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를 볼 때,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내가 들고 있는 것이 소설인지 고래인지 분간이 안됐다. 나는 그저 이런 작가가 있다는 사실에 황홀하기만 했다. 나를 놀라게 했던 사람, 2005년이 김애란이었다면 2004년은 천명관이었다.. 공교롭게도 김애란과 함께 천명관의 소설집도 나왔다. 미친 듯이 봤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천명관의 여러 이야기가 들어있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소설집의 코드를 갖췄다. 재밌는 것도 있고 부족해 보이는 것도 있고, 유쾌한 것도 있고 쓸쓸한 것도 있다. ‘고래’를 읽고 시나리오를 쓴다는 사실을 너무 의식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천명관의 소설은 영상을 보는 것 같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고래’를 볼 때와 고래와 코끼리가 뛰어다니고 벽돌들이 날아다니는 걸 상상했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에서는 ‘배’다. 안개 속에서 이혼을 생각하며 운전을 하는데, 앞에서 이상한 것이 나타난다. 새벽 두시. 그것은 배다. 하얀 돛을 달고 안개 속을 향해 미끄러지듯 가는 배. 그것을 상상하는데, 황홀했다. (‘고래’에 대한 말도 그렇지만,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비밀스러운 암호.) 김훈의 소설을 보고 문장에 놀랐는데, 이 소설을 보고 그 상상력에 놀라고 만다. 천명관은 정말 비상한 두뇌를 가진 소설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