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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에 대한 두려움 - 분노의 지리학 ㅣ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 번역총서 4
아르준 아파두라이 지음, 장희권 옮김 / 에코리브르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소수에 대한 두려움』은 전 지구화를 가장 필요로 하지만 정작 지금까지는 이 현상으로부터 가장 혜택을 입지 못한 빈곤층, 무소유자, 약자 그리고 오늘날 주변화된 여타 집단들에게 전 지구화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묻는 장기적인 ―이는 나의 학문적 관심사이자 개인적 관심사이기도 하다―연구에서 일종의 중간 단계에 해당한다. 이 책은 과도기를 기술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무리 희망을 말한다 해도 그것이 전 지구화의 또 다른 결과인 폭력의 영향 아래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 희망은 공허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 지구화가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형태의 증오와 종족 학살(ethnocide)·이념 학살(ideocide)을 초래했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전 지구화에 대한 희망을 어디에서 품어야 할지, 또 어떻게 이 희망을 전 지구적으로 확장해나갈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연구의 현 단계에서 독자들이 아무쪼록 나와 함께해주기를 바란다. (머리말 중에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여러 논란을 일으키며 주목받은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끊이지 않는 국제적 분쟁과 서로 다른 문화권이 한 국가 안에서 충돌하게 되면서 생기는 국가 내 분쟁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신선한 패러다임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 저자는 나름대로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답을 주고자 한 것 같다. 그가 이야기하는 『소수에 대한 두려움』은 소수자들에 대한 억압적 정책이나 제도부터 ‘인종 청소’ 수준의 대량학살까지 일련의 사건들을 다루지만, 이런 현상들을 경제환원론적으로 설명하거나 종교근본주의의 광기 혹은 다문화주의의 실패와 같은 ‘흔히 들어오던’ 수사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전 지구화 시대에 근대적 국민국가의 함의가 무색해지고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불확실성과 추상성을 해소하려는 뒤틀린 시도로서 소수자를 끊임없이 밀어내고 그 존재마저 부정하려는 부당한 폭력을 성찰한다(이러한 폭력이 부당하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겠으나 최소한 피해자들에게는 더없이 부당하지 않겠는가).
1920년대 관동대지진 이후 조선인들이 이유 없이 학살당하던 역사를 떠올려보면 광기 어린 소수자들에 대한 폭력은 절대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 세기가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 한국에 다양한 이유로 들어온 외국인들을 ‘외국인 노동자’라는 정체성으로 크게 묶어내며 그들에 대한 안 좋은 편견을 만들어내고, 그들을 각종 사회 문제에 책임을 질 가장 유력한 집단으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생겨나는 것을 보면 더 이상 한국 독자들이 ‘소수에 대한 두려움’의 피해자로서만 저자의 목소리를 들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러한 폭력의 대상이 ‘한국인’과 ‘외국인’의 경계의 불확실함을 존재 자체로 파고드는 ‘조선족’에게 점철되는 목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필자는 저자가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소수자의 육체는 사회적 삶 속에서 친숙한 것에 대한 매력과 추상성의 감소를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매개체가 된다’고 날카롭게 지적한 부분이 통찰력의 산물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국내 상황에 대해 단순히 ‘다문화 사회’와 ‘소수에 대한 배려’만을 외치는 것은 미봉책으로 끝날 위험이 크다. 자유주의적 배경에서 ‘다문화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정치적 수사는 실제로 ‘다양한 문화의 구성원’들이 마주하게 되는 통합과 동화의 압력 속에서 빛을 잃게 되며, 더 비극적으로는, 차라리 통합과 동화의 시도를 하는 것이 겉으로만 다문화주의를 표방한 채 다른 문화권의 집단들이 일으키는 다양한 충돌 자체를 중요한 사회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방관하는 태도보다 ‘그나마 인도주의적’인 사례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어떤 해결책이 옳다고 확신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저자도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종교에서 비롯된 갈등을 생생히 기억하면서 ‘소수자’에 대한 폭력 문제가 자신의 고유한 관심사이자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 에세이를 썼듯이, 우리들도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가 ‘정말로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저자가 하고자하는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