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언어가 난해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 가슴을 묵직하게 짓누르는 것이 어려웠다. 귀신 같은 것과는 다른 차원의, 공포감을 주는 것이 책 사이사이에 서려 있었다. ‘운명’은 15살의 소년이 전쟁 중 벌어졌던 잔혹한 범죄의 현장인 수용소에서 겪는 내용이다. 알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내용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용보다 소년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그 사건이 충격적이었다. 정말 그랬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나 자신이 곧 운명이다, 라고 외치는 그 말. 차가워도 너무 차갑다. 손을 뻗기가 무서울 정도다. 대단하구나, 정말 대단해. 임레 케르테스에게 한방 먹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 책, 적극적으로 추천하기는 뭔가 꺼려지는 것이 있지만, 그래도 추천 목록에서 빼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