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애보-순애는 어디가고?
'순애보'가 '순수한 사랑에 대한 보고서'가 맞는 것일까?
'호모 비디오쿠스'라는 알려진 단편 영화의 감독으로써 '정사'로 단숨에 성공적인 데뷔를 한 이재용 감독의 두번째 상업영화다. 한동안 유행이었던 한일합작 영화의 시류에 편승하여 CF모델인 일본 배우가 한 컷을 맡고 있다.
따분하고 자질구레한 일만 하는 너저분한 젋은 청춘 동사무소 직원의 유일한 취미인 포르노 사이트 검색실력은 너무나 형편없다. 현실과 가상공간의 대립적 구조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가련하기 조차 하다. 차라리 내가 찾아주고 싶다. 옷도 안 벗는 포르노 사이트를 없는 신용카드까지 만들어 열심히 돈내고 보는 이상스러운 중독은 어색하기까지 했으니까? 반면 일본의 여주인공은 너무나 단조로운 일상으로의 탈피를 꿈꾸고 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처럼 날짜변경선 위에서 숨을 참고 죽기를 소원하고, 죽기 위해 돈이 필요해서 포르노 사이트의 사진 모델을 자청한다. 그녀 또한 일상의 탈피를 위해 가상공간을 찾는게다. 알래스카로........
여주인공의 친구애인인 이란남자의 골목길에서 헤매는 씬은 이란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패러디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주인공의 사이버명인 아사코도 피천득의 '인연'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감독은 의외로 초창기 작품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같다. 남주인공이 지하철에서 다친 손가락이 지하철문에 끼자 '아야'라고 외치자, 닫힌 지하철 안에 여주인공 '아야'가 그를 빤히 처다보고 있다. 일본과 한국에서 살고 있는 두 인물의 동시대적인 공간을 연결시키려고 한 것이다. 남주인공의 포르노 사이트에서 여주인공을 선택한 것도 현실에서 짝사랑하지만 다가설 수 없는 빨강머리 아가씨에 대한 연정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인터넷에서 여주인공의 루비구두를 사서 빨강머리 아가씨에게 선물로 주려고 했던 행동도 가상과 현실을 동일시하려는 이유였을 것이다.
화면의 화사한에 비해 이야기 전개가 너무 따분하다는 점이 거의 치명적인 작품이다 보니 이 영화에서 '순애보'가 존재했던 것인지 미처 느낄만한 여유(?)를 갖지 못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