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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계절 1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
도나 타트 지음, 이윤기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에서 날라 온 추리소설에 익숙해버린 탓인지 장르소설이라면 한다면 빠른 것을 좋아한다. 또한 범인이 누군지 끝까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구조를 좋아한다. 반전을 마주할 때야, 아! 그놈이 범인이었구나!, 라고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이건 뭐냐? ‘비밀의 계절’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양극단에 서 있었다. 그냥 덮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도나 타트의 사진보고 (책 본 사람은 알겠지만 상당히 신뢰감 가는 얼굴이다) 보려고 했는데, 시간 지나고 보니 그 여자 얼굴은 저리 갔고 빨려 들어간 내가 있었다. 이게 블랙홀이냐? 당연히 아니다. 그런데 여우에 홀린 것처럼 돼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아주 다른데, 범인도 뻥 하고 공개하고, 빠르기는커녕 아주 느릿느릿한데도 그렇다.
느릿느릿함. 이건 흡사 ‘살인의 해석’볼 때를 연상시켰다. 그래도 ‘살인의 해석’은 프로이트 나온다고 하니까 신기해서 꾸역꾸역 봤는데 이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느릿느릿한데 계속 읽게 된다. 이건 뭐 거북이 등 타고 여행하는 기분인데 그 여행이 멈추고 싶지 않다는 것. 어떻게 해야 할까? 를 미친 듯이 이야기하는데 마음에 들었다.
범인 공개. 이것을 알았을 때, 도대체 너희는 무슨 심보냐? 하는 반감이 들었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자신감인가. 장르소설이 범인을 공개하다니. 그런데 읽다보니... 그럴 이유가 있었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이건 단순히 누가 범인이게? 라고 묻는 아메바적인 것이 아니었다. 고도의 심리전쟁. 우리가 함께 죽였는데 너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믿어?라는 이 놀라운 심리전쟁. 그 전쟁의 기분 좋은 참상을 별님은 아시려나?
거북이 등 타고 여행한번 잘 했다! 참 별님은 반짝반짝 잘도 빛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