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난 죽고 없을 거야 탐 청소년 문학 2
줄리 앤 피터스 지음, 고수미 옮김 / 탐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패트릭 로스퍼스의 <바람의 이름> 1권에서 남자주인공 크보스는 시커먼 대형거미의 모습을 한 악마를 죽이기 위해 길을 떠나며 제자 배스트에게 쪽지를 남긴다. 그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네가 이 편지를 읽었을 때쯤 난 죽어있을 거다”(p. 75) 물론 크보스는 부상을 입고 살아 돌아와서 배스트에게 핀잔을 듣는다. 이 문구가 제목인 이 책 주인공은 살 수 있었을까. 읽기도 전에 표제부터 충격이 오는 책이다.
 
저자는 줄리 앤 피터스. 1952년에 태어나 미국 덴버의 변두리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교사였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이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청소년을 위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스스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이라고 밝히며 청소년의 성적 지향에 대한 고민과 갈등을 다룬 소설을 주로 쓴다. 전미 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른 <루나>라는 작품이 있다.
 
여주인공은 대일린 라이스. 이미 몇 번의 자살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부모의 자살방지 구속아래에서도 더 완벽한 자살방법에 몰두하는 중학생소녀다. 인터넷도 감시의 대상이지만, 모든 접속정보가 차단 되는 자살사이트에 들어가고, 그 아이의 자살 그 최후의 날은 23일 뒤로 정해진다.
 
전학을 많이 했고, 학교에서는 이미 왕따를 많이 거쳤다. 많이 나가는 몸무게 때문에 아이들의 놀이감이 되어 상처를 받았고, 친구를 원하는 마음을 포기한지는 이미 오래다. 또래 남학생들에게 남자화장실에서 성폭행을 당한 기억도, 감금을 당했던 기억도 누구한테 털어 놔 보지 못했다. 부모는 그 아이의 말을 들어준 적 없다. 사랑한다는 명목 하에 자기 방식대로만 키웠고, 많이 바빴다.
 
여러 번의 자살시도는 부모와의 더 큰 벽을 만들었고, 아이는 마음을 얼려버려서 더 무감각해지려고만 한다. 학교가 끝나면 부모의 차를 기다리는 벤치가 있다. 어느 날부터 남자애가 매일 그곳에 와 귀찮게 군다. 호지킨 림프종이 재발되었지만, 삶에 대한 간절함을 가진 밝고 긍정적인 산타나라는 남자아이. 그 아이와 연결되면서, 또 자신의 일을 자살사이트에 모두 털어놓음으로써 대일린의 마음온도에는 변화가 찾아온다.
 
황시운의 소설 <컴백홈>에서도 느꼈지만, 숫기 없고 뚱뚱한 아이가 현대학교생활에서 겪어야 하는 비운은 국경을 막론하고 너무나 잔혹하다. 그리고 부모의 무지가 발현될수록 아이는 더 황폐해 진다. 작은 가슴의 소녀가 얼마나 큰 상처를 안았는지, 굳어가는 그 아이의 마음이 만든 방어막이 자칫 자폐로 나아가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기분이 나아지려고 그 고통을 조금씩 먹어 버렸다. 그런 다음 그 고통이 나를 먹어 버렸다. 내가 왜 모욕적인 말들을 못 잊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나에게 쏟아졌던 모든 상처의 산물이다. (p. 43)
 
그 밝고 긍정적인 산타나는 대일린이 죽으려고 표백제와 암모니아를 들이켰다는 말을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물어봤다면 페인트 희석제를 마시라고 말했을 거야. 아님 석유나. 석유 제품은 신체를 심하게 파괴시키거든.”(p. 281) 자살이란 것에 매료되어있던 소녀는 그 말에 펑펑 울어버린다. 가끔 어른들은 이런 말을 한다. “울면 됐다. 울면 안심해도 된다.”



소녀는 정말 안심할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온다. 소녀는 자기보다 더 힘들고 아픈 것을 품고도 살고자 하는 소년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사람들은 다 그렇다. 위로가 필요하다. 자신을 알아주고 품어줄 수 있는 누구. 그것이 부모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시사 하는 바가 큰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부모는 무진장 노력한다. 정신과 의사에게 정기적인 검진을 받게 하고, 같이 있으려고 하고, 좋은 말도 한다. 아이는 그것을 진심으로 전달받지 못한다.
 
부모가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어 무기력해지는 동안, 텅 빈 영역을 친구가 메웠다. 중요하다. 살아가면서 좋은 친구를 얻는 것은. 소년은 그 소녀와 친구가 되기 위해 필요이상으로 노력했다. 그만큼 소년도 외로웠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지금의 나를 직시하게 하는 부분이다. 내 우정도 다 이러하기 때문이다. 단호한 자살을 막아낸 것이 우정이라는 점에서 지금 내가 가진 우정 또한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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