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합본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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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유명한 책이지만 분량이 상당해서 언제 한번 읽어보나 했는데 합본을 절반 가까운 가격에 구매할 기회가 생겨서 드디어 읽어보게 되었네요. 합본으로 사는 것이 각각 나누어진 책을 사는 것보다 경제적이기는 한데 여러 분들이 지적해주신대로 휴대성은 매우 나쁘고요 책 자체가 읽기에 부담스러운 크기입니다. 어릴 때 열광했던 해리포터 시리즈의 원서도 이정도로 부담스러운 형태의 제본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번 합본은 소장가치는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읽기'에는 부적절한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별점을 일부러 한 개 감점했습니다(내용만으로 본다면 당연히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습니다만).

 

책의 내용을 논리정연하게 요약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야겠습니다. 저자가 처음부터 그것이 가능하게 책을 쓰지도 않았고, 하나의 스토리라인으로 '탄탄한 전개'를 원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책에서는 기대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야기는 산만하다고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산만하고, 개연성은 전혀 없으며 '지금 내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읽고 있는 거지?'라고 황당함에 소리치게 되는 대목도 있기 마련입니다. 판타지나 SF 소설의 열렬한 팬이 아니다보니 어떤 부분은 힘겹게 페이지를 넘겨갈 만큼 지루하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소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내용 전반에 흐르고 있는 우습지만 씁쓸한 풍자를 읽어내는 맛이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말도 안 되는 사건들, 논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물들의 대사와 사건 전개, 변덕스러움과 황당함. 하지만 이런 것들이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 아니었던가요? 그렇기 때문에 복잡해보이는 이름들만 제외하면 이런 이야기들이 별 거부감 없이 독자에게 다가오는 것 아닐까요? 소설 속의 이야기가 허무맹랑하고 절대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다고만 자신있게 외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소설 속의 시공간마저 뒤틀린 '저자의 우주'보다 더 심사 뒤틀린 사람들이 더욱 황당한 일을 벌이고 있는 곳이 '우리의 우주'일텐데 말입니다.

 

때문에 저는 어느새 주인공들이 겪는 황당한 모험들이 어쩌면 이미지를 조금 왜곡해서 보여줄지는 몰라도, 그 본질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거울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었고요.

 

정리하면, 부조리한 현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답답함에 지치신 분들이라면 잠시 상식이란게 원래 불가능하고 부조리함의 기준조차 세울 수 없는 은하계 이야기 속에서 잠시나마 웃고, 현실의 무게도 조금 덜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오늘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끊임없이 재탕하는 수많은 모티프들의 원천을 찾으려는 호기심에서 이 책을 읽는 것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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