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로재나 마르틴 베크 시리즈 1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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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경찰소설을 좋아한다.
제복 판타지가 있는 건 아니고 ㅋㅋㅋ
돈을 받고 의뢰받은 사건만 다루는 탐정과 달리
사건당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해결했다고 성과금을 받는 것도 아닌
공무원 경찰이 해결되는 그 순간까지 사건에 매달리는 그 사명감, 직업적 숭고함이 좋다고 할까.

로재나에는 마르틴 베크라는 중년의 경찰이 나온다.
정의감에 불타는 열혈 청년도 아니고 예민한 위장과 피곤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나이든 경찰이다.
잔소리하고 겉으론 데면데면해도 역시 챙겨주는 건 마누라 밖에 없다고 할 만한 아내와

곧 사춘기에 접어들 두 자녀가 있지만 아이들이 소설에 등장하는 분량에서 짐작되는 것처럼 존재감 없는 아버지이다.
택시비를 걱정하고 아내의 돈타령에 지갑에서 돈을 넣었다 빼며 고민하며

모처럼 쉬는 저녁 시간에 모형배를 혼자 조립하는 소심남이기도 하다.

그래도 당대 최고의 경찰이란 소리를 듣는 마르틴 베크는 어느 지방 도시에서 운하 갑문에 걸려있다가 운좋게 청소 때문에 건져진 신원 불명의 시신 살인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휴가도 반납하고 사건을 조사하는 감 좋은 시골 경찰과 함께 그녀의 이름을 찾아주고, 증언을 토대로 그녀의 행적을 재구성하고, 그녀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아내고... 범인을 잡으려고 애쓴다.

대단히 명석한 천재도 신적인 추론 능력을 가진 경찰도 등장하지 않는다. 성실하게 자료를 모으고 탐문하며 증인과 용의자를 신문한다. 그렇게 얻은 결과물로 가설을 세우고 반박하면서 좀 더 설득력있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헛짚으면 다시 또 이 과정을 반복한다.


마르틴 베크가 원탑인 것도 아니다. 팀플레이는 같은 경찰서, 타지방 경찰서, 그리고 국경을 넘어 외국의 경찰들과도 이뤄진다. 결국 휴가를 못 떠나고 사건 해결에 매달리는 알베리, 시니컬한 유머를 지닌 콜베리, 최악의 담배를 피우는 컴퓨터란 별명을 가진 기억력 좋은 멜란데르, 이들 못지않게 성실하고 끈질긴 미국의 카프카 형사까지... 다들 사랑스럽다.

배경이 1965년인 걸 감안해야 한다. 지금이라면 순식간에 해결될 텐데, 전보를 치고 편지와 소포를 주고받으며, 말이 잘못 전달될 정도로 감이 안 좋은 전화로 대서양 건너편 동료와 수사를 공조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느리고 때때로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수사가 이어진다.

누군가에겐 지루하고 뭔 재미일지 모를 소설이 분명하나..

(안다. 나도 이런 걸 좋아하지 않았다면 이게 뭐야 했을 거다 ㅎㅎㅎ)
난 너무 좋다. 정말이지 리얼하잖아. 그래 이런게 삶이지. 다들 살아있는듯 생생하게 캐릭터가 잡힌다.

아쉬운 점도 있다. 범인의 동기나 심리, 배경도 관심이 많이 가는 부분인데... 좀 미흡하다.

그치만 사심 가득 별점 다섯이다.

‘경찰관에게 필요한 세 가지 중요한 덕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는 속다짐을 했다. ‘나는 끈질기고, 논리적이고, 완벽하게 냉정하다. 평정을 잃지 않으며, 어떤 사건에서든 전문가답게 행동한다. 역겹다, 끔찍하다, 야만적이다, 이런 단어들은 신문기사에나 쓰일 뿐 내 머릿속에는 없다. 살인범도 인간이다. 남들보다 좀더 불운하고 좀더 부적응적인 인간일 뿐이다.’

머리가 아프고 귀가 먹먹하기는 해도 참으로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다. 출발 신호가 울리기 일 초 전에 출발선에 서 있는 장거리 주자의 기분이었다. 걱정은 두 가지뿐이었다. 살인자가 자신보다 석 달 앞서 부정 출발을 했다는 점과 자신이 이제부터 어느 방향으로 뛰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내 이론에 따르면 로재나 맥그로를 살해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 그렇다면 내 이론은 틀린 거지. 내 이론이란 늘 그 모양이야. 아, 사유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칠 년 만에 해결된 그 범죄가 마르틴 베크에게는 하나의 작은 일화일 뿐이었지만, 사건을 담당했던 선배 경찰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선배 경찰이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서 오백 번쯤, 아니, 천 번쯤 거듭 자료를 훑어보고 증언을 확인했던 것을, 그 일을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일 년이고 이 년이고 계속했던 것을 마르틴 베크는 똑똑히 기억했다.
종종 뜻밖의 장소나 의외의 상황에서 선배와 마주친 적도 있었는데, 그때 선배는 비번이거나 휴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인생 최고의 비극이 된 사건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찾는 중이었다. 선배는 세월과 함께 쇠약해져서 일찌감치 연금을 받는 몸이 되었지만 여전히 수색을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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