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발표 소식이 들렸을 때, 시큰둥했다. 누가 받든 무슨 상관일까 했다. 그러나 역시 폭풍이 몰아닥쳤다. 여기저기서 도리스 레싱의 소설을 두고 말이 오갔다. 나는 무관심하려고 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갑자기 읽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섯째 아이’에 손이 갔다. 사람들의 리뷰를 보니 그 소설은 노벨문학상을 받아서가 아니라 내용 자체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지 않은 분량, 어떤 소설일까 싶어서 표지를 들춰봤는데 빨아들이는 힘이 상상 이상이었다. 그것을 느낀 시간부터, 100m 달리기를 하는 사람처럼 단걸음에 읽어나갔다. 남녀는 평범했다. 세상의 말대로 하면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결혼을 해서도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남자는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을 두고 싶었고 여자는 아이들을 많이 낳아 기르는 다정한 엄마요 헌신적인 아내가 되고 싶었다. 마침내 그들은 결혼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을 낳았다. 아이들을 키우기에 경제형편이 어렵기는 했지만 그들은 ‘이상적인 가정’을 위해 자연의 순리를 막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덩치도 컸고 사나웠다. 남편은 물론이고 세상 사람들은 여자를 암묵적으로 비난한다. 아이의 형과 누나들은 두려움에 어쩔 줄 몰라 한다. 괴물 같은 아이가 등장하자마자 모든 것이 파괴돼 버리고 말았다. 오싹했다. ‘다섯째 아이’를 보는 동안 소름이 돋았다. 이상적인 가정이라는 것은 얼마나 허울 좋은 말이었던가. 겨우 아이 하나가 비정상적으로 보인다고 해서 그렇게 깡그리 무너지고 마는데! 그들의 행태를 보라. 아이를 ‘어떤 곳’으로 보낸다. 아이가 사라지자 집 안은 다시 유쾌해진다. 아이들은 행복해하고, 남편은 웃음을 되찾는다. 하지만 엄마는? 그녀는 독단적으로 다시 아이를 되찾아온다. 그것으로 다시 집안에는 암울한 구름이 덮쳐오는데… 무서운 소설이다. 튼튼해 보이는 일상도 이렇게 쉽게 깨질 수 있다는 것이 무섭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혈육을 그렇게 내치는 모습도 무섭다. 그보다 정말 무서웠던 것은, 이 내용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때문이다. 나도, 내 친구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아! 좋은 소설이다.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 특히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을 누리고 싶다거나 누리고 있다고 자부하며 사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 소설이다. 그렇구나, ‘다섯째 아이’는 말이 많이 나올 만한 소설이었다. 노벨문학상을 누가 받든 관심 없고 그게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지만 이번만큼은 노벨문학상에 고맙다. 덕분에 좋은 소설 읽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