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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나쁜 연애 민음의 시 118
문혜진 지음 / 민음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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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에는 나도 질나쁜 연애를 한번 해 보아야 겠어.

시가를 입에 물고, 긴 머리를 풍어헤치고, 제니스 조플린의 음악을 들으며 데킬라 한잔을 들이키고 신 레몬 한조각 같은 웃음을 그 남자에게 던져 줄꺼야. 그리고 그 남자의 어깨에 손을 걸치고 황량한 쿠바거리를 걷겠어. 당신과 난 연애를 하고 있다고 수시로 당신의 입에 키스를 하며 말해 줄꺼야.  

책을 읽은 여름, 난 이렇게 몇 줄의 메모를 했다. 가을의 머리카락이 조금씩 보이는 지금 나는 여전히 질나쁜 연애를 꿈꾸고 있다.

 

많은 것들이 이야기 되어오고 인식되어 왔다. 많은 세계들이 이미 그려졌고 익숙해졌다. 시인은 갈수록 시가 쓰기 힘들 것이다. "질나쁜 연애"라는 조금은 키치적인 시집의 제목에 끌려 읽었다. 연애라는 단어가 한참 내 마음을 설레게 할 나이도 아니건만 시들은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상투성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은 보헤미안의 걸음걸이, 장난 섞인 농담은 가장 무거운 철학적 주제. 시 들은 그렇게 독특했다.젊은이라는 코드 하나만으로도 구십프로의 감성 만족이 있을 것이었지만 시는 그 이상이었다. 물론 어찌보면 키치적 감성이 오버되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시는 제대로 이야기 하고 있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기에 나는 이렇게 쓴다고.

 그동안 읽었던 시들의 만남과 첫인상과는 조금 달라 낯설었기에 만족도가 낮은 점은 이해해 주시라. 길여긴 나의 편협함은 쉽게 버리지 못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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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복형제들
이명랑 지음 / 실천문학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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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라는 장소가 불러 일으키는 감성과 그 안의 미학.

작가는 시장의 미학을 잘 살려 내고 있다. 그것은 시장이라는 장소에서 뿐만이 아니라 시장에서 굴러 먹는 각 인물들의 등장과 그 인물들 간의 관계맺기를 통해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소설은 작가 이명랑이 전작 소설의 시장 이미지를 가져왔다는데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소설속의 인물, 소외받은 그네들이 얽히는 그 과정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 인물의 다양함과 평범치 못한 그 성격은 어찌보면 시장 한구석에 진열된 상품의 일부로 느껴진다. 상품이라?그것은 어느 할인마트점의 깨끗하고 보기 좋게 진열된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조금은 문드러지고 손 때 묻어있지만 흥정이라는 우리내의 말로 정답게 주고 받을 수 있는 정인 것이다. 그 시장통에서 흐르는 정으로 인물들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소설의 제목처럼 하나의 형제들로 구성되어진다. 정찰제 가격으로 그네들을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고 바라볼 수 없는 것이다.  

이 소설은 화자를 통해 그려지고 있는 인물들의 라인을 따라가는 것, 그리고 그 인물들의 성격과 상황을 따라가는 것은 어찌보면 독특하기 보다는 일상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나의 이복형제일 수 밖에 없다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는  작가의 시선이 따뜻하고 깊이가 있다.

소외되는 부분을 우리는 잊고 살아간다.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나와는 상관없다는 이유로. 그러나 둘러보면 우리의 삶 한부분에도 소설 속 인물들이 나의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번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그들을 이웃으로 느낄 수 있다면, 그런 깊이를 가질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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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체험
오에 겐자부로 지음 / 소학사(사피엔티아)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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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장애, 죽음이 끝인 아들의 장애을 통해 한 남지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포기하고 그 싶은 상황에서도, 절망이외에는 아무것도 꿈꿀 수 없는 그 상황에서 남자는 인간 그 순수 그 자체가 된다. 섹스를 원하는 동물적 감성과, 실직으로 인한 허무함 그리고 자신의 별볼일 없는 삶을 돌아보며 술을 마시고 잔득 취해 구토한다. 어쩌면 아들의 죽음 혹은 장애 아들을 키워야 될지도 모르는 자신의 절박한 삶에 대한 연민이란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 고통은 극히 개인적 체험일 수 밖에 없으며 그리고 그것은 살아가는 시간의 한부분, 아주 적은 한부분이 될 것이다.
그 남자의 개인적 체험은 그저 내가 격지 못한 어쩌면 격을지도 모르는 이중성처럼 가지 못할 곳의 지도를 보며 꿈꾸는 것과 같다.

"내가 개인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고역은 다른 모든 인간 세계에서 고립된 나 혼자만의 우울을 절망적으로 파고 들어가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아. 어둠의 동굴에서 같이 고통스런 땀을 흘려도 내 체험으로 보자면 인간적인 의미 한조각도 생기지 않아. "                                               <소설 중에서>

우물바닥에서 올려다 볼 수 있는 것은 높은 하늘 뿐 일 것이다.
그 하늘이 흐리던, 맑던 어떤 표정을 지으며 내려다 보건 올려다 볼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삶이란 것은.
삶은, 물러터지거나 싱거운 조갯살을 씹는 것처럼 그렇게 극히 개인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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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 가족의 얼굴은 마술 거울이다
정현종 옮김, various artists 사진 / 이레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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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FAMILY.

책의 제목이 너무니 직설적이게 사진의 내용을 모두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저그런 사진들의 모음, 맞지 않은 퍼즐 조각을 가지도 대충 그 크기를 잘라가며 이미 정해져 있는 그림을 맞추려는 그런 성의 없는 사진집인줄로만 알았다. 평범하고 어떻게 보면 안일할 수 있는 주제의 사진 모음으로만 인식했었다.

사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가족이 오브제가 되어 프레임 안에 담겨진 사진집이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그 친근하고 조금은 지리한 오브제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사진작가가 바라보는 가족이라는 세계는 작가의 수 만큼이나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작가가 바라보는 시선의 따스함만이 아닌 사진을 통해 느껴지는 각 가족들의 깊이와 진솔함 그리고 약간의 슬픔이 잘 어우러져 버무려져 있는 사진집이었다.

아이의 탄생을 보여 주기도 하고,
두 다리를 잃은 동생의 남은 짧은 다리를 주물러 주는 소년의 모습,
어머니 대신 잠든 동생을 업고 있는 인도 소녀,
화장으로 결혼도 생각지 못했던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안고있는 모습,
다양한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
죽기 직전의 노모를 품에 안는 사진,
목욕하는 손주 옆에서 동화 책을 읽어주는 할아버지의 모습,
짝을 떠나 보낸 사람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찍은 사진까지
많고 다양한 가족들만큼 그 속에는 다양한 삶과 그 삶속의 초상과 풍경이 숨쉬고 있었다.


가족에게 데면데면한 사람들한테나 그렇지 않은 사람한테나, 생물로서의 본능에 이미 사랑이 들어 있음을 알게 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사진으로 오늘 오후는 참으로 행복하다. 그리고 일상에 지쳐 돌아온 가족들의 얼굴은 비껴가는 오후 햇살 속에서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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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의 1/4 - 2004 제2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한수영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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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는 삶이 보였다. 그 삶은 작가의 경험 세계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혹은 내 옆에 서 있는 누군가의 삶 속의 풍경 하나를 퍼즐 조각처럼 한 조각 떼어 보여주고 있었다. 무게가 있는 소설, 바라보고 있는 시각이 가볍지만은 소설이면서도 단숨에 읽어나갈 수 있는 것은 바로 내 이야기라는, 우리 이야기라는 공감대 때문일 것이다.

물론 소설속의 공허의1/4 이라는 사막과 화자의 류마티즘이라는 상징이 좀 더 맛깔스럽게 살아나지 못한 점이나 마지막 결말의 처리가 아쉬웠다. 화자의 지리한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 부분서 부터는 독자 역시 그 지루한 일상에 하품을 하게되지만...

제목인 <공허의 1/4>은 류마티즘을 앓고 있는 소설 속 화자가 가고 싶어하는 사우디에 있는 한 사막의 이름이다. 삶에 장애가 되어 오는 류마티즘을 고칠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주는 공간 그러나 그곳은 단순히 병 치료의 공간만은 아니다. 병이라는 것은 육체에 깃든 것만이 아니다. 병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 화자의 삶의 파편 속에는 각종 병들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화자는 공허의 1/4 이라는 사막에서 그 병을 뿌리까지 말리고 싶은 것이다. 온통 삶을 축축하게 만드는 병.

누구라도 마음 속에 사막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 사막이 오래전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지라도 책을 읽는 동안 마음 한구석에 사라지고 혹은 밀쳐 두었던 사막의 모래 냄새가 잠깐 코끝을 스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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