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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58
모옌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1. 예술이라는 우주를 건너
모옌은 한국식으로 발음하면 막언이다. 해석하자면 '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뜻일테다. 으레 문학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으로만 말하여야 한다고 표현하곤 하는데 그는 이걸 자신의 예명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나처럼 현대 중국사 지식이 그냥 어렴풋이 흐름만 아는 수준인 독자조차 슬픔이 전달되니 아무래도 그의 고집스러움은 성공한듯 싶다. 혹자는 모옌이 역사적 문제에 대해 너무 모호하게 대응하는 행동이 불만을 토로한다. 다시 말해, 그가 중국 정부를 너무 의식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의 태도는 반정부 인사로 찍혀 현재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노벨상을 받은 가오싱젠과 비교하면 상당히 미온적이다. 그러나 나는 그게 모옌의 소설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2. 도깨비 뿔을 가진 악마?
흔히 60년대 반공 만화를 보면 북한과 관련된 등장인물은 모조리 뿔 달린 악마로 묘사되거나 괴물 비스무리한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악랄함과 전혀 무관하게 정말 뿔 달린 악마처럼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이것을 문학적 표현으로 돌리더라도 이러한 인물에 대한 피상적인 묘사는 그다지 설득력을 가지지 않는다. 어떤 인물이든 하나의 역사를 이루고 있고, 그것은 그 인물이 매 사건마다 끊임없이 변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옌이 그리는 중국 현대사의 인물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여겨지지만, 한편으로 언제나 사건에 사로잡혀 있는 무력한 존재이다. 이것이 그 인물의 선행과 악행을 정당화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오히려 작가가 인물의 모습을 오롯이 바라보려는 시선을 유지할 때, 감상자는 비로소 그에 대한 가능성과 한계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3. 당신에게 쓰는 편지
개구리는 모옌의 작품 중에서도 압도적인 걸작이다. 이 소설은 일본인 지인에게 편지를 쓰는 부분과 말미의 희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단 몇몇 리뷰어의 말마따나 중국사에서 일본이 끼친 영향을 생각해보면 주인공 커더우(한국어로 '올챙이')가 일본인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비록 일기 다음으로 개인적인 글인 편지의 형식으로 쓰여졌지만, 그가 쓴 여타의 소설처럼 이것도 치밀한 묘사와 몇몇 환상적인 부분이 어우러져 술술 읽힌다. 이야기에 푹 빠져 등장 인물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한다. 그의 작품이 포크너와 마르케스를 함께 보는 것 같다는 평이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4. 남겨진 희곡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커더우가 쓴 희곡을 읽으면 장르의 변화에 따라 갑자기 호흡이 느려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환각적인 요소에서 벗어나 작품 주제 자체에 대해 좀 더 낯설게 보라보는 시선을 가지게 된다. 여기서 나는 일종의 소격효과를 느꼈다. 브레히트나 베케트가 사용한 일반적인 소격효과처럼 희곡 안에 부조리한 성격이 있는 건 아니지만, 장르의 변화 만으로 이런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 참신하다고 생각한다.
5. 미생 커더우
소설 제목인 개구리와 달리 주인공 커더우는 앞서 밝힌 것처럼 올챙이라는 의미이다. 모옌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미성숙한 존재인 올챙이라는 이름을 화자에게 부름으로써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 없이 신격화시키기에 바쁜 사람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경향은 동아시아 전체가 가지고 있고 한국을 살아가는 나 역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런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끊임없이 고민하여야 완생에 조금 가까워지는 자아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무한한 미생에 대한 깨달음이 곧 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