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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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마구가 소설 속에서 만들어내는 세계에는 뒤틀림이 있습니다. 이 뒤틀림은 어떤 경우에는 등장인물들이 살아가는 세계 전체를 뒤흔들기도 하고, 작게는 등장인물들의 일상적인 삶을 흔들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 경우라도, 이야기의 핵심인물들에게 잠시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그들의 우주가 뒤틀려버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겠죠. 사라마구의 소설이 가진 매력은, 이러한 총체적 뒤틀림이, 그의 소설 리스본 쟁탈전이 그런 식으로 전개되듯이, 매우 일상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것의 결핍이나 변형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변형들이 난생 처음 들어보는 황당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은 소망했거나 무심하게 내뱉었던 가정들이라는 점이, 그럼에도 그의 소설은 누구나 생각하는 뻔한 결말로 치닫지 않는다는 점이, 매력적인 것이죠. 모두가 맹인이 되는 바이러스의 공포를 그린 눈먼 자들의 도시’, 백지투표가 정치적으로 불러오는 파장을 그린 눈뜬 자들의 도시’, 인생에서 마지막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이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죽음의 중지모두 일상에서 당연히 갖춘 것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사라졌을 때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인간 본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그려냈습니다. 도플갱어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과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자신과 똑같은 사람의 존재에 대한 상상은 그리 유별난 것이 아니지만, 막상 그런 존재가 현실에 존재함을 확인했을 때 느껴지는 당혹감과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 그리고 그 존재가 자신의 삶 속으로 들어왔을 때 느끼는 위기감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라마구의 필력은 탁월합니다.

 

도플갱어이야기가 흥미진진한 이유는 두 주인공의 완벽히 똑같은 육체 속에 둘이 외모는 복사본이라고밖에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로 작은 상처나 사마귀까지 똑같지만들어 있는 사뭇 다른 영혼 때문입니다. 역사교사인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와 단역배우에서 조연급으로 성장 중인 배우 안토니오 클라노는 자신의 직업에 적합한, 때문에 얼핏 보기에도 다를 수밖에 없는 성격을 지닌 인물입니다. 테르툴리아노의 꼼꼼함과 세심함, 우유부단한 모습과 소심함은 계속해서 변신을 시도함으로써 살아가는 배우의 대범하고 다소 즉흥적이며 쉽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성격과 대비됩니다. 둘이 자신에게 닥친 최고의 시련 자신의 도플갱어가 서로의 인생에 점점 짙게 간섭해온다는 것에 대처하는 자세도 성격을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테르툴리아노가 자신의 적과 약혼녀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나의 비겁함이 그들을 죽게 했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겠지만 사실 그 뒤에는 안토니오의 성급하고 감정적인 복수가 선행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천천히, 마치 불가능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저 깊은 곳에서 고통스럽게 몸을 이끌고 올라오듯이, 망연자실한 표정이 안토니오 클라로의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보게 될지 알고 있었으니까.” (p.294)

 

두 주인공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다음에 이야기의 흐름을 지배하는 두려움과 불안감, 혼란스러움의 감정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가 (갑자기) 어려워졌음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나와 완벽하게 똑같은 외형을 한 사람이 나란히 옆에 선 채, 둘이 동시에 전신거울을 본다면, 누가 자신이고 누가 자신의 도플갱어인지 구분하는 것은 아마 즉각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성이 잠깐이라도 주저한 다음에 거울이 상을 반대로 보여준다는 과학적 지식을 동원한 후일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도 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고, 남들과는 다른 유일무이한 것이라는 보장이 있기 때문인데, 외형으로 나와 구분 불가능한 타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위의 두 가지 인식의 지름길을 모두 박탈당하는 상황이기에 죽을 만큼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겠습니다. 독자는 둘이 외형만 같을 뿐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육체의 복사가 영혼과 의식의 복사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조차 없는 상황이라면 당사자들은 더욱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제일 불안한 건, 그자가 나를 닮았다는 사실, 내 복사판이라는 사실이 아냐, 정말로 불안한 건 오 년 전에 그자와 내가 똑같은 모습이었다는 사실이야. 그러니까 우리 둘 다 콧수염을 길렀다는 것까지 똑같았단 말이지. 게다가 오 년이 지난 지금 바로 이 시간에도 그자가 여전히 나랑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더 불안해.” (p. 32 )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외모가 같은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해도, 그것이 정확하게 같은 궤적을 그리면서 변하고 있다는 것은, 개인들이 삶에서 남기는 궤적은 역시 유일무이하다는 우리의 상식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것이 한층 더 무섭고 불안한 사실이 되는 것이죠. 이 점을 테르툴리아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습니다. 유전자가 거의 서로 일치하는 쌍둥이조차도 고유한 자신의 궤적을 가지고 있는데, 그의 도플갱어는 이보다 한차례 더 집요하게, 최소한 외형에 있어서는 자신과 동일한 궤적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소름 돋는 일이 아닐 수 없죠(40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삶의 궤적이 외형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지요).

 

아마도 현실에서 우리들이 쌍둥이로 태어나지 않은 자신의 도플갱어를 만나는 일은, 인간복제가 윤리적 금기를 넘어서 현실이 되기 이전까지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과 다르게 보이는자신의 외형을 배제할 때, 무엇이 나를 나로존재하게 만드는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도플갱어가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를 나를 둘러싼 세상의 그 무엇과도 다른 존재로 정의하기 전에, 내 자신이 어떠어떠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존재할 수 있으며,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무엇이겠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며, 답을 찾고 자기 자신을 지켜나가는 것도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이야기의 결말에서 또 다른 도플갱어의 존재를 감지했을 때 테르툴리아노가 취하는 행동은 결국 그러한 상황 자체가 다시 발생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확고한 결심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그 누구보다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겪은 그의 선택입니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테르툴리아노와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이런 고민들의 무게에 괴로워하면서 등장인물들의 혼란스러움에 같이 공감한다면 책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겠죠.

적은 적을 갖겠다는 우리의 의지에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우리를 갖겠다는 적 자신의 저항할 수 없는 욕망에서 태어나는 것이다(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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