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장예모의 사상적 변화?

재미있다. 없다만을 가지고 얘기하자면 액션을 기대하고 봤다면 재미없다. 장예모 감독의 예술성을 기대하고 봤다면 재미있을 것이다. 그동안 장예모 감독의 영화들 중 재미있는 것보다 감동적인 영화가 많았다. '영웅'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영화다. 단지 스케일이 커졌을 뿐이다.
'와호장룡'과 같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성과에 고무된 중국인들의 기대를 바탕으로 초호화 캐스팅, 제작진, 엄청난 제작비로 제작된 영화이다. 아마 장예모 감독도 그만큼의 부담감이 컸을 것이라 생각된다. 단순한 무협물로만 보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하던 모습이 너무나도 선하다.
엄청난 스케일의 영화이긴 하지만 오히려 이야기의 구성은 단순하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을 연상시키는 이야기 구성은 아기자기하고 섬세함이 요구되는데 오히려 그런 재미가 스케일에 의해 죽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색채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화자에 의해 주도된다기 보다는 얘기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듯 하다. 붉은 색은 질투를 상징하는 색으로 무명(이연걸 역)의 무용담을 이끌어가는 색이다. 파검과 비설, 그리고 여월의 관계에서 나타난 애증을 표현하고 있다. 푸른 색은 진시황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바라본 얘기이다. 차가운 현실과 그로 인해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는 파검과 비설의 아픔을 냉혹하게 얘기 하고자 한다. 하얀 색은 사실에 입각한 현실의 시점으로 파검의 신념과 비설의 복수심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초록 색은 과거의 시점으로 파검과 비설의 만남과 진시황 시해를 위해 왕궁에 잠입했던 회상의 장면이다. 좀 독특해서 기억이 남는 장면은 은행나무 잎이 무수히 휘날리던 비설과 여월의 결투씬이다. 노란 색은 여월의 집착에 가까운 사랑의 결말로 결국 붉은 색으로 물들며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결투씬은 와이어 액션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 홍콩 출신 정소동 무술감독이 맡은 걸로 아는데 의외로 어색한 느낌이 있었다. 와이어 액션의 단점인 행동의 부자연스러움이 곳곳에 나타난다. 한 수 아래라는 우리나라의 '화산고'보다도 더 부자연스럽기 까지 하다. 그러나 수상비(水上飛)로 일컫는 파검과 무명의 호수에서의 결투씬, 장천과 무명의 내면의 결투를 그려낸 심내전(心內戰), 비설과 여월의 은행나무 결투씬은 정적이며서 춤사위와 같은 동양적인 동선을 잘 그려내고 있다. 심내전을 표현하는 장면은 흑백으로 표현하였는데, 다른 장면의 원색에 가까운 색채로 인하여 다소 느낌이 떨어진 듯 하다.

마지막으로 사상에 관한 부분에서 그동안 장예모 감독은 대표적인 중국의 반체제 인사로 요주의 인물이었으나 최근 중국 정부의 대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이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그러한 변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천하"를 이루기 위하여 진시황의 시해를 만류하고자 하는 파검의 신념에서 쉽게 나타나고 있다.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소한 감정 조차도 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영웅의 면모라는 것이다. 그로 인해 중국의 고대로 부터 이루고자 하던 중화사상이 완성될 수 있다고 얘기하고자 한 듯 하다. 진심일까?
작품만을 보고 얘기하자면 블록버스터와 예술의 또 하나의 잘못된 만남인 듯 하다.






* '영웅' 국내 공식 사이트 : http://www.hero2003.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