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빨갛고 얇은 책…..빨간 립스틱으로 화장한 책 다른 블로그에서 책읽기한 것을 보고 호기심에 끌려서 목록에 올려두었다가 얼마 전에 누가 인터넷으로 책 산다길래 함께 사버렸다.

책을 읽으면서 '망각'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자신이 보고 기억한 것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그로 인해 인간의 지식이라는 것은 한 세대를 넘기에 힘들었다. 비록 문자라는 것에 의해 보존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한계는 결국 더디게 인류를 이끌고 있을 뿐이다.

대신 '망각'은 뇌의 무한한 기능을 원활하게 해 주는 순기능도 존재한다.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것은 뇌의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잊고 싶은 것은 뒤로 숨겨버린다. 물론 그러한 '망각'의 힘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오히려 인간들의 대부분은 '망각'의 힘을 활용하기 보다 잊지 않으려고 버틸 뿐이다.

제롬 앙귀스트는 '망각'의 힘을 적절하게 하고 살아온 인물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 내부의 '적'은 은밀하게 그와 대화를 요청한 것이다. 그건 마치 '망각'하고자 했던 그의 힘이 느슨한 틈을 노린 '적'의 반격이기도 하다. 그 적이 천사였는지 악마였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인가 보다. 애드가 앨런 포의 '윌리엄 윌슨'에서 주인공은 타락한 존재의 전형이었고, 그의 '적'은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노통이 '적'과의 끝임없는 대화를 선택했다면, 포는 그 '적'을 뿌리치고 외면하고자 했으나 한순간도 자신의 곁은 떠나지 않는다.

철학적인 대화를 아무런 꺼리김없이 인용하던 두 인물은 '적'인 동시에 '하나'였던 것이다. 아무런 주변 설명도 없이 주고 받는 식의 대화는 이 소설의 단순함을 표현하다기 보다 지극히 당연한 형식의 결과였던 것이다. 나의 '적'은 누구인가? 내가 잊고 싶어한 것들은 무엇인가? 나도 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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