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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와 소음 - 미래는 어떻게 당신 손에 잡히는가
네이트 실버 지음, 이경식 옮김 / 더퀘스트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서점에서 '신호와 소음'이라는 제목을 볼 때 필자의 전공 때문인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커뮤니케이션학의 조류 중 '사이버네틱스 커뮤니케이션' 확립에 공헌한 섀년이 정보와 소음(noise)를 구분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듯이 정보가 제대로 소통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소음입니다. 사이버네틱스 관점에서 보자면(이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공학에서 큰 영향을 받았는데), 소음을 줄여서 소통이 '불순물'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커뮤니케이션(기술)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소움이 단순히 불순물 정도라면 그것들을 줄이는 것은 좀 더 단순한 기술적 문제겠지만, 그것이 우리가 정말로 알아야 할 '신호'로 둔갑한다면 문제가 한층 복잡해 질 것입니다. 저자의 문제의식을 간단히 말하자면 미래 예측에서 다양한 원인으로 우리가 소음을 신호로 착각하는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런 실수를 최대한 바로잡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입니다.
우선 유명세를 타고 아루렇게나 책을 써서 '반짝'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행태가 드물지 않게 관찰되는 출판계에서 이 책도 비슷한 부류의 책이 아니겠냐고 의심한다면 '아니오'라고 답할 만큼은 된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습니다. 저자가 '날로 먹어서' 쓴 책은 결코 아닙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기준에서 책 뒤에 들어가 있는 호평 일색의 찬사가 책의 내용에 비해 다소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추천사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상당한 분량의 주석에서 볼 수 있듯이 저자가 다양한 전문가들을 만나고 여러 자료들을 참고해가면서 책을 쓴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각 장에서 다루는 주제 모두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제공해주지는 못하더라도 베이즈주의적인 확률론과 이에 기반한 세상 인식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부터 저자의 주장은 최소한 일관성을 가지고 전개됩니다. 인간의 불완전한 인식에서 발생하는 오류라고 다소 추상적으로 언급되었던 여러 가지 예측의 오류 혹은 편향들이 베이즈주의적 확률이론에 바탕한 논의를 통해서 해결되는 부분에 대한 저자의 풍부한 예시와 어렵지 않은 설명은 굳이 통계학과 친하지 않더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책이 풍부한 사례를 통해 책의 제목대로 '소음'을 걸러내고 신호를 포착하는 사고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물고기를 잡는 법'을 직접 알려줄 정도로 깊이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전형적인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교양서입니다. 책에서는 기존의 통계학적 방법론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때문에 어떤 면에서 저자의 지적은 기존에 여러 번 나왔던 통계학의 오류나 함정을 지적하는 책과 크게 차별성을 두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히려 저자보다 좀 더 차분한 어조로 이런 오류와 속임수들을 간파해내는 책들도 본 적이 있는데 통계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노력을 기울인 결과일 것입니다.
또한 저자는 통계학적 기법들을 중심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당연시하기 때문에 그의 책에서는 배제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확률론적 인식으로 우리가 파악하기 힘든 것들이 세상에 무척 많다는 것을 책을 읽는 독자는 쉽게 잊게 되며 마치 통계학과 확률론에 능통한 사람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모두 깨우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주는 면도 지적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통계학적 분석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저자도 기후변화에 대한 장에서 주지하고 있듯이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들을 '문자 그대로' 믿기 힘든 여러 상황에서 과연 '신호'라고 부를만한 것이 남아 있겠는지의 여부라든지, 통계학적으로 어떠한 경향성이 도출되고 이를 통해 미래가 예측되는 것이 개인의 포트폴리오 수익률을 높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겠는지에 대해서는 저자와는 다른 접근법이 여전히 필요하겠습니다. 때문에 '신호'와 '소음'을 분별하여 미래 예측에 활용하는 것은,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들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이지 세상을 관통하는 절대적인 지혜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이런 측면에서 볼 때 추천사나 책에 대한 호의적 서평들은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과다평가한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결국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설명은 적고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는 데 무게를 두는 이 책은 독자에게 어느 정도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통계학적 사고에 눈을 뜨게 하는 데에는 큰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실용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책의 역할 자체도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책에 이론적 설명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이 정도 설명으로 저자가 말하는 수준의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요.
사실 필자의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이런 책에 대해 평가를 후하개 하지는 않지만 저자가 상당히 공을 들였고, 관련 주제들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끔 잘 배치하여서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는 면에서는 마땅히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필자가 지적하는 아쉬움이라는 것은 어쩌면 독자로서 책을 읽은 후 알아볼 것과 할 일이 더 많아지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에 대한 아쉬움일지도 모르죠.
정보가 이렇게나 많은데 누가 이론을 필요로 할까? 하지만 이건 미래를 예측하는 데서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태도다. 특히 자료가 엄청난 소음으로 물들어 있는 경제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통계적 추론은 이론으로 뒷받침될 때, 또는 적어도 근본 원인에 대한 좀 더 깊은 생각으로 뒷받침될 때 훨씬 더 강력해진다.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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