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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광인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세 번째 이야기 ㅣ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김탁환은 ‘방각본 살인 사건’이라는 두 권의 책을 선보였다. 그 책은 ‘백탑파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책이었다. 정조가 다스리던 시절, 박지원과 이덕무 등이 활약하던 그 시대를 의금부 도사 이명방이 보여주는데 그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지금이야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이지만, 그때만 해도 그 소설은 작은 파란을 일으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형 팩션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랬다. 4년 전 누가 한국형 팩션을 기대했던가. ‘방각본 살인 사건’이 베스트셀러에 오르지는 못했던 것 같지만, 김탁환이라는 이름을 확실히 인식시켜줬다.
어디에선가 김탁환이 2년마다 시리즈를 내겠다는 말을 들었다. 정말인가 했는데 진짜였다. 2005년 김탁환은 ‘열녀문의 비밀’을 발표해 약속을 지켰다. 그 소설 또한 놀랍도록 재미있었다. 그리고 2년이 흐른 지금, 또 한 번 그 약속이 지켜졌음을 확인했다. 완결편인 ‘열하광인’으로 그것이 지켜진 것이다.
귀신 까무러치는 범죄들을 해결했던 그네들의 최후는 어찌 장식되었을까? 제목의 뉘앙스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제목이 ‘열하광인’이다. 열하에 미친 사람이라는 말 아닌가. ‘열하’란 박지원이 쓴 책이다. 그 책은 정조 시대에 참으로 파란만장한 일들을 겪어야 했다. 세상으로부터 찬사를 듣는 동시에 온갖 시기와 비난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것을 읽었다. 조선 시절에 나온 다른 책들과 다르게 곡소리 날 정도로 슬프게, 혹은 날아갈 듯 신명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조가 직격탄을 날린다. 문체를 예로 들며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열하는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열하광인’들은 그것을 멈출 수 없다. 그러기에는 유혹이 너무 컸다. 이명방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은 몰래 모여서 읽기로 한다. 그런데 무슨 일 일까? 한 명씩 죽어나간다. 누구 죽이는지, 왜 죽는지도 알 길이 없다. 열하광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어처구니없게 죽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명방이 그들을 죽인 범인으로 지목됐다는 것이다. 박지원, 이덕무 등을 스승으로 모신 이명방과 열하광인을 노린 자는 누구인가? 모든 사실을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듯 묻는 정조의 본심은 무엇인가? 백탑 서생들의 꿈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전에 나온 소설들은 추리소설적인 특징이 강해서 범인의 정체와 사건의 결말이 궁금증을 자아냈고 그것이 소설의 즐거움을 만들었다. 하지만 ‘열하광인’은 다르다. 역사적으로 논쟁이 될 만한 사실이 추리소설적인 특징과 맞물려 있다. 범인을 쫓는 것도 즐겁지만 정조와 박지원의 보이지 않는 갈등을 보는 것도 즐겁고, 백탑파 서생들의 최후를 쫓는 것도 소설의 즐거움을 풍성하게 만든다. 비록 그것이 안타까운 결말을 맺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소설의 재미만큼은 이전 작품들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열하광인’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처음으로 백탑파 시리즈를 접했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이런 소설도 있다는 생각에 흥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생각할수록 마지막이라는 것이 못내 야속하다. 김탁환에게 시리즈를 더 쓸 수 없겠냐고 말이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역사 속의 그들도 끝이 있듯 시리즈도 끝이 있는 법이다. 지지부진하게 이어가는 것보다 제때 끝낼 줄 아는 것은 확실히 미덕이다. 김탁환은 그것을 알고 공을 들여 ‘열하광인’을 썼을 것이고 팬으로서 나는 그것을 고맙게 받아들일 뿐이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열하광인’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내가 할 일일 것이다. 오랫동안 나를 즐겁게 해줬으며 마지막까지도 황홀하게 만든 백탑파 시리즈의 그 마지막 이야기 ‘열하광인’, ‘이런 소설은 읽어줘야 한다’는 말로 그 여운을 정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