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근대 개인주의 신화
이언 와트 지음, 이시연.강유나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4명의 근대 개인주의 신화의 주인공을 통해 살펴본 개인주의의 탄생과 정착 과정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우 흥미로운 주제였던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도 존재한다. 3년 전에 내용 이해에 급급해 정신없이 텍스트를 읽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근대 개인주의 신화들을 하나하나 뜯어봄으로써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신화’가 되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으나 신화로 굳어진 이야기는 후대에 널리 기억되며 회자되고, 만들어질 많은 이야기들의 뼈대가 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원작들의 재창조나 수많은 이본들은 차치하고서라도, 파우스트, 돈 키호테, 돈 후안, 로빈슨 크루소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형태가 조금씩 변형되어 여러 이야기 속에서 다시 살아났고, 앞으로도 계속 살아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 영웅들의 모습은 ‘닮고 싶은’ 종류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들에게 매력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매력은 영웅이라기에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면이 있기에 나오는 매력이며 매력적인 악당을 볼 때 느껴지는 공감대 같은 것이다. 어쩌면 영웅들의 모습을 현대인들은 이미 ‘닮아 있기’ 때문에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정수를 모아 놓은 인물들에게 ‘정나미’가 떨어진다고 느끼는 것은 아킬레우스에게 ‘무모함’이 느껴지거나 오디세우스에게 ‘소름끼치는 간교함’이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우리가 상상하는(때로는 욕망하는)개인주의적 삶의 최고점을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개인주의에 반대하며 개인주의를 이기주의나 반인륜적인 무엇으로 치부하려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개인주의는 그러한 오명들을 뒤집어쓴 채 배척받아 마땅한 것으로 여겨졌던 때가 있었고(우리 주인공들이 원작에서 맞이하는 운명을 기억해보자), 지금도 개인주의라는 말은 부정적인 맥락에서 더 자주 사용되고 있지만, 현대인이 개인주의를 완전히 버릴 수 있겠는가?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달한 소유권적 개인주의든, 정치적인 개인주의든, 도덕적, 종교적 개인주의든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다른 존재 양식과 사회적 삶의 양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지금보다 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잘 모르겠다. 이에 대해 답변하는 것은 확실히 내 능력 밖의 일인 것 같다. 이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있다. 개인주의가 당연한 그 무엇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그 조건으로 인해 더 이상 불가능해 보이는 시도들이 있다. 이를테면 사회를 송두리째 뒤집는 혁명 같은 것이다. 내 생각에, 혁명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 모두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으면서 이룰 수 있는 혁명은 없다. 때문에 ‘누가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릴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은 진부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질문으로 다가온다. 그 무엇보다도 일단 내가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얼마만큼의 피를 흘릴 수 있겠는가? 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져 봐도 선뜻 대답할 용기가 없음을 잘 알기에, 개인주의가 고착화될수록 기존에 알던 방식대로의 혁명은 점점 요원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다른 방식의 혁명이 가능하다든지, 개인주의적인 태도가 어떤 지점에서 다른 것으로 전화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것들을 있는 그대로 다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혁명 이외에도 개인주의를 전제할 때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것들은 많을 것이다. 그것들이 불가능해진 것이 다행스러운 일인지, 인류의 불행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필자의 능력이 충분히 닫지 않아 부족했지만, 개인주의에 대해 한 층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준 저자의 말로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다. 저자가 자신이 직접 고른 4명의 영웅들에 대해 마지막으로 언급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들을 개인주의의 영웅들이라고 보자면 우리는 그들을 매우 부정적이고,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종류의 개인주의자들로 보아야 한다. 물론 이들은 어떤 개인주의적 사고도 대놓고 선전하지 않는다. 또한 이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개인주의를 지지하지도 않는다. 단지 이들은 스스로 그것을 취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어떤 메시지가 있다면 그 메시지는 결국 『끝이 좋으면 다 좋아 All’s Well That Ends Well』에 나오는 비천하고 반사회적인, 그러나 자신을 확실히 파악하고 있는 악한 파롤스의 메시지와 같을 것이다. ‘나란 놈/단지 생겨먹은 대로 살아갈 것이다.’ 파우스트와 돈 후안과 로빈슨 크루소에게 신조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돈 키호테는, 그들과 한패가 아니고 또 그러려고도 하지 않겠지만, 그의 모토 역시 이것이 아니겠는가. (p.394 맺음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