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상스러움 -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진중권 지음 / 푸른숲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중요한 것은 "주사위를 던지면 1에서 6까지의 숫자 중 하나가 나온다."는 진리의 표명이 아니라 실제로 주사위 놀이를 하는 것이다. 어느 때, 어느 곳, 어느 상황에서도 고루 타당한 말. 그것은 언어의 휴가일 뿐이다. 우리의 비판적 담론들은 현실과 맞물리지 못하고 공전하고 있다. 그것은 현실 속에 들어가 그 속의 힘들과 맞물려야 한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 체계 속의 어휘들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표현을 가지고 구체적인 상황들 속에서 놀이를 할 수 있는 능력의 획득을 말한다. 이는 담론의 영역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문제는 담론이 아니라 그것의 사용이다. 낱말의 의미가 그것의 사용에 있듯이 담론의 의의도 그것의 구체적 사용에 있다. 다양하게 변화하는 우연의 세계 속에서 닥쳐오는 문제들을 해결해내는 놀이. 이 휴의의 정신이 필요하다. (pp.293-294)

 

2002년에 1쇄가 나온 이 책이 2013년 6월에 21쇄까지 찍어 냈을 정도로 사람들의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은 위에서 인용한 구절과 얼핏 모순되는 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이 글을 쓴 목적이 '고루 타당한 진리의 표명'이 아니고, 그의 말은 휴가를 간 채 의미 없이 빛바랜 것이 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였건만,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21세기 초반 한국 사회에 대한 분석이 여전히 '그것의 사용에서' 충분한 의미를 찾고, 필자와 같은 독자들이 그의 글을 읽을 때 격하게 공감하여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고, 가슴 한쪽이 시원해지거나 뜨거워지는 효과를 내는 것은 어떻게 된 영문인가? 아무래도 그것은 그가 지적한 한국 사회의 모습들이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얽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전망들 중 어떤 것은 분명히 수정되어야 하겠고, 어떤 것은 그가 굳이 예언가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겠으나 그의 짐작이 극대화되어 더 확실하게 실현된 부분들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지배적 망탈리테가 정치적 국가주의, 경제적 자유지상주의, 문화적 보수주의의 세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근본적인 그의 지적은 변한 것이 없어보인다. 물론 우리들을 감싸는 이 지독한 삼발이도 낡아서 금이 갈 조짐들이 보인다. 보수정권의 장기적인 집권 속에서 사람들은 우리가 누리던 다양한 권리들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싸워서 얻어낸 것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있으며 복지국가 담론은, 그것이 얼마나 의미 있게 사용되는지 좀 더 두고 지켜봐야겠으나, 경제적 자유지상주의가 황금열쇠가 아니라는 목소리로 등장하고 있으며 중간에 거대한 유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문화적 보수주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는 분명 균열이 가고 있다. 하지만 무엇 하나 확실하게 결별하지는 않았기에, 삼발이는 낡을 대로 낡았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 자리에 있다.

 

  '우리 사회의 지배적 망탈리테'가 바뀌지 않는 이상 그의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유쾌한 글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독자들을 찾아갈 것이다. 훗날 '뭐 이런 걸 가지고 진지한 고민을 하며 글을 썼지?' 라고 고개를 휘휘 저으며 그의 말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날이 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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