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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장 쪽으로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빚을 내어 교외의 전원주택에 사는 평범한 월급쟁이. 사육장에게 탈출한 개가 월급쟁이의 자식을 습격한다. 월급쟁이는 병원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은 다들 “사육장 쪽으로” 가면 병원이 있다고 말한다. 월급쟁이는 이리 저리 헤매다가 ‘개’의 소리를 발견한다. 그곳은 병원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월급쟁이는 안도한다. 병원 같은 것은 둘째 치고, 월급쟁이는 안도하고 만다. 아, 불쌍한 월급쟁이, 비정규직 인생이여!
편혜영의 소설집에서 ‘사육장 쪽으로’부터 봤다. 소설을 보고 난 뒤에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광폭하다니! 문장이 그런 것이 아니다. 단어가 그런 것도 아니다. ‘월급쟁이’라는 소시민으로 그들의 무기력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소설의 목소리가 나를 두렵게 했다. 이런 소설을 봤다는 사실에 나는 두 번 세 번 놀라고 말았다.
편혜영의 첫 소설집 ‘아오이가든’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악몽’같은 소설이었다. 하지만 ‘사육장 쪽으로’는 ‘악몽 같은 현실’을 담아낸 소설이다. 진일보했다. 앞으로 한 걸음 나갔다. 좀 더 세련되게 소설의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전에는 ‘특이’하다는 생각을 들게 했는데 이번 소설집은 특이하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듣는 이를 두렵게 만든다. 날카로워졌다. 현실의 문제를 소설에 장착시켜 사람들의 심장을 겨누고 두려움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소설집에 있는 소설들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만, ‘분실물’도 ‘사육장 쪽으로’만큼 높게 평가하고 싶다. 무기력한 직장인에게 찾아온 승진의 기회, 그것은 일종의 범법행위였다. 그는 동참했지만, 중요한 순간에 그것을 분실하고 만다. 그것을 두려워하는 그 남자의 마음을 편혜영을 너무 실감나게 그렸다. 책을 들고 있는 손까지 떨리게 만들 정도로… 두려운 소설이다.
그저 독특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읽으려 했지만 결국 나는 편혜영 소설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다른 여성 작가들은 고독한 척, 쓸쓸한 척하면서도 은밀하게 예쁘고 아름다운 소설을 쓴다. 그런데 편혜영은 정말 고독과 쓸쓸함을 말하고, 나아가 현대인의 두려움을 콕 찍어 말하고 있다. 편혜영이라는 소설가가 있다는 것과 ‘사육장 쪽으로’라는 소설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보람이다.
후후후. ‘사육장 쪽으로’를 인정한 뒤, 나는 이제 편혜영 쪽으로 방향을 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