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대가 - 분열된 사회는 왜 위험한가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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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쓴 ‘불평등의 대가(The Price of Inequality, 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본주의 국가 ‘미국’의 사회와 경제가 불평등과 모순으로 가득 찬 국가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어판 부제인 ‘분열된 사회는 왜 위험한가’는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이 무엇인지 잘 나타내고 있지요.


읽으면서 어떻게 내용을 설명할까 고민했습니다. 아무리 쉽게 썼다고 하지만 뉴스를 통해 겨우 접한 저는 경제학이나 사회학 등에서 나올법한 지식이나 현상이 생소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점점 흥미로운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뉴스나 시사 잡지를 통해 접한 우리나라 상황이랑 비슷했기 때문이지요.


저는 이 책을 내용 하나하나에 대한 감상보다 느낀 점 위주로 쓰겠습니다.


사실 이 책에 대한 추천사는 딱 두 줄이면 되지 않을까 한다. <현실의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처럼 정밀하게 설명하는 책은 매우 드물다. 그리고 이 책의 지적과 분석이 가장 들어맞는 나라는 미국 다음에 한국일 것이다.>

- p13 선대인, 해제 ‘『불평등의 대가』와 한국의 현실’에서


해제 속 내용에서 보듯이 책 속에 있는 미국의 상황을 한국으로 바꿔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그만큼 한국도 미국의 자본주의(즉 신자유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어떤 내용이 있을까요?


미국의 현재 상황은 이렇게 단순화할 수 있다. 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부자 중에서도 최상층은 더욱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갈수록 가난하지고, 그 수가 많아지며, 중산층은 공동화되고 있다. 중산층의 소득은 정체되거나 감소하고 있고, 중산층과 부유층 사이의 간극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 p89 1장 ‘1퍼센트의 나라 미국’에서


교역의 세계화는 자본과 금융 시장 자유화와 관련하여 발생한 위기만큼 극단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느리긴 하나 꾸준하게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교역 세계화의 기본적인 논리는 단순하다. 상품의 이동은 사람의 이동을 대체한다. 미국이 외국에서 미숙련 노동력을 기반으로 생산된 상품을 수입하면, 미국에서 그 상품을 생산하는 미숙련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고 이들의 임금은 인하 압력을 받는다. 미국 노동자들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갈수록 낮아지는 임금을 감수하거나 갈수록 고도화되는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 세계화를 운용하느냐와 관계없이, 교역 증대를 야기하는 세계화의 상황에서는 이런 인과 관계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 p160~161 3장 ‘시장과 불평등’에서


우리나라보다 사실 위주의 보도를 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한다고 믿는 미국도 이 책을 차근차근 살펴보면 나름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현실을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개선할 여지가 있는 것처럼 서술한 걸 보면 우리 한국도 충분히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언론의 공정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현재 언론 분야는 상위 1퍼센트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이들은 비판적인 언론사를 매입하여 지배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고, 손해를 보더라도 이런 전략을 고수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그들의 경제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투자다.

- p248 5장 ‘민주주의 위기’에서


제가 흥미를 가지고 읽은 8장 ‘예산전쟁’은 과한 예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을 비판하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내용입니다. 예산 긴축이 오히려 경제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고 있네요.


예산 긴축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경기 침체를 겪던 국가들이 예산 긴축 정책을 시행하여 경기를 회복시켰던 사례들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사례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국가들은 모두 경제 규모가 작았을 뿐 아니라,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는 교역 상대국을 확보하고 있었다. 따라서 수출 증대를 통해 정부 지출 감소분을 쉽게 대체할 수 있었다. 이런 해법은 오늘날 미국과 유럽의 상황에는 적용될 수 없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의 교역 상대국들은 불황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 p383 8장 ‘예산전쟁’에서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10장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에서 지금까지 쓴 내용을 정리하고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식으로 썼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 등 자본주의 국가라면 꼭 시도해야 할 점이라는 인상이 드는군요.


현재 미국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전역의 많은 나라들에서 미국과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시장 경제의 불변의 법칙이 아니다. 능력과 노력과 행운의 차이가 시장의 힘과 정책 패러다임 때문에 심각한 불평등으로 전환되는 건 세계적인 상황에서도, 사회를 훨씬 더 성공적으로 관리해 온 사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사회들은 대다수 국민들에게 미국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삶을 제공하고 있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인은 비단 소득만이 아니라 건강, 교육, 안전, 기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측정된다. 또한 미국보다 불평등 수준이 훨씬 심각한 일부 사회들은 벼랑 아래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깨닫고 방향 전환을 시작했다. 이들은 빈민층에 대한 지원과 교육 확대 등을 통해 불평등의 수준을 완화해 가고 있다.

- p432 10장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에서


어떻습니까? 한국과 맞아떨어지는 미국 사회와 경제의 현실 말입니다. 과연 양국의 정부는 이 책에 쓰인 대로 사회와 경제에 숨어있는 불평등을 바꿀 수 있을 까요? 그저 꿈일 뿐이지만 실제로 해낼 수 있다면 불평등이 조금씩 사라지겠죠? 그날을 기다려보며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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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브 -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오언 존스 지음, 이세영 외 옮김 / 북인더갭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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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국에서 정치인과 미디어를 통해 무기력, 무식, 범죄적인 계급으로 낙인찍힌 하층 계급 ‘차브(CHAV)’, 노동조합 활동가인 오언 존스는 ‘차브(이세영·안병률 옮김, 북인더갭 펴냄)’라는 책을 통해 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며 사는지, 그들을 노리는 건 무엇인지 다루고 있습니다.

이웃 블로거의 글을 통해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읽어봤는데 긴 분량이지만 읽는 내내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이 책은 차브 혐오가 절대 우연한 현상이 아님을 증거할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현상이 이 사회의 뿌리깊은 불평등의 산물임도 보여줄 것이다.

- p19 ‘들어가며’에서


이 책의 원제가 되는 ‘차브(Chav)’라는 단어를 나는 2011년 『르몽드 드플로마티크』 한국판에 실린 서평기사에서 처음 접했다. 당시 나이 26세에 불과한 청년 오언 존스가 쓴 이 책은 영국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지구의 소금’이라 칭송되던 노동계급이 어떻게 ‘지구의 쓰레기’로 전락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 속에서 생생하게 그려낸 그해 최고의 정치학 도서로 선정되면서 확고한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 p415 ‘옮긴이의 말’에서


1장 섀넌 매튜스의 이상한 경우

2007년 마들렌 맥캔과 2008년 2월 섀넌 매튜스의 실종사건을 비교하는 글로 이 책의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책에 나오지만 섀넌 매튜스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실종 사건에 비밀이 존재하지요. 그러한 점을 통해 노동계급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알 수 있죠.


마들렌은 상류층이 휴가를 보내는 포르투갈 알가르베의 리조트에서 사라진 반면, 섀넌은 웨스턴요크셔의 듀스베리 거리(잉글랜드 북부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옮긴이)에서 실종됐다는 점이다.

(중략)

마들렌의 실종은 그냥 흥미 위주로 보도되지 않았다. 그 사건은 국가적인 상처가 되었다.

(중략)

그에 반해 섀넌 매튜스의 실종은 얼마나 빈약한 관심을 이끌어냈는가? 2주 후 그 사건은 마들렌의 경우와 비교해 3분의 1 수준의 기사가 나왔을 뿐이다.

- p23~25에서


섀넌의 배경은 그런 스토리를 다루는 기자들의 체험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중략)

듀스베리 모어에 거주하는 노동계급은 사람들이 섀넌 매튜스 사건에 무관심한 이유를 뼈저리게 체득하고 있었다. 그들은 많은 언론인들이 하는 일이라곤 자신들을 혐오하는 일뿐임을 잘 알았다.

- p28에서


2장 계급전사들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은 노동계급을 제대로 챙긴 적이 없습니다. 겉으로 챙겨준다는 말을 하지만 속내를 보면 특권층의 이익을 대변할 뿐이죠. 지금의 노동당도 보수당에 비해 덜할 뿐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내용이 곳곳에 들어가 있습니다.


노동계급의 악마화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형성한 1980년대 대처리즘의 실험을 뒤돌아보지 않고는 이해될 수 없다. 그 핵심에는 노동계급 사회와 산업, 가치와 기구에 대한 공격이 자리잡고 있다. 더 이상 노동계급은 자랑할 만한 무엇이 아닌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었다.

(중략)

역사를 대충 훑어봐도 보수당은 특히 노동계급의 위협에 맞서 언제나 ‘특권층의 이익’을 감싸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19세기 내내 보수당은 투표권을 부유층에서 서민으로 확대하자는 의견에 열렬하게 반대했다.

- p60~61에서


왕년의 계급전사 솔즈버리 경은 20세기초 제조업 노동자들의 3분의 1이상이 보수당에 투표하는 현상을 보고 놀랐다. 이런 현상은 다시금 우리를 익명의 정치가가 던진 주제로 되돌아가게 한다. 즉 보수당은 “딱 그만큼의 사람들에게 딱 필요한 만큼을 주면서” 선거에 승리한다는 사실이다. 보수당은 언제나 사회적 조직으로서의 노동계급의 힘을 약화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아주 교묘한 방법을 동원하여 개인으로서의 노동계급을 회유하여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 p63에서


3장 정치인 vs 차브

2장의 후속 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맨 앞에 나오는 폴리 토인비의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군요.


이제 노동계급은 더 이상 정치적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고 더 이상 존경할 필요도 없다. 그리하여 상류층은 마치 18세기라도 된 듯 우월한 입장에서 잔치를 벌일 수 있게 되었다.

- 폴리 토인비의 말(p105)


4장 진퇴양난에 빠진 계급

인류역사에서 계급이 생긴 이래 노동계급은 한번도 좋은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거의 조롱하는 경우가 많았죠. 지금처럼 혐오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여기에는 인터넷이나 서적을 통한 다양한 계급혐오나 조롱을 소개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특정 계층이나 지방을 혐오하고 조롱하는 분위기랑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역사적으로 노동계급은 찬사를 받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사람 대접을 받은 적도 없었다. 빅토리아 시대부터 2차 세계대전 때까지 노동자들의 삶은 그 어떤 기록에도 거의 언급된 적이 없었고, 그나마 언급이 되었다 하더라도 캐리커처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졌다.

- p151에서


노동계급을 업신여기던 분위기가 이제 그들을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것으로 급변한다. 대처리즘의 대두와 이른바 ‘노동계급다운 특성’, 다시 말해 노동계급의 가치와 제도, 산업과 지역사회에 대한 대처리즘의 공격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중략)

‘차브’ 현상의 등장과 더불어 사람들이 노동계급에 대해 가지고 있던 여러가지 편견들이 하나로 통합된다. 2003년 말에 출범한 ‘차브스컴’이란 웹사이트에는 ‘영국의 마을과 도시를 집어삼킨 무식한 최하위계층’이라는 태그라인이 달려 있다. 현재는 차브스컴을 대신하여 ‘차브타운스’라는 사이트에서 기고자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차브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다.

(중략)

작가 리 복의 『차브에 관한 작은 책』은 지금도 파산한 체인식 서점 보더스의 계산대 위에서 오랫동안 한 자리를 차지했었다. 가장 최신판은 현재까지 10만부 이상이 팔렸으며, 8쇄까지 인쇄가 됐다고 관계자들은 자랑한다.

(중략)

차브스컴을 만든 이들 또한 차브에 대한 혐오감으로 가득한 책을 출간했다. 『차브! 영국의 새로운 지배계급에 관한 사용자 가이드』에서 미아 윌러스와 클린트 스패너는 ‘야생에서 차브를 발견’하는 요령을 알려준다. 차브는 말하자면 짐승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 p154~157에서


심지어 특권층 젊은들 사이에서도 차브 혐오가 어떤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옥스퍼드에서는 중간계급 학생들이 노동계급 출신들처럼 옷을 입는 ‘차브 파티’를 연다.

- p169에서

  

5장 “우리는 이제 다 중간계급이다”

중간계급이라고 말하지만 노동계급 취급을 받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노동계급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얼마나 드러나 있는 지 알 수 있습니다.

 

노동계급이 ‘차브’라는 퇴락한 집단만 남기고 시들어 사라졌다는 생각은 정치적으로 매우 편리한 허구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노동계급이 심각하게 변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중략)

현대의 노동계급은 한 가지 면에서 과거의 노동계급을 닮았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노동하며, 자신의 노동에 대한 결정권이 없다는 것이다.

- p246에서

6장 조작된 사회

계급에 대한 환상을 만드는 사회, 영국 사회에서 보여주는 현실은 우리 사회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하게 만듭니다.


노동계급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이 부족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는 정치인과 논평가들은 종종 핵심을 노치고 있다. 대체 무엇을 희망하란 말인가? 예전에 그렇게 많이 존재하던, 좋은 급여를 제공하는 양질의 노동계급 일자리들이 전국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소멸해 버렸다는 것은,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한 뒤 슈퍼마켓이나 콜센터 같은 곳을 제외하면 갈 곳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 p259에서


7장 부서진 영국

노동계급에 대한 소외로 영국은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는 글입니다. 읽고 간단히 소개하기에 난해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현실은 주변에 충분한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중략)

무엇보다 실업은 계급적 이슈다 그것은 중간계급이 아니라 노동계급이라면 훨씬 쉽게 직면하게 될 숙명이기도 하다.

- p296~297에서


8장 반발

노동계급에 대한 정치인들의 기만과 이주노동자의 유입은 기존 노동계급의 큰 반발을 부르기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인종차별주의를 강조한 극우 정당의 등장과 이들의 지지는 필연적인 것이라 볼 수 있겠죠.

 

노동계급의 악마화는 국민당의 성공 스토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노동계급의 문화는 지배엘리트들에 의해 무가치한 것으로 폄하되었지만, (올바르게도) 소수민족 집단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살아왔다.

- p333에서


노동계급으로서의 자부심은 지난 30년간 산산조각 났다. 노동계급이라는 것은 차츰 버려야 할 정체성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공장과 공영주택을 기반삼아 조직된 커뮤니티의 오랜 유대는 깨져버렸다. 과거 바킹이나 대거넘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노동계급이란 정체성은 삶의 중심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소속감과 자존감, 그리고 지역의 다른 주민들과의 연대감을 의미했다. 이 자부심이 사라지고 생겨난 진공상태의 일부를 영국 민족주의라는 잠에서 깬 야수가 채운 것이다.

- p345~346에서


결론 새로운 계급정치?

계급정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자꾸 변하는데 한 나라의 사회를 유지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도 이를 이용하고 있고요. 오언 존스는 노동계급에 대한 열망에 대한 기본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노동계급의 악마화는 패자에게 퍼붓는 승자의 조롱이다. 지난 30년간 일터와 미디어, 정치권과 사회 전반에 걸쳐 노동계급의 힘은 지속적으로 악화돼왔다.

- p367에서


노동계급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혹은 사라지고 있다고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은 분명 정치적으로는 유용하다.

- p369~370에서


노동계급의 열망에 대한 전반적인 재정의가 정치 의제의 중심에 자리잡아야 한다. “열망의 기본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존 크루더스는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2001년 이후 신노동당이 저지른 실책 가운데 최악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열망의 개념으로부터 의무와 책임감,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일치감 같은 공동체주의적 요소를 제거해버렸어요. 그 결과 원자화되고, 소비지향적이고, 탐욕스런 자아만 남게 된 거죠.” 새로운 열망은 공동체를 개선하고 노동계급 전체가 직면한 삶의 조건을 더 낫게 만드는 노력과 결부되어야 한다. 단순히 재능있는 개인들을 계층 사다리의 상층으로 끌어올리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 p383~384에서


다 말하기 힘들 정도로 길지만 한번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우리는 노동자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이 바로 ‘빈부격차’죠. ‘차브’는 영국의 경우를 다루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차브의 의미값에 근접한 우리말은 잉여보다는 ‘양아치’ ‘쓰레기’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학교를 뛰쳐나와 골목 어귀나 놀이터를 어슬렁거리는 10대 청소년들, 역한 냄새를 풍기며 공공장소 주변을 배회하는 노숙인, 엄연한 주인이 있는 사유공간을 점거한 채 망루를 세우고 악다구니늘 쓰는 철거민들은 또 어떤가. 이 몰락한 노동계급의 후예들을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범죄시·불온시하기 시작했다.

(중략)

빈곤을 타락과 범죄의 언어로 재정의하려는 움직임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사회에서도 감지되기 시작한다.

- p416~417에서


가난이 타락과 범죄로 재정의되는 순간, 가난한 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도덕적 부채감은 사라진다. 그들 앞에 놓인 운명의 수순은 ‘추방’이다. 추방은 물리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추방’으로 이어지는데, 인식의 영역에서 추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들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일단 눈앞에서 추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들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일단 눈앞에서 사라지면 관심에서도 멀어지며, 관심에서 멀어지는 순간 도덕적 공감은 불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추방된 자들이 아무리 고통과 부당함을 호소해도 ‘헛소리’와 ‘소음’으로 취급될 뿐이다. 약자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식이 사라질 때 싹트는 것은 ‘무결점 사회’를 향한 유혹이다. 잘 가꿔진 잔디밭 위로 삐죽이 고개를 내민 잡초를 깡그리 제거해버리고 싶다는 욕망. 이것은 아우슈비츠를 만들어낸 전체주의적 열망과 동일한 것이다.

- p419에서


‘차브’를 여러분에게 소개시켜드리는 글을 쓰면서 어떻게 소개할까 고민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두 번이나 쓰고도 날릴 정도였죠. 그나마 각 장별로 단락을 골라 소개한 덕에 제대로 보여드릴 수 있게 되었네요. 제 소개 글만 보기에 무슨 책인지 감이 잡히지 않을 겁니다. 비슷한 서평이나 감상문을 더 읽고 책을 직접 읽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우리 사회와 은근 비슷한 영국의 계급 사회를 보여주는 ‘차브’,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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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평점 :
일시품절


한때 우리나라에서 2013년 말~2014년 초를 장식했던 유행어가 있었습니다.

 

‘안녕들하십니까?’

 

이런 말을 접하게 되면 다들 이런 답을 했었죠.

 

‘아니오, 안녕하지 못합니다.’

 

이런 대자보를 비롯한 사회운동이 대학가를 장식하면서 한때 어려운 시대에도 무관심하다고 여기던 젊은 세대가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었죠.

 

그런 가운데 다른 젊은이들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네, 안녕합니다.’

 

너무 이기적이지 않냐고요? 누가 한 말인지, 왜 안녕한지 모르겠으나 아마 자신이 즐기고 있는 것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 같습니다.

 

왜 이런 말로 시작했느냐? 바로 어려운 시대에도 안녕하다고 말하는 오늘날 일본의 젊은이들을 이야기할 책,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세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후쿠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민음사 펴냄)’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1990년대 거품 경제 붕괴 이후 잃어버린 세월을 보내고 있는 지금의 일본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있는데요. 바로 ‘사토리 세대(さとり世代)’입니다.

 

자동차, 사치품, 해외여행, 술, 연애, 섹스, 도박에 관심이 없고 돈과 출세에도 관심이 없는 일본 젊은이들을 이르는 말. 득도한 것처럼 욕망을 억제하며 살아가는 젊은 세대를 일컫는다. 2채널에서 탄생한 신조어. `사토리(さとり)`란 `깨닫다`라는 뜻의 `사토루(さとる)`에서 파생된 말인데 마치 모든 것을 깨달은 수도자처럼 현실의 명리에 관심을 끊었다는 의미이다.

- 리그베다 위키 ‘사토리 세대’ 항목에서

 

최근 우리나라의 한 메이저 언론에서 위에 언급한 사토리 세대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젊은이들을 다루면서 ‘달관세대’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비슷하다’ 혹은 ‘억지로 붙였다’라는 논란을 떠나 우리나라 젊은이들 중에서도 그런 생활방식이 나타나고 있다는 걸 말하는 것 같습니다.


후쿠이치 노리토시는 그런 젊은이들을 찾아다니며 현상을 분석했고, 나아가 지금까지 나온 일본의 젊은이에 대한 이론을 전부 폐기하게 만듭니다.

 

노리토시의 사회학적 시대 진단은 간단하다. 첫째, 일본 사회는 절망적이다. 둘째, 일본 사회에 자기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젊은이들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인과관계로 엮여 있다. 즉, 절망적인 사회 덕택에 개인이 행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p8 오찬호의 해제 ‘일본은 절망적이고 한국은 ‘더’ 절망적이다’에서

 

요즘 젊은이들이 품고 있는 생각은 바로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및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이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다.”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일본 경제의 회생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혁명 역시 그리 원하지 않는다.

- p34 프롤로그 ‘요즘 젊은이는 왜 저항하지 않는가’에서

 

어찌 보면 일본의 현실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다보니 젊은이들이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자인 후쿠이치 노리토시는 이 책에서 젊은이를 규정짓는 이론의 변천사로 출발해(1장), 오늘날 내성적이고 배타적이며 소비를 줄이지만, 사회에 공헌하고 싶어 하며 작은 공동체를 지향하는 오늘날 젊은이들을 보여주고(2장), 국가를 향하는 내셔널리즘을 오로지 스포츠 경기에서 국가 대표가 출전할 때 응원해주는 정도로 여기는 모습(3장), 나라를 위해, 사회를 위해 참여하더라도 축제로 여기는 모습(4장),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보여준 모습(5장), 절망 속에서 행복하다 여기는 모습(6장)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 현저하게 눈에 띄는 점은 젊은이들에게 있어 ‘친구’나 ‘동료’의 존재감이 매우 커졌다는 사실이다.

(중략)

딱히 ‘젊은이 문화’라고 지칭할 만한 공통성이 사라진 시대에,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동료’와 함께 지내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 p138~140 2장 ‘작은 공동체 안으로 모이는 젊은이들’에서

 

‘일본’이라는 국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인프라 공급원으로서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 이로써 일본은 결과적으로 폭력의 독점과 징세 기능이라는 국민국가의 역할을 계승하게 된다.

아무리 요즘 젊은이들이 월드컵 시합 때 큰 목소리로 일본을 응원한다고 해도, 그들은 경기가 끝나는 순간 곧바로 “수고했어!”라고 인사를 건네며 방금 전의 영광을 잊는다. 또 아메바 뉴스(일본의 인터넷 뉴스)에서 ‘이성에게 궁금한 점’이라는 게시물을 읽으며 친구와 어울리는 그들은,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즉각 자기 몸부터 피할 것이다. 이러한 젊은이들이 차츰 늘어난다면, 적어도 ‘태도’라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국제적인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감소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 p189 3장 ‘붕괴하는 일본?’에서

 

그들(일본의 젊은이들)의 사회 활동은 답답함을 달래기 위한 표현이기도 했고, 타자의 승인을 얻기 위한, 즉 ‘마음 둘 곳’을 찾으려는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다, 태양이 내리쬐는 거리를 활보하는 편이 건강에도 훨씬 유익하다. 게다가 공통의 관심거리를 나눌 수 있는 친구까지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 p231~232 4장 ‘일본을 위해 일어서는 젊은이들’에서

 

물론 일본의 젊은이들이 다 그런 것도 아니고, 일본이 무너지는 건 아니라고 후쿠미치 노리토시는 말합니다. 그저 불안정한 미래보다는 안정적인 오늘을 살기에 행복할 뿐이라고 합니다.

 

일본에서 그대로 살고자 한다면, 저임금에 만족하며 동료들과 일상을 즐기면서 살아가도 무방하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돈이 없더라도 그럭저럭 즐거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고 있다.

- p314 6장 ‘절망의 나라에 사는 행복한 젊은이들’에서

 

이 책의 본문을 언급하면서 꼭 소개하고픈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일본의 젊은이들과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겁니다. 몇몇 구절을 우리나라의 상황으로 바꾸어도 잘 맞는다는 점을 오찬호 박사와 후쿠미치 노리토시는 말하고 있지요.

 

한국이나 일본이나 ‘성장의 미래’를 지나치게 믿었다. 그래서 성장이 멈칫거릴 때, 개인이 보호될 수 있는 장치 마련에 관심이 없었다. 민주주의가 평가 절하된 결과, ‘개인의 삶’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노동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다.

- p10 오찬호의 해제 ‘일본은 절망적이고 한국은 ‘더’ 절망적이다’에서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양국의 공통점을 다수 발견하게 될 것이다. 취업 때문에 괴로워하는 젊은이들이라든가, 부모님의 슬하를 떠나 생활하는 젊은이들이 증가하고 있다든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저출산 문제 등 한국과 일본 사회는 서로 공통된 문제를 안고 있다.

- p19 한국어판 서문 ‘2시간 30분의 거리’에서

 

물론 우리나라와 일본이 모두 같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경제 성장을 위해 더 빨리 달려온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더 힘들 수 있다고 말하지요.

 

조지 오웰이 『1984』에서 표현한 방식을 따르자면, 한국 사회는 ‘더블 플러스’로 절망적이다. 그래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생존에 대한 집착이 다른 나라에 비해 ‘더블 플러스’로 강하다. 여기에 ‘푸념적 행복’이 들어설 공간은 없다.

- p11 오찬호의 해제 ‘일본은 절망적이고 한국은 ‘더’ 절망적이다’에서

 

한국은 일본에 비해 ‘젊은’ 나라이기도 하다. 평균 연력만 봐도 일본은 ‘약 45세’인데 반해 한국은 ‘약 38세’다. 양국 모두 급격한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직면해 있기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한국은 ‘젊은 인구’가 일본보다 많다.

- p19 한국어판 서문 ‘2시간 30분의 거리’에서

 

오늘날 일본의 젊은이를 연구하는 책이지만 동시에 우리나라 젊은이에 대해 어느 정도 생각해보게 하는 오묘한 책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읽기는 약간 어렵지만, 오늘날 일본에 대한 흥미를 느낄 수 있다면 읽기 수월한 책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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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am Lee 2015-04-22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봤습니다. 읽고싶은책이네요~
 
맨얼굴의 예수 - 김용민, 인간 예수를 좇다
김용민 지음 / 동녘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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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온 작품인데 저자는 다름아닌 목사아들돼지, 막말이란 호칭이 붙는 김용민 PD님이시네요.

이 책은 한국교회가 덧씌운 예수의 모습을 버리고 평화주의자/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친구이자 혁명가인 예수의 모습을 담으려고 적은 책입니다. 마가복음의 구절을 토대로 여러 저서의 구절을 인용하고 자신의 생각을 담았네요.

처음에 이 책을 보면서 나름 괜찮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가 성장한 환경 속에서 예수를 왜곡하며 기득권을 유지해왔던 점이 탐탁치 않았고 오히려 예수의 초인간적인 모습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책을 읽으셨던 주변분들은 너무 주관적인 내용이 담겨있다고 하네요. 성경의 말씀을 개인적인 시각으로 전하는 일종의 프로파간다랄까...저도 너무 무비판적으로 이 책의 내용을 받아들인 점도 있구요.

일단 이 책에 대해선 총평은 보류하겠습니다.  판단은 각자 하는 걸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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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아라크네 - 정여울이 만난 방송, 드라마, 책, 사람들
정여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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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프로그램이나 도서 비평 그리고 인터뷰를 담은 미디어 관련 비평 도서네요. 194쪽에 작가지망생인 저를 위한 좋은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나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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