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유독 동물에 대한 애정이 강한 편이다.
결혼전 이야기다.  장인어른이 집에 토끼를 데려온 적이 있는데 아내가 아주 좋아했었나 보다.  그런데 몇 일 만에 죽었다고 한다. 사실 집에서는 몰랐는데 죽은 토끼를 안고 자던 아내를 보고 집안 식구들이 기겁을 했다고.
비 내리는 날, 장인어른이 아파트 근처 공터를 파고 토끼를 묻어주는데 아내는 내내 엉엉 울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 동네 아파트에 비가 내리면 처녀귀신이 울며 돌아다닌다는 전설은 아내 때문에 생긴게 아닌가 싶다. 

 암튼 그런 아내에게 강아지를 일주일동안 돌볼 기회가 생겼다. 일종의 테스트였는데, 기르는게 익숙하고 괜찮으면 계속 기를수 있는 거였고 직접 강아지를 키우기가 벅차다 싶으면 돌려주는 조건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강아지 입양은 택도 없는 일이었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거야 토끼때처럼 끔찍했지만 생활습관이 도저히 강아지를 키울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강아지가 응가 한 번 하면 닦고 쓸고 조이고(엉?), 심지어 방바닥에 락스 청소를 하는 정도였으니... 
그 고생을 하면서도 강아지를 안고 물고 빨고 한거 보면 참 신기하기도 했다. 좀 털털한 성격이었으면 강아지들을 불러모아 집안이 개판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진이 그 녀석 사진이다. 임시 이름은 '또또') 

어쨌든, 강아지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결국 아내는 제풀에 지쳐 강아지를 돌려주고야 말았는데 돌려주고 나서는 잠도 못자고 계속 훌쩍훌쩍이다 잠이 들었다. 제발 좋은 집에 입양되기를 바라며... 
퇴근하고 잠깐씩 본게 전부인 나도 마음이 시큰한데 종일 돌보던 사람은 일주일이긴 했지만 마음이 편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돌려주었다는 소식을 전화로 들으며 우연히 퇴근 길에 들은 노래가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이다.  

 

그 어떤 신비로운 가능성도
희망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청년들은
쫓기듯 어학연수를 떠나고

꿈에서 아직 덜 깬 아이들은
내일이면 모든 게 끝날 듯
짝짓기에 몰두했지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메었지만 갈 곳이 없고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해
넌 행복해야해 행복해야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않을게
잊지않을게 널 잊지않을게

낯설은 풍경들이 지나치는
오후의 버스에서 깨어
방황하는 아이 같은 우리

어디쯤 가야만 하는지
벌써 지나친 건 아닌지
모두 말하지만 알 수가 없네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메었지만 갈 곳이 없고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해
넌 행복해야해 행복해야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않을게
잊지않을게 널 잊지않을게

이 미친 세상에 서로 팔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서글픈 작별을 나누는건 또또나 나나 마찬가지가지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말그대로 팔려가는 인생, 견생. 모든게 거꾸로 돌아가는 듯한 이 미친 세상.. 짧았던 만남이지만 잊기 힘든 추억.   어디로 가든 행복하길... 

 

강아지에 정붙이는것과는 별개로 강아지를 키우는 일 자체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저 녀석의 엄마는 어디있을까? 형제들은 어디로 팔려갔을까? 과연 인간의 행복을 위해 강아지 가족을 생이별 시키는 것은 할 만한 일일까? 저 녀석이 새끼를 낳으면 전부 감당할 수 없으니 결국 강제로 떼어내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할텐데 그건 할만한 일일까? 뭐  이런 식의 의문들도 연달아 들고...   정말 강아지를 사랑한다면 그 이유때문에 키울 수 없어야 하는게 맞는거 아니냐고 허공에 질문도 해 본다. 

 

이 노래를 들으며 저 녀석을 생각한다.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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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7-02 0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길에서 다친 강아지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 엄마,아빠가 이렇게 말했어요. 세상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니가 키워야만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으냐고. 오만이라고. 좋은데로 좋은주인 만나서 갔을 거예요. 내 품에 없는 녀석은 그렇게 믿어야 살아요. 참 귀엽네요. 저도 강아지를 너무 좋아해서..^^

귀를기울이면 2011-07-02 14:05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렇게 믿어야죠.
아이리시스님처럼 좋은 분들도 많은 세상이니까요.^^

마녀고양이 2011-07-04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돌려주셨군요...
강아지 너무 키우고 싶어요. 그런데 신랑이 너무 반대해서
어디서 누가 들이밀어서 키워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운명이다.. 이러고 키우려구요. 저나 딸아이는 너무 좋아하거든요.

아쉽네요...

귀를기울이면 2011-07-04 16:49   좋아요 0 | URL
반대하시는 이유가 뭘까요? 저도 완전 찬성은 아니지만 가족들이 좋아하고 감당할수 있다면 괜찮다는 생각인데.. 근데 일주일 길러 보니, 행동 제약이 많더라구요. 간단한 외출은 몰라도 일단 여름휴가 계획 짜는것부터 제약이더군요. 야밤에 왔다갔다하는 것도 눈치 보이고. 강아지 기르시는 분들에 대한 약간의 존경심도 생겼더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