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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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먹다」를 읽은 것이 언제였더라? 그 시기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그 소설의 작가가 김진규이며 또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그 소설의 맛이 굉장히 진중했으며 또한 묵직했고 여운 또한 그윽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색적이라고 해야 할까? 요즘 한국 작가들은, 특히 그것이 신인의 경우라면 '현대'를 이야기할 뿐이다. 과거를, 그것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쓰려면 그에 걸맞는 '내공'이 있어야 하는데 다들 그것이 부족하다. 그런데 김진규는 그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은 강렬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혹은 된장국 같은 맛으로.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이 나왔을 때, 나는 당연하다는 심정으로 책을 읽었고 새삼 내가 생각했던 그녀의 평가가 헛된 것이 아님을 확인했다. 그녀는 「달을 먹다」에서 보여준 것 이상으로 조선시대의 것들을 제 것인 양 자유자재로 사용하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었다. 「달을 먹다」 이후에, 내공이 한 갑자 이상 늘어난 것처럼,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 시대를 배경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은 조선 성종대, 소심한 공처가 공생원이 겪은 작은 소동을 담고 있다. 의사는 공생원에게 씨가 없다고 했는데, 덩치 큰 마나님은 보란 듯이 임신을 했다. 공생원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는 소심하게나마 마나님에게 퉁퉁 거리며 범인 찾기에 돌입한다. 마나님의 주변에 얼씬거린 남자들을 캐내고 다니는 것이다. 물론, 아주 소심하게.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은 「달을 먹다」와 많이 다르다. 「달을 먹다」가 진중했다면 이 소설은 해학적이면서 유쾌하고, 「달을 먹다」가 묵직했다면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은 소탈하다. 분위기가 많이 다른데, 눈에 띄는 것은 향상된 김진규의 내공이다. 그 내공을 엿볼 수 있는 건, 소설을 이끄는 캐릭터들의 개성이다. 남촌 공생원은 물론이고 덩치 큰 마나님부터 주변에 있는 남자들(의원, 노비, 참봉, 사촌, 두부장수 등) 하나하나가 다 개성이 넘친다. 동시에 다들 저마다의 생기가 있다. 그것이 소설의 생기를 더 빛나게 하는 건 당연한 일. 김진규의 소설 쓰는 재주가 일취월장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해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소심한 공처가의 소동을 그린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소설이 건네주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아주 맛깔스럽게 알려준다. 이 정도면, 웬만큼 눈 높은 독자라도 사로잡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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