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웠다. 요즘은 유난히 더웠다. 가만히 있어도 몸에 땀이 나는 그런 날들이었다. ‘낙원’을 읽었다. 이 더운 날에 ‘모방범’의 반만 해줘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는데, 오싹. 새벽에 읽었는데 무서웠다. 누군가의 약점을 알았을 때, 그것을 갖고 협박하는 인간의 몰염치함과 뻔뻔스러움, 그리고 악랄한 사건과 시시각각 다가오는 검은 세력… 시게코가 사건의 핵심에 다가갈수록, 그것의 전말이 드러날 때 내가 느꼈던 경악스러움은, 오싹함, 그 자체였다. 인간이란 이리도 무서운 것이었나. 인간이란 이리도 악랄한 것이었나. ‘모방범’의 후속작격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 ‘모방범’에서 시게코가 얻었던 그 상처들이 치유되는 그것을 보며 그것을 알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가슴 찡한 결말. 가슴을 꽉 채우는 그 찡함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라 놀랐다. 미야베 미야베, 정말 대단하다. ‘낙원’을 보는 동안 덥다는 생각을 못했다.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에 유난히 놀랐을 정도로 오싹했다. 그러면서 가슴을 꽉 채우는 그 결말이라니! 아름답다. ‘낙원’은 아름다운 소설이다.
오랜만에 한국 작가의 추리소설을 봤다. 이 작가가 ‘미술관의 쥐’로 유명해졌다고 하는데 그 책은 보지 못했다. 곧바로 ‘코미디는 끝났다’로 넘어온 셈이다. 한국 추리소설에 대한 내 감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응원하는 마음이고 두 번째는 외국의 고품격 소설에 비해 수준이 좀 떨어져서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언제나 고민이다. 우리나라 것이라고 해서 수준이 좀 떨어져서 응원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냉정하게 내 감정을 뱉어내야 하는 건지. 이 소설은? 묘사는 수준급이다. 며칠 후에 죽는다는 문자를 지속적으로 받기 시작한 코미디언. 그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다가 점점 초조해져서 모든 것을 다 의심해가는데, 그 과정이 잘 묘사된 것 같다. 휙휙 읽어갔다. 그렇다면 트릭은? 이건 그걸 피해갔다. 일종의 심리 추리소설이라 그렇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넘어갈 수는 없는 것이고, 끝맛이 약간 찌릿하게 남는다. 좋으면서도 뭔가 아쉬운 그런 것.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어설프게 끝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것. 그렇지만 좋았다고 말하고 싶은 그런 소설. 코미디도 끝났고 소설도 끝났고, 나는 새로운 책을 찾아 떠나야겠다. 다른 작품으로 다시 보기를.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이 나라에 ‘제국주의’를 말하다니 정말 놀랍다. 이 나라는 ‘백의민족’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평화를 사랑한다는 논리를 표방하면서도 정복전쟁을 나섰던 광개토대왕을 사랑하는 이중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프랑스나 러시아들이 그랬듯 남을 정복하고 싶지만 그럴 힘이 없으니까 평화를 사랑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인정하고 싶지만 나는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이 나라는 ‘제국주의’와 전혀 인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우석훈이 이 나라의 미묘한 흐름을 그것과 결부시켰다. 명석하게 논리적으로! 책을 보면서 몇 권이나 감탄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민주당에 민노당까지, 그들의 입장 등을 분석하고 현 정부와 이전 정부들의 정책을 분석, 그것이 제국주의적인 흐름을 어떻게 쫓고 있는지 알려준다. 내가 무식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우석훈은 현재를 분석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기도 한다. 이대로 간다면, 30년 안에 한국이나 일본, 중국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하는데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정확히 30년이라는 수치는 모르겠지만, 일촉즉발의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석훈의 그 논리는 허튼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의 가장 중요한 ‘영토’문제가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이상, 계속해서 충돌하는 한 분명 그런 일이 생길 것 같다. 그래서 우석훈은 이 책에서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을 말한다.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의 방법!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을 주장하는데 그의 말에 박수를 보낸다. 남들은 눈앞의 것에만 연연하는데 그 이상의 것을 보는 우석훈은 박수 받을 만하다. 여러 번 놀라게 하더니 머리를 맑게 만든 ‘촌놈들의 제국주의’,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전부터 생각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요코야마 히데오의 ‘경찰’소설은 은근히 재밌다는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도 재밌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편으로 느낀 것은, 그가 ‘감동’을 주는데 일종의 강박증이 걸린 것이 아닌가 하는 것. 지나치게 감동을 주려고 하는 것은 좀 자제해줬으면 좋겠는데 자꾸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오히려 읽고 난 후의 만족도가 떨어지게 만든다. 어쨌거나, 이번 소설은 무난한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요코야마 히데오의 팬이라면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