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 바깥의 소설 25
가브리엘 루아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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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늘날과 과거사이에 사람이라는 존재와의 괴리. 흔히 옛날과는 다르다고 한다. 물론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그 무엇도 없기에. 하지만, 사람의 곱다고들 하는, 맑다고 하는 심성만큼은 과연 모든 것이 변한다는 공식의 틀을 따라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런 과거와 현재의 괴리는 과거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순수란 존재와의 결별로 인해 생기지 않는게 아닌가 한다. 그림자란 무엇인가? 밝은 날이면 언제나 우리 주위를 맴돌며 따라다니는 또 하나의 나 자신이 아니던가. 그런 존재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보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처럼 그림자를 잃어 버렸다고 생각해보자. 뭔가 허전하다. 도무지 뭔가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이 없을 때 나타나는 공허함. 그 공허한 장면 -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공간에서 항상 나를 그늘삼아 숨쉬던 그림자 없이 홀로 서 있는 외로워 보이는 한 인간.

이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 사라져 버리더라도 생에 지장은 없지만 뭔가의 공허함을 주는 것들이 항시 있다. 그런 그림자 같은 존재의 무리들 중 우리가 저 멀리 잃어버리고 온 것. 바로 순수 - 언제나 세상을 밝게 바라만 볼 수 있는. 우리의 삶은 그동안 순수라는 그림자를 잃고서 살아왔기에 바쁜 일상 속에서도 뭔가가 항상 텅비고 모자라다는 느낌을 받아 왔고, 또 그 느낌 때문에 과거와의 괴리감을 느낀다고 여겨진다.

<내 생애의 아이들>은 이렇게 우리가 잃어버리고 왔던 그 순수가 무엇이였는지를 초보 초등학교 교사와 그 교사의 품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다듬어지지 않은 천사, 아이들을 통해 보여주었다. 왜, 아이들만이 볼 수 있다는 세계가 있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 아이들만의 눈에 비친 세상. 사실은 우리가 순수란 그림자를 가지고 있던 시절의, 그 때 그 시절에 볼 수 있었던 그 자체의 꾸밈없는 세상 이야기. <내 생애의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너무나 따뜻하게, 소박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었다.

읽기에도 부담이 없게 짧은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특히 마지막 부분의 단편이야말로 정말 이 책의 으뜸이라고 꼽고 싶다. 깨끗하기만 하던, 세상이라는 담배라고는 한번도 들이켜 본 적이 없던 순수한 소년을 사랑, 방황, 때묻음, 정화라는 과정으로 우리에게 따뜻함을 전해 주는 그 마지막 단편 - 메데릭이란 소년이 주인공인. 그 단편이 정말 이 책의 마지막의 아쉬움을 적절히 달래주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또 단편들만 이어지다 보면 밋밋한 느낌으로 책을 마감할 수도 있는 상황을 그 단편이 말끔히 마무리지어준다.

'성인 속에 아이가 되살아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인데 비하여, 어찌하여 어린아이의 얼굴 속에 성인의 모습이 배어나는 것을 보는 것이 그리도 가슴을 아프게 한단 말인가?'란 문구가 작가의 저 밑에 깔려있던 어린시절에 인간이 간직하던 순수에 대한 생각을 대변해 주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가끔은 우리가 지녔던 그 순수의 자취를 찾아보는건 어떨까? 물론 커버렸다는, 이제 삶을 조금씩 알아간다는 우리들의 태반은 그 흔적도 찾기에 힘이 벅차겠지만, 그래도 한 때는 또 다른 나 자신을 지녔던, 그 때를 한 번 떠올리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그 만큼의 삶을 더욱 값지게 만들어 주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게 하지 않을까 한다.

과거란 두툼한 벽 저 너머 두고 온 나의 어린시절은 어디에 고이 잠들어 있을까..? 그 때 가지고 있던 나의 순수는 과연 저 휑휑한 벽 너머에 펼쳐져 있는 광활한 대지 속에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을까? 혹시 어딘가에 있을 나의 어린시절 속에서 또 다른 나 자신을 만들어 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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