요구하는 부분도 있고, 이렇게까지 ‘남의 눈’을 신경 쓰며 사는 게 더 가식적이며 스트레스만 쌓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세상에 대해 뭣도 모르면서 알량한 치기 하나로 뛰어드는 나 같은 철부지가 있다면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좋은 책이었다. 좋은 인생을 사는 길은 먼저 좋은 인격과 품위를 갖출 일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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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중국 가난한 중국인 - 중국인의 삶은 왜 여전히 고달픈가
랑셴핑 지음, 이지은 옮김 / 미래의창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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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돈은 많으나, 세계경제대국 2위의 반열에 올랐으나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후진국스럽다. 중국이 지금처럼 해서 더 부강한 국가가 되더라도 그 나라를 존경하거나 제2의 중국을 꿈꾸는 나라가 생기진 않을 것이다. 너무도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 하나하나를 집어내며 여전히 가난과 저급한 체제에 허덕이는 많은 중국인들을 대변해 줄 책이 나온 듯 싶었다. 착각이었지만 제목은 그런 대로 흥미로웠다.

 

저자는 랑셴핑. 1956년 타이완 출생.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에서 금융학 박사를 취득, 뉴욕대학교 부교수를 거쳐 시카고대학교에서 교수 역임. 2006년 중국 <신화통신> 선정 ‘중국 10대 화제인물’ <월스트리트 와이어>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중국 10대 경제학자’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현재 홍콩 중운대학교 석좌교수이자, TV프로그램 진행 및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중국경제의 구세주는 누구인가><누가 중국경제를 음해하는가><한계를 초월한 금융전쟁> 등이 있다.

 

프로필만 보면 이런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사며, 각성제의 역할을 할 것도 같다. 그러나 내용은 읽을 만한 게 못되었다. 첫 장부터 중국민들의 삶이 어떤지를 푸념하고 있는데, 철저하게 중국인의 입장으로서의 푸념거리이기 때문에 객관성을 읽고 있다. 그는 중국이 이만큼 성장한 원동력을 무엇으로 보고 있는지가 의문이 들 정도로 미국과 유럽을 비판하고 그들의 공로 또한 상당히 폄하하고 있다. 문체는 또 왜 이리 유치한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통해 원자재와 가격 결정권을 장악한 후 중국에서 상품을 제조함으로써 중국의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을 낭비할 수 뿐만 아니라 노동력까지 착취한 것은 아닐까? (…) 중국이 개혁에 박차를 가할수록, 세계를 향해 활짝 문을 열수록, 중국이 열심히 물건을 만들어낼수록, 미국과 유럽이 잘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p. 33)

 

가히 세계적인 경제학자의 언급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의 발언이다. 전체적으로 책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일찍이 알았더라면 끝까지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뭐, 인프라 건설에 투입될 자금을 서민에게 주어서 그들을 부유하게 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거나 (p. 43) 미국사회에는 모든 구성원이 각자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공정한 기회를 제공받기 때문에 물질만능주의 현상이 그리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인과관계의 성립은 둘째 치고라도 전제조차도 명확하지 않다. 저자는 이 문제를 처음 언급할 때 ‘짝짓기 프로그램’이나 ‘가수 선발 오디션’같은 TV프로그램이 유행하는 것을 두고 젊은이들의 신분상승의 욕구를 반영하는 세태를 꼬집고 있다. 그러나 그런 프로그램은 미국이 먼저 시작했고, 동류의 프로그램이 중국에서만 유행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의 과한 엄살이 와 닿지 않는다.

 

젊은이에게 공편한 ‘신분상승의 기회’를 제공해야지만 배금주의에 갇혀있는 중국의 제모습을 찾아 성숙할 수 있을 거라 (p. 101) 말하는 저자는 아직도 ‘신분제’의 체제에 살고 있는가. 중국은 지금의 세계의 공장이라 일컬어진다. 모든 2차 산업의 주요생산처가 되고 있는 그곳은 값싼 노동력과 부지 같은 ‘싼 맛’이 이루어 낸 결과이다. 그래서 그들은 뭐가 되었나. 경제대국이 되었다. 저자는 애플을 욕한다. 애플의 경영방침이 중국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누가 하청업체를 돕기 위해 일하나. 그런 정도의 어려움은 감수해야 세계적인 기업의 하청이라도 얻는 세상 아닌가. 세상에 애플의 비밀보장을 요구하는 시스템도 중국에게 불리하다며 불평하는 뭐 이런 학자가 다 있나 싶다. 그러려면 차라리 그런 세계적인 기업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한 중국 기업인들을 탓해라.

 

뭘 제대로 알고나 있나 하는 생각. 특히 노조에 대한 언급(p. 157)에서는 여실히 드러난다. 그리고 책은 대체적으로 이런 식이다. 더 언급할 가치도 없는, 지식도 아니고 코미디도 아닌 쓰레기에 불과한 책이다. 이런 책을 한국에서 번역했다는 자체가 어이가 없다. 무엇을 읽으라는 말인가. 중국경제학자의 시덥 잖은 푸념 나부랭이? 정말 들고 있다는 자체가 불쾌한 종이덩어리였다고 밖에는.

 

중국에 관한 그 어떤 책도 꺼려지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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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예찬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준미 옮김 / 하늘연못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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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책이었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그의 책을 책장이 아닌 서랍에 고이 모셔 놓는다. 문학인들에게는 많이 회자되는 작가 그리고 작품이었지만 나에게는 그의 명성이 생소했고 찬사 받는 그만의 세계가 궁금했다. ‘여행자 예찬’처음 접하는 그의 산문집. 표지의 일러스트만으로도 신선한 느낌을 받으면서 시작했다.

 

프란츠 카프카. 1883년 7월 3일 체코 프라하에서 삼남으로 태어났다. 로이체 김나지움에서 스피노자와 다윈, 니체를 탐독했고 1901년 프라하대학에서 법학을 수학한다. 1906년 법학 박사 학위를 받고, <시골에서의 결혼준비>를 썼다. 3년 전에 이미 <어린이와 도시>를 썼지만 원고를 분실했다고 한다. 이후 여러 편을 썼지만 1915년 <화부>로 폰타네상을 수상한다. 1924년 4월부터 빈 근처 키를링 요양원에서 요양했고, 7월 3일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고 한다.

 

총 8개의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목으로 미루어 봤을 때 중심소재의 연결성을 그 기점으로 한 듯 보인다. 첫 장에는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데 저자의 상상력은 기발하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하다. 배경은 아주 사실적이지만 등장인물은 굉장히 비현실적이면서도 그 심리묘사는 또한 인간적이다.

 

일반인의 메마른 감성에서 바라보자면 먼저는 혹평이 주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어떤 작품은 초등학생이나 끼적거렸을 법한 문체와 전개이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들이 전체적으로 무지 산만하다.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전에 한숨이 나오게 한다. ‘이런 작품들에서 저자와 소통하려면 대체 얼마나 순수한 영혼이어야 한단 말인가!’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면서 저자가 가진 눈을 공유할 수 있다. 저자가 세상을 보는 관점도 보이지만 무엇보다 저자가 얼마나 세심한 관찰력을 지녔고, 작은 것에서도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가 느껴진다. 특히 [유대인 교회당의 동물]편에서 보여주는 배경과 주인공에 관한 묘사들은 문학적이면서도 분화된 관찰력을 엿볼 수 있다. 가령, 이런 표현들에서도 말이다.

 

털의 진짜 빛깔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고, 어쩌면 눈에 보이는 색깔은 단지 먼지와 털 속에 엉켜 버린 모르타르로 인한 것일 뿐이며, 그 색깔은 오히려 교회당 내부의 회벽 색과도 비슷한데 그 동물의 색깔이 아주 조금 더 밝을 뿐이라고. 겁약함을 제외하면 그 동물은 아주 조용하게 별다른 움직임 없이 사는 존재이다. (p. 37)

 

이 책은 엄청난 이야기 거리가 숨 쉴 틈 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은 흐름을 띤다. 작가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창조적 발상의 연속성이다. 오롯한 작가만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기에 작품들마다 이해할 수 없는 미묘한 여운이 남는다. ‘애초에 그의 경지를 이해해 보겠다는 어리석은 마음을 버린다면 더 즐거운 책읽기가 되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렇기에 계속적으로 그의 작품을 한 편 두 편 읽다보면 그땐 이 책이 좀 더 친숙하고 유머러스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한다. 아직 내게는 너무도 고급스러운 문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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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추락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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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는 지점이 어디든, 그 지대의 고저가 어떻든, 설령 인생에서 가장 밑바닥에 와 있는 순간이라 확신할지라도 인간은 거듭 몇 번이라도 더 추락할 수 있는 나락이 존재하는 것 같다. 객체로써 경험하는 (당하는) 추락은, 떨어지는 그 찰나가 아닌 - 추락의 순간에는 보통 이성적일 경황이 없다 - 이후에 벌어진 고통으로 그것을 인지하기 마련. 그러니 그것은 당연 공포일 수밖에 없다. 멋진 추락, 과연 그런 게 있을까. 제목부터가 끌렸다.

 

하진. 1956년 중국 랴오닝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진쉐페이. 현재 활동하는 작가 중 노벨문학상에 가장 근접한 작가라 불린다. <호랑이 싸움꾼은 찾기 힘들어>로 펜 헤밍웨이 문학상을, <붉은 깃발 아래에서로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문학상을, <기다림>으로 그해 전미 도서상과 펜 포크너상을, <전쟁쓰레기>로 또다시 펜 포크너상을 수상하고 퓰리처상 최종후보에도 올랐다. 현재 보스턴 대학교영문과 창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책은 그의 단편소설집이다. 이 책의 가장 마지막 소설이 ‘멋진 추락’이다. 그러나 내용 전체가 ‘멋진 추락’으로 마무리 짓고 있다. 그래서 각 소설의 초입부터 결말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총 12편의 소설이 담겨있는데 모두 미국에서 살아가는 중국계 이민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배경으로는 뉴욕 플러싱이 자주 선택되었는데, 이곳은 당시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많이 지냈던 곳이라고 한다. 이민 온 중국 사람들의 불안정하고도 고단한 삶을 다루고 있는데, 심리적인 묘사에 있어서는 중국 전통문학의 느낌이 많이 든다.

 

구성도 좋지만 각각의 소설이 가진 연결성들이 참 좋았다.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때의 변화에 대한 이질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각 소설에는 작가 특유의 분위기와 통일성이 잘 발휘되고 있는 듯하다. 또 소설마다 신문의 상표가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가 펼친 문학적인 표현에 감탄하게 되는 몇 구절이 있었다.

 

그의 마른 몸이 땅딸막한 그림자를 비스듬하게 드리우고 있었다. (233쪽)

 

그녀는 몇 시간동안 깨어 남편이 코 고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부서진 선풍기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285쪽)

 

보름달이 흰 빛에 적셔진 조용한 도로와 벽, 집들을 비추고 있었다. 벌레들이 숨어 칸 것처럼 희미하게 울었다. (335쪽)

 

멋진 추락. 추락을 할 주체가 됨으로써 추락 전에 이미 그것을 경험할 결심과 마음의 각오가 끝난 상태로 아주 천천히 추락 속으로 들어가는 그 시발점 앞. 거기에서 독자는 추락의 소지를 안고도 덤덤히 그 길을 가는 주인공들을 통해 또 다른 인생을 배운다.

 

매우 재미있다거나 머리가 지끈거릴 만큼의 깊이 있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굉장히 인상 깊은 책이다. 이런 단편을 만났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단편치고는 굉장히 집중도가 높은 책이었다. 산만하지 않았고, 과장도 일체 없었다. 그저 다 읽고 나면 ‘멋진 추락’이라는 제목에 다시 한 번 고개 끄덕여지는 고급스러운 단편묶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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