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바디우 : 진리를 향한 주체
피터 홀워드 지음, 박성훈 옮김 / 길(도서출판)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1. 바디우에 대한 회상

 어린 시절 니체주의자였던 나는 막연하게 현존하는 최전선의 철학자가 궁금해졌다. 한국 학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수용되는 현대 철학이라고 여겨졌던 것은 프랑스 철학이었고, 그 때 접한 것이 바로 바디우였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바디우는 현대 프랑스 철학이라고 곧잘 불리는 포스트 구조주의 안에서도 특이한 지점에 속한다. 피터 워홀드가 쓴 이 해설서는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에 최고의 저서임은 분명하다. 바디우의 주요 저서인 '존재와 사건'이 품절되었을 뿐만 아니라 번역 역시 최악이기 때문이다. 철학을 위한 선언은 그나마 볼만하다. 지금은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독특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2. 플라톤과 라캉의 기묘한 만남

 바디우는 철학자 플라톤과 바디우가 정의한 반철학자 라캉의 후예이다. 현재 내가 그의 철학을 수용할 수 없는 것은 나의 생각이 플라톤의 인식론과 정반대에 속하고 특히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애초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의 플라톤적인 면모는 현대 집합론으로 해석하는 그의 존재론에서 잘 드러난다. 이를테면 존재의 실존을 모두 무한 집합의 원소로 보았다.


3. 정치, 과학, 예술, 사랑의 진리들

 플라톤과 바디우가 다른 점은 바디우는 하나의 이데아로부터의 진리가 아닌 다수의 진리'들'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그는 정치, 과학, 예술, 사랑이 진리를 생산하는 영역이라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진리들은 후기 하이데거에게서 영향을 받은 용어인 '사건(철학에의 기여 국역본에서 쓰인 새로운 번역어에 따르면 생생한 고유화)'을 통해 출현한다. 철학은 이 영역들을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그가 정치, 과학, 예술, 사랑만이 진리를 생산한다고 보는 당위성을 알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그의 철학이 Ad Hoc(라틴어로 그것에 대해서)을 설명하는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Ad Hoc 자체는 정말로 대안을 없을 경우에 논증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긴 라캉을 인정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의 수용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프로젝트가 아닐까 싶다.


4. 사랑의 단상

 이런 비관적인 관점에도 사랑에 대한 바디우의 사유는 인상적이었다. 즉, 사랑은 하나로 합일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둘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마치 둘이서 춤을 출 때 짝을 이루면서 움직이는 것과 같다. 이것은 하나로 보이지만 전적으로 '둘'이라는 것이다. 사랑에 있어서 겸손한 그의 태도는 한번쯤 곱씹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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