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해냄 / 2008년 2월
평점 :
어떤 자살도 설명할 수 없다는 말씀이 옳은 것 같습니다, 정확한 설명은 불가능하죠, 모든 것이 마치, 단순히 그녀가 문을 열고 나간 것 같은 거죠, 혹은 들어간 것일 수도, 예, 혹은 들어간 것일 수도 있죠,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p.283
‘나’가 존재하지 않는 순간, ‘나’에게 있어서는 스스로의 마지막이 세상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하지만 타자의 마지막, 즉 타자의 죽음은 이미 살아 있는 자들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나아가서 인간이 살고 죽는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책 제목을 보고 ‘이름’의 의미에 집중하면서 이번 책을 읽기 시작했던 나는, 책장을 다 덮을 무렵에는 위와 같은 물음들로 무거워진 머리를 한 손으로 받친 채 결말로 나아가고 있었다. 사라마구의 이야기가 그렇듯이,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의 ‘결핍’이 이번 이야기 속에서도 등장하지만 그것의 결핍 상황이 독자가 고려해야 할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책에서는 주인공 ‘주제 씨’를 제외한 그 누구의 이름도 등장하지 않는다. 나머지 사람들은 직장에서의 직함이나 주제 씨와의 관계, 혹은 일반적인 명사로 불릴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유일하게 이름을 가지고 있는 주제 씨는 인생의 절반 넘는 기간을 살고도 별 볼일 없는 말단 등기소 보조 인력에 불과한 사람이므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물론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는 ‘주제’ 만큼 중요한 사람이 없겠지만. 그렇다고 주제 씨가 살아가는 환경이 원래 남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 상황은 전혀 아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그의 직장인 등기소는 물론이며 그가 유명인들의 신상정보를 수집하는 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것과 ‘그 여자’를 찾는 여행의 종착점인 공동묘지의 묘비석까지 모든 것이 불가능해지고 그 자체로 넌센스가 된다. 물론 이것들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덧없고, 말 그대로 ‘넌센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제가 한 여인에게 집착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어쩌면 평범하게 흘러갈 주제의 일상을 바꾸어 놓은 것은 수많은 이름 중 하나가 기존의 분류체계에서 ‘실수’라고 부를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었고 우연히 그에게 흘러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의미 없는 ‘실수’가 주제에게 다가와 호기심을 ‘꽃피게’ 해 주었고, 그의 호기심은 결국 소장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등기소 파일을 한 곳에 보관하는 대개혁을 추진하는 배경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대개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지금도 망설여지지만, 명백하게 기존 시스템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앞으로도 자리를 제대로 찾지 못할 것 같은 ‘실수’를 덮어버리기 위해서 기존 분류체제를 비틀어버리고, 그 틈 사이로 이 실수를 집어넣겠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그가 경외심으로 대해 마지않는 ‘전통’이 결국 공무원다운 결벽증 속에서 과감하게 포기되는 상황이다. 이쯤 되면 결국 확실히 죽은 한 사람이 살아 있는 상태로 남게 되는 모순이 벌어지고, 이것이 더 큰 ‘실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소장과 주제 씨 둘만 침묵한다면 이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는 이는 ―심지어 새로운 분류체계의 진정한 ‘뜻’을 아는 이는―없을 것이다.
기이한 상황이 공동묘지에서도 벌어진다. 자살한 사람들이 묻힌 땅의 묘비명을 ‘기표’라고 한다면 그 어떤 기표도 제대로 된 ‘기의’, 즉 무덤 주인을 가리키지 못한다. 이를 두고 양치기는 자살한 사람은 더 이상 성가심을 받고 싶지 않을 것 같아서 묘비석을 이리 저리 옮겼다는 황당한 답변만을 주지만 악취미에 가까운 농담 속에서 뼈 있는 한마디를 던진다. 공동묘지에서는 누구나 눈앞에 거짓을 보고 있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고. 한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불분명하게 말을 흐려버리게 된 등기소와 무덤 주인을 찾을 수 없게 만들어버린 공동묘지. 둘은 명목상으로는 엄밀한 규칙 하에 자신들이 맡은 ‘신상정보’를 관리하지만 결국 그 관리 시스템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것들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제대로 기능하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그것들이 진실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실 지금까지 읽었던 사라마구의 소설 중 가장 난해하다고 할 만큼 이번 작품은 읽고 질문만 더 많이 남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어렴풋이 전해져오는 경험들이 있다. 수많은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하는 작업을 할 때, 각 이름표들이 현실에서 의미하는 모든 것은 활자들 너머로 사라져버리고 눈앞에서 보기 좋은 이진법 덩어리로만 남아 편집자의 ‘가벼운’ 편집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작업들.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명단표를 보는 순간 표의 한 칸을 차지하는 ‘이름들’에 불과해버렸던 사람들. 이런 경험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상관이 있다고 말하기는 아직 생각이 충분히 닿지 못했지만 읽는 내내 그런 광경들이 연상되었다는 점이 다음 생각의 실마리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삶의 경험이 누적되고 한두번 더 읽어보면 머릿속에 퍼뜩 떠오르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지도.
P.S. 원제는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가 아니지만 전작들의 인기를 위해 출판사에서 고른 제목이 아마도 이렇게 나왔나보다(영어판 제목은 ‘All the Names’이다). 내용을 읽어 보면 그렇게 어색한 제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