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서웅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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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Es irrt der Mensch, solange er strebt)˝ 파우스트가 처절하게 방황하면서 자기 자신의 가장 깊은 곳까지 끊임없이 파고드는 영혼의 이야기임을 느낄 때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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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반양장) -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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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준 교수가 새로운 경제학 입문서를 준비하고 있다는 기사는 오래 전에 읽은 적이 있었는데, 드디어 그 결과물이 나왔다고 하니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사서 읽어보았습니다. 기사에서 저자가 밝힌 대로 기존의 경제학원론과는 사뭇 다른 접근방식으로 일반인들이 교양 수준에서 알아야 할 경제학의 큰 그림들을 담아 놓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일반인들이 교양 수준에서 알아야 할' '경제학의 큰 그림'이라는 진부한 말 속에 바로 장하준 교수의 경제학에 대한 사고의 차이와, 이에 따라 당연히 도출되는 이 책의 차별점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경제학이 지나치게 통계학과 수리적 기법에 의존하다보니 어렵고 따분한 학문으로 인식되는데다가, 계속되는 경기 침체, 금융 위기 속에서 경제학자들이 뾰족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경제학에 대한 관심과 신뢰가 동반하락하는 상황은 오래 전부터 지속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저자가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주류' 경제학자들도 출판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답을 내 놓았습니다. 오히려 경제학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술술 설명할 수 있는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점을 과시하는 '괴짜경제학'이나 '경제학 콘서트'와 같은 책들이 그 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이들이 학계에서 인정받는 '주류' 경제학자라는 의미에서의 주류가 아니라 방법론의 차원에서 봤을 때 지금까지의 주류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인간상이나 여러 가정들, 논리들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의미에서의 주류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경제학의 진정한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더 근본적인 통찰에 대한 요구를 무시하지 않고 대안적인 교과서를 써 보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한국에도 번역된 『자본주의 이해하기』와 같은 책들이 대표적입니다. 장하준 교수의 문제의식과 그를 바탕으로 한 이 책도 경제학의 진짜 대상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하고, 경제학이 결코 하나의 답을 찾아가는 자연과학적인 학문이 아니라 여러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으며, 인간 사회를 바탕으로 하고, 현실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사회과학으로서의 성격을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주장을 바탕으로 경제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주문하는 점도 이런 흐름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때문에 저자가 주목하는 경제학의 대상들에서 '우주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시도와 방법론은 축소되고 진짜 인간의 경제활동에 큰 비중이 주어진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생산과 노동에 대해 기존의 경제학 입문서보다 훨씬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이라든지, 저자의 전공을 살려서 경제성장과 개발의 문제에 대해 설명한 부분, 경제학 내부의 여러 학파들을 9가지로 엮은 후 '칵테일'에 비유한 부분도 지나친 일반화라는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명료함으로 독자에게 분명 도움을 줄 부분들이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4장의 '백화제방'이  비슷한 취지로 만들어진 박만섭 교수의 『경제학, 더 넓은 지평을 향하여』보다 경제학에 '덜 익숙한' 독자들을 위해서라면 더 좋은 시도였다고 봅니다.

 

물론 이 책이 입문서를 넘어서 경제학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주기에는 분량도 모자라고, 저자가 그런 내용들을 굳이 넣으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봅니다. 하지만 경제학 원론에서 미시, 거시의 자세한 이론을 찾지 않듯이, 경제학이 진짜 가야할 길과, 경제학이 진짜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총정리한 책을 두고 너무 구체적인 부분들을 찾지 않는 것이 적절한 것 같기도 합니다. 책의 모든 부분이 완벽하고 저자의 모든 주장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과, 이를 최대한 평이하게 풀어가고 정리한 저자의 노력은 충분히 놓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위에서 경제학을 위해서 말한대로 '어렵고 복잡하지만 무쓸모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당히 권하겠습니다.

기존 경제 질서를 바꾸기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해서,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를 풍미한 경제 체제보다 더 역동적이고, 더 안정적이고, 더 평등하고, 더 지속 가능한 체제를 만들어 내기 위한 싸움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렇다. 변화는 어렵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충분히 많은 수의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싸우면 '불가능한' 일도 이루어진다. 기억하자. 200년 전에는 많은 미국인들이 노예 제도를 없애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100년 전 영국 정부는 투표권을 요구하는 여성들을 감옥에 가뒀다. 50년 전에는 현재 개발도상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들이 대부분 '테러리스트'로 영국이나 프랑스 정부의 수배를 받았다.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한 말처럼, 우리는 지적으로는 비관주의, 의지로는 낙관주의를 가질 필요가 있다. (p.444)

경제학은 많은 경제학자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보다 훨씬 친해지기 쉬운 분야이다. 일단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기초적인 이해가 생기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관찰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지는 않는다. 자전거 타기를 배우고, 새로운 언어를 익히고, 새로 구입한 태블릿 컴퓨터의 사용법을 습득하는 등 인생의 다른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능동적 경제 시민이 되는 것도 초반에 겪는 약간의 어려움을 넘기고 계속 연습하면 시간이 갈수록 쉬워진다. 한번 시도해 보시기를 바란다.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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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정치학 -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읽기와 쓰기 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 총서 3
홍성민 지음 / 현암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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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자본’, ‘아비투스와 같은 용어들은 고등학교 논술 시험문제나 비문학 지문으로도 나올 만큼 많이 알려졌지만 정작 부르디외의 역작이라고 평가받는 구별짓기를 직접 읽어봤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대부분의 고전이 그렇겠지만요). 구별짓기는 분량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부르디외의 문체가 난해해서 번역이 잘 되어 있다고 해도 읽기 수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도 구별짓기를 좀 더 잘 읽기 위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고전을 제대로 읽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기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받고자 한 글자도 놓치기 않고 정독하면서 읽다보니 글쓴이가 앞에서 경고한 바와 달리 매우 흥미롭고도 잘 정리된 해설서를 만나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부르디외에 대해 막연하게 알고 있던 바들도 잘 정리할 수 있었고, 당장 구별짓기를 읽고자 한다면, 어떤 부분에 유의하면서 읽어야 좋을지 좋은 길라잡이가 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원전을 같이 읽을 때 비로소 책의 가치가 온전히 구현된다는 점은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본문의 내용도 좋았지만, 지은이가 고전을 바라보는 시각도 인상깊었습니다. 흔히 고전은 영원불변의 절대적 진리를 담고 있는 책이기에, 정확하게 읽는 방법이 정해져 있고, 그것을 따르지 않는 독해는 오독이며, 충분한 배경지식과, 경우에 따라서는 독서를 지도할 수 있는 존재가 있어야만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부담을 가지기 쉽습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나는 제대로 고전을 읽지 못할거야라는 생각에 포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통념을 비판하며 자기 나름의 능력대로 오늘날의 시각에 맞게 고전을 읽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고전은 보편적으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지금 그리고 여기라는 상황과 맥락에 근거하여 새롭게 읽혀져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소신이다. 또 고전에 대한 독해는 학자 개인의 특성과 문제의식에 따라서 늘 달라져야 한다. 따라서 이 해설서는 궁극적으로 한국판 구별짓기를 출판하기 위한 초석으로 간주되기를 바란다. (pp.191-192)

 

 

고전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소설책 읽듯이 읽는 것도 곤란하지만, 불필요한 경외심을 가지고 멀리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냄에도 불구하고 저 또한 불필요한 경외심과 고전에 대한 오해에 사로잡힌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본격적으로 구별짓기에 도전할 자신감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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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와 소음 - 미래는 어떻게 당신 손에 잡히는가
네이트 실버 지음, 이경식 옮김 / 더퀘스트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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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에서 '신호와 소음'이라는 제목을 볼 때 필자의 전공 때문인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커뮤니케이션학의 조류 중 '사이버네틱스 커뮤니케이션' 확립에 공헌한 섀년이 정보와 소음(noise)를 구분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듯이 정보가 제대로 소통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소음입니다. 사이버네틱스 관점에서 보자면(이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공학에서 큰 영향을 받았는데), 소음을 줄여서 소통이 '불순물'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커뮤니케이션(기술)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소움이 단순히 불순물 정도라면 그것들을 줄이는 것은 좀 더 단순한 기술적 문제겠지만, 그것이 우리가 정말로 알아야 할 '신호'로 둔갑한다면 문제가 한층 복잡해 질 것입니다. 저자의 문제의식을 간단히 말하자면 미래 예측에서 다양한 원인으로 우리가 소음을 신호로 착각하는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런 실수를 최대한 바로잡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입니다.  

 

우선 유명세를 타고 아루렇게나 책을 써서 '반짝'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행태가 드물지 않게 관찰되는 출판계에서 이 책도 비슷한 부류의 책이 아니겠냐고 의심한다면 '아니오'라고 답할 만큼은 된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습니다. 저자가 '날로 먹어서' 쓴 책은 결코 아닙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기준에서 책 뒤에 들어가 있는 호평 일색의 찬사가 책의 내용에 비해 다소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추천사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상당한 분량의 주석에서 볼 수 있듯이 저자가 다양한 전문가들을 만나고 여러 자료들을 참고해가면서 책을 쓴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각 장에서 다루는 주제 모두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제공해주지는 못하더라도 베이즈주의적인 확률론과 이에 기반한 세상 인식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부터 저자의 주장은 최소한 일관성을 가지고 전개됩니다. 인간의 불완전한 인식에서 발생하는 오류라고 다소 추상적으로 언급되었던 여러 가지 예측의 오류 혹은 편향들이 베이즈주의적 확률이론에 바탕한 논의를 통해서 해결되는 부분에 대한 저자의 풍부한 예시와 어렵지 않은 설명은 굳이 통계학과 친하지 않더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책이 풍부한 사례를 통해 책의 제목대로 '소음'을 걸러내고 신호를 포착하는 사고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물고기를 잡는 법'을 직접 알려줄 정도로 깊이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전형적인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교양서입니다. 책에서는 기존의 통계학적 방법론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때문에 어떤 면에서 저자의 지적은 기존에 여러 번 나왔던 통계학의 오류나 함정을 지적하는 책과 크게 차별성을 두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히려 저자보다 좀 더 차분한 어조로 이런 오류와 속임수들을 간파해내는 책들도 본 적이 있는데 통계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노력을 기울인 결과일 것입니다.

 

  또한 저자는 통계학적 기법들을 중심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당연시하기 때문에 그의 책에서는 배제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확률론적 인식으로 우리가 파악하기 힘든 것들이 세상에 무척 많다는 것을 책을 읽는 독자는 쉽게 잊게 되며 마치 통계학과 확률론에 능통한 사람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모두 깨우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주는 면도 지적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통계학적 분석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저자도 기후변화에 대한 장에서 주지하고 있듯이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들을 '문자 그대로' 믿기 힘든 여러 상황에서 과연 '신호'라고 부를만한 것이 남아 있겠는지의 여부라든지, 통계학적으로 어떠한 경향성이 도출되고 이를 통해 미래가 예측되는 것이 개인의 포트폴리오 수익률을 높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겠는지에 대해서는 저자와는 다른 접근법이 여전히 필요하겠습니다. 때문에 '신호'와 '소음'을 분별하여 미래 예측에 활용하는 것은,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들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이지 세상을 관통하는 절대적인 지혜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이런 측면에서 볼 때 추천사나 책에 대한 호의적 서평들은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과다평가한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결국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설명은 적고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는 데 무게를 두는 이 책은 독자에게 어느 정도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통계학적 사고에 눈을 뜨게 하는 데에는 큰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실용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책의 역할 자체도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책에 이론적 설명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이 정도 설명으로 저자가 말하는 수준의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요.

 

사실 필자의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이런 책에 대해 평가를 후하개 하지는 않지만 저자가 상당히 공을 들였고, 관련 주제들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끔 잘 배치하여서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는 면에서는 마땅히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필자가 지적하는 아쉬움이라는 것은 어쩌면 독자로서 책을 읽은 후 알아볼 것과 할 일이 더 많아지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에 대한 아쉬움일지도 모르죠.

 

정보가 이렇게나 많은데 누가 이론을 필요로 할까? 하지만 이건 미래를 예측하는 데서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태도다. 특히 자료가 엄청난 소음으로 물들어 있는 경제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통계적 추론은 이론으로 뒷받침될 때, 또는 적어도 근본 원인에 대한 좀 더 깊은 생각으로 뒷받침될 때 훨씬 더 강력해진다.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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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홀의 문화 이론 한나래 언론문화총서 20
임영호 엮음 / 한나래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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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홀이 문화연구는 물론이고 대중문화에 대한 연구라든지, 넓게 보면 커뮤니케이션 연구 전반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이론가이다보니, 간략하게나마 그에 대한 설명을 담은 2차문헌들은 여럿 접해봤습니다. 하지만 그가 직접 쓴 글을 읽는 것은 이 책이 처음입니다. 그 동안 읽어왔던 2차문헌들에서 어느 정도 배경지식을 쌓고 글을 읽어서 그런지 그렇게 어렵게만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아무런 맥락 없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글 자체는 난해하게 써진 것 같지 않고 번역자가 염려하는 바와 다르게 번역도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물론 다소 딱딱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글의 성격을 고려할 때 이 정도면 무난하다고 봅니다).

 

한 권의 책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큰 주제에 맞추어서 홀의 글 이것 저것을 끌어다 모아 놓은 형태이기에 한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대한 사상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9편의 글 사이의 연관성은 다소 부족해보일지도 모릅니다. 입문자의 입장에서는 '이제 이 주제에 대해서 좀 알 것 같은데'라고 느끼는 순간 글이 끝나버리고 사뭇 다른 주제를 가지고 처음부터 다시 논의가 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은 아무래도 이 책을 입문서로 삼고, 관심 있는 사람은 홀의 완결된 단행본이나 다른 논문들을 더 읽는 것으로 채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점들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이제는 관련 분야에서 '명예의 전당'에 올라갈 정도의 사상가가 된 홀의 글을 직접 읽어보고 치열하게 고민해보며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경험은 다른 고전을 읽는 것과 비슷하게 즐거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책을 읽기 전에 제가 도움을 다소 받은 관련 2차문헌을 이야기하자면 원용진 교수의 '새로 쓴 대중문화의 패러다임'과 윤석민 교수의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중 문화연구에 관련된 부분이라고 꼽을 수 있겠네요. 전자는 전반적인 이해에 도움이 되고, 후자는 TV 방송을 시청자들이 수용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나 encoding, decoding에 관한 이론 등 좀 더 세밀한 분야에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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