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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
류명찬 글, 임인스 원작 / 보리별 / 2011년 5월
평점 :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 했다. 제목도 표지도 범상치 않게 해놓고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걸레라고 불리는 것의 이면을 들여다본다면, 진짜 걸레는 그들을 욕하고 손가락질하고 아무렇지 않게 조롱하는 우리들이 아니겠냐'고 저자는 말한다. 생각의 오류를 범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럼 옳고 그름의 잣대는 무엇인가. 그것부터 설정해야 했다.
저자는 임만섭. 2005년 유머사이트 ‘웃긴대학’에서 아마추어 유머 작가로 활동. 첫 장편 만화인 “걸레”를 완결했고, 네이버 웹툰에 “싸우자 위신아”로 정식 프로작가로 데뷔했다고 한다. 2010년에 먼저 싸우자 귀신아 시리즈 3권을 출간했다. 미술을 전공했지, 글을 전공하지는 않았다. 웹에서 연재한 원작은 만화였는데, 이 책은 텍스트로 출간되었다. 그러니 독자를 잡으려면 필력이 있어야 했다.
책은 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성이 아주 간단하다. 여고생 이수정. 그를 성폭행한 무리는 김요한의 패거리. 이수정을 좋아하는 신천명. 학교이사장의 아들 김요한이 이수정을 상습 성폭행했고, 보다못한 신천명은 이 일을 막기 위해 우발적으로 옥상에서 투신한다. 10년을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다가 기적적으로 깨어난 그. 이수정은 몸파는 걸레가 되었고, 김요한은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
그래서 복수를 꿈꾸는데, 당시 김요한의 무리였던 김하융이 죄책감에 신천명을 돕는다. 사건은 이게 끝. 그리고 최무직 형사가 집요하게 10년전 사건을 캐고 다닌다. 결말은 뭣도 아니게 끝난다. 김수정 자살, 김요한 총살.
솔직히 작품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구성, 전개, 필력이다. 심리묘사도 너무 직접적이어서 딱 인터넷소설 수준이다. 한정된 소재를 늘려서 풀어내느라 있는 대로 다 적어내고, 그래서 지루하다. 소설로서는 하등의 가치가 없다.
이 책의 걸레는 원치 않는 성폭행을 당했고, 그 일이 사진으로 유포되었고, 가족한테 버림받았다. 불쌍한 여인이고, 그래서 망가진 심신으로 몸 파는 곳에 들어갔고 그렇게 살다 죽었다. 불쌍하다. 중요한 건, 그런 여인들의 삶을 속속들이 알아보면 불쌍하지 않은 여인이 없다. 다들 불행한 가정이나 환경에서 닳고 닳은 여자들이다. 원치 않는 하루하루를 연명할 뿐인 인생이 비단 몸파는 여자의 인생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래서 우리가 그녀들을 동정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거다. 세상에는 그보다 더 험한 일을 겪고도 삶의 지조를 지키며 사는 인생도 허다하다. 요즘은 등록금 벌려고 몸 팔고, 명품 사려고 몸 팔고, 쉽게 살려고 몸 파는 젊은 인생도 많다. 불행이든 요행이든 몸 대서 돈 받는 일을 하는 여성들을 옹호해야 할까. 오히려 불행을 겪어도 자기를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이들을 격려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저자는 묻는다.
한 남자를 사귀면서 그와 자는 건 사랑이고, 사귀지 않고 이 남자 저 남자와 자는 건 더럽다고 말하는 게 맞는 논리일까? 사랑이 존재하지 않으면 더럽고 사랑이 존재하면 더럽지 않다는 기준은 누가 만든 걸까. (p. 192)
나는 말한다.
한 남자를 사귀던 두 남자를 사귀던, 거기에 사랑이 있건 없건 그건 개개인의 문제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을 두고 어떤 미친 사회가 걸레라고 삿대질하나. 사회적으로 조롱받는, 그리고 이 소설에서 다룬 걸레는 몸을 파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여자이다. 어쩌면 이도 저도 안 되는 인생이 몸이라도 파는 구걸일 수 있다. 성을 매매하고 돈을 받는 것이 정당한 노동일까. 사회가 끌어안아야 할 도덕적 의무가 없는 이유는 그들 스스로 도덕을 버렸고, 더 이상 사회에 어떤 기대나 바람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건드리면 막 나간다. 5월에 있은 성매매여성 백화점 집단 나체시위처럼 말이다.
분명 인권이 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진 사회일원이라 하겠다. 사회 어떤 이도 그들을 걸레라고 비난할 권한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미화하거나 동정할 가치도 없다. 불행한 인생을 핑계로 하여 사회 암적 요소를 자처한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던지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교육 안에서도 마땅히 행해질 것이며, 곧 성매매라는 것이 떳떳한 신분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아닌 건 아닌 것이다. 어줍지 않은 소설 한 권으로 독자에게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