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기행 - 선인들, 스스로 묘비명을 쓰다
심경호 지음 / 이가서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하루하루 너무나도 정신없이 살다보니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어제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를 만큼 바빴는데, 그것이 내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회한이 들어서 그런 것일 게지. 나는 소설을 찾았다. 소설에서 위로를 받았으면 했다. 그때 내가 만난 책이 「내면기행」이다. 소설은 아니다. 선인들의 글을 모아두고 그것에 대한 해설이 곁들어진 인문책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선인들, 스스로 묘지명을 쓰다'라는 부제 때문이었다. 죽음 앞에서, 삶을 돌아보는 그들의 마음이 알고 싶었고 그것이 내게 어떤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내면기행」은 비슷한 내용의 묘지명을 모아 5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이 사람을 보라', '이것으로 만족이다', '나 죽은 뒤에 큰 비석을 세우지 마라', '웃어나 보련다', '죽은 뒤에나 그만두련다'의 소주제인데, 내가 처음에 읽은 곳은 2장 '이것으로 만족이다'이다. 죽음을 앞두고 만족했다고 말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나는 애타는 갈증으로 그들의 묘지명을 찾아 읽었다. 김훤, 홍가신, 김상용, 이신하 등의 글이 곳곳에 보였는데, 아, 나는 키득키득 웃고 말았다. 죽음에 관한 글을 보며 웃는다는 것이 발칙하지만 웃음이 나왔다. 살면서 뭔가를 이루려고 아등바등 거리는 사람들에게 내가 만족하는 것이 제일, 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소탈한 모습에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선인들은 나처럼 아등바등 거리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인정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죽고 나면 그만두겠지!, 라는 것이었다. 허허허, 하는 웃음이 나온 건 그에 관련된 묘지명을 읽고 난 후였다. 모두가 똑같구나!, 하는 생각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웃었다. 뭔가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아주 조금이지만 분명히 생겼다. 조심스럽게 그것이 느껴졌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책을 둘러봤을 때, 「내면기행」이 소설보다 재밌는 책이라는 걸 알았다. 웃기거나 유쾌하거나 한 그런 재미는 아니다. 내면을 뿌듯하게 만드는 재미라고 할까. 남들이 쓰면 너무 칭찬해서 부끄러워지니까 자기가 쓰겠다며 쓴 글들은 심경호의 해설과 만나 그 시대의 문화로, 정신으로, 지향점으로 다가왔고 나는 그것들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즐거워했다. 충만했다는 말을 써도 될 것 같다. 그리하여 기행을 하는 동안, 진심으로, 재밌었던 것이다.

선인들의 올곧은 정신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좋고 조선시대의 문화를 알 수 있다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 재밌어서 좋다.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면서도 소탈하게 조언해주는 것도 좋다. 이래저래 이 책은 내게 좋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책을 덮은 후에,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것을 확신하고 있다. 또한 자신한다. 「내면기행」과 함께 하는 '기행'은, 어느 여행보다 소중한 것을 알려줄 것임을. 간절함이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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