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덮고서 문득 어떤 시 한 구절로 시작하고 싶어진다. `왜 사냐면 웃지요.` 다같이 웃어 볼까? 풋.

`죽음. 죽는다. 세상과의 끝.` 죽음이란 단어가 가지는 그 염세적이고 허무적인 그림자는 우리 얼굴을 짙게 드리우기 충분하다. 아니 넘치고 넘쳐서 주워 담기도 힘들다. 오죽하면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어가고 있다.`란 히스테릭한 말 조차 나왔으랴. 결국은 누구나 죽게된다는, 그리고 그 죽음이 한 번 밖에 없다는데에서 우리의 공포심은 극에 달하게 된다. 지금을 저장했다 죽어보고 불러오기가 되면 오죽 좋으랴만...

그 죽는다는 공포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역설적이게도 자기는 이제 영원히 죽지 않을거라고 믿게된다. 아니 믿게끔 자기 세뇌를 시킨다. 결국 자기도 죽을 거란걸 알고는 있지만 세뇌는 멈추지 않는다. `난 안죽어. 난 안죽어. 내가 죽으면 세상이 끝날걸?` 물론 그 세뇌는 하루가 갈수록 힘이 줄어든다. 한숨은 늘어난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내가 죽어도 세상은 팽글팽글 잘만 돌아간다.

여기 루게릭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만하는 모리 교수가 있다. 결국은 모두가 죽을거라지만 죽음의 도착일을 선고 받았다는 것은 `모르는게 약이다.`란 명언과 기가막힌 조화를 이룬다. `당신은 2112년 3월 9일 3시 20분에 죽을 것이오. 추신, 저승사자 보냄.` 이런 `저승사자 팬레터` 받으면 제 정신지키기 힘들다.

하지만 모리교수는 제정신을 지킨건 물론이거니와 그 `팬레터`를 달게 받아들이는 심히 믿기 어려운 초월적 의지력을 보여준다. 얼마남지 않은 삶(항상 우리는 인생이 짧다고 불평하긴 하지만)을 비참하게 보내기 보다 그 나머지의 희소성을 더욱 뜻 깊게 보내려는 노력; 그동안 못 만나보았던 친구를 부르고, 토론회를 주최하고 음악을 즐기고.`하루24시간`이 땀 줄줄 흘리며 두손 두발 다 번쩍 들어버린다. 모리의 대단함은 전지전능하다는 `신`을 탄생시킨 이 죽음 앞에서도 너무나 태연히 자기 삶을 자근자근 꾸려나간다는데에 있는 것이다. 나는 과연 가능할까? 대답은 `of course not.` 그래서 대단하다고 하지 않는가?

이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모리와 그의 제자가 매주 화요일에 만나 그 들이 나누었던 대화를 담고 있다. 물론 모리는 시한부 삶을 언도받은 상태다. 처음 접하며, 나는 어딘가 아포리즘적이고 계몽적일것 같은 냄새에 코를 쥐어 막았지만 모리가 실존인물이라는데에서 가식적이 아닌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얼큰한 맛을 보았다.

청국장이 냄새는 독해도 그 맛은 특출하듯, 계몽적 냄새는 이 얼큰함의 맛을 당하지 못했다. 물론 청국장 냄새에 질겁부터 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만.하지만 다른 것은 제쳐두더라도, 구성, 내용, 흥미 다 제쳐두더라도 우리는 `모리`란 `얼큰한 국`에서 건져먹을 `건더기`가 무수할 것이라는 사실만은 부정 할 수 없을 게다.

죽음. 뵈기 싫다고 너무 멀리하고 혐오만 할 것은 아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 했다.비록 죽음과 맞닥드렸을때 이기지 못해도 패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를 알고 죽음을 안다면 백전백승은 못해도 백전백화(百戰百和)는 가능한 것이다. 죽음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죽음만 보면 `36계 줄행랑`부터 쳐버리는 지금의 우리들. 36계도 적을 알고 써먹어야 `계`란 명찰이 붙는것이다.

프로농구팀 모비스의 전 코치 `박승일`도 루게릭 병을 앓고 있단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있다한다. 더이상 모르는게 약이아니다. 죽음과의 조우. 이제는 도망갈 때가 아닌 화해할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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